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엔리코 이안니엘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원더풀 이시도로, 원드풀 라이프_엔리코 이안니엘로
출판사_현대문학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는 이탈리아 남부의 조그만 마을 마티넬라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시도로의 동화같은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졌는데, 1부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시도로의 소년시절 이야기가 담겨있고, 2부는 지진 이후, 이시도로가 점차 현실을 마주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작품은 휘파람을 언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소년, 매일 사랑의 편지를 쓰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 아빠, 그리고 사랑스러운 파스타 장인 엄마, 첫사랑 마렐라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시도로는 태어났을 때 "응애"대신에 "프리"하고 휘파람부터 불었다. 그때부터 이시도로의 휘파람은 독특하고 멋진 능력이 되었다. 특히, '알리'라는 인도 검은 새와 휘파람으로 대화를 하는데, 이걸 하나의 '언어'라고 이야기하며 휘파람 언어인 '우를라피스키오'를 만들어 낸다.

새 알리와 휘파람으로 대화하고, 아버지와 시를 짓기도하며, 어머니로부터 감동적인 옛 이야기를 들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시도르. 이름 붙이기 놀이를 하고, 알리와 휘파람으로 대화를 나누며,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 대한 감정을 알아간다. 그런데 그런 소년의 모습이 때묻지 않아 순수하게 그려져서 정말 사랑스러웠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바다로 만들어진 타일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집 안에 가로세로 20센티미터의 바다가 있고, 물고기가 그 속을 왔다 갔다 헤엄쳐 다니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면 어떨까? 바다로 만들어진 타일이 있다면 30 제곱미터의 바닥이 초록빛 바다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부엌에서는 발아래로 안녕하세요! 어이, 친구! 하고 인사하며 헤엄치는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집 안이 온통 바다 타일로 덮여있다면 정말 굉장하지 않겠는가! -p.22


 

시골 마을의 단조로운 일상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진부할 수 있지만, 어린 아이인 이시도로의 시점으로 전개되니 한 편의 마법같은 동화 같았다. 이시도로의 상상력이, 휘파람이, 생각이 닿는 장면 하나하나 새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작은 머리를 굴려 가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의미를 깨달으며 배워가는 아이를 보며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부모가 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배치된 아버지의 '사랑의 편지'와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비유와 문장들이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이었다.


 


세상은 트리스텔리체(슬픈 행복)란다. 이시도로 세상은 네가 좋아하는 놀이와 닮았단다. 놀이터에서 하는 그거 있잖니. 한 사람은 이쪽에, 또 한 사람은 반대쪽에 앉아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하는 시소 말이야. 네게 조언을 하나, 아니 몇 가지 해주마.

너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사람을 찾으렴. 네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뻐할 그런 여자를 찾아봐. 마찬가지로 너도 여자에게 그래야 한다. 네가 내려갈 차례가 되면 온 힘을 다해 상대가 올라갈 수 있도록 해라. 그리고 그것에 만족해라!

너희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너는 그녀의 등 뒤에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반대로 그녀도 네 등 뒤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잖니. 그렇기 때문에 올라가는 사람 등 뒤로 보이는 세상, 이것이 바로 사랑 또는 우정이라 부를 수 있는 아주 멋진 것이란다. -p.72~73

특히, 아버지의 편지 중에 나온 이 '슬픈 행복'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남은 단어였다.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이것저것 경험하고 배우고 알게 될수록 슬픈 일이지만 행복하기도 하고 행복하면서도 슬플 수 있는 이상한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저 단어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성장하는 것은 헤어진다." "강아지는 어미 개와 헤어진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헤어져보면 알고 떨어져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난 아무것도 갈라놓고 싶지 않았다. 그 반대였으면 좋겠다. 아빠와 엄마, 칸초네 아저씨와 혁명, 르노 아저씨, 알리, 이에소 아줌마, 존조 아저씨, 아르도와 마렐라를 모두 함께 연결해서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동네이자 나의 삶인 그 세계를 모두 하나의 부드럽고 통통하고 길쭉한 칸넬로네 휘파람 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난 그 세계를 구슬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고 싶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주머니 속에 손가락을 돌리면 그 구슬은 친구가 되고, 구슬 속에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익숙한 것들이 들어 있다. -p.204~205

한없이 평화롭고 즐거울 것만 같아서, 마치 영영 원더랜드의 피터팬처럼 있을 것 같았던 이시도로의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휘파람으로 혁명 연설 무대를 준비하면서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트루우우이'라는 그와 새 알리 외에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휘파람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휘파람 연주를 하려던 소년의 순수한 마음 속에, 어느덧 사명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에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시발점이 되었지만, 휘파람에 궁핍으로부터의 해방과 행복과 같은 결의가 담기기도 했다.

이 순수한 소년의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가 새와 대화를 하게 해주더니,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결의를 다지는 데 울려퍼져 간다.

2부로 넘어가면서, 1980년대에 일어났던 이탈리아 남부의 끔찍한 지진으로, 이시도로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 휘파람과 그의 친구 알리를 제외하고. 갑작스럽게 덥친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 무너진 동화. 하지만 이시도로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아직 알리와 휘파람이 있었다. 오히려 마주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점점 현실적인 문제를 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소하고 잔잔하지만 평화롭고 따뜻한 이야기가 설핏 설핏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곧 안가서 갑자기 나오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용어들이 묵직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여기에 휘파람과 '새'가 더해지니 갑자기 '헝거게임'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작품에서도 혁명을 뜻하는 데 '새' 이미지가 쓰이고 휘파람으로 결의를 다지는 부분이 나와서였던 것 같다.

작가님이 영화감독이라고 하시더니, 정말 묘하게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평화로운 시골마을이, 이시도로가 말해주는 바다 모습이, 아빠와 엄마에게 사랑을 뜸뿍 받으며 성장하는 소년의 미소가, 그의 곁을 맴도는 검은 새가, 그리고 환상같은 동화 속에서 현실을 끄집어내는 공산주의 운동들이.... 머릿속에 계속 차오른다.

