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과 혀>는 제 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1945년 일제 패망 직전의 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중일 세 나라의 마지막 사투를 그린 작품이었다. 작품은 크게 1부와 2부, 마지막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 관동군 사령관 모리(야마다 오토조), 광둥 요리사 첸과 조선 여인 길순. 이렇게 세 사람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19대 관동군 사령관 야마도 오토조 앞으로 자신을 광둥 요리사라고 주장하는 첸이라는 남자가 붙잡혀왔다. 황궁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병사들에게 잡혀왔다고 했다. 그는 전쟁 통에 직장을 잃고, 무작정 올라온 만주에서는 배신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요리가 하고 싶어서 황궁을 기웃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네가 아무리 광둥 제일의 요리사라 주장한들 그걸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한 가지, 네 손을 거친 요리만이 스스로 너를 증명해주겠지." -p.38
그런 첸을 두고 공산당과 연결된 자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모리(야마도 오토조) 사령관은 그에게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하나 내건다. 단 한 가지의 요리 재료를 사용하되, 기름은 물론 어떤 양념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조리기구도 제한한다. 오로지 재료를 익힐 불과 다듬을 칼을 이용해 1분 안에 요리를 완성해내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요리 내기에서 지면 바로 총살. 하지만, 첸은 극락사 공양간에서 송이버섯을 구하고, 극적으로 요리를 만들어 낸다. 오직 재료와 불, 그리고 칼을 이용해서.
58초. 마지막 2초가 남았을 때 나는 그을린 송이 조각을 뭉쳐 접시 한편에 '향식(餉食)'이란 두 글자를 새겨 넣는다. 내 손님이 말의 의미를 알아채길 고대하면서.
접시를 바라보는 대장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p.63
결국, 첸은 향식(餉食)이라는 송이버섯 요리로 총살을 면하고 장교식당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것도 잠시, 만주족 최대 명절인 반진제를 앞두고 첸은 요리에 독을 넣을 방책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첸은 요리사이면서 동시에 광둥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지하 자경단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첸은 가까스로 반진제에 선보일 요리를 만들 기회를 얻게 되고, 자신의 방법으로, 즉, 요리로써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게 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 궁금헸던 점은 제목 '칼과 혀'의 의미, 만주라는 배경이 지닌 의미, 전쟁과 요리라는 소재가 보여줄 전개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전쟁에서 요리로 맞서는 것의 의미가 궁금했었다. 저 시대적 배경에서, 모 애니메이션처럼 요리사들이 요리 대결을 할 리는 없을 것 같으니, '요리로 맞서는 것'의 의미가 궁금했던 것 같다.
(왜 이런 전개는 생각지 못했지 싶을 정도로) 의문은 금세 풀렸다. 단적으로, 요리에 독을 타 침략자들을 암살하려했던 모습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작중 요리와 요리 도구, 요리하는 모습들과 같은 장면들의 묘사를 보고 있으면, '요리로 맞선다는 것'의 의미가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이 꼭 무력 투쟁을 통해서만 저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의 혼과 얼이 담긴 문장과 글을 통해서도 저항했던 것처럼 말이다.
불시에 아버지를 잃고 내가 무슨 정신으로 광둥으로 돌아왔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틀을 내리 잠에 빠져 있다 깨어났을 때, 나는 머리맡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통나무 도마를 발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것을 버리고 왔어야 했다.
피로 얼룩진 눈앞의 저 낡은 도마를, 수많은 영혼들이 칼날에 베여 안간힘을 쓰며 죽음을 밀어내던 저 분노의 순간들을, 대륙으로 폭풍처럼 짓쳐들어오는 제국주의자들의 총검과 피바람, 죽어가는 자들의 한숨이 압착된 저 도마를 말이다. -p.20
어렸을 적부터 요리에 대한 애정과 신념이 남달랐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첸은 그대로, 그 영향을 받아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다. '도마'를 들게 된 이후부터 그와 '요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직업학교에서 만난 요리 선생님 '응기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으면서, 첸에게, 이제 '요리'는 '생존 수단'에 덧붙여 '투쟁 수단'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원형의 도마는 죽고 죽여야 하는 투계장 같다. -p.52
이런 첸의 살아온 삶을 읽고 있노라면, '칼과 혀'는 어쩌면 '삶과 죽음'과 '요리'의 관계 만큼이나 생소하면서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죽을 한 술 떠 혀에 얹는다. 미뢰에 와 닿는 채소나 고기의 맛과 향이 머릿속으로 조용히 차오를 때, 그리하여 어떤 생각도 사라져버리고 무아가 되어 외롭게 내 생각이 공허 속으로 떠다닐 때, 달거나 시거나 짭조름한 맛들은 나를 몽환에 빠뜨리며 계속해서 내 몸 속으로 자아를 끌어당긴다. 저 안쪽으로 꾸역꾸역 돌격하라. 거기 구원이 있다.
