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우리 같이 볼래요? - 엄마들의 삶에 스며든 영화 이야기
부너미 기획 / 이매진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 진짜 좋다
아주 쭉쭉 잘 읽힌다
책 잘 안읽는 사람도 금방 읽는다

블랙위도우 보고 플로렌스 퓨 팬이 됐었는데
조끼를 나타샤한테 선물하는 그장면을 다시 생각해보게됐다
막연히 나혼자 느끼고있던걸 글로 읽으니 공감이 되고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괄적 성교육
김수진 외 지음, 성평등교육활동가 모임 모들 기획 / 학이시습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말하겠다. 난 내 몸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이 없다. 되도록이면 거울을 안 보는 편인데, 차마 거울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어서다. 몸을 가려줄 옷을 고르는 데 시간을 오래 들인다. 바지 사러 가면 사이즈를 차마 큰 소리로 말 못 하는 사람, 날씬해 보이는 핏의 바지만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내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던 결혼 전 극한 다이어트 후에도 바지 사러는 항상 혼자 갔다. 남편한테도 내 바지사이즈를 차마 알릴 수가 없어서.

난 왜 이렇게 내 몸을 부끄러워하게 됐을까. 아니, 미워하게 됐을까. 이놈의 몸뚱이, 중력을 오지게 받아서 그런지 땅으로 꺼질 것 같네 같은 생각만 하게 되었을까.


<포괄적 성교육>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저는 어깨가 곧게 뻗어 있고 팔이 튼튼한 사람입니다. 실은 제 어깨와 팔을 이렇게 표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내 어깨는 너무 넓고 팔뚝은 너무 굵다'는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왔지요."


이 문장을 읽고 내 얘길 써놓은 줄 알았다.

나는 내 몸을 나노 단위로 나눠서 평가한다. 애 낳은 지 5년이 지났음에도 배가 들어가지 않았고, 종아리는 단단히 알이 서서 바지를 입으면 불룩 튀어나오며, 허벅지 앞부분은 근육이 커서 너무 타이트한데 뒷벅지는 힘이 없고, 골반이 휘어서 허리가 굽었으며.... 말하자면 끝이 없다. 프로아나 신드롬에 관련된 다큐를 보면서 남 얘기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20대 때 수백만 원을 쓰고 처방받은 다이어트 한방약을 먹으며 식욕을 억지로 눌렀던 순간들, 많이 먹었다 싶을 때 몰려오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손가락을 목에 넣어 음식물을 토해내려고 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일주일 내내 단백질 보충제 1병으로만 식사를 대체하다가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입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픈 거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었다.


<포괄적 성교육>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범주에 들기 위해 안간힘 쓰거나, 특정 모습 또는 상태를 추구하고 선망하도록 유도되거나, 어떤 불합리한 현실에 침묵하는 이유를 성찰하게 해 주었습니다. 있는지도 몰랐던 내 몸속 여러 기관과 존재와 이름, 때대로 우리 몸이 정치적 공간이자 사회적 투쟁의 장이라는 사실, 기존 체제가 수용하지 못한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해방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정상'이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서 스며들듯 받아들였던 수많은 것들이 이제는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정상 가족, 정상적인 학생, 정상적인 외모, 정상적인 관계... '정상'이란 이름은 다층성과 다양성을 폭력으로 찍어 누르는 말이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이 '정상성'이란 이름 아래서 올바른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일베나 포르노 사이트를 통해 성을 왜곡된 방식으로 받아들여 표출하는 걸 많이 봤다. 학생이 선생님 치마 밑을 거울로 비춰보려 하다 걸려도 학교에선 이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려 하기보다는 일을 덮는 일에만 급급했다. 교내 연애는 무조건 금지였다. 학생들끼리 사귀다가 들키면 정학 처분을 받았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서 그런 일들이 '정상적'으로 자행됐다. 작년엔 한 학생이 학교에서 커밍아웃을 했다가 다른 학생들에서 심한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당하고 전학을 간 일도 있다. 선생님들은 골칫덩이가 전학 가 준 것에 감사하는 분위기였고, 애들은 역겨워서 화장실 같이 쓰기 싫었는데 잘됐다는 말들을 내뱉었다. 나는 교육자로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개입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아이들은 더 거센 반대 여론을 만들어 피해 학생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냥 더럽다는 거였다. 우리나라 성교육은 '나와 다름'을 독처럼 여기고 배척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교사들의 비언어적인 태도도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학교 현장에서 근무할 때 남자 친구랑 동거하는 학생이나 화장실에서 섹스하다 교사에게 걸리는 등의 성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부랴부랴 구색 맞추기식 성교육을 실시했는데 내용은 참담했다. 여자애들이 스스로 몸 관리를 잘하고 순결을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5년 전 일이니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포괄적 성교육> 책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을 했더니 아동/청소년이 성행위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가 늦어졌고, 성행위 빈도가 줄었고, 파트너 수가 감소했고, 위험한 행동이 감소했고, 콘돔 사용이나 피임률이 증가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교육에서 선행 학습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성교육에서만큼은 학생들의 지식수준,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것에 두려움과 저항감을 드러낸다." 이 문장에 너무나도 공감했다. 나조차도 교사이자 부모로서 성교육을 실행하는데 두려움이 있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조차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었다. 성적으로 억압될수록 외압에 쉽게 굴종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는 김누리 교수님의 책을 읽고 깊이 공감했으면서도 '리스크'를 감당하려는 능동적인 자세를 갖지 못했다.