알리는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구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꿈은 금방 실현되는 반면에 어른들의 꿈은 실현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p.62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건, 이시도로가 성장하면서 배워나가는 인생의 일면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화자가 '아이'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표현되는 효과적인 부분보다  '인생은 이런 거구나'하는 모습들이 공감되서 좋았던 것 같다.

길고 긴 삶, 답이 없는 인생, 계속되는 성장통. 그 속에 고민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내게 공감을 주었던 것 같다.

이외에도 곱씹을수록 예쁘고 감동적이었던 문장이 많았던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잔잔한 시골마을 소년의 성장기가 궁금한 분,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성장이야기가 읽고픈 분. 이탈리아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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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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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Inflation)_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출판사_다산북스

 

 

 

 

<인플레이션>은 돈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돌아보며,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어 왔는지를 고찰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의 미래에 관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것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책을 한 번 읽고난 직후 떠오르는 생각은, '인플레이션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뽑아내는 정치적 부산물로써,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조적 위험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무시하고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 과거와 현재를 분석해 미래를 위한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1장은 돈이 탄생하고, 이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보았던 경제 저서나 전공책처럼, '통화량이 증가하고, 화폐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라는 정의로 시작하고 있지 않다. 

를린의 한 지방에서 일어난 '돈이 녹은 사건'이라는 생소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그 일화를 통해 화폐와 신뢰에 대한 관계를 풀어내더니, 결국 인플레이션은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정치 수단'에 의해 만들어진 '병기'라는 식의 주장을 풀어낸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정치인들의 경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 점이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경제 정책이 미치는 영향력과 경제 정책에서 그만큼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지폐가 훼손되면 다시 찍으면 된다. 하지만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신뢰란 지폐처럼 원하는 대로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30

최초의 화폐는 등장하자마자 국가에 의해 본래 화폐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됐다.-p.47

현대의 화폐는 어떤가. 지폐는 사람들의 신뢰를 먹고 사는데 지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화폐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통화 정책으로 무모한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정치인들은 무슨 일을 벌여 온 것일까? -p.55

지난 역사 속 숱한 사례에서 화폐는 저마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각종 수단이 되어왔다. 군사적 용도로도 쓰였다. 예로 1939년, 나치의 '작전명 베른하르트'는 위조 지폐를 대량으로 유통해,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국민들의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면서 경제 파탄을 일으키려던 정책이었다.

특히, 존 로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지폐발행은행 '뱅크 제너럴(Banque Generale)'은 이 끝나지 않을 이야기의 서막과도 같았다. 이 은행은 처음에 은행권을 발급하고 그것으로 국가의 부채를 정리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는 존 로가 서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더욱 발전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서인도 회사가 은행권으로 끌어다 쓴 자본으로 식민지 개척을하고 주기로 했던 부를 주주들에게 주지 못했고, 신뢰가 깨지면서 주주들이 급속도로 은행권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돈이 없던 은행은 또 지폐를 발행하고..... 발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26%에 달했다고 한다.

'존 로는 지폐를 발명하지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p.99

이것만 봐도 잘못된 경제 정책이 초래하는 위험한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이대로 멈추지 않았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말이다. 마치 시한폭탄을 품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로 달리는 열차를 보고 있는 것 같다. 19,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이제 '초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단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연 인플레이션율이 720퍼센트였던 사례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매달 5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경우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다소 비학문적이기는 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면, 돈뭉치가 가득 실린 럭이 대기하고 있거나 강도가 돈보다 타이어를 훔치려 한다면 초인플레이션 상태다.-p.123

그래서 저자는 무분별한 화폐 발행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부정적으로 본다. '무분별한'이 붙으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튼, 저자는 역사 속 사례들을 되짚으며 화폐 발행으로 채무를 해결했던 기간들을 바로잡을 정책과 화폐 제도 및 구조 개혁이 필요했음을 언급했다.

한편, 시대를 거듭하며 나타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들이 나왔다. 세이의 법칙, 필립스 곡선, 케인즈 주의..... 등등. 하지만 문제는 종종 이를 왜곡해서 정책에 반영한 정치인들로 부터 발생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초대형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금의 저성장 장기화까지. 

이처럼 인플레이션 문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왔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분야의 대가들이 계속해서 연구를 했지만, 역시 '통화 공급'이라는 단편적인 방법을 손쉽게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이렇게나 화폐 발행을 통한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고도, 몇 년 전, 한동안 대대적인 '양적완화' 정책이 각국에서 이뤄지지 않았는가. 물론,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문제 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지난 2000년 동안 화폐의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이제 전 세계 중앙은행의 주요 고민은 물가수준 하락이다. 디플레이션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을 중앙은행과 정치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때문이다. - p.204

양적완화 정책은 경기가 침체국면에 있을 때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경제 정책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직접 뿌린다고 해서 '헬리콥터 머니'라는 시사용어까지 따라붙던 정책이었다. 

2013년 쯤, 경제 기사에서 자주 보던 용어였는데, 글로벌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아베노믹스를 비롯해 미국이며 각국에서 엄청 돈을 풀어대는 기사를 많이 보았었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재정절벽 문제가 같이 거론되면서 의견 대립이 계속되었던 기억도 나고, 연달아 '테이퍼링(tapering)' 정책에 대한 논의도 오갔던 걸로 언뜻 기억난다.

