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석굴암은 분명히 하나의 마음에 의해 통일된 계획의 표현이다. 인도 아잔타나 중국 용문석굴처럼누대의 제작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하나의 마음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연한 구성이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적 제작이다. 외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놀랄 만큼 주도면밀히 계획된 완전한 통일체이다. - P186

걸음을 굴 밖에서 굴 안으로 옮기면 마음도 또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위대한 불타는 소리없이 조용히 그 부동의 모습을 연화좌대 위에 갖춘다. 우러러보는 자는 그 모습의 장엄과 미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완전히 내적인 영(靈)의 세계다. 그는 앞에 네 명의 여보살을, 뒤에는 십일면관음을, 그리고 좌우에는 그가 사랑하는 열 사람의 제자를 거느리고 영원의 영광을 고한다. 감실에 있는 여러 불상들은 그 법열을 찬송하는 듯하다. 여기는 (석굴 밖) 외부의 힘의 세계가 아니다. 내적인 깊이의 세계다. 미와 평화의 시현이다. 또한 장엄과 그윽함의 영기(靈氣)이다. 얼마나 선명한 대비가 굴 안팎에 나타나 있는가! 모든것이 밖으로부터 안으로 돌아간다. 힘에서 깊이로 들어간다. 움직임[動]보다도 고요함 속에 사는 것이다. 종교의 의미는 석굴암 속에서 다하는 느낌이다. - P186

침묵의 물체를 보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감정이입의 상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솜씨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 P189

불상이란 곧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자의 상이다. 신, 절대자, 완전자,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이상적 인간상의 구현이다. 그것은 모든 고대인들이 추구한 조화적 이상미이기도 하다.
모든 양극의 모순이 극복되어 하나의 이상적 질서를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을 고전적 가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전은 고전으로서 통한다. 그것은 양의 동서, 때의 고금을 관통하는 이상인 것이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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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계는 자아와 타자의 비대칭적 차이와 더불어 시작한다. 윤리적 또는 도덕적인 것은 서로에 대한 적절한 질서지음 또는 서열 매김에 기초한다. - P39

아이히만은 타인 또는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또한 ‘행위‘할 능력, 또는 더 잘 말하자면 도덕행위를 ‘수행할 능력도 없다. 예컨대 그에게는 어떤 것을 말하기‘란 언어놀이를 하는 것과 동일했다. - P40

아이히만은 타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던 것이다. - P41

아이히만은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의 윤리를 실천할 수 없었다. - P41

폭력은 차이를 지우려 할 때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값비싼 대가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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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전설은 언제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것으로 인하여 실패작이라는 혐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신비함을 더해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5%의 미완성으로 그 신비로움을 더해가듯이 석불사 석굴의 세 동강 난 천장덮개돌은 석굴의 난공사를 더욱 실감케 해주는 아름다운 상처인 것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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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을 남김없이 알고자 하는가
본디 바탕이란 있지 않은 것
이러한 법의 성품을 이해한다면
곧바로 노사자불을 보리라 - P152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수 없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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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와 말, 이 두 가지의 기본 조건이 되는 인간의 복수성은 평등과 차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인간들이 평등하지 않다면 그들은 서로 그리고 자신들에 앞서 왔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고, 또 미래를 계획하고 자신들 다음에 올 사람들의 필요를 예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인간들이 다르지 않다면 현재 존재하고 과거에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사람들과 구별되는 각 사람들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하거나 행위를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 P28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그의 행위의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료들과 어울리게 해주고, 공동의 행위를 하게 해주며, 그 재능―새로운 어떤 일을 착수하는 능력 (새로운 것의 시작으로서의 탄생)이 없었더라면 마음의 욕망은 물론이고 정신의 생각으로도 결코 들지 않았을 일과 목표를 위해 나서게 해준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행위한다는 것은 탄생성의 조건에 대해 인간적인 응답을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탄생을 통해 본질적으로 복수적으로 존재하는 신참자로서 또 시작으로서 이 세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탄생의 사실이 없다면 우리는 새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모든 ‘행위‘는 단순지 행태나 도착적 행동에 불과할 것이다. - P30

인간은 어머니가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날에 단 한 차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탄생을 해야할 의무를 부여한다. - P31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각각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출생시키고 세계를 자연적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변형시킨다. 더욱이 이러한 산출은 항상 이미 공동의 프로젝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복수적인 세계, 즉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되어 있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1

사유의 진정한 불능성 - P37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 - P39

‘차이‘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가 없다고 아렌트가 생각한 것은 옳았다. 그렇다면 ‘말‘과 ‘행위‘도 필요없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만일 우리 모두가 똑같다면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차이가 없다면 결국 인간의 복수성 자체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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