저 목구멍 밖에 지옥이 있다는 걸 금세 잊게 하는 맛, 절대적이라 여겼던 밖의 저 세계가 어느날 무참히 무너진다고 해도 혀가 온존히 보존되는 한 끝끝내 나는 절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입안에 감도는 요리의 질감을 정성껏 씹어 음미하며 차분히 내 몸의 감각에 최면을 걸어보는 것이다. -p.121
작중 일본인을 대표하는 모리 사령관은 일본 사령관은 독특하다. 관동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인데 전쟁에 관심이 없다. 아니, 두려워한다. 빨리 어머니가 있는 본토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전황에 대한 소식보다 사색에 잠긴 시간을 방해받는 걸 더 중시한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길 원하고, 극락사와 그곳에 자리한 불상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저 독백을 보고 있노라면, 음식이 한쪽에서는 투쟁 수단이면서 동시에 전쟁에서의 구원의 수단으로 보인다. 마치 칼이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도마 위의 생명을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도마에 놓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생명이야. 칼은 그들의 생명을 끊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도구야.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을 듯 위협하면서 동시에 재료 고유의 빛깔과 싱싱함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p.97~98
이렇게 전혀 다른 속성의 소재인 '칼'과 '혀'가 주는 아이러니함 때문에 제목이 더 인상적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리는 다시, '삶'을 지탱하는 것이면서, 만든 이의 기술, 정신, 의지가 담긴 차원의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요리는 소화되고 사라지지만 냄새는 영원할 거다. 나의 보잘것없는 싸움이, 이 주방 안에서 계속되었음을 누군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p.205
특히나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읽어서 인지, 요리에 인생이 빗대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민족이나 저항 정신과 같은 철학적인 개념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누린내가 좀 풍기지만, 쉐창(血腸)은 먹을 만하지요."-p.70
혀를 다쳐 어쩌면 미각의 일부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주인을 위해 마지막 요리를 준비한다. 오늘의 요리는 쉐창이다. ....(중략)... 쉐창이, 잘려나간 당신의 말랑한 혀에 대한 나의 은유임을, 매일 밤 천수각 식당을 애용하는 나의 손님이여. 어서 피 맛을 보라.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써준 '향식'이란 말의 의미를 오늘 밤 당신은 진정으로 되새겨야 한다. -p.283
예컨대, 초반부에 반진제를 앞두고 모리에게 푸이 황제가 추천해 준 '쉐창'이 첸의 마지막 요리로 다시 등장하는 것은 의미 심장하게 느껴졌다. 피를 응고해서 만든 것을 끓인 국이라니, 우리나라로 치면 '선짓국'같은데, '피'를 담은 요리라는 것도 그랬고, 피바람을 불러 일으킨 제국주의자들에게 던지는 빈정거림과 분노를 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다. 무튼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 일으켰던 요리였다.
이렇듯 첸과 모리를 중심으로 보는 요리 내기를 보고 있으면, 잠시 전시 상황이었다는 걸 살짝 잊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펼쳐지는 공간은 만주국이다. 일본이 중국 침략을 목적으로, 만주를 자국 영토에 편입하기 위해 세운 괴뢰국가. 제국주의의 대력 침략 야욕과 함께, 중국 공산단원들의 투쟁과 우리 나라의 무장투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던 그 만주다.
첸과 모리의 이야기 사이로 들려오는 조선 여인 길순의 이야기가 그 상황을 상기시켜주는데, 전쟁이 유린했는 국가와 개인의 삶을 상기시켜 주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비록 어투는 조곤조곤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감정을 억누른 듯, 평온하게 들리지만, 그 덤덤한 어투가 더 가슴 아프게 만든다.
살고 있던 청진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빠의 부름을 받고 만주행을 택했다가 위안부가 되었어야 했던 길순. 그녀는 겨우 도망치고 도망쳐 첸의 집에 왔지만, 일본에 대한 투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오빠의 망령에 시달리며, 스스로 모리의 품에 안기고 계획을 실행하는 여인이었다.
무력에 짓밟히고, 투쟁하고, 이유없이 투쟁을 강요당하기도 했던 곳. 일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같은 목표 아래 싸우다가도, 서로 다른 이념이 뒤섞여 '이념이 다르면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공존하던 그 곳. 그런 의미에서 '만주국'은 가깝고도 먼 세 국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적당한 배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칼과 혀>는 첸의 목숨을 건 요리 내기를 시작으로, 만주국에서의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당시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내기 부분에서 긴장감도 좋았고, 요리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읽다가 음식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나고, 요리에 담긴 철학을 곱씹으며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가 길순의 이야기에서 침울해지기도하고, 갑자기 한중일 관계가 떠올라 심각해지기도 했던 것 같다.
심사평에서는 한중일 민중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은밀하게, 위대하게 제시한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려웠다.
다만, 요리 앞에서, 첸이 독을 넣기 전 시게오나 다른 장교 식당의 요리사와 대화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요리라는 주제 앞에서 긴장을 풀던 모리를 보면서, 어머니를 떠올리던 그를 보면서. 모든 것이 상실되는 전쟁이라는 공간에서 '요리'란, 마지막 인간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요리는 '칼'에서 나오고 '혀'를 통해 맛을 느끼고, 목으로 넘어간다는 것으로 연결지어 '칼과 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망상도 살짝 해보았다.
무튼, 당시 시대적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묘사해낸 참신하고 흥미로운 글이었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기'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