그때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정책이 맞겠구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여태껏 양적완화의 문제를 보고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니. 그만큼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저자의 말처럼 정치인들이 '잘못된 수단'으로 악용한 것으로 의심되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양적완화로 초저금리와 유동성 함정에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돈을 풀어서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키려고 했는데, 전혀 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되려 한국은 최근에 금리를 다시 인상한다고 했다. 저금리 시대에 대출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무궁무진한 난제를 계속 떠올리게 하며, 책은 마지막으로 금융 위기 시대의 투자 전략을 안내하고, 돈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며 마무리 짓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의 종류를 나누어 대처 방법을 안내한다. 투자 기준으로는 '수익성, 안정성, 유동성'을 제시하며 대표적인 투자 대상(부동산, 주식, 채권, 금 등)의 성격을 정리하고,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을 보여준다.

끝으로 돈의 미래에서는 지폐의 대안으로 '플라스틱 화폐'나 비트코인같은 '디지털 화폐'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데, 이부분은 유통을 위해 보안할 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보인다. 하지만, 지폐가 가진 특성이 계속해서 이런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문제를 유발한다면, 화폐 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후 우리는 어떤 통화로 지불하게 될까?
화폐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353


*

추천사처럼, 정말 세번은 읽어야 머릿속에 정리가 될 것 같은 책이었다. 쉽게 보면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경제사를 쭉 훑어 본 책이었지만, 그 사이 사이 시대별 경제 이론도 조금씩 나오고, 경제학파별로 경제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서 발생하는 해석(공부할 때 제일 헤맸던 것들)에서 정신줄 놓다가 다시 읽고 다시 읽고했던, 조금은 어려웠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 공부를 놓은 지 몇 년 만에 읽어서 그런가. 그래도 '양적완화'니 '아베노믹스'니 '재정절벽'이니 '디플레이션'이니 '유동성 함정' 같은 용어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신기했다.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책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래서 신선하면서 충격적이고, 어려워도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애썼던 것같다. 특히 명목상 정책적, 경제적 처방이라고 하며 이익 창출을 위해 단기 처방으로 악용되어 왔다고 비판하는 저자의 주장들이 그러했던 것 같다. 꼭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해 단기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나저나 경제 정책에서 '신뢰'를 항상 강조해왔는데, 한창 공부할 때면 '물질적'인 성격의 경제 문제에 '추상적' 용어인 '신뢰'라는 단어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었다.

국민들이 화폐가 제 기능을 하는지 신뢰할 때만 화폐의 가치는 유지된다. 화폐는 곧 신뢰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화폐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p.53

아무리 정치인들이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같은 것을 발표해도 솔직히 일개 서민인 나로서는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경제 정책을 악용하는 정치인이 사라지고, 중앙은행은 정치권에 이용되는 일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  : 미리 향후 정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뜻으로, 경제 분야에서 중앙은행이 미래 정책 방향을 미리 외부에 알릴 때 쓰는 용어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한편, 약간 아쉬운 점은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갈 전략을 제시해주는 부분이었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서민들이라고 하더니, 그 전략은 일반적인 상식의 나열이었다. 일반적인 투자 상품 특징에 대한 설명, 투자 기준, 포트폴리오 구성까지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느낄 수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또한, 경제사를 정리하며 나온 저자 나름의 해석과 고찰이 담겨 있어서, 그걸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은 사람도 읽기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사례 분석을 하고 싶거나, 현재 어떤 상품이든 투자할 여건이 있는 사람, 경제사 분석을 통해 통찰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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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 -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가 유럽에서 일으킨 기적
켈리 최 지음 / 다산3.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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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_켈리 최
출판사_다산3.0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10억 원의 빚더미를 안게 된 켈리 최가 7년 만에 재기해서 연 매출 5천억 원의 글로벌 기업 CEO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경영부문 자기계발서였다.


 

<Part1 열심히 했는데 왜 망했을까?>에서는 첫 사업 실패 후, 재기하기 전까지 있었던 일화를 담고 있다. 패션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서, 단순히 그 열망 하나로 사전 조사와 지식 없이 일본에서 프랑스로 날아간 호기롭던 켈리 최가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업 실패와 원인 분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Part2 무엇을 준비해야 오래 살아남을까?>다시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밝히고, 실패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사업을 운영해 나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무턱대고 '내가 좋아서'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토대로 사업 아이템을 선정하고,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하는지, 경험과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마지막 <Part3 어떻게 해야 사업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는 켈리 최의 회사, 켈리델리가 유럽에서 알아주는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른 뒤의 이야기다. 성공 가도에 오르고 난 후의 기업은 어떻게 운영을 해야

'좋은 기업', '좋은 경영', '지속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자신만의 경영 철학을 정리하며 마무리 맺고 있었다.

 

 

 


 


지중해의 한없이 평화롭고 잔잔한 파도에 넘실대는 요트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린다. 남편의 꿈이었던 '가족과 함께하는 1년간의 요트 세계 여행'도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p.5

프롤로그 첫 장을 읽으면, 누가봐도 성공한 여성 사업가의 여유로운 모습이 그려진다. 바로 이어진 이야기는 켈리 최가 경영하는 글로벌 기업, 켈리델리(KellyDeli)의 성공신화가 간추려 언급된다. 7년 만에 유럽 10개국에 700여 개의 매장을 열고, 올해는 연매출 5천억 원을 넘길 전망인 글로벌 회사. 파리시 벤처기업 프로그램 지원 대상 중 다양한 경영 지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표창장을 받고,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성공 사례에도 실릴 정도로 명실상부 성공한 기업이 된 켈리델리와 그곳의 경영자 켈리 최.

하지만 몇 장 넘기다보면 그녀가 그런 명성을 얻기까지, 그 회사를 세우기까지 얼마나 큰 좌절 경험이 있었을지,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서 큰 실패 이후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밑바닥까지 갔던 내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밑바닥에 있더라도 누구에게나 한 톨의 불씨는 이미 가슴속에 주어져 있게 마련이다.
-p9 <프롤로그, 한 톨의 불씨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첫 장은 켈리 최가 실패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기 전까지, 지옥처럼 보냈던 2년 간의 이야기다.

