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플레이션(Inflation)_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출판사_다산북스

 

 

 

 

<인플레이션>은 돈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돌아보며,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용되어 왔는지를 고찰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의 미래에 관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살펴보아야 할 것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책을 한 번 읽고난 직후 떠오르는 생각은, '인플레이션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뽑아내는 정치적 부산물로써, 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구조적 위험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무시하고 회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 과거와 현재를 분석해 미래를 위한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1장은 돈이 탄생하고, 이어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보았던 경제 저서나 전공책처럼, '통화량이 증가하고, 화폐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라는 정의로 시작하고 있지 않다. 

를린의 한 지방에서 일어난 '돈이 녹은 사건'이라는 생소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그 일화를 통해 화폐와 신뢰에 대한 관계를 풀어내더니, 결국 인플레이션은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정치 수단'에 의해 만들어진 '병기'라는 식의 주장을 풀어낸다. 처음부터 일관되게 정치인들의 경제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 점이 흥미로웠다.

한편으로는, 경제 정책이 미치는 영향력과 경제 정책에서 그만큼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지폐가 훼손되면 다시 찍으면 된다. 하지만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신뢰란 지폐처럼 원하는 대로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30

최초의 화폐는 등장하자마자 국가에 의해 본래 화폐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돈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달라지면서 시작됐다.-p.47

현대의 화폐는 어떤가. 지폐는 사람들의 신뢰를 먹고 사는데 지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화폐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이 통화 정책으로 무모한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정치인들은 무슨 일을 벌여 온 것일까? -p.55

지난 역사 속 숱한 사례에서 화폐는 저마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각종 수단이 되어왔다. 군사적 용도로도 쓰였다. 예로 1939년, 나치의 '작전명 베른하르트'는 위조 지폐를 대량으로 유통해,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고 국민들의 국가 신뢰도를 떨어뜨리면서 경제 파탄을 일으키려던 정책이었다.

특히, 존 로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지폐발행은행 '뱅크 제너럴(Banque Generale)'은 이 끝나지 않을 이야기의 서막과도 같았다. 이 은행은 처음에 은행권을 발급하고 그것으로 국가의 부채를 정리하는 데 이용되었다. 이는 존 로가 서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더욱 발전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서인도 회사가 은행권으로 끌어다 쓴 자본으로 식민지 개척을하고 주기로 했던 부를 주주들에게 주지 못했고, 신뢰가 깨지면서 주주들이 급속도로 은행권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돈이 없던 은행은 또 지폐를 발행하고..... 발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결국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26%에 달했다고 한다.

'존 로는 지폐를 발명하지 않았으나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p.99

이것만 봐도 잘못된 경제 정책이 초래하는 위험한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인플레이션의 역사는 이대로 멈추지 않았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말이다. 마치 시한폭탄을 품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로 달리는 열차를 보고 있는 것 같다. 19,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이제 '초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단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연 인플레이션율이 720퍼센트였던 사례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매달 50퍼센트 이상 상승하는 경우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다소 비학문적이기는 하지만 쉽게 풀어 설명하면, 돈뭉치가 가득 실린 럭이 대기하고 있거나 강도가 돈보다 타이어를 훔치려 한다면 초인플레이션 상태다.-p.123

그래서 저자는 무분별한 화폐 발행을 통한 경기 부양 정책을 부정적으로 본다. '무분별한'이 붙으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튼, 저자는 역사 속 사례들을 되짚으며 화폐 발행으로 채무를 해결했던 기간들을 바로잡을 정책과 화폐 제도 및 구조 개혁이 필요했음을 언급했다.

한편, 시대를 거듭하며 나타나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들이 나왔다. 세이의 법칙, 필립스 곡선, 케인즈 주의..... 등등. 하지만 문제는 종종 이를 왜곡해서 정책에 반영한 정치인들로 부터 발생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는 '초대형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함께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지금의 저성장 장기화까지. 

이처럼 인플레이션 문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어왔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분야의 대가들이 계속해서 연구를 했지만, 역시 '통화 공급'이라는 단편적인 방법을 손쉽게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이렇게나 화폐 발행을 통한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고도, 몇 년 전, 한동안 대대적인 '양적완화' 정책이 각국에서 이뤄지지 않았는가. 물론,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최근 문제시 되고 있는 '디플레이션' 문제 때문이긴 했지만 말이다.

