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워터스(2002, 영미)

(소설 줄거리 대부분 배제된 개인적 감상)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이라는 붐에 나도 편승했다. 책 소개에 따르면 `핑거스미스`는 1960년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동성애 역사소설이다. 이야기 전개에서 변화를 꾀하는 반전으로 1,2,3부가 나뉜다 .

런던 뒷골목, 도둑, 출생의 비밀, 시골 저택, 동성애, 상속, 외설, 재산, 음모, 정신병원, 살인...

`핑거스미스`의 키워드만 봐도 단지 역사소설은 아닐거라 느껴지지만 단순한 치정 복수극으로 본다면 오해이다. 1960년대의 배경이나 시대적 분위기를 여실히 드러내며 그 당시의 문제에 대해서도 세세한 묘사를 보여준다. 숙녀들의 정신병원이나 교수형 집행, 계급사회같은 소재와 옷차림이나 마차같은 생활 묘사까지 말이다.

이야기 구성이나 짜임새가 뛰어나다고 느껴졌다. 1,2,3부가 비슷한 양으로 쓰여졌고 독자에게 보여주는 반전의 이야기가 척척 쌓이는 느낌에 결말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흐지부지 끝나 아쉬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크게 예상을 빗나가지 않지만 잘 마무리된 느낌이다.
작가 이력에서 동성애 역사소설을 연구하고 그에 걸맞는 소설들을 써왔음을 보여준다. `핑거스미스`는 동성애 요소가 중심이 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로 둘러싸서 비주류를 주류로 이끈 느낌이다.

E-Book은 처음이다. 종이책을 휴대하기 힘들 때 괜찮겠지만 아직은 종이책이 익숙하고 좋다. 생소한 E-Book에 집중력이 줄어 살짝 아쉽다. 영화 `아가씨`는 흥행하고 있지만 스캔들이 더 이슈가 되서 미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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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2014)

초등학생 역사도서 `한국사 편지` 완독 후 부족한 현대사 부분을 더 알고자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선택했다. 자기평가 오류인지 단번에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오였다. 급작스레 수준을 올렸나.

`나의 한국현대사`는 1959년생 유시민 작가가 자신의 출생 이후 보고 듣고 겪은 한편 조사, 정리한 55년의 기록이다.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 전반, 북한까지 현대사 곳곳을 보여준다. 다시금 고등학생 때 교과서를 떠올려보았다. 그 때 이렇게 방대한 현대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면 학을 뗐을 테지만 역시나 아쉬움이 있다. 정답을 골라야하는 시험 문제에서 다루기에는 힘들 동시대의 평가가 뒤따르기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달라졌으려나...

특히 경제 부분에서는 붕 떠서 읽기는 했지만 정말 읽어냈을 뿐인 상태였다. 고등학생 때 사회과목을 선택으로 스스로 결정했다. 이제는 국사도 필수로 배우고 한다는데. 대학입시만 생각하고 경제를 뺀 내가 원망스럽다. 책을 읽다 말고 아동 경제 도서를 폭풍검색해서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내가 살아내지 않은 기간의 역사를 배제하더라도 살아온 나날들의 일들이 책 속 이야기로 느껴지니 한숨만 나왔다. 그렇기에 이런 책들이 필요하고 읽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유시민 작가의 성향이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단지 진보성향 지식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훌륭한 역사서인 것 같다.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읽어야 할 것같은 의무감이 살짝 남았다.