'실패한 사업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10억 원이 넘는 빚더미에 깔려보면 '지옥같은 하루'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첫 사업의 실패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당시에는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단 한순간도, 숨 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p.17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 자체로 고문이다. 게다가 실패한 사업가, 바닥을 친 사람일수록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게 마련이다. 그것마저 없어지면 존재 이유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p.18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내게, 이 책은 그간 자기계발서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는 작품이 되었다. 한때 읽었던 자기계발서들은 성공하는 사람들 사례를 분석하거나, 성공했다는 사람이 자신의 성공 방법을 원칙처럼 제시하며 어떻게 해야 성공한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담아둬서, 읽고나면 패배감만 느껴지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에 읽으면서도 꼭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런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주고 있어서 그런지, 에세이 같아 편하게 읽히고, 공감 가는 부분들도 있어서 좋았었다.

문득 나도 모르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p.21

사업에 실패하고,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커피 값을 누가 내야할지 고민하고 돌아오는 길, 센(Seine)강에서 그녀는 2년 만에 자신이 애써 외면했던 질문을 던졌다. 무엇 때문에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이야기는 프랑스 유학 전으로 올라간다. 글을 읽으며 느꼈지만, CEO가 되려면 약하게 말하면 말하면 강한 의지력, 시쳇말로 '깡'이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켈리 최는 정말 결단력 하나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렇게 만든 건 '가난'이었다고 한다. 집이 너무 가난했다는데, 가난 한다는 이유 때문에 고등학교도 가지 못했을 뻔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진로를 포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서 일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갈 결심을 했다. 이어서 일본 유학을 갔던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에 관심이 많았고, 그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날 결심까지 했다.

철저한 조사 없이, 자신의 꿈만 바라보고 무턱대고 호기롭게 간 유럽행 비행기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괜찮은 회사에 취직까지 했던 그녀의 일화를 보면, 자수성가한 CEO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하늘을 찔렀을지, 감히 상상도 못할 것 같았다.

무튼 그런 삶을 살았으니, 첫 사업에 대한 실패가 엄청 충격이었을 법도 했다.

당시의 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감정이 접착제로 붙인 양 바닥에 딱붙어 도저히 올라오질 않았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후회와 자기혐어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에 불과했다. -p.21~22

그렇게 쌓인 높은 자신감, 자부심, 그리고 높은 자존감, 그와 함께 있던 허세와 허영심 때문에 그녀는 2년을 방안에 갇혀 멈춰있었다. 살고 있던 비싼 집과 차를 팔거나, 처음부터 집을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했으면 됬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허영심과 자존심 때문에 '실패한 사업가'라는 꼬리에 잘나가던 사업체의 사장에서 민박집 아줌마가 되며 받을 비웃음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다시 센강 앞에서 넋을 놓고 있던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여덟 시간 이상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페이지에는 읽으면서 울컥해서 눈물을 펑펑 쏟은 부분이이었다.

스위치를 올리자, 불이 켜졌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상에서 가장 보기 싫었던 물건이 떡하니 서 있었다. 바로 거울. 거울을 제대로 들여다본 게 언제였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당당했던, 자신을 꾸미고 가꿀 줄도 알던 당찬 여성 사업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거울 안에는 화장기 없는 푸석푸석한 얼굴에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펑퍼짐하게 살이 찐,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은 몰골의 한 아줌마가 서 있었다.

자존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이 위축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서러움이 복받쳤다. -p.79

그날 거울은 그녀가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 것 같다. 동시에,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찾았다고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을 '희망'이라고 불러주던 어머니의 모습을 회고한다. 

내게 남은 건 10억 원의 빚, 10킬로그램의 늘어난 살뿐이고,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무엇인지, 도대체 나는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한 가지도 찾기 어려워지자, 결국 떠오르는 단 한사람은 엄마였다. 이렇게 비참하고 보기 싫은 모습의 나라 해도 엄마한테 만큼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일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일어나야 하는 이유로 충분했다.-p.80

켈리 최가 바닥을 쳤을 때, 보았던 마지막 남은 희망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물론, 그것 말고도 2년이라는 기간이 그녀가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고, 후배와의 커피 한 잔이 불꽃을 일으켰을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던 외적인 것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온전히 그냥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난 위로인 듯하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정확히 말하면 가난 속에서도 자신과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희망'인 자신을 떠올리며 다시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그제야 현실이 눈에 들어오고, 허세와 허영심, 자존심 때문에 붙잡고 있던 것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사업을 하는 것과 재취업,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 여기서부터는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켈리 최는 사업을 선택하기로 했다. 자신의 '행복'을 기준으로 선택한다. 여기서부터는 사업을 구상하고 기업을 세우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가 이어진다.

나는 이왕이면 내가 주도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래야 일을 하면서도 행복할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건 직장인보다는 사업가가 되어야 가능했다. -p.94

그리고 그녀는 실패의 경험에서 나온 세가지 기준을 토대로 사업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

① 경기를 타지 않을 것
② 돈이 많이 들지 않을 것
③ 내가 잘하고 좋아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일 것
-p.101

자신의 기준 없이 '쉬워 보여서', 저 장사가 '돈이 되는 것 같아서', 아니면 '남들이 많이 하니까' 따라하면 잠깐 벌고 끝날 수도 있다. 혹은 경쟁이 치열한 곳에 뛰어들어 과열만 일으키다 끝날 수도 있다. 여기에 지난 첫 사업의 실패에서 느낀 점들을 토대로 저 세가지 기준을 정하고 사업 아이템을 선정했다. 그것이 현재의 초밥 도시락 회사 켈리델리였다.

