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2011)

만화책 그것도 대부분 순정만화를 섭렵했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 시절에 이런 그림체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과 함께`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알게 되었고 웹툰을 볼 생각은 없었다. 무한도전에서 주호민 작가를 웹툰계의 장범준이라고 수식하고 작품이 긍정적이라는 말에 보게 되었다.

`신과 함께: 저승편`은 저승 세계와 그곳에서 자신의 죄를 49일동안 심판받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규모있게 펼쳐진다. 만화는 고릿적 조폭 영화에서나 보던 `착하게 살자`라는 주제를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착하게 살면 손해보는 세상에서 저승에서라도 그들의 선함이 보상받았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라 짐작해본다.

만화의 제 1원칙, 재밌다.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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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경(2016)

빠지지않는 외모에 부모님 재력도 괜찮고 같은 대학의 예쁜 애가 여자친구인 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나 홀로 남는다. 만신창이 몸과 함께 쓸데 없는 능력만 덤으로 얻었다. 사람들의 등에 숫자가 보인다. 그들의 남은 생을 알려주는 숫자말이다.

`빽넘버`라는 책 제목과 책 소개 조금만 읽으면 짐작할 만한 내용 맞다. 처음 사람들의 등에 숫자가 보인다는 설정을 알고 생뚱맞게 런닝맨이 떠올랐다. 이름표 뜯기를 너무 봤나 보다.

원영은 계속되는 병원 생활과 함께 차차 적응한다. 여자친구 윤지와도 자연스레 이별하고 재활병원으로 옮겨 꽃돌이 커피 청년이 된다. 나빠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여정 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등에 대부분 세자리 숫자를 달고 있다. 숫자가 1이 되기 전에 어떻게 알았는데 그들은 임종을 위한 곳으로 떠난다. 요양병원 혹은 집.

사고 후 5년 정도가 지나 퇴원을 하고 하나 남은 친구 재수의 소개로 심부름 센터에 취직한다. 음식 배달이나 전등 갈아 끼우기같은 소소한 심부름이다. 문제는 단골 카페에서 생겼다. 어느 커플의 등 뒤 숫자가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1이다. 미친 척 그들을 살려보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다.

집으로 사신이 찾아왔다. 등 뒤에 숫자가 없는 사신 부장은 원영을 보이는 자라 지칭하고 조용히 살라고 한다. 백넘버가 보이기 때문에 숨죽이고 살지만 그래서 원영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하다.

숫자가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설정은 좀 미묘했다. 촌스럽다고 해야할지. 감출 수 없는 존재감이나 피할 수 없는 느낌은 흑백보다 색이 있는 것이 강렬하지만 초록색과 빨강색은 신호등이 떠올라서 좀.

소설에서 사신의 외양은 평범 그 자체이다. 오히려 신문 펼쳐보기나 촌스런 넥타이로 튀는 수준이다. 보이는 자에 익숙하지 않은 대리급 사신은 원영을 슬쩍 피하기까지 한다. 찌들어있는 사신의 모습이나 호칭에서 직장인을 투영하는 듯 하다. 특히 그들의 일 처리 방식이 말이다. 매 달 혹은 그 날에 할당된 죽은 이의 숫자를 맞춰야 하기에 원래 죽을 운명이 아닌 자를 대체자로 끼워 넣는다. 대체자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원래 가야 할 사람을 데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약간 어이가 없었다.

사람들의 남은 수명을 읽을 수 있다는 설정은 새롭다고 볼 수 없다. 사신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남은 생을 알고 능동적으로 영웅이 되거나 떠벌리고 다니는 일은 없다. 오히려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느낌은 허무이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원영에게 필요한 것은 담백한 응시이다. 소박하고 조심조심 살아가는 조금은 쓸쓸한 삶이 보이는 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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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핑크 지음, 이한 해설(2016)

조선왕조실톡 3은 백성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쭉 이어서 왕들의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백성을 보는 것도 좋지 싶다. 소소한 우리네 삶의 모습보다 영향력있는 소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름 모를 개똥이 1, 언년이 3같이 그 시대의 나의 이야기겠거니 하니 사랑스럽고 친숙하다. 살짝 미안해지기도 :)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을 엿볼 수있다. 나이를 먹기 싫어 떡국 먹기를 거부하거나 성균관=명문대생을 부러워하고 관심같은 모습까지.
여성들의 가체 사랑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인모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량도 적고 값도 비싸다니 진정 명품이로구나.

