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2012)
앤과 에릭의 딸, 카밀라는 앤의 죽음 후 에릭의 재혼 소식과 함께 자신의 어릴 적 물건이 가득 담긴 상자 여섯개를 배달받는다. 하루에 하나씩 꺼내 추억을 쓰고 생각안나는 답답한 그 감정도 글로 남긴다. 그 속에서 나온 사진 한 장이 그녀를 한국으로 이끈다. 친엄마가 자신을 안고 찍은 사진. 입양아인 자신이 단지 동양에서 왔기에 동백꽃을 뜻하는 카밀라라는 이름이 된 게 아니라는 걸 사진 속 붉은 꽃송이를 보며 알게 된다.
대한민국 남단의 항구 도시 진남에 도착한 카밀라는 앤이 죽기 전에 알려준 정보로 어머니가 다녔다는 진남여고를 찾는다. 학교 교장 신혜숙은 실컷 열녀비를 보여주고는 엄마의 존재는 아무도 모른다고 미국으로 돌아가란다. 학교에서 사진 속 동백꽃과 벽의 모습이 일치하는 것을 보고 지역신문에 사연을 싣는다. 카밀라는 엄마의 이름이 정지은이고 자신을 낳고 그 다음해에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자신의 이름이 희재이며 친아버지가 엄마 지은의 오빠라는 말까지 들은 카밀라는 유람선을 타고 엄마가 죽은 바로 그 바다로 뛰어든다.
시간이 지나 카밀라를 바다에서 건져낸 지훈의 메일이 그녀를 다시 진남에 오게 한다. 엄마 지은의 고등학교 선생님 최성식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라디오 사연이 그것. 선거를 준비 중인 최성식, 그의 아내 신혜숙 교장, 친구 미옥을 비롯해 지은과 희재(카밀라) 사이를 둘러싼 인물들이 계속 등장하며 엄마 지은의 삶을 보여준다. 지은의 아버지의 노동 쟁의와 투신, 지역민들의 외면까지도. 다만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 그 심연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독자의 몫을 남긴 마지막을 봐도 그렇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보겠다 생각하고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제목과 입양이라는 소재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 전반에 감성적인 문장과 여성적인 문체(작가의 성별과 무관)로 이야기 흐름을 이어간다. 흐름에 맞추어 살짝 발을 담근 듯이 가는데 호흡이 길어 감정에 지치는 느낌도 있다. `어머 이런 일이`하는 드라마적 요소랄까 우연의 산물이 곳곳에 있어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진남이라는 작가가 설정한 배경에 대한 묘사와 그 속의 이야기들은 내용의 핵심이 되며 참 좋았다.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에 다니는 수많은 노동자와 그 속의 지배층, 현재 관광지가 된 푸르고 검은 바다와 오래된 건물들, 의뭉스러운 지역민들도.
열녀비가 자랑인 진남여고에 다니던 지은의 임신에 대한 진남 주민들의 태도에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범인 찾기에 나선 마냥 아이 아빠를 찾고 지레짐작 끝에 소문, 고립, 기정사실화까지 만든다. 근심거리 제거에 나선 것처럼 희재(카밀라)의 입양으로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하려던 그들. 잊혀질 수 없는 그들의 과오가 바다에서 온 안개처럼 발 밑을 맴도는 느낌이다.
카밀라의 시점과 지은의 시점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는 듯한 글이었다. 매력적인 소제목도 제목에 이은 포인트가 되었다. 바뀐 표지보다 내가 본 표지가 나는 더 좋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