그때부터는 계속 공부의 연속이었다. 공장도 견학하고, 기계를 찾으려 출장도 다니고, 성공한 사업가들에게 자문하기 위해 사업계획서와 메일도 보내고, 관련 분야에 대한 책도 열심히 읽는다. 처음 사업의 실패 원인 중 하나가 공부 부족이라고 뼈저리게 느낀 만큼 엄청나게 다독을 하는데, 자신만의 기준으로 1년에 100권 리스트를 만들어 다독하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또, 세계 최고의 초밥을 만들려고, 일본의 초밥 장인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모습과 경영을 배우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상황의 경영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필요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가 왜 그렇게 나를 도와줬을까 항상 궁금했었는데 후에 직접 들은 바로는 '그 정도 열정이라면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p.139

만약 도움을 청하고 싶은 사람이 지금 보기에 너무 멀고 높아보인다 해도 지레 겁먹고 포기할 이유는 없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당신의 등골이 휠 정도로 큰 돈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그에게 당신과 당신 회사의 비전이나 발전 가능성 그리고 성공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보여라. 모든 사람이 당신을 돕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시도를 해본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지 않은가. -p.150

그녀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는 말도 인정한다고 했다. 다만, 운도 기회도 노력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회가 와도 자신의 능력이 안되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 기회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 점은 엄청 공감가는 부분이었는데, 정말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기회를 잡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노력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사업 계획서는 어떻게 써서 보내는 것이 효과적인지, 협력 업체와 미팅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글로벌 기업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또, 성공 반열에 오른 회사가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또 어떤 관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소위 말하는 '꿈의 직장'이 저긴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만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뤄낸 성과이고, 또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려는 켈리 최의 노력 덕분이겠지만 말이다.

*

처음 책을 선택했을 때는, 사업의 실패로 잘나가던 30대 잘나가는 CEO여성이 한순간에 10억의 빚더미를 짊어진 실업자가 되어 바닥을 찍고나서,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가 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안 했다. 보통 자기계발서를 떠올리면, 보통 실패한 일화를 짤막하게 소개하고, 원인 분석 후에 바로 Part 2-3에 실렸을 이야기로 이어졌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재기하려면 얼마나 노력했겠어, 자극이라도 받자' 심정으로 책을 집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의외의 진솔한 이야기에서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물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비틀리게 볼 수도 있을 법한 부분들도 있었다.

저자 자신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 문장 같은 부분말이다.

누군가는 당신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외국어도 할 줄도 알았으니 그것마저 없는 사람보다는 더 나은 조건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에 구구절절 썼듯이, 2년이란 시간 동안 나 또한 모든 걸 잃었다고 여겼고, 그것을 내 강점이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87

행복이나 불행이나 능력이나 조건이나 운이나 기회나, 너무나도 기준이 천차 만별이어서, '될놈 될'로 일축해버리면 정말 그걸로 끝나버리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그냥 이 사람이 좌절의 시간을 지냈다던 2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어서 이 분의 노력이 더 대단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꼭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냥 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던가, 최근 실패 경험을 겪은 사람이라던가, 슬럼프에 빠진 사람이라던가, 취준생도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물이나 상황,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켈리 최의 판단이나 행동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업 선정 기준도 그렇고, 미팅에서 주의할 점도 그렇고, 현장 조사 하러 나갔을 때 관찰력 ..... 등이 그러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라 진정성도 느껴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공감도 가고, 경영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들을 스토리로 읽으니 딱딱하지 않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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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지혜 2018-05-30 14: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늦게서야 확인하고 남긴 점 죄송합니다.
덕분에 좋은 글 읽고, 당시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좋은 말씀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힘내시길 바라요! ^^
감사합니다.
 
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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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_권정현
출판사_다산책방(다산북스)

 


 

 

 

동아시아적 상상력을 이야기로 밀고나가는 박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탁월한 솜씨
베일 듯 녹아내리는 마지막 장면의 여운

"진심을 다해 먹었다. 이제 내기는 끝났다."
- 작품 소개글 中

 

 

 



<칼과 혀>는 제 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중일 세 나라의 마지막 사투를 그린 작품이었다. 작품은 크게 1부와 2부,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 광둥 요리사 첸과 조선 여인 길순. 이렇게 세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19대 관동군 사령관 야마도 오토조 앞으로 자신을 광둥 요리사라고 주장하는 첸이라는 남자가 붙잡혀왔다. 황궁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병사들에게 잡혀왔다고 했다. 그는 전쟁 통에 직장을 잃고, 무작정 올라온 만주에서는 배신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요리가 하고 싶어서 황궁을 기웃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네가 아무리 광둥 제일의 요리사라 주장한들 그걸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한 가지, 네 손을 거친 요리만이 스스로 너를 증명해주겠지." -p.38

그런 첸을 두고 공산당과 연결된 자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모리(야마도 오토조) 사령관은 그에게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하나 내건다. 단 한 가지의 요리 재료를 사용하되, 기름은 물론 어떤 양념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조리기구도 제한한다. 오로지 재료를 익힐 불과 다듬을 칼을 이용해 1분 안에 요리를 완성해내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요리 내기에서 지면 바로 총살. 하지만, 첸은 극락사 공양간에서 송이버섯을 구하고, 극적으로 요리를 만들어 낸다. 오직 재료와 불, 그리고 칼을 이용해서.
 


58초. 마지막 2초가 남았을 때 나는 그을린 송이 조각을 뭉쳐 접시 한편에 '향식(餉食)'이란 두 글자를 새겨 넣는다. 내 손님이 말의 의미를 알아채길 고대하면서.
접시를 바라보는 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p.63


결국, 첸은 향식(餉食)이라는 송이버섯 요리로 총살을 면하고 장교식당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것도 잠시, 만주족 최대 명절인 반진제를 앞두고 첸은 요리에 독을 넣을 방책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첸은 요리사이면서 동시에 광둥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지하 자경단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첸은 가까스로 반진제에 선보일 요리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되고, 자신의 방법으로, 즉, 요리로써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게 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 궁금헸던 점은 제목 '칼과 혀'의 의미, 만주라는 배경이 지닌 의미, 전쟁과 요리라는 소재가 보여줄 전개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쟁에서 요리로 맞서는 것의 의미가 궁금했었다. 저 시대적 배경에서, 모 애니메이션처럼 요리사들이 요리 대결을 할 리는 없을 것 같으니, '요리로 맞서는 것'의 의미가 궁금했던 것 같다.

