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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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는 빼곡했다. 판촉물로 받은 색색의 플래그가 페이지마다 붙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잊으면 안될, 결코 잊고 싶지 않은 문장들로만 가득 찬

#대온실수리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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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받았다. 단어가, 문단이, 문장이 나를 이해했고 깊이 이해받았다. 노트에 필사한 문장이 그득찼는데, 어떤 문장은 감히 따라쓰기조차, 감히, 내 손에서 이런 문장을 피어나게 해도 될까, 싶은 것들이었다.

김금희 작가의 글들은 어떤, 나도 몰랐던 무르고 약한 부분을 기꺼이 어루만진다. 아주 조심스럽게.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먼저 자신의 무른 부분을 내어보임으로써. 나에게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조용히 말해줌으로써. 살아 있는 사람이 줄 수 없는 그런 위로를 그의 글을 통해 받는다. 이토록 충만한 위로와 이해를 책 읽는 내내, 오롯이 내 것으로 쏟듯이, 빛이 쏟아지듯이 받았다. 아주 추운 곳에 혼자 서 있다가 따듯한 물 속에 스윽 들어간 것처럼 책을 들고 있는 내내 마음이 포근하고 다정했다.

"아무도 누구도 관심없다, 나에게, 라고 더 정확히 되뇌면 그 차가운 말에 마음까지 얼어붙을 듯하면서도 곧 그것에 지지 않겠다는 미약한 저항감이 들곤 했다. 음울함의 풀장으로 뛰어드는 건 어쩌면 어떻게든 힘을 내어 수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불면과 불안, 우울로 마치 목 끝까지 물에 잠긴 듯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데 그 고통은 너무나 나만의 것이라서 누구한테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절망의 우울을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나는 사실 어떻게든 힘을 내어 수면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걸까.

우울로 침잠하며 스스로를 생채기내던 나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이 문장을 솜이불처럼 뒤집어 쓰고.
_

"이모는 하루 마감하면서 가끔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도 안 죽였습니다."

"그럼 하느님이 칭찬하셔?"

"침묵하시지, 기도는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하는 거니까."

(...)

"그럼. 쇠기러기 많이 잡아먹고 흰꼬리수리랑 다투고 귀찮게하는 까마귀들 무시하면서 잘 지내다 시베리아나 몽골로 갔겠지."

"정말 멋있어, 하늘에서 사냥할 때 화살처럼 꽂혀."

"맞아,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 마마무(흰죽지수리)는 대체로 나무에서 뭘 했지?"

"기다렸어."

_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하지만 기다리는 것이 나타나면 그때는 반드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린다.

나조차 알 수 없는 어떤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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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는 늘 바빴다. 신춘문예 응모일을 체크하고, 원고를 최종점검하고, 어느 신문사로 보내야할지 고심하고, 특송으로 보낼지 일반으로 보낼지 고민하느라. 그리고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신춘문예 준비 카페에 들락거리며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혹은 이미 연락이 갔다는, 그런 소식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곧 깊고 깊은 우울海로 풍덩, 빠져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단편소설 응모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신춘문예 일정을 뒤져보는 것을 멈췄다.

이번에 김이설 작가님 합평반 수업을 들으면서 한가지 확실히 배운 것이 있다.

당선될 글과, 아직 덜 무르익은 글을 구분하는 법.

내 글을 덜 익었다는 것, 을 8번의 합평 수업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로 한다.

올해의 목표는 100% 읽고 100% 쓰는 것.

50/50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김이설 작가님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100 읽고 100 쓴다. 그것을 붙든다.

_

언젠가는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거대한 산처럼... 이런 식상한 비유밖에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정말 거대한 산처럼...

내 앞에 서 있다.

지금은 올려다보는것만으로도 눈이 시리고 부시다.

이런 아름다운, 여린, 따듯한,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글을 언젠가 쓸 수만 있다면. 그런 확신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놓지 않을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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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다 읽자마자 주문했다.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읽고자한다.


이달에 가는데 니는 이달에 말했지. 남겨지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매정하기가 쏜물같은 년이다. - P30

"이모는 하루 마감하면서 가끔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도 안 죽였습니다."

"그럼 하느님이 칭찬하셔?"

"침묵하시지, 기도는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하는 거니까."

(...)

"그럼. 쇠기러기 많이 잡아먹고 흰꼬리수리랑 다투고 귀찮게하는 까마귀들 무시하면서 잘 지내다 시베리아나 몽골로 갔겠지."

"정말 멋있어, 하늘에서 사냥할 때 화살처럼 꽂혀."

"맞아,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 마마무(흰죽지수리)는 대체로 나무에서 뭘 했지?"