성교육은 사실 삶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5~6세 여아용 장난감으로 매니큐어와 메이크업 세트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초등학생 나이인데 화장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아이돌이 데뷔하는 현실에서 아동/청소년의 조기 성애화가 일어나고 아동 성 착취가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아동 성 착취 관련 범죄를 막는 방법은 결국 올바른 성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오랜 시간 실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 생각한다.

나는 현재 학교에서 나와 사교육계에서 논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온 성교육 방법을 수업에 적용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성과 관련된 키워드들을 나열한 뒤 아이들이 스스로 키워드를 고르고, 내가 아는 가장 정확한 성지식-월경, 발기, 임신, 출산, 피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부모 귀에 들어갔다면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수업 자체는 나와 라포 형성이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거라 어색하지 않게 흘러갔고 아이들도 속에 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낙태한 친구 이야기, 성관계할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성관계하는 아이들 이야기, 성인이 먼저 된 남자친구가 아직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성관계를 요구한다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나누어주었다. 결론은 성적 호기심과 욕망은 자연스러우며,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반드시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지었다. 서로 더 할 이야기가 많아서 단기 수업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쉬웠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다양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성교육의 장을 열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모든 걸 병리화한다. 예를 들어 연애 관련 교육을 할 때도 특정 연애를 '건강하지 못한 연애'라며 병리화한다. 어떤 관계가 정답인지 설명하고, 정답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상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 교과서에는 실제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거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성교육은 수박 겉핥기 식이 될 수밖에 없고 장기적이기보다 단기적이다. 정상 연애에 속하지 않는 연애를 하고 있는 모든 학생들은 소외되고 자연스레 음지로 숨게 된다. 이건 특정 성교육 강사의 문제라기보다 학교 분위기 자체의 문제다. 모든 사람은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은 비슷한데 이를 다 포괄할 수 있는 성교육에 대해서 공적인 장소에서 토론하고 연구하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 적용 가능한 국가 수준의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자식이 어려서 신체 부위의 정확한 명칭과 역할, 월경과 포궁의 관계, 내 몸과 마음을 존중하면서 타인도 존중하는 방법 정도만 설명하는 데에서 성교육이 그쳤다. 아마 자식이 크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다양' '입체' '다층적'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그 말처럼 성교육을 할 때 '관계'와 '존중'이란 측면에서, 납작하지 않은 방법으로 서로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일단 내가 올바른 성적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답을 주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함께 자신의 결정권에 대해 고민하고,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지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을 가정에서 마련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했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는데 이 책을 읽고 해답을 얻었다. 혐오 발언도 일종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기에 무슨 말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가 아니냐, 하는 물음을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땐 내가 대답할 말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지금은 책에 나온 대로, 이렇게 말해 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말과 글로 얼마든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권력자들에 의해서 약자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혐오 표현이 만연해진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혐오 표현을 제지하는 것이 결국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다."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에게 적용한 구체적인 '신체와 발달' 관련 내용도 있다. 요즘은 내 어깨가 곧아서, 그리고 널찍해서 재킷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팔뚝이 굵어서 요가할 때 팔로 하는 자세는 오래 잘 버틴다고 생각한다. 지금에서야 나는 나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플래그를 붙였다. 그 밑줄을, 플래그를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 읽을 예정이다. <포괄적 성교육>이 나의 올바른 성교육 가이드라인이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범주에 들기 위해 안간힘 쓰거나, 특정 모습 또는 상태를 추구하고 선망하도록 유도되거나, 어떤 불합리한 현실에 침묵하는 이유를 성찰하게 해 주었습니다. 있는지도 몰랐던 내 몸속 여러 기관과 존재와 이름, 때대로 우리 몸이 정치적 공간이자 사회적 투쟁의 장이라는 사실, 기존 체제가 수용하지 못한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진짜 엄마야?
버나뎃 그린 지음, 애나 조벨 그림, 노지양 옮김 / 원더박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시간들]