(왜 이런 전개는 생각지 못했지 싶을 정도로) 의문은 금세 풀렸다. 단적으로, 요리에 독을 타 침략자들을 암살하려했던 모습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작중 요리와 요리 도구, 요리하는 모습들과 같은 장면들의 묘사를 보고 있으면, '요리로 맞선다는 것'의 의미가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이 꼭 무력 투쟁을 통해서만 저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문장과 글을 통해서도 저항했던 것처럼 말이다.


불시에 아버지를 잃고 내가 무슨 정신으로 광둥으로 돌아왔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틀을 내리 잠에 빠져 있다 깨어났을 때, 나는 머리맡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통나무 도마를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것을 버리고 왔어야 했다.

피로 얼룩진 눈앞의 저 낡은 도마를, 수많은 영혼들이 칼날에 베여 안간힘을 쓰며 죽음을 밀어내던 저 분노의 순간들을, 대륙으로 폭풍처럼 짓쳐들어오는 제국주의자들의 총검과 피바람, 죽어가는 자들의 한숨이 압착된 저 도마를 말이다. -p.20

어렸을 적부터 요리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남달랐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첸은 그대로, 그 영향을 받아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다. '도마'를 들게 된 이후부터 그와 '요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직업학교에서 만난 요리 선생님 '응기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으면서, 첸에게, 이제 '요리'는 '생존 수단'에 덧붙여 '투쟁 수단'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원형의 도마는 죽고 죽여야 하는 투계장 같다. -p.52

이런 첸의 살아온 삶을 읽고 있노라면, '칼과 혀'는 어쩌면 '삶과 죽음'과 '요리'의 관계 만큼이나 생소하면서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죽을 한 술 떠 혀에 얹는다. 미뢰에 와 닿는 채소나 고기의 맛과 향이 머릿속으로 조용히 차오를 때, 그리하여 어떤 생각도 사라져버리고 무아가 되어 외롭게 내 생각이 공허 속으로 떠다닐 때, 달거나 시거나 짭조름한 맛들은 나를 몽환에 빠뜨리며 계속해서 내 몸 속으로 자아를 끌어당긴다. 저 안쪽으로 꾸역꾸역 돌격하라. 거기 구원이 있다.

저 목구멍 밖에 지옥이 있다는 걸 금세 잊게 하는 맛, 절대적이라 여겼던 밖의 저 세계가 어느날 무참히 무너진다고 해도 혀가 온존히 보존되는 한 끝끝내 나는 절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입안에 감도는 요리의 질감을 정성껏 씹어 음미하며 차분히 내 몸의 감각에 최면을 걸어보는 것이다. -p.121

작중 일본인을 대표하는 모리 사령관은 일본 사령관은 독특하다. 관동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인데 전쟁에 관심이 없다. 아니, 두려워한다. 빨리 어머니가 있는 본토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전황에 대한 소식보다 사색에 잠긴 시간을 방해받는 걸 더 중시한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길 원하고, 극락사와 그곳에 자리한 불상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저 독백을 보고 있노라면, 음식이 한쪽에서는 투쟁 수단이면서 동시에 전쟁에서의 구원의 수단으로 보인다. 마치 칼이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도마 위의 생명을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마에 놓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생명이야. 칼은 그들의 생명을 끊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도구야.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을 듯 위협하면서 동시에 재료 고유의 빛깔과 싱싱함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p.97~98

이렇게 전혀 다른 속성의 소재인 '칼'과 '혀'가 주는 아이러니함 때문에 제목이 더 인상적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리는 다시, '삶'을 지탱하는 것이면서, 만든 이의 기술, 정신, 의지가 담긴 차원의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요리는 소화되고 사라지지만 냄새는 영원할 거다. 나의 보잘것없는 싸움이, 이 주방 안에서 계속되었음을 누군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p.205

특히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어서 인지, 요리에 인생이 빗대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민족이나 저항 정신과 같은 철학적인 개념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누린내가 좀 풍기지만, 쉐창(血腸)은 먹을 만하지요."-p.70

혀를 다쳐 어쩌면 미각의 일부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주인을 위해 마지막 요리를 준비한다.  오늘의 요리는 쉐창이다. ....(중략)... 쉐창이, 잘려나간 당신의 말랑한 혀에 대한 나의 은유임을, 매일 밤 천수각 식당을 애용하는 나의 손님이여. 어서 피 맛을 보라.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써준 '향식'이란 말의 의미를 오늘 밤 당신은 진정으로 되새겨야 한다. -p.283

예컨대, 초반부에 반진제를 앞두고 모리에게 푸이 황제가 추천해 준 '쉐창'이 첸의 마지막 요리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의미 심장하게 느껴졌다. 피를 응고해서 만든 것을 끓인 국이라니, 우리나라로 치면 '선짓국'같은데, '피'를 담은 요리라는 것도 그랬고, 피바람을 불러 일으킨 제국주의자들에게 던지는 빈정거림과 분노를 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무튼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 일으켰던 요리였다.


이렇듯 첸과 모리를 중심으로 보는 요리 내기를 보고 있으면, 잠시 전시 상황이었다는 걸 살짝 잊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펼쳐지는 공간은 만주국이다. 일본이 중국 침략을 목적으로, 만주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기 위해 세운 괴뢰국가. 제국주의의 대력 침략 야욕과 함께, 중국 공산단원들의 투쟁과 우리 나라의 무장투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던 그 만주다.

