발자크는 작가들이 정말로 힘을 합치고 자기들의 소명을 의식한다면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 P509

언제나 되풀이되는 것은, 자기 세기의 가장 강력한 이 남자가 현실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작용력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 P510

본질의 신비스런 유사성 덕분에 정신이 항상 다른 정신을 알아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시끄러운 시대문학의 요란한 소음 위로 이 두 사람이 조용하고 평온하게, 침착한 태도로, 그리고 분명한 확고함으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던 것을 읽는 일은 감동적이다. - P519

그가 절망에 사로잡혀서 한스카 부인을 향해서. <하트의 잭의 방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자신은 네 권의 소설을 써야 한다고 탄식했지만 우리는 그와 함께 탄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발자크가1841년부터 1843년까지 이런 곤란한 처지에서 쓴 장편과 단편소설들은 그의 가장 힘찬 창작품에 속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저 멜로드라마들이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어쩌면 그는 이 작품들을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554

발자크가 체험과 실망을 통해서 분노를 느낄수록 그는 더욱 진실에 가까워졌다. - P555

자연에서 동물종들이 주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양으로 발전하듯이 인간도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발전한다. - P561

사람들은, 그것도 가장 천재적인 사람들조차도 자기들의 업적이 아니라 훨씬 더 값이 싸고 가벼운 물건들로 존경받고 경탄받으려고 생각한다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수집가 발자크는 이 사실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되고 있다. - P601

인간은 자기 천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 P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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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파인 간극은 단절의 결과가 아니라 점진적인 멀어짐의 산물이었다. - P153

진실은, 내게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이다. - P153

개인적·사회적 정체성은 분명 우리가 다양한 충위registres의 복합성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들‘에, 사회세계의 이 다양한 차원들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관련되어 있다. - P155

타자의 부재는 그의 애정의 상실과 애도 말고도, 역할의 상실에서 기인하는 불확실성을 초래한다." 또한 우리가 소중한 존재를 잃으면서 ‘역할‘을 상실할 때, 그에 대한 ‘배반‘을 저지른다고 느낄 수 있고 자기 시각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자 애쓴다. "말하자면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정당화한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다." - P155

우리는 부모, 친구, 직장 동료 등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삶 속에, 우리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이 모든 ‘타자들‘이 다채롭게 현존하는 데서 비롯하는 ‘정체성 의식‘은 필연적으로 다원적plurielle이며 혼성적 composite이다. 결국 우리 자신의 실재를 구성하는건, 사르트르가 카를 야스퍼스에게서 빌려온 개념을 다시 취하자면, 단편적이고 이질적인 ‘정체성들‘의 ‘종합적 통일성unité synthétique‘이다. - P156

시몬 드 보부아르는 『노년』에서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사회 속 노인은 가족 계보에 대한 지식의 보유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 P167

가족 계보는 노인의 사멸과 더불어 사라질 위험이 매우 큰 사회적 기억임이 분명하다. 이 기억의 기능은 대개 여성의 몫으로 돌아간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오래 살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는 내내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과제가 일반적으로 여성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며, 관계의 명부를[머릿속에] 간직한 여성들이 그 복잡성과 진화 양상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P167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 자신의 어떤 부분, 유일한 중개자였던 그녀를 통해 어느 정도 가깝고 때로는 충분히 먼 가족 관계들과 아직 이어져 있던 부분을 송두리째 잘라버렸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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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불평했던 것이 모두 이 자료들이 목록화한 ‘학대‘ 사례 속에나타난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일어나지 못하는 것, 일 주일에 한 번 이상 샤워하지 못하는 것, 침대에 누운 사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으켜서 화장실에 데려가고 용변을 보도록 도울 수 없다는 이유로 계속 기저귀를 채워놓고 있는 것... 쟁점은 이런저런 수용 구조나 특정 에파드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저런 인물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체계적 학대가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사방에서 맹위를 떨친다. - P114

따라서 나는 요양원과 공립 병원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즉 환자와 노인, 병약하고 취약한 사람들, ‘돌봄‘ 영역의 소관인 모든 이에게 제공되는 수용 조건들이 전면적으로 용인 불가능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결함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최소 비용 또는 최대 편익의 경제 논리가 도처에서 그렇듯 여기서도 지배적이라는 데 있다. - P115

어머니의 삶 전체가 구획되고 통제되었으며, 그녀를 대신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자율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 사람personne으로서의 지위까지 상실했다. 그렇다. 탈인간화 dépersonnalisation로 인해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지경까지 다다른다. - P117

"삶은 죽음에 저항하는 기능들의 총체다." - P119

산다는 것은 시간, 시간성 그리고 당연히 공간성과 관계 맺는 것, 즉 시간 속에 스스로를 투사하고 공간 안에서 움직일 능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19

공간성의 상실, 시간성의 소멸은 인간 실존의 조건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 P120

삶은 건강한 삶뿐만 아니라 건강하지 않은 삶, 쇠약해진 삶이기도하다. - P120

브레히트의 이 여성 인물은 "순차적으로 두 삶을 살았다." 더 길었던 첫번째 것이 "딸,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이었다면, 훨씬 짧았던(고작 몇 년)두번째 것은 "대단치 않지만 충분한 생계 수단을 갖추고 의무는 없는 독신으로서의 삶이었다. 말하자면 "굴종의 오랜 나날" 이후에 "자유의 짧은 나날이 이어진 셈이다. - P131

질병, 인간 존재의 노화 또는 사망은 냄새와 떼어놓을 수 없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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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헌정한 책 『한여자』에서 어머니가 쇠락하기 시작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녀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일이 처음 발생한 건 내가 학생들의 과제물을 고쳐주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귀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다 끝났어.‘ - P105