이제 웹툰으로 봐야할지 다음 권을 기다려야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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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자와 호노부(2014, 일본)

일본 추리소설은 한창 보다가 좀 쉬어가는 참이었다.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읽으면 족족 비슷한 느낌의 일본 소설을 읽다가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아차싶었던 적이 있다.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글에 적응하지 못해 자괴감이 들었다. 쉽게 한 장 한 장을 넘기질 못했다. 그 뒤로 의식적으로 책을 고르게 되었고 한 참 지난 지금에는 소설이 아닌 다양한 책을 읽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는 알고 있지만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야경(夜警)`이 처음이다. `야경`은 표제작을 포함해서 여섯 작품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본래 장편소설을 좋아하지만 야경은 좋았다. 글은 완전한 통일성은 없지만 전반적인 느낌이나 구성이 비슷했다. 분위기 혹은 부정적 결말로 이어진다는 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용이나 배경이 화려하지 않고 일상적 삶 속 이야기인 것도 좋았다. 소소한 느낌이다.

야경(夜警)은 작은 동네 파출소의 경관의 죽음과 관련된 경찰 소설이다. 한적한 동네에 불어닥친 사건은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때문이다. 죽은 경관은 미련함, 파출소 소장은 불운의 아이콘인 것 같다.

사인숙(死人宿)은 자살 명소 온천 여관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갑자기 사라진 전 여자친구를 찾기 위해 왔다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와 함께 자살을 막기위한 추리를 시작한다. 명탐정 코난을 보는 듯한 단출하면서도 흐뭇한 추리가 이어진다.

석류는 6개의 글 중 죽음이나 살인이 없는 유일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속의 치정은 잔인함과 악의로 가장 지독하게 느껴졌다.

만등(萬燈)은 해외 파견으로 방글라데시에서 가스 발굴을 위해 일하는 비즈니스맨이 중심이 된다. 살인사건이 전염병으로 번지기까지 구질구질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지기는 사람이 뜸한 산 길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고와 관련된 괴담에서 시작한다. 고갯길과 그 끝의 작은 마을 사이에 있는 누구나 들릴 법한 휴게소, 그 곳을 지키는 할머니. 할머니가 소설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치밀한 사람이다. 희생없이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낸 문지기이니 말이다.
신세를 졌던 집안의 여주인이 얽힌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마지막 만원(滿願)의 이야기이다.

작품집은 표제작이 주인공이라고 볼 수 없게 골고루 눈길이 간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소설은 모르겠지만 이 책이 받았다는 무수한 상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개인적으로 석류, 만원보다는 다른 네 작품이 더 좋게 다가왔다. 참, 지독하게 치밀한 서사와 추리 혹은 굉장한 결말은 없다. 그렇지만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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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는 읽기 힘들었다. 처절함, 그것이 단지 허구가 아니기에.
`사서`는 옛길, 하늘의 아이, 죄인록, 시시포스의 신화까지 4권의 책의 내용을 이어서 보여주는 형식이다.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했고 번역되어 해외에서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원고를 보내보았지만 결국 중국 내에서는 출판할 수 없었다니 아쉽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과 함께 후보작을 검색하다 읽게 된 `사서`이다. 책을 읽기 전 문화대혁명을 검색해보고 읽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반적인 배경을 알고 시작했기에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4권의 책은 같은 듯 다른 이야기이다. 중국 황허강 주변의 99구가 배경이 된다. 지식인들이 사상 교육, 개조라는 명목으로 고립되어 황허강 주변의 척박한 땅에서 밀을 재배한다. 이들을 관리하는 이는 아이이다. 작가가 실제 홍위병의 모습을 아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교화가 끝나면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허상이다. 종교, 학자, 작가, 음악, 실험... 이름없는 지식인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

겨울이 되고 어느 날부터 철을 생산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용광로를 만들어 철을 생산하는 노동의 나날들. 끊임없이 이들을 일하게 하는 것은 아이가 부여한 오각별이라는 희망이다. 다른 이를 감시하고 서로의 잘못을 보고하고, 책을 반납하고 일에서 성과를 내면 아이는 붉은 종이꽃을 준다. 작은 붉은 꽃 125개를 모으면 그것이 오각별이 되고 99구를 떠나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죄인록을 쓰고 종교는 자신이 믿는 궁극의 신을 버린다.

99구에 아니 전역에 시련이 닥친다. 철 생산으로 나무없이 맨 땅이 되어버린 곳곳에 비가 오고 대흉년이 든다. 다시 겨울이 오고 끝없는 기근과 살을 에는 추위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남은 사람들은 배고픔에 견디다 못해 인육을 먹기까지 한다.

99구의 많은 사람들은 공포와 희망에서 좌절과 무기력함, 인간의 궁극적인 생존에 대한 처절함까지 모든 감정과 본능적 몸부림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최후의 최후까지 내몰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더더더 깊숙한 곳, 내면을 파헤친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아이는 아니다. 아이는 잘못된 이상을 쫓을 뿐이었다. 진정 책임져야하는 사람을 작가는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고통받는 사람들만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미 다 쏟아 보여준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역사의 단면을. 소설은 읽기 힘들었지만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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