첸과 모리의 이야기 사이로 들려오는 조선 여인 길순의 이야기가 그 상황을 상기시켜주는데, 전쟁이 유린했는 국가와 개인의 삶을 상기시켜 주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비록 어투는 조곤조곤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감정을 억누른 듯, 평온하게 들리지만, 그 덤덤한 어투가 더 가슴 아프게 만든다.

살고 있던 청진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빠의 부름을 받고 만주행을 택했다가 위안부가 되었어야 했던 길순. 그녀는 겨우 도망치고 도망쳐 첸의 집에 왔지만, 일본에 대한 투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오빠의 망령에 시달리며, 스스로 모리의 품에 안기고 계획을 실행하는 여인이었다.

무력에 짓밟히고, 투쟁하고, 이유없이 투쟁을 강요당하기도 했던 곳. 일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같은 목표 아래 싸우다가도, 서로 다른 이념이 뒤섞여 '이념이 다르면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공존하던 그 곳. 그런 의미에서 '만주국'은 가깝고도 먼 세 국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적당한 배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칼과 혀>는 첸의 목숨을 건 요리 내기를 시작으로, 만주국에서의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당시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내기 부분에서 긴장감도 좋았고, 요리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읽다가 음식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나고, 요리에 담긴 철학을 곱씹으며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가 길순의 이야기에서 침울해지기도하고, 갑자기 한중일 관계가 떠올라 심각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심사평에서는 한중일 민중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은밀하게, 위대하게 제시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려웠다.

다만, 요리 앞에서, 첸이 독을 넣기 전 시게오나 다른 장교 식당의 요리사와 대화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요리라는 주제 앞에서 긴장을 풀던 모리를 보면서, 어머니를 떠올리던 그를 보면서. 모든 것이 상실되는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요리'란, 마지막 인간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요리는 '칼'에서 나오고 '혀'를 통해 맛을 느끼고, 목으로 넘어간다는 것으로 연결지어 '칼과 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망상도 살짝 해보았다.

무튼, 당시 시대적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묘사해낸 참신하고 흥미로운 글이었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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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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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_임현
출판사_현대문학

 

 


 

 

책의 제목부터 놀라게 했던 『그 개와 같은 말』.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임현의 첫 소설집이라는 소개에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가능한 세계>를 시작으로 총 10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다. 주로 장르 소설을 읽는 편이라 이런 단편집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 싶어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약간은 충격적인 소재도 있었고, 요사이 고민해보던 문제를 자꾸 떠오르게 하는 등, 머릿속을 자꾸 두드리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미래를 알 수 있어요.”-p.9 <가능한 세계> 


 

첫 문을 열었던 <가능한 세계>에는 독특한 아이가 나온다.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어쩐지 아이를 보는 선생님과 어머니의 태도가 퍽 난처하다. 선생님은 헛소리로 상담하는 학생이 이제 귀찮은 듯하다. 어머니의 시선에서는 슬픔이 느껴진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아이의 대화에 뇌종양이 나오고, 계속해서 아이가 말하는 ‘예지 능력’과 ‘무서운 가정’을 듣는 어머니의 괴로움이 점점 크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1일, 2일, 3일...... 그리고 5000여 일을 넘기기는 동안, 아이의 상태는 알 수 없는 이유로-아니, 어쩌면 대화를 읽는 동안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법한 이유로-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또한,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 역시.
 
그러더니 갑자기 다시 마지막 장이 1일로 돌아간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마지막 5013일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다시 1일로 돌아가는 전개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처음 드는 생각은, ‘뭐가 진짜야?’였다. 정말 아이가 말하는 ‘예지력’이 사실인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과 어머니의 눈에 비치는 ‘망상’이나 ‘허언’으로 그려졌던 가정이 사실이었는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 고민을 품은 채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 <고두>는 약간 충격적이었다. 물론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의 소재가 예상치 못했던 소재였지만, 여기서 학생과 제자의 스캔들을 볼 줄은 더 몰랐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란다, 라는 식의 마지막 종결 어미를 보면 뭔가 아래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황인 것 같은데, 조금 더 읽어보니 ‘교직 생활’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하는 이야기 인가보다, 하고 계속 읽고 있는데, 문제의 문장이 나왔다.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냐?
뭘 묻고 싶은 거니?
그래서.
잤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나도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단다. -p.44
     


 

윤리 교사였던 ‘나’가 들려주는 여학생 제자와의 이야기였다. ‘나’의 수업 시간에 수업을 훼방 놓던 ‘연주’라는 아이는 온갖 소문이 무성한 아이다. 술집을 드나든다거나, 모텔에서 보았다거나 그런 류의 소문이 따라다니는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연주가 일하는 음식점에서 연주를 보게 되고, 일이 끝나는 길에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게 된다. ‘나’는 그날 연주가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하며 학교를 다녀야했던 학생이었을 뿐임을 알게 되고, 그간 무성한 나쁜 소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날 제자에 대한 선생님의 사명감으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그들은 선을 넘고 말았다.
 
물론, 앞장에서는 정의나 윤리에 대해 논하던 윤리 선생님인 ‘나’가 보여주는 이 연주와의 스캔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다소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열린 결말을 보면 ‘헐’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재로 놀라기에는 공감되는 문장들도 많았던 작품이었다. 특히 이 단편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든 의문이 조금씩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자꾸 머리를 자극하던 무언의 것들이 몇 질문으로 만들어졌다.

‘정말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해?’, ‘그게 옳은 거라고 생각해?’ 류의 질문들이었다. 살다보면, 하나의 상황을 놓고 단편적으로 보고, 쉽게 판단할 때가 많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묻어가는 중에, 한쪽 눈을 가리고 한쪽 귀를 닫고 대상을 볼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어느 것도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모든 일에 항상 의구심을 가져야 한단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말아라. 나쁜 것은 나쁘고 우리는 올바르다, 그런 확고하고 안정된 자세, 양팔저울 같은 거. 평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버린 상태, 더 이상 흔들리지도 않고 다른 쪽으로 다시 기울어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상태.
 
