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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엔리코 이안니엘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원더풀 이시도로, 원드풀 라이프_엔리코 이안니엘로
출판사_현대문학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는 이탈리아 남부의 조그만 마을 마티넬라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시도로의 동화같은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졌는데, 1부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시도로의 소년시절 이야기가 담겨있고, 2부는 지진 이후, 이시도로가 점차 현실을 마주하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작품은 휘파람을 언어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소년, 매일 사랑의 편지를 쓰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 아빠, 그리고 사랑스러운 파스타 장인 엄마, 첫사랑 마렐라와 평범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시도로는 태어났을 때 "응애"대신에 "프리"하고 휘파람부터 불었다. 그때부터 이시도로의 휘파람은 독특하고 멋진 능력이 되었다. 특히, '알리'라는 인도 검은 새와 휘파람으로 대화를 하는데, 이걸 하나의 '언어'라고 이야기하며 휘파람 언어인 '우를라피스키오'를 만들어 낸다.
새 알리와 휘파람으로 대화하고, 아버지와 시를 짓기도하며, 어머니로부터 감동적인 옛 이야기를 들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시도르. 이름 붙이기 놀이를 하고, 알리와 휘파람으로 대화를 나누며, 좋아하는 여자 아이에 대한 감정을 알아간다. 그런데 그런 소년의 모습이 때묻지 않아 순수하게 그려져서 정말 사랑스러웠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바다로 만들어진 타일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집 안에 가로세로 20센티미터의 바다가 있고, 물고기가 그 속을 왔다 갔다 헤엄쳐 다니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면 어떨까? 바다로 만들어진 타일이 있다면 30 제곱미터의 바닥이 초록빛 바다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부엌에서는 발아래로 안녕하세요! 어이, 친구! 하고 인사하며 헤엄치는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집 안이 온통 바다 타일로 덮여있다면 정말 굉장하지 않겠는가! -p.22
시골 마을의 단조로운 일상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진부할 수 있지만, 어린 아이인 이시도로의 시점으로 전개되니 한 편의 마법같은 동화 같았다. 이시도로의 상상력이, 휘파람이, 생각이 닿는 장면 하나하나 새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작은 머리를 굴려 가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새로운 의미를 깨달으며 배워가는 아이를 보며 사랑스러움을 느끼는 부모가 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배치된 아버지의 '사랑의 편지'와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비유와 문장들이 따뜻하고 감동적인 글이었다.
세상은 트리스텔리체(슬픈 행복)란다. 이시도로 세상은 네가 좋아하는 놀이와 닮았단다. 놀이터에서 하는 그거 있잖니. 한 사람은 이쪽에, 또 한 사람은 반대쪽에 앉아서 위아래로 왔다 갔다하는 시소 말이야. 네게 조언을 하나, 아니 몇 가지 해주마.
너를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사람을 찾으렴. 네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기뻐할 그런 여자를 찾아봐. 마찬가지로 너도 여자에게 그래야 한다. 네가 내려갈 차례가 되면 온 힘을 다해 상대가 올라갈 수 있도록 해라. 그리고 그것에 만족해라!
너희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너는 그녀의 등 뒤에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반대로 그녀도 네 등 뒤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잖니. 그렇기 때문에 올라가는 사람 등 뒤로 보이는 세상, 이것이 바로 사랑 또는 우정이라 부를 수 있는 아주 멋진 것이란다. -p.72~73
특히, 아버지의 편지 중에 나온 이 '슬픈 행복'이라는 단어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남은 단어였다. 인생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이것저것 경험하고 배우고 알게 될수록 슬픈 일이지만 행복하기도 하고 행복하면서도 슬플 수 있는 이상한 일들을 겪어서 그런지, 저 단어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성장하는 것은 헤어진다." "강아지는 어미 개와 헤어진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헤어져보면 알고 떨어져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난 아무것도 갈라놓고 싶지 않았다. 그 반대였으면 좋겠다. 아빠와 엄마, 칸초네 아저씨와 혁명, 르노 아저씨, 알리, 이에소 아줌마, 존조 아저씨, 아르도와 마렐라를 모두 함께 연결해서 간직하고 싶었다.
나의 동네이자 나의 삶인 그 세계를 모두 하나의 부드럽고 통통하고 길쭉한 칸넬로네 휘파람 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난 그 세계를 구슬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 간직하고 싶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주머니 속에 손가락을 돌리면 그 구슬은 친구가 되고, 구슬 속에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익숙한 것들이 들어 있다. -p.204~205
한없이 평화롭고 즐거울 것만 같아서, 마치 영영 원더랜드의 피터팬처럼 있을 것 같았던 이시도로의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휘파람으로 혁명 연설 무대를 준비하면서부터 였을지도 모른다.
'트루우우이'라는 그와 새 알리 외에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휘파람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휘파람 연주를 하려던 소년의 순수한 마음 속에, 어느덧 사명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비록 처음에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시발점이 되었지만, 휘파람에 궁핍으로부터의 해방과 행복과 같은 결의가 담기기도 했다.
이 순수한 소년의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가 새와 대화를 하게 해주더니,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결의를 다지는 데 울려퍼져 간다.
2부로 넘어가면서, 1980년대에 일어났던 이탈리아 남부의 끔찍한 지진으로, 이시도로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 휘파람과 그의 친구 알리를 제외하고. 갑작스럽게 덥친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 무너진 동화. 하지만 이시도로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아직 알리와 휘파람이 있었다. 오히려 마주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점점 현실적인 문제를 보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조그마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소소하고 잔잔하지만 평화롭고 따뜻한 이야기가 설핏 설핏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곧 안가서 갑자기 나오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용어들이 묵직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여기에 휘파람과 '새'가 더해지니 갑자기 '헝거게임'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작품에서도 혁명을 뜻하는 데 '새' 이미지가 쓰이고 휘파람으로 결의를 다지는 부분이 나와서였던 것 같다.
작가님이 영화감독이라고 하시더니, 정말 묘하게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지기도 했다. 이탈리아 남부의 평화로운 시골마을이, 이시도로가 말해주는 바다 모습이, 아빠와 엄마에게 사랑을 뜸뿍 받으며 성장하는 소년의 미소가, 그의 곁을 맴도는 검은 새가, 그리고 환상같은 동화 속에서 현실을 끄집어내는 공산주의 운동들이.... 머릿속에 계속 차오른다.
알리는 내게 주의를 주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구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꿈은 금방 실현되는 반면에 어른들의 꿈은 실현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p.62
하지만 역시 가장 좋았던 건, 이시도로가 성장하면서 배워나가는 인생의 일면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화자가 '아이'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표현되는 효과적인 부분보다 '인생은 이런 거구나'하는 모습들이 공감되서 좋았던 것 같다.
길고 긴 삶, 답이 없는 인생, 계속되는 성장통. 그 속에 고민하는 모습들이 지금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내게 공감을 주었던 것 같다.
이외에도 곱씹을수록 예쁘고 감동적이었던 문장이 많았던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잔잔한 시골마을 소년의 성장기가 궁금한 분,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성장이야기가 읽고픈 분. 이탈리아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