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살갗을 바꾸는 일이다." - P7
나는 아이에게 우리 인간들은 때때로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서로를 해하는 짓을 한다고 설명해준다. - P14
아이는 호주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순 없지만, 어떤 나무들은 처음 살던 나라에서 다른 장소로 실려 와서도 행복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 P25
물론 그 누구의 인생도 이렇게 기억의 구슬들을 꿰어놓은 것처럼 깔끔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긴 인생이란 불완전하게 기억된 결심들이 연거푸 쏟아져 내리는 일종의 폭포로 이해할 수도 있다. 초기에 품었던 결심 중 어떤 것들은 희미하게 지워진다. 잃어버린 기억과 배신, 믿음의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우회로를 거치고도 이어지는 결심들도 있다. 또 어떤 결심들은 세월이 흘러도 약간만 변형된 채 계속 유지된다. 예상치 못한 트라우마와 상처를 만나면 차는 언제든 도로 밖으로 탈선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사람은 영원히 목적지를 상실할 수도 있다. - P34
하지만 이를테면 불타오르듯 뜨거운 얼굴에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것과 같은 의도치 않은 순간에 솟아나는 가늠할 수 없는 숭고함이 계속하겠다는 결심을 되살릴 수도 있으며,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자기 회의와 후회가 주는 삶의 무게를 줄여줄 수도 있다. 혹은 휘청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아름다움 앞에 선 한순간이 한때 그 사람이 품었던 큰 의미를 지닌 삶을 살겠다던, 자신의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살겠다던 결심에 다시금 불을 당길 수도 있다. - P34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더블클러치로 변속하는 그의 민첩한 발동작을 바라보던 나는, 그가 자기 세상의 본능적 경험 속으로 나를 초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P38
내가 탐닉했던 비행의 아름다움은 대학교 1학년 때 알루미늄의 인장력에 대한 수업과 풍동 시험을 분석하는 수학, 항공공학의 경험주의와 충돌했다. 열대의 푸른 캘리포니아 하늘과 겹겹의 구름을 향해 텀블러비둘기들을 날려보낼 때마다, 혹은 유칼립투스에 앉아 있던 그 새들 사오십 마리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신호에 촉발되어 별안간 박차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안에서 부풀어 오르던 심장의 빠른 박동은 화학에서도 물리학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별들이 보석처럼 박힌 밤하늘 아래 사하라 서부의 모래언덕들 위를 스치듯 날아가던 생텍쥐페리의 저돌적인 정신은 미적분학 강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물리학 세미나에서도 이카로스의 도전적이고 무모한 허세에 담긴 의미는 다루지 않았다. - P43
열일곱 살의 나는 세상과 직접 맞닿는 경험을 갈망했다. 하지만 내 충동 대부분은 형태도 목표도 없는 순전히 은유적인 충동이었다. 나는 미성숙한 수많은 남자아이가 그렇듯 모종의 지위를 성취하려는 필사적인 마음에 허둥대기만 할 뿐, 그 갈망을 명확히 구현하지는 못했고 자의식만 가득했으며 방어적이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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