 

- <누가 진짜 엄마야?> 서평

 

 

다음은 이 책을 읽고 우리 집 어린이와 대화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어린이(올해 7세가 되었다): 일단, ‘누가 진짜 엄마야?’ 라고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어요. 다음부턴 질문에 잘 대답할 수 있게 수수께끼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모한테 빌려야겠다(맨날 이모가 넌센스 퀴즈를 준비해와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내곤 함). 그리고, 이 책은요. 가짜 엄마도 나오고 진짜 엄마도 나와요.

 

: ? 가짜 엄마가 있어? 둘 다 엘비의 엄마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했는데.

 

어린이: ? 그래요? 그런데 엄마가 둘일 수도 있어요?

 

: 그럼. 엄마가 둘일 수도 있지. 한 명은 엘비를 낳은 엄마일 수 있고, 다른 한 명은 엘비를 같이 키우기로 결심하고 함께 살며 엘비를 키우는 엄마일 수 있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같이 살다가 그렇게 결정하기도 해. 그 두 사람이 여자일 수도 있어. 아기를 낳는 방법은 다양하거든. 엄마가 두 명인 집도 있고, 아빠가 두 명인 집도 있고, 할머니랑 사는 집도 있고, 이모랑 사는 집도 있고. 음이 아빠가 음이를 자기가 임신해서 낳지 않았지만, 음이의 진짜 아빠지? 그거랑 똑같은 거야.

 

어린이: 맞아요. 어릴 때부터 키워 주셨으면 그게 진짜 가족인거예요. 그리고, 저는 니콜라스처럼 이런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누가 진짜 엄마냐 하는 질문). 왜냐면요, 만약 엘비의 두 엄마가 이 질문을 들으면 속상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절대 그런 거 안 물어볼 거예요.

 

: , 마치 너에게 맨날 너 여자냐 남자냐 물어보는 사람들의 질문처럼?

 

어린이: . 저도 그런 질문 들으면 기분 나쁘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런 질문 안 할 거예요.

 

: 그럼 이 이야기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야?

 

어린이: 엄마가 국수(스파게티를 말하는 듯하다)를 먹으면서 용 발톱을 깎아주는 부분이요. 물구나무 서서 하는 부분에서 엄마가 너무 대단하고, 멋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제 말할 게 없어요. 이제 제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돼요?

 

: 제발 조금만 더 이야기하다 가. 그럼 제일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뭐야?

 

어린이: 이로 엄마가 차를 끄는 부분. 엄마가 이빨이 상할까봐 걱정되어서.

 

: 그럼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 다른 사람한테?

 

어린이: 아니요. 이제 그만 말할래요. 안녕~

 

책 한 권 읽고 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가 귀찮았는지, 대화를 끊고 달아나버렸다. 본인은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듯하다(원래 자기 생각을 시시콜콜 이야기해주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일단 어린이가 말한 좋았던 부분과 싫었던 부분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나야말로 엄마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되짚어보았다.

 

 

나의 생물학적 엄마는, 늘 나를 과하게 걱정하는 사람이다.

내가 읽었던 책 중에 좋았던 것을 추천하면 기꺼이 읽어 보고 평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말 안 해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살이 찌면 조금의 필터도 없이 너 요즘 좀 덜 먹어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너무 페미니즘으로만 갈까봐 걱정하면서도, <왕자와 드레스 메이커> 책이 참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는 네 딸보다 네가 더 좋다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내 엄마는 나를 출산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1950년대에 사는 사람 중엔 아주 드물게 대학까지 나왔고, 교직에서 일했다. 하지만 아빠를 만나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기 서천교 밑에서 너 주워왔다는 세상의 짓궂은 많은 사람들의 말들을 굳건하게 떨쳐내고 엄마를 내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엄마가 나에게 주었던 관심, 과한 염려, 내 앞뒤 안 맞는 지어낸 이야기와 웃기는 노래에 대한 경청, 함께 보낸 오랜 시간.