세월호 사건을 말하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눈물이 났다. 민주화를 위해 나라를 위해 행동한 이들의 죽음은 역사로 느끼며 담담히 읽었느데 말이다. 아마도 참사이기에... 그들의 생명을 빼앗은 것이 우리시대의 아픔이기에... 다시금 되풀이된 인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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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2012)

앤과 에릭의 딸, 카밀라는 앤의 죽음 후 에릭의 재혼 소식과 함께 자신의 어릴 적 물건이 가득 담긴 상자 여섯개를 배달받는다. 하루에 하나씩 꺼내 추억을 쓰고 생각안나는 답답한 그 감정도 글로 남긴다. 그 속에서 나온 사진 한 장이 그녀를 한국으로 이끈다. 친엄마가 자신을 안고 찍은 사진. 입양아인 자신이 단지 동양에서 왔기에 동백꽃을 뜻하는 카밀라라는 이름이 된 게 아니라는 걸 사진 속 붉은 꽃송이를 보며 알게 된다.

대한민국 남단의 항구 도시 진남에 도착한 카밀라는 앤이 죽기 전에 알려준 정보로 어머니가 다녔다는 진남여고를 찾는다. 학교 교장 신혜숙은 실컷 열녀비를 보여주고는 엄마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고 미국으로 돌아가란다. 학교에서 사진 속 동백꽃과 벽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을 보고 지역신문에 사연을 싣는다. 카밀라는 엄마의 이름이 정지은이고 자신을 낳고 그 다음해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자신의 이름이 희재이며 친아버지가 엄마 지은의 오빠라는 말까지 들은 카밀라는 유람선을 타고 엄마가 죽은 바로 그 바다로 뛰어든다.

시간이 지나 카밀라를 바다에서 건져낸 지훈의 메일이 그녀를 다시 진남에 오게 한다. 엄마 지은의 고등학교 선생님 최성식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라디오 사연이 그것. 선거를 준비 중인 최성식, 그의 아내 신혜숙 교장, 친구 미옥을 비롯해 지은과 희재(카밀라) 사이를 둘러싼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며 엄마 지은의 삶을 보여준다. 지은의 아버지의 노동 쟁의와 투신, 지역민들의 외면까지도. 다만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 그 심연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독자의 몫을 남긴 마지막을 봐도 그렇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보겠다 생각하고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제목과 입양이라는 소재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 전반에 감성적인 문장과 여성적인 문체(작가의 성별과 무관)로 이야기 흐름을 이어간다. 흐름에 맞추어 살짝 발을 담근 듯이 가는데 호흡이 길어 감정에 지치는 느낌도 있다. `어머 이런 일이`하는 드라마적 요소랄까 우연의 산물이 곳곳에 있어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진남이라는 작가가 설정한 배경에 대한 묘사와 그 속의 이야기들은 내용의 핵심이 되며 참 좋았다.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에 다니는 수많은 노동자와 그 속의 지배층, 현재 관광지가 된 푸르고 검은 바다와 오래된 건물들, 의뭉스러운 지역민들도.

열녀비가 자랑인 진남여고에 다니던 지은의 임신에 대한 진남 주민들의 태도에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범인 찾기에 나선 마냥 아이 아빠를 찾고 지레짐작 끝에 소문, 고립, 기정사실화까지 만든다. 근심거리 제거에 나선 것처럼 희재(카밀라)의 입양으로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려던 그들. 잊혀질 수 없는 그들의 과오가 바다에서 온 안개처럼 발 밑을 맴도는 느낌이다.

카밀라의 시점과 지은의 시점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는 듯한 글이었다. 매력적인 소제목도 제목에 이은 포인트가 되었다. 바뀐 표지보다 내가 본 표지가 나는 더 좋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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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2011, 2012)

