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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 결혼한 여자들의 페미니즘
엄마페미니즘탐구모임 부너미 지음 / 민들레 / 2019년 2월
평점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제가 2년 전 기혼 페미니스트로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헤맬 때 끌어올려 준 목숨같은 책입니다.
2019. 9. 17
'기혼여성은 가부장제의 부역자다.'
라고 누군가 쓴 글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
나도 페미니즘을 미리 알았더라면, 혼자 살 수도, 가부장제의 부역자가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삶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
나도 이 생이 처음이라, 좌충우돌하며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혼 래디컬 페미니스트에게 변명하게 된다.
나도 그대의 편이야. 여성의 편이야. 누구보다도 그렇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삶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다고. 그건 안 되는 거냐고.
30대가 넘어서야 페미니즘을 만났고,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먹은 것처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들이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을 후려치는 프레임 안에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 자신도, 내 남편도, 내 자식들도 이 기울어진 세상 속에서 바르게 살아가게 하려고,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꿔 보려고 많은 것을 시도했고 또 많은 것을 포기했다. 출산 후 재취업이 안 되더라도 이 작은 도시, 경상도라는 틀 안에서 면접 문화 및 여성 채용 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행위들을 뭉뚱그려 '그건 네가 싼 똥 네가 치우는 것이지 뭐냐'라는 말을 비혼 페미니스트한테 듣는 일만은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구조의 모순을 이제야 깨달았지만, 그 안에서 가부장제를 타파하려, 적어도 내 작은 가정 안에서만큼은 그 틀 안에 갇히지 않으려, 내 자식이 살아갈 미래를 바꾸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하며 매일을 견디고 있는데.
결국은 '기혼'이 죄가 되어 내 발목을 잡다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분노의 말은 힘이 없다'
'희망의 페미니즘'
'일상에서의 작은 승리들'
'곁을 바꾸는 작은 생각의 역전'
책을 읽으며, 강의를 들으며 나에게 박힌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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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은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페미니즘을 모르는 여성들조차도,
심지어 그들이 지금은 구조 안에서 그 구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돕고 있더라도,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메갈리아의 기조를 떠올려야 한다. '여성들의 무임승차를 격하게 환영한다'.
우리 모두가, 지금 살아있는 모두가 구조의 모순과 불평등을 언젠가 깨닫고 '제대로' 살아갈 삶과 세상을 위해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날 때부터 소수자의 인권, 여성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세상의 문화는 오히려 강자를 두둔하고 강자의 편에 서게 가르친다. 약자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검열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으면 자연스레 기울어진 편에 서게 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처음부터 '깨어 있었던' 사람은 없다. 어떤 계기를 통해 먼저 깨달을 기회를 얻었던 우리가 있었고, 그 깨달음을 통해 함께 연대하기를, 함께 걷기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 먼저 깨달음이 나중 깨닫는 자-시스템의 피해자들-과거의 나 자신이기도 한-들을 후려치기를 선택하는 것은 오히려 비겁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리베카 솔닛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선택한 우리는, 결국엔 모두 함께 연대하기를 선택해야 한다. 각자 현재 자신의 삶 안에서 매일의 최선을 다하여, 개인이 단독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운 이 거대한 구조적 모순을 함께 조금씩 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닐는지.
유가족이 많은 법을 바꾸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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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강연과 관련해 페미니즘에 대하여 독서모임 회원님들의 의견이 분분했었다.
이에 요즘 이슈가 되고 있고 나도 나름대로 동참중인 <탈코르셋>에 관련된 책을 읽고 생각한 바를 덧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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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노동:
계속해서 논의중인 탈코르셋 담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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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다.
화장을 하지 않았다.
여성신체의 곡선을 드러내지않는 펑퍼짐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운동화를 신었다.
내몸의 기본값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스러움" 또는 "예쁨"의 기준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모습이었다.
사실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보다 어색했고,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탈코르셋:도래한 상상] 을 읽으며, 탈코르셋을 한 외양을 취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당장 편함을 얻는다'는 것과는 대척점에 있다고도 생각된다.
미래에 올 수많은 여성들의 진정한 기본값의 재조정을 위하여, 당장에 맞이할 일상의 귀찮음과 고통을 무릅쓰는 것이다.
[쌩얼:얼굴(화장한 얼굴)]이 기본값이 아니라, [얼굴:화장한 얼굴] 이 기본값이 되는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지금이라도 머리를기르고 화장을하고 원피스를 입어 "세상의 예쁨"을 획득하고 싶은 마음과 매일 싸운다.
일상속에서 소소하게,그러나 지속적으로 '머리길러라, 여자같이 하고 다녀라'하는 가스라이팅과 매일 싸운다.(생각보다 에너지소비가 심하다.)
내 자식이 미래에 대할 조금이라도 덜 기울어질 세상을 위해 이렇게 탈코르셋에 동참하고 있건만, 막상 자식은 내가 머리를 기르고, 원피스를 입어 세상이 요구하는 예쁨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나중엔 어떨지 모르지만.)
여성에게 '못생길'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있는 힘껏 못생기고 싶다.
이미 사회에서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적합한 얼굴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젖먹는 힘을 다하여 못생길 자유를 추구하고 싶다. 이는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되고있는 탈코르셋 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란 책을 보면, 얼마나 수많은 시대, 역사, 시간동안 못생긴 여자가 배척당하고 사회적으로 마녀, 악마, 괴물 취급 받아왔는지 알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립에 기어를 넣으면 기울어진 곳으로 가기 마련이라는 말이 마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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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성들을 향해 '가부장제의 부역자'라고 비판하는 말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엄마, 아내, 며느리 노릇을 하며 성역할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니까요. 착취당하는 줄 알면서도, 억압인 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니 스스로도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벗을 수 없는 굴레를 쓰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혁명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기에 적당히 타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가부장제 안에서 싸우는 것은 밖에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 친밀한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 결혼한 여성들의 저항이 사소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관습과 기대치에 반문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크게 흔들리기에 특별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들어가며>에 쓰인 이 글을 왜 2년 전엔 그냥 읽고 넘겼는지 모르겠다. 후기를 쓰려 다시 읽으니 너무나 새롭고 새로운 힘이 된다. 나는 '내가 제일 힘들어, 기혼 페미니스트가 비혼 페미니스트보다 훨씬 힘들다고'라고 생각하며 내가 만들어낸 도덕적 우월성 안에 갇혀 있었다. 내가 옳다. 빻은 소리 하는 너네는 틀렸다. 강한 페미니즘적 기준에 따라 남도 판단하고 나도 판단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나는 옳지 않을 수 있다.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고 끊임없이 애쓰는 것이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여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방향 안에 페미니즘이 있고 연대가 있고 공감이 있다. 그 길을 잃을 것 같을 때마다 이 책을 열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