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건데, 모든 직업이 다 나름대로 필요하고 명예롭기는 하지만, 고생하지 않고 시골에서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산을 더 늘리려 애쓸 필요도 없이 자기 재산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축복받은 건강을 누리고 최상의 외모를 유지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 P34
스물일곱 살의 앤은 녈아홉 살 때와는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레이디 러셀을 원망하지도, 그의 말대로 따른 자신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의 젊은이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절대로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 눈앞의 불행을 감수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 P46
어린 나이의 앤 엘리엇이 어떻게 인간의 노력을 모욕하고 신의 섭리를 불신하는 듯한 과도한 우려와 조심성에 맞서 뜨거운 애정과 미래에 대한 기운찬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소망을 열렬히 토로할 수 있었겠는가! 어린 시절부터 신중한 태도를 강요받다가 나이 들어 로맨스를 배웠으니, 어쩌면 부자연스러운 시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 P47
부적절한 식으로라도 도움 된다는 말을 듣는 쪽이, 적어도 아예 그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앤은 자기가 뭔가 쓸모 있다고 생각해주는 것이 고맙고, 뭐가 되었건 의무로 주어진 일이 생겼다는 게 기뻤으며, 무엇보다 시골, 자신이 사랑했던 시골에서 지내는 것도 싫지 않아서 메리와 머무는 데 기꺼이 동의했다. - P51
앤은 항상 그들을 지인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향락을 전부 다 준다 해도 자신의 우아하고 세련된 정신세계와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부러운 것이 있다면, 이들 자매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며 진심 어린 애정으로 대한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자매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감정이었다. - P62
레이디 엘리엇은 분별 있고 상냥한 성품의 훌륭한 여자였다. 젊은 날의 열정으로 엘리엇 경과 혼인했다는 사실만 눈감아준다면, 이후의 판단력과 품행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레이디 엘리엇은 남편의 잘못을 달래고 누그러뜨리고 감추어주며 그에게 헌신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의무와 친구들, 아이들에게서 삶에 애착을 가질 만한 이유를 충분히 찾아냈다. 하늘의 부름을 받아 그들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 P9
고귀한 정신과 다정한 성품을 지닌 앤은 참된 이해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높이 평가받을지언정, 아버지나 언니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말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항상 다른 이를 위해 양보해야 했다. 그는 그냥 앤이었다. - P11
남들이 겪지 않는 일을 나만 겪는다고 믿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법이지. - P21
윤석열 정부의 계엄 선포부터 4월까지 작가님의 일상적인 삶과 생각, 느낌을 기록한 일기. 작가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기쁘다.덧붙여 작가님이 세상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선택한 책, 배리 로페즈의 ‘호라이즌‘ 궁금해서 얼른 주문해 버리고 말았다.
존중과 다정을, 조용한 애정을 알아보고 눈치채는 마음. - P152
"혼자서는 어떤 이야기도 그리 멀리까지 이끌어갈 수 없다." - P167
아름다운 가위란 어쩌면 누군가 오래 사용한 가위인지도 모르겠다. - P170
언제나 가능성은 있다. - P171
하지만 가능성만을 바랄 수 있을 뿐인 세계는 얼마나 울적한가. 희망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계, 그 어려움이 기본인 세계는 얼마나 낡아빠진 세계인가. 너무 낡아서, 자기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세계. 다만 이어질 뿐인. - P171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 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 P102
오랜 화분은 차라리 깨야 한다는 걸 몰랐다. - P108
연결성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모두가 동등하다 - P114
산다는 건 결국 더러워진다는 것이지만,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며 사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줄기, 다른 삶에서 내 삶으로 흘러드는 물을, 타인의 삶에서 흘러나온 피가 스며든 도랑의 물을 내 도랑의 물로 받아 마시며 사는 일이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삶이란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일이지만. - P114
어리석음이 종종 늙음의 얼굴로 온다는 것은 기필코 늙는 존재인 내게도 섬뜩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어리석음이 마침내 늙음에서 개화했겠나, 인생 곳곳에 만발했을 것이다, 남의 인생을 이렇게 함부로 생각하며 앉아 있다. - P142
그래도 슬픔이 더 커서 괜찮은 것 같다. 분노하는 마음으로는 미운 이들과 동행하기가 어렵지만 슬픔으로는 함께할 수 있지. - P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