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경(2016)
빠지지않는 외모에 부모님 재력도 괜찮고 같은 대학의 예쁜 애가 여자친구인 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나 홀로 남는다. 만신창이 몸과 함께 쓸데 없는 능력만 덤으로 얻었다. 사람들의 등에 숫자가 보인다. 그들의 남은 생을 알려주는 숫자말이다.
`빽넘버`라는 책 제목과 책 소개 조금만 읽으면 짐작할 만한 내용 맞다. 처음 사람들의 등에 숫자가 보인다는 설정을 알고 생뚱맞게 런닝맨이 떠올랐다. 이름표 뜯기를 너무 봤나 보다.
원영은 계속되는 병원 생활과 함께 차차 적응한다. 여자친구 윤지와도 자연스레 이별하고 재활병원으로 옮겨 꽃돌이 커피 청년이 된다. 나빠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여정 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등에 대부분 세자리 숫자를 달고 있다. 숫자가 1이 되기 전에 어떻게 알았는데 그들은 임종을 위한 곳으로 떠난다. 요양병원 혹은 집.
사고 후 5년 정도가 지나 퇴원을 하고 하나 남은 친구 재수의 소개로 심부름 센터에 취직한다. 음식 배달이나 전등 갈아 끼우기같은 소소한 심부름이다. 문제는 단골 카페에서 생겼다. 어느 커플의 등 뒤 숫자가 빨간색으로 깜빡이는 1이다. 미친 척 그들을 살려보려 했지만 결과는 실패다.
집으로 사신이 찾아왔다. 등 뒤에 숫자가 없는 사신 부장은 원영을 보이는 자라 지칭하고 조용히 살라고 한다. 백넘버가 보이기 때문에 숨죽이고 살지만 그래서 원영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하다.
숫자가 초록색으로 보인다는 설정은 좀 미묘했다. 촌스럽다고 해야할지. 감출 수 없는 존재감이나 피할 수 없는 느낌은 흑백보다 색이 있는 것이 강렬하지만 초록색과 빨강색은 신호등이 떠올라서 좀.
소설에서 사신의 외양은 평범 그 자체이다. 오히려 신문 펼쳐보기나 촌스런 넥타이로 튀는 수준이다. 보이는 자에 익숙하지 않은 대리급 사신은 원영을 슬쩍 피하기까지 한다. 찌들어있는 사신의 모습이나 호칭에서 직장인을 투영하는 듯 하다. 특히 그들의 일 처리 방식이 말이다. 매 달 혹은 그 날에 할당된 죽은 이의 숫자를 맞춰야 하기에 원래 죽을 운명이 아닌 자를 대체자로 끼워 넣는다. 대체자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원래 가야 할 사람을 데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아 약간 어이가 없었다.
사람들의 남은 수명을 읽을 수 있다는 설정은 새롭다고 볼 수 없다. 사신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남은 생을 알고 능동적으로 영웅이 되거나 떠벌리고 다니는 일은 없다. 오히려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느낌은 허무이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원영에게 필요한 것은 담백한 응시이다. 소박하고 조심조심 살아가는 조금은 쓸쓸한 삶이 보이는 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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