자기가 그런 지경에 있다는 걸 도무지 인정할 줄 몰라. 그러면서 맞는다고만 하는 거야. 그냥 다 안다고, 알 수 있는 거라고. 몰라? 어떻게 그걸 몰라? 오히려 상대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인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란다. -p.43
     


 

계속해서 나오는 문장에서는 꼭 나를 향해 던지는 말 같아서 양심이 찔리기도 했다.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존재고 그러므로 경계해야 하는데도 부도덕하고 불의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줄로만 알아. 그런 세계에 사는 자들의 전형이 있고 그것은 자기와 다르므로 그래서 그랬을 거라고 상상하는 거야. 


여전히 어려워하는구나. 너라면 다를 줄 아는 거겠지.
그러나 네가 다른 게 아니란다. 다만 그런 상황이 너에게 없었을 뿐.
-p.49~90
 
    
이어서 나오는 <엿보는 손>은 소름이 돋았다. ‘나’는 ‘유제호’라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메일까지 보내놓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흘러 온 답장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유제호라는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영향을 주었던,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였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가 읽던 글들을 따라 읽었는데, 그렇게 시작한 자서전 읽기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대문호들의 자서전을 읽고 쓰다가, 어느덧 ‘나’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예상하며 글쓰기가 가능해졌더라는 이야기였다.
 
어떤 에세이에서 그런 말을 읽은 기억이 있다. ‘만 원으로,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인생과 생각을 볼 수 있으니 독서는 얼마나 값진 행위인가.’라는 식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그 사람의 행보까지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지만. 추리 소설 같은 장르소설에서 같은 작가의 글을 연이어 읽다보면, 이 장면에서는 이렇게 쓸 것 같다라던가, 이 캐릭터는 어떤 장치일 것 같다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일까.
 
그런 생각도 살짝 들었고, 한편으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 떠오르기도 했다. 예컨대, 어떤 글이나 영상을 보면서,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혹은 ‘나도 저렇게 행동해 볼까?’라는 식으로 살기도 하는 모습들 말이다. 또는 어떤 장면이나 이야기를 듣고, ‘다음에는 어찌어찌 되겠구만.’하면서 타인의 행동을 적당히 예측한다거나, 책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를 예측할 수 있다거나 하는 행위들.
 
결국은 내가 언젠가 읽고 듣고 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언가를 예측한 것인데. 꼭 내가 처음 발견한 일인 것 마냥 들뜨는 일들. 참신한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냈는데, 알고 보니, 누가 이미 썼다거나 만들었던 것들이었던 것인 경우들.
 
마치 ‘타인’이 ‘나의 것’을 ‘베낀 것’ 같지만, 결국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우리 모두는 앞선 세대의 길을 같은 모양새로 걸어가고 있을 뿐일 텐데 말이다.

 
이어서 나오는 <좋은 사람>부터 <무언가의 끝>, <그 개와 같은 말>, <거기에 있어>, <외>, <말하는 사람>, <불가능한 세계> 모두, 읽으면서 계속해서 ‘의구심’을 만들어 낸다. 내가 불신이 너무 깊은 사람이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각 장마다 어떤 상황을, 대상을, 혹은 자신을 판단하는 인물들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그리고 타인이나 어떤 상황에 대한 의심을 넘어, 자기기만 행위까지 얼핏 보인다.
     
    
은우는 자신의 온전한 희생으로 무영이 회복되길 바랐다. 당신은 잘해낼 거야. 내가 있잖아. 그것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이기도 했다. 이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중략)... 무리하다 싶을 만큼 은우는 간호에 열심이었다. 의무감 같은 불순한 감정이 들 때마다 자신을 더욱 혹사시켰고 이것은 온전히 우리의 문제이며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리라고 마음 깊숙이 새김질했다.
 
그럼에도 돌본다는 행동이 주는 우월감은 어쩔 수 없었다. 은우는 되도록 무영에게 그것을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p.181<거기에 있어>
     
    
<거기에 있어>는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불운한 사고로 팔을 잃은 남편 무영과 아내 은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은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무영을 도우려고 노력한다. 의무감에 우월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가 힘들어하지 않도록, 티를 내지 않도록 열심이다. ‘우리는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안하면서도 조용하던 무영 태도가 갑자기 마지막 장면에서 날카롭게 변한다.
    


 

넌 늘 그런 식이지. 그때도 그랬어.
뭐라고?
넌 늘 네 생각만 하잖아. 뭐라도 했었어야 해.
돌아보는 무영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먼 뒤편인지 은우는 확신할 수 없었다.-p.198<거기에 있어>
    
 
연이은 작품들 역시,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누구의 시선이 맞는지 모르겠다. 작중 ‘나’는 계속해서 어떤 인물을 판단하고, 나의 행위가 ‘적당’하다고 하고,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뒷부분에는 그에 대한 반론이 나온다.
 
‘네가 어떻게 알아?’, ‘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라는 식의 이야기 들이다.
 
 
근래 ‘역지사지’라는 용어에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내가 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완벽한 이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답을 내리기 더더욱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 같다. 양쪽을 다 보고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사과는 오른쪽에서 봐도 사과이고, 왼쪽에서 봐도 사과인데. 오른쪽은 빨갛고, 왼쪽은 아직 덜 익어서 초록색이니, 오른쪽에서는 다 익은 사과라고하고, 왼쪽에서는 아우리 사과라고 싸우는 걸 보는 기분이다.(비유가 너무 저렴한.)
 
무튼, 현대 사회의 복잡하고 불안정한 모습들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제목 <그 개와 같은 말>은 단편적이고 불안정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그 말’들을 빗댄 것은 아닐는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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