엄마를 엄마로 만드는 일들은 그런 것들이 아닐까.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섭다고 하면 날 안아주는 사람.

나를 침대에 눕히고 재워주는 분.

자기 전에 잘 자라고 뽀뽀해 주는 사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엄마처럼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집 어린이에게 차마 너에게 진짜 엄마는 어떤 거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무서워서. 자식의 평가가 무서워서.

오늘도 배우자의 늦은 귀가로 인해 홀로 아이 둘을 감당하며 참 소리 많이 질렀다.

자는 아기의 얼굴을 보며 미안해, 미안해 하고 사과를 한다.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진짜 엄마,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그런 진짜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으로 인해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나와 내 어린이가 편견없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듯 휙 던져두었길래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 두었는데, 며칠 전 어린이의 놀이방을 정리하다 보니 자기 아끼는 물건 모아 놓은 박스 안에 이 책이 놓여있었다. 나랑 이야기하고 나서 혼자서 몇 번 다시 봤나보다. 지금은 이 이야기가 아이 안에서 잠들어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그 싹이 자라나 어린이의 삶에 큰 나무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지.

 

 

아님 말고.

 

책을 다시 박스 안에 고이 놓아두고 방 불을 끄고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년 후
정여랑 지음 / 위키드위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희는 너희 시대의 페미니즘을 실천하면서 살면 돼.

미영이 말했다.

그러면 될까. 정말, 그러면 될까. 그러면 내 엄마가, 할머니가, 그 할머니의 엄마가 겪었던 여성 착취의 역사가 위로받고 보상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세상이 정말 올까봐 가슴이 떨리고, 절대로 오지 않을까봐 두렵다. “예전에는 누가 밥한다고, 설거지한다고 월급을 주길 했어요? …… 내 새끼 내가 먹이고 씻기고, 내 집 내 살림 내가 건사한다고 누가 그걸 돈으로 쳐 줬냐고요. 돈 못 버니 살림이나 한다 소리나 들었지. ……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을 위해서, 또 계속 늙어 갈 우리들을 위해서 이 나라가 돌봄 노동이 귀하다는 걸 인정해 주겠대요.(105)” 꿈같은 이야기다. 출산 후 직장 재계약이 요원해지며 느꼈던 막막함을 국가가 보상해줄 수 있다면, 아기를 돌보고 가사노동을 수행한 시간을 경력으로 쳐 준다면 돌봄이나 가사가 폭탄 돌리기가 되지 않고 좀 더 기꺼이 할 수 있었으려나.

 

예비 생활동반자들에게 시행하는 의무 이수 교육 내용도 정말 좋았다. 이런 교육을 당장 시행하지 않고 국가는 뭐 하는 걸까 생각될 정도다. 책에 나온 리스트를 바탕으로 배우자와 대화해 보니, 많은 부분이 일치했고, 또 많은 부분이 달랐다. 배우자는 결혼 전부터 이상적인 결혼 후 청사진을 아이가 있는 생활로 그려왔었다. 그러니 지금의 생활은 배우자의 청사진과 부합하는 부분이 많은 편이다. 그에 반해 나는 한 번도, 결혼 후엔 아기를 낳고 키우는 삶이 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란 청사진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마음의 준비 정도가 다르니 지금의 생활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지혜가 부족할 때가 많다. 결혼을 해서 이성애자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고민했어야 했다. 과거의 결정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충분한 준비를 한 후의 선택이냐 아니냐.

 