어머니는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달려 있었다. 그 과거는 그녀에겐 계속되는 것,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 것이었다. 바로 사랑의 열정이었다 - P107

어머니는 크리스타 볼프가 ‘몸앓이‘에서 ‘내면의 고고학‘이라 부른 것의 지층을 가로지르며 탐사를 수행하는 동안 적어도 행복했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정서적 드라마의 영역에 속해있었다. 질투, 분노 절망... - P107

"내 모든 시간성은 시간의 부재 속으로 침몰했다."
볼프는 심각한 복막염을 앓은 뒤 자신이 입원했던 경험을 다루는 책에서 이렇게 쓴다. "내 시간은 비非시간처럼 지워진다." - P108

그녀는 자신이 고통받고 있음을 안다. 고통은 시간과 맺는 관계를 무화하고, 이제껏 그녀의 시간과 타자들의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던 모든 것에서 정신과 신체를 빼낸다. - P109

늙고 병들어 고통받는 사람이 시간과 맺는 관계의 변화는 훨씬 첨예하다. 모든 일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것이고(점점 더 가까이 의식 상태에까지 다다르는 노쇠로 인해, 지속적으로 맑은 정신을 전제하는 이런 언어가 거의 무력할지라도) 우리가 시간의 시간성 속에 다시 편입될 수 있다는 식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엔 사태가 진정될 가능성이 없다. 우리는 이미 빠져든 시간의 공백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 P109

핌의 에파드는 공공시설이니만큼, 확신하건대 수용자들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설 시설에 비해 훨씬 더 지배적일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어머니에게 어떤 나쁜 대우도, 그런 층위의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한들, 난 폭력적인 것은 바로 이 모든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는 제도가 그녀의 조건을, 그녀와 같은 사람들의 조건을 관리하는 방식에 의해 학대받았다. 이곳에서 ‘의존적‘이라는 단어는 끔찍한 의미를 띤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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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우크라이나에 애인이 있고, 샹젤리제에도 애인이 있건만 그는 혼자였다. 그의 생애 어느 때보다도 더 혼자였다.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내면에서 어떤 새로운 것이 분명하게 깨어났다. 이 생명력 넘치고 낙관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인간이 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으니 바로 두려움이었다. 신비스럽고 헤아리기 힘들고 여러 가지 뜻을 담은 두려움. 모든 힘을 다해도 자신이 스스로 시작한 엄청난 작업을 완수하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너무 일찍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일에 빠져서 진짜 삶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 P450

발자크에게 있어서 바라보는 것은 곧 꿰뚫는 것이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마법을 통해 알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 P457

그의 소설들이 해마다 더 높은 수입을 올리고 엄청난 전집이 준비중에 있고, 그의 문학적인 지위가 유럽적인 수준에 오른 지금보다. 과격한 자신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기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 P464

그러나 질서를 원치 않는 것이 그의 삶의 깊은 의미였다. - P465

발자크의 생애에서는, 예술작품에서 모든 상황을 빈틈없는 눈길로 조망하고 꿰뚫어보던 그 두뇌가 현실에서는 어린애처럼 믿기 잘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어진다는 이 역설적인 현상이 징그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되풀이된다. - P472

예술가로서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동일한 상황을 실제 삶에서 부딪치면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가르칠 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 P473

<파시노 칸>이라는 허구의 상황에서는 보물 찾는 사람을 바보라고 여겼지만, 지금 자신이 이런 생각을 지닌 바보가 되고 만 것이다. - P476

비극적인 아이러니지만 그의 모든 계획들. 인쇄업, 활자제조업, ‘자르디‘의 부동산 사업 등에서 발자크는 계산만은 올바르게 했다. 그의 직관적인 눈길이 잘못 보았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부자가 되려고 했던 계획을 통해서 남들은 정말로 부자가 되었다. - P481

발자크의 후각은 언제나 옳았다. 그러나 이 후각은 언제나 예술가로서의 그에게만 호의적이었고, 자신의 영역을 넘어서려고만 하면 언제나 그를 잘못 인도하였다. 발자크가 자신의 환상을 작업으로 바꾸면 그 환상은 그에게 수십만금과 그밖에도 불멸의 작품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그가 환상을 돈으로 바꾸려고만 하면 빚만 쌓이고, 그 결과 수십 배, 수백 배의 노동이 대가로 돌아왔다. - P482

발자크의 소설을 특징짓는 것은 위대한 장면들이 아니라, 인물들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이며, 그들이 환경 및 풍경과 연결되는 과정에 있었다. - P494

발자크의 경우에 실패는 언제나 두 배, 열 배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졌다. - P499

자르디 건축, 누라의 은광산, 희곡 생산. 이 세 가지 엄청난 멍청이 짓은 마흔 살 먹은 남자가 스무 살 때나 서른 살때나 다름없이 세상사에는 순진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멍청한 짓들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차원이 더 커지고, 더욱 환상적이고, 충동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악마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거리감을 통해서 분명한 시각을 얻기 쉬운 우리에게는, 존경을 모르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눈먼 그의 행동만 보느라 그의 명석함을 잊어버린 일과, 그의 파괴적인 멍청함만 쳐다보느라 그 창조적인 작품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 P506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더욱더 사실주의자가 된다.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점점 더 불신을 품은 눈길로 그는 상황과 관계들을 꿰뚫어본다. 그리고 점점 더 예언자적인 인식으로 전체의 맥락을 조망한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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