지난 2000년 동안 화폐의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이제 전 세계 중앙은행의 주요 고민은 물가수준 하락이다. 디플레이션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을 중앙은행과 정치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때문이다. - p.204

양적완화 정책은 경기가 침체국면에 있을 때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경제 정책이다. 중앙은행이 돈을 직접 뿌린다고 해서 '헬리콥터 머니'라는 시사용어까지 따라붙던 정책이었다. 

2013년 쯤, 경제 기사에서 자주 보던 용어였는데, 글로벌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아베노믹스를 비롯해 미국이며 각국에서 엄청 돈을 풀어대는 기사를 많이 보았었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재정절벽 문제가 같이 거론되면서 의견 대립이 계속되었던 기억도 나고, 연달아 '테이퍼링(tapering)' 정책에 대한 논의도 오갔던 걸로 언뜻 기억난다.

그때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정책이 맞겠구나.'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여태껏 양적완화의 문제를 보고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니. 그만큼 문제가 복잡하다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저자의 말처럼 정치인들이 '잘못된 수단'으로 악용한 것으로 의심되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양적완화로 초저금리와 유동성 함정에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돈을 풀어서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키려고 했는데, 전혀 그것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되려 한국은 최근에 금리를 다시 인상한다고 했다. 저금리 시대에 대출했던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무궁무진한 난제를 계속 떠올리게 하며, 책은 마지막으로 금융 위기 시대의 투자 전략을 안내하고, 돈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며 마무리 짓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물가 인플레이션과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의 종류를 나누어 대처 방법을 안내한다. 투자 기준으로는 '수익성, 안정성, 유동성'을 제시하며 대표적인 투자 대상(부동산, 주식, 채권, 금 등)의 성격을 정리하고,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을 보여준다.

끝으로 돈의 미래에서는 지폐의 대안으로 '플라스틱 화폐'나 비트코인같은 '디지털 화폐'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데, 이부분은 유통을 위해 보안할 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보인다. 하지만, 지폐가 가진 특성이 계속해서 이런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문제를 유발한다면, 화폐 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후 우리는 어떤 통화로 지불하게 될까?
화폐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353


*

추천사처럼, 정말 세번은 읽어야 머릿속에 정리가 될 것 같은 책이었다. 쉽게 보면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경제사를 쭉 훑어 본 책이었지만, 그 사이 사이 시대별 경제 이론도 조금씩 나오고, 경제학파별로 경제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서 발생하는 해석(공부할 때 제일 헤맸던 것들)에서 정신줄 놓다가 다시 읽고 다시 읽고했던, 조금은 어려웠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경제 공부를 놓은 지 몇 년 만에 읽어서 그런가. 그래도 '양적완화'니 '아베노믹스'니 '재정절벽'이니 '디플레이션'이니 '유동성 함정' 같은 용어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신기했다.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책을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래서 신선하면서 충격적이고, 어려워도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애썼던 것같다. 특히 명목상 정책적, 경제적 처방이라고 하며 이익 창출을 위해 단기 처방으로 악용되어 왔다고 비판하는 저자의 주장들이 그러했던 것 같다. 꼭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해 단기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나저나 경제 정책에서 '신뢰'를 항상 강조해왔는데, 한창 공부할 때면 '물질적'인 성격의 경제 문제에 '추상적' 용어인 '신뢰'라는 단어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었다.

국민들이 화폐가 제 기능을 하는지 신뢰할 때만 화폐의 가치는 유지된다. 화폐는 곧 신뢰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화폐에 대한 가치도 떨어진다. -p.53

아무리 정치인들이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같은 것을 발표해도 솔직히 일개 서민인 나로서는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경제 정책을 악용하는 정치인이 사라지고, 중앙은행은 정치권에 이용되는 일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  : 미리 향후 정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뜻으로, 경제 분야에서 중앙은행이 미래 정책 방향을 미리 외부에 알릴 때 쓰는 용어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한편, 약간 아쉬운 점은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갈 전략을 제시해주는 부분이었다.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서민들이라고 하더니, 그 전략은 일반적인 상식의 나열이었다. 일반적인 투자 상품 특징에 대한 설명, 투자 기준, 포트폴리오 구성까지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느낄 수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또한, 경제사를 정리하며 나온 저자 나름의 해석과 고찰이 담겨 있어서, 그걸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은 사람도 읽기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사례 분석을 하고 싶거나, 현재 어떤 상품이든 투자할 여건이 있는 사람, 경제사 분석을 통해 통찰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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