`신과 함께` 저승편에 이어 이승편과 신화편까지 연이어 보았다. 이승편은 현실적인 상황이나 배경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재미 면에서는 저승편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이승편에서는 가택신이 주가 되어 우리네 집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철거나 재개발은 실제 사례가 있기에 더 씁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꼭 그리고 싶었던 이야기라 하니...
사실 나는 마지막 동현이에 대한 이야기 마무리가 아쉽다. 물론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동현이가 처한 현실을 보고싶지 않은 마음과 연민에 의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신화편은 전통적인 신화에서 각색한 면이 많다고 하지만 작가의 큰 그림을 완성 짓는 마무리로 좋았다. 저승편과 이승편에 등장한 많은 신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프리퀄 격으로 보여준다. 등장인물도 다양하고 단편으로 주인공들을 설정해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의 구성이 탄탄했고 중구난방의 이야기 늘리기가 아니기에 독자들에게 외면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신과 함께`는 웹툰이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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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노 슈지(2006, 일본)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는 논픽션 에세이다.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덮었다. 살인 장면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 잔인함에 가슴이 묵직하고 답답해서였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1969년 4월 23일, 일본 요코하마 인근 살레지오 고등학교 학생 히로시가 살해당했다. 소년 A는 학교 근처 언덕에서 괴한들의 습격이 있었다며 학교로 도망쳐 와 도움을 구한다. 부상을 입은 A는 히로시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몰려간 사람들은 언덕의 진달래 꽃밭에서 히로시의 죽음을 목격한다. 몸과 얼굴을 구분하지 않고 47군데 칼로 난자당한 히로시는 몸과 분리된 머리에 그곳에 있던 누구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범인은 쉽게 잡혔다. 증언은 그 곳에 동급생 A와 히로시뿐이었음을 말해주었고 자백이 이어졌다.

그 후 28년이 지난 1997년, 고베 `사카키바라` 사건이 일어난다. 소년 범죄와 머리를 잘라내고 경찰에 도전장을 보내는 등의 잔인함이 히로시 사건을 들추어 냈다. 이 책도 `사카키바라` 사건을 계기로 1969년 살해된 히로시의 가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

가족들의 삶은 역시나 처참했다. 아들의 죽음 뒤에 어머니는 망각을 아버지는 인내와 책임감을 선택했다. 어머니의 기억은 굉장히 단편적이었다. 여동생 미유키는 가족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려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어머니는 1년동안의 수면제 복용, 자살 기도, 이중적 성격 폭발을 겪고 찻집으로 마음을 다잡고 간신히 삶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참고 참았다.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니 속이 곪았던게 아닐까. 여동생은 자신이 죽고 오빠가 살아야 했던게 아닐까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과 슬픔에 힘들었다.

가족은 히로시의 죽음을 뭍었다. 떠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던 가해자 A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히로시의 죽음에 대한 인터뷰와 함께 저자에 의해 가해자 A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다. A는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힘들게 살았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은 빗나갔고 어머니는 A에게 편지를 쓰고 전화 통화를 하게 된다. A의 태도와 대응은 최악이다. 보상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50만엔 정도는 빌려줄 수 있다며 인감도장 등을 준비해 놓으라 한다. 돈이 아니라 사과를 하라고 하자 계획적으로 자신을 옭아매려 한다는 듯한 말과 함께 연락을 끊는다. 본래 보상해야 할 돈은 750만엔이었고 그의 부모가 40만엔만 보상했을 뿐이었다.

저자는 `소년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A가 변호사가 되고 자신의 범죄를 불과 2~3년 정도의 기간에 벗고 사회로 나올 수 있었던 근간말이다. 갱생이라는 근본적 취지에 딴지를 걸려는 것은 아니다. 수감 기간에 변화가 있다고는 하지만 `소년법`과 갱생을 위한 수많은 돈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A가 저지른 일이 무엇인가? 살인이다. 잔인한 범행과 반성없는 태도에도 그는 3년만에 사회로 나왔다. 30년이 지났어도 암흑 속 고통에 시달리는 히로시의 가족들을 보며 정답없는 제도에 대한 원망과 허탈함만 남았다.

남의 일이다. 책을 덮고 나의 가족을 그려보았다. 별 생각없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속으로 읊조려본 것뿐인데 눈물이 고였다. 살인 사건이 흔해졌다는 말을 쓰는게 송구스럽지만 사실이 그렇다. 불과 며칠 전에도 뉴스에서 흘러나온 소식이다. 아주 잠시지만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을 나누어 본다. 다시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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