정상이라는 건 하나든 둘이든 책임질 이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거(150)란 문장이 가슴을 친다. 보는 부너미 글에도 썼지만 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깊이 얽매였던 사람이다. 지금도 가부장제에 대한 불온한 순종을 깨뜨리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의 자리>에 나오는 형숙 샘의 이야기처럼 평생 몸에 익혀온 정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삶으로 깨뜨려나가고 싶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 시대의 페미니즘이 다 뭐란 말인가. 비혼주의로 살면서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 결혼은 했지만 가부장제 구조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일? 여성의 어떤 형태의 삶도 페미니즘의 범주에 속할 수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더 큰 범주의 페미니즘을 누리고/적용시키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는 고민해보아야 한다. 물론 구조 안에서 그 누구도 단번에 온전한 해방/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구조의 전형성 안에서 아무 것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큰 문제이다. 정여랑의 <5년 후>는 그런 맥락에서 구조의 전형성을 깨뜨리고, 의심한다. 우리의 페미니즘도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우리의 페미니즘이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어떤 전형성을 띠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비혼/기혼/이성애자/비장애인/청년 중심으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페미니즘 안에도 결국 권력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성소수자/장애인/어린이/이주민/동물/노년에 접어든 이들이 누릴 페미니즘의 결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급급하느라 이성애자, 자국민, 젊은이로서 누리고 있는 권력에 대해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5년 후>는 매번 구조를 깨뜨린다. 결혼 갱신제, 청소년 임신 및 출산, 장애인, 이주 여성, LGBTQ의 삶을 이야기한다. 세상에서 논의되어야 하지만 번번히 혐오나 진영논리로 점철되어버리는 이야기들. 그 삶들에 오롯이 조명을 비추어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당연함, 정상, 논리 같은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이었는지. 재고의 여지가 없는지 말이다.

 

내가 생각한 한시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내 삶에서 이 시대에 나의 페미니즘을 실천하며 사는 일은 과거의 수많은 여성들의 피 맺힌 삶을 모두 구원하진 못한다. 나 자신의 삶이나 내 자식의 삶도 모두 구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5년 후>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기에 애쓰는 이유는, 우리의 지경을 넓히기 위함이다.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의심해보거나 궁금해하지 않았던 내 범위 밖의 삶과 구조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나의 페미니즘의 범위를 넓힌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나의 페미니즘이 내 자식을 감싸고, 내 배우자를 감싸고, 내 직장을 감싸고 포용할 수 있도록 내 지경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해방에 그치지 않고 모든 인간의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 <5년 후>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별과 노동에 관련 없이 모든 인간이 그 자체로서 나름의 사명을 다하고 살 수 있도록 내가, 내 공동체가, 국가가, 구조가 기꺼이 변화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페미니스트가 짊어지고 갈 사명이다.

 

(표지 설명,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까지 간과해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렇게 비장애인으로서 권리를 당연히 누리고 있었던 것을 깨닫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의 20년 - 엄마의 세계가 클수록 아이의 세상이 커진다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1부에서는
어떻게 터키로 갈 자금을 모으고, 경비를 마련했는가?
어떻게 집을 얻었는가?
대학원 갈 비용은 어찌 마련했으며,
어떻게 매년 여행을 갈 수 있었는가?
언어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되었었는가?
하는 부분이 답답했습니다.
여행을 매년 가고, 언어적인 부분도 해결 되고, 경비도 준비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실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입시경쟁으로 들어가는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아직도 하나뿐인 희망이 되기도 하며, 가장 값이 덜 드는 성공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저자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그냥 '꽃을 못 보고 산다는 이유로'회사를 그만 둘 수 있었는지 와닿지 않았습니다.
생계는 절실하고 절절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삶에는 그런 부분이 없습니다.
아마도 유복하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여행은 곧 컨텐츠 가치가 되었고, 그래서 작가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규교육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부분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2부에서 엄마모임에 관한 이야기는 참 와닿았습니다.
'이렇게 밖에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아이를 한글을 외우게 하고, 쓰게 하고, 입시위주의 공부를 벌써부터 가르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지금부터 안 시키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도 엄마모임으로부터 얻었던 것이었습니다.
입시 시장은 부모의 불안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딱 맞았습니다.
이제 엄마모임, 학부모 모임에게 영향을 받던 것을 떠나 '내 아이에 맞는'방법을 진심으로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기는 쉽습니다.
그런 길을 가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지난한 고통과 고민을 수반하게 됩니다.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내 자식을 대등한 개인으로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라이프 2021-03-2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출판사 북라이프 입니다.<화무십일홍>님 ‘엄마의 20년‘ 도서 리뷰를 보고 오소희 작가님 신간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 출간 소식 공유드리고자 합니다.

도서소개 일부입니다.

˝떠남이 제한된 시기, 모두가 집에 머물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떠나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답답한 일상을 환기해줄 특별한 장소를 찾아 떠나던 과거의 방식 대신, 지금 머무는 자리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는 이들의 멘토’ 오소희 작가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오소희 작가님 신간에도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