"기다렸어."
- P318

"너무 마음이 아프면 외면하고 싶어지거든. 아까 우리도 말했지? 너무를 조심하자고."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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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20년 -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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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1부에서는
어떻게 터키로 갈 자금을 모으고, 경비를 마련했는가?
어떻게 집을 얻었는가?
대학원 갈 비용은 어찌 마련했으며,
어떻게 매년 여행을 갈 수 있었는가?
언어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되었었는가?
하는 부분이 답답했습니다.
여행을 매년 가고, 언어적인 부분도 해결 되고, 경비도 준비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실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입시경쟁으로 들어가는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아직도 하나뿐인 희망이 되기도 하며, 가장 값이 덜 드는 성공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저자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그냥 '꽃을 못 보고 산다는 이유로'회사를 그만 둘 수 있었는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생계는 절실하고 절절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삶에는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아마도 유복하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행은 곧 컨텐츠 가치가 되었고,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규교육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부분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2부에서 엄마모임에 관한 이야기는 참 와닿았습니다.
'이렇게 밖에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아이를 한글을 외우게 하고, 쓰게 하고, 입시위주의 공부를 벌써부터 가르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지금부터 안 시키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도 엄마모임으로부터 얻었던 것이었습니다.
입시 시장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이제 엄마모임, 학부모 모임에게 영향을 받던 것을 떠나 '내 아이에 맞는'방법을 진심으로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기는 쉽습니다.
그런 길을 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지난한 고통과 고민을 수반하게 됩니다.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내 자식을 대등한 개인으로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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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라이프 2021-03-2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 북라이프 입니다.<화무십일홍>님 ‘엄마의 20년‘ 도서 리뷰를 보고 오소희 작가님 신간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출간 소식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도서소개 일부입니다.

˝떠남이 제한된 시기, 모두가 집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답답한 일상을 환기해줄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던 과거의 방식 대신, 지금 머무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이들의 멘토’ 오소희 작가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소희 작가님 신간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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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ㅡ<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을 읽고

과연 고려 시대의 사람들보다 오늘의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삶이란 무수한 시간을 반복해왔을 뿐, -책 26쪽 발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끊임없이 배우려 애쓰며 살아야하는가. 행복도로 따지면, 아프리카 오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뉴욕의 직장인보다 스스로가 느끼는 행복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정보가 얼마나 신빙성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행복이 인간의 추구가치였다면 모든 사람들이 문명을 놓고 깊은 산속이나 오지로 뛰어갔을테니까.

그럼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를 알기위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역사흐름을 읽고 정리했다. 신자유주의시대를 어떻게 살아갈지도 생각했다. 왜 내과 빈부격차해소나 사회약자 규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알게되었다.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책임이 시민에게 있는 사회.

그리고 윤리.
윤리가 가장 선택과 판단하는 사람의 손에 있고, 내 윤리관이 내 선택과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 윤리관을 선택하여 매순간의 행동을 결정할것인가.
아직결론내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다수의 합의가 절대적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존스튜어트 밀처럼 쾌락과 햄복은 단순합산으로 측정할 것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고려되어야한다.

아직 좀더 생각이 필요한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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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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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보관된 지식을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든 습득할 수 있는 인류, 새로운 정보가 발생하면 거의 하루 만에 30억명 인구에게 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인류, 이것이 포노사피엔스 시대의 정의입니다.”

혁명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는 밤이다. 미래사회의 새로운 문명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미래 문명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나 자신을 믿는 마음도 있다.
스마트 기기가 나오기 전, 미래 예측을 하여 스마트 기기가 어떠할 것이라고 설명한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 '얼굴을 직접 보며 대화를 한다고? 어디서나 인터넷을 해서 길을 찾을수 있다고?' 하고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고 미래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배울’필요 없이 스마트폰은 내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변화는 사실 급진적이기보다 점진적이고, 모든 인류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일어나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에어비앤비도, 우버도, 인스타그램도, 구글맵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현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든지 결제가 가능하다. 본 책 105쪽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자연스러운 고객의 선택으로 성장했다는 것이죠. 10년 사이 변화한 인류는 아침에 읽던 신문을 끊어버렸고, TV보다는 유튜브를 더욱 많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은 그 흔한 TV광고 한 번 크게 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나도 자연스럽게 혁명의 변화에 발맞추어 포노사피엔스가 되었으며, 내 자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돌도 안 지난 아기가 스마트폰에서 스크롤을 척척 내리고, 아이콘을 정확히 클릭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포노 사피엔스>시대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111쪽에서 교육이 디지털문명을 지나치게 배제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교실 내에서 다양한 스마트기기로 양방향 수업을 진행해왔고, 이제는 아무도 전자사전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 사태 이후로 줌이나 교사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더 미디어를 통한 쌍방향 소통을 원활하게 진행한 곳이 바로 지금의 교육현장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암기 교육, 객관식 문제풀이 교육에 매달린다고 하는데 이는 현재 수시 제도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수업시간에 학생 본인이 직접 만든 유튜브 영상을 가지고 수행평가를 진행하는 시대에 너무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아닐까 싶다. 너도 나도 유튜브영상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해로운 영상들이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쏟아지는지, 전문 기술을 제대로 배우기보다 ‘유튜브에서 배웠다’며 나오는 종잇장같이 얇은 지식으로 현장에 나가려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함께 고민해야 우리는 제대로 된 포노사피엔스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 자체가 아니다.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저자와 나는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신기술을 무조건 신봉하며,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어비앤비 내의 인종차별이나 성소수자 차별, 올바르지 못한 환불 문제 등은 뒤로 미뤄두고 다만 ‘신기술 활용에 성공한 기업’이라고 올려쳐주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우리 삶을 돌아볼 때 ‘어떻게 하면 스마트기기를 온전하게, 제대로 활용해야 할 것인가’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류가 정말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가 되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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