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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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_김이나
출판사_문학동네

 






읽는 동안 여러가지로 행복했던 <김이나의 작사법>. 이 책을 만나지 못했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내겐 재미와 감동 두 가지 매력을 갖춘 에세이였다.

<김이나의 작사법>은 김이나 작사가의 잘 정리된 '작사 노트'(혹은 작사 일지)로, 처음 작사를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부터 대표곡을 통한 작사 과정 분석 및 음악 시장에서 작사가의 위치와 작사가로서의 마음가짐 등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주된 내용은 '작사'이지만 음악 산업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음악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도 있었다. 또, 음악 작업 과정이라던가, 일반인은 잘 모를 수 있지만(나만 모를 수도)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과 같은 음악 제작 중에 중요한 직업이라던가, 소위 업계 용어(데모, 가이드, 야마, 덤핑, 싸비.....) 등이 담겨 있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분야를 알고 싶었던 나로서는 대 만족이었다.



<작사가_감성과 이성이 필요한 직업>


 


책을 읽은 직후, 다시 맨 앞의 작사가의 말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말 이 작사가는 지금까지 본 사람(책이든 직접적 만남이든) 중에 가장 이성적이고도 감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롤모델을 완전 바꾸어버렸다. 냉철하고 쓴소리 하지만 가만 들어보면 조심스러운 배려심이 묻어나오는 조언을 해주는 그런 이상적인 어른.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을 통해 본 김이나 작사가는 한때 내가 가장 되고 싶었고, 지금 당장 이런 선배가 있다면 따르고 싶은 '이상적인 어른'이었다.   

이 책은 현실적인 이야기다. 열정과 감수성으로 중무장한 지망생들에게 어쩌면 조금 쓴 조언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에 나오는 얘기이지만, 무조건 '꿈을 향해 뛰어라'라는 말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싶다고 이미 언급한 바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야 이런 '현실적인 쓴소리'가 얼마나 더 중요하고 따뜻한 말인지 배웠다. 물론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쓴소리도 아니다. 다만, 나도 살짝 이쪽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럴까. 무튼, 그저 '환상'을 품고 창작 쪽에 꿈을 꾼 사람들이라면 작사가가 꿈이 아니어도, 이 책을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첫 문장부터 그녀는 자신을 '예술가'가 아닌 '일꾼'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을 싱어송라이터와 구분하고 '상업 작가', '기술자'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책 전체에 걸쳐 종종 등장하는데, 나는 이게 창작자로써의 마음가짐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상업작사가에게 '좋은 가사'란 그 자체로 좋은 글보다는 '잘 팔리는 가사'이다. 잘 팔린다는 표현이 속물처럼 들리겠지만 결국 대중음악이란 많은 사람의 공감을 통해 소비되는 것이니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싱어송라이터가 자기만의 화풍을 가진 화가라면, 상업작사가는 누군가가 꾸어낸 꿈을 토대로 밑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자다. -p.6
  
작사가가 되고 싶은데 도대체 방법이 없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는다. 나에게도 방법은 없었다. 화가, 소설가 등등 창작 방면의 직업에는 '방법'이 명확하게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그리고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p.15~16


김이나 작사가는 처음부터 작사가가 꿈은 아니었다. 다만 음악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이력서도 넣어보고, 음악 공부도했다. 단, 그녀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 한 일들이었다. 그만큼 열정만 가지고 뛰어들기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업이라는 거였다. 그렇게 그녀는 나름 '타이틀곡'이 나올 때까지는 직장생활을 계속 병행했다고 한다.

나만의 감수성으로 자신이 원하는 세계관, 캐릭터, 스토리가 담긴 창작물을 쓴다는 건 정말 행복하고 축복받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현실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사든, 소설 집필이든. 정말 '나 말고도' 쓸 수 있는, 그리고 훨씬 잘 쓰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정말 생계수단으로 삼고 싶다면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퇴색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 시장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김이나 작사가와 같은 생각이어서 글이 더 잘 읽힌 것 같다. 


 
<음반 산업 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책 추천글에 아이유가 한 말이 있다. '김이나 작사가님은 내가 좋아하는 이성적인 어른들 중 가장 감성적이다.'라는 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감성적이지만 동시에 무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이라고 했는데, 이 챕터에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앞에서 너무 '창작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작사가'가 꿈이거나 '음반 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책의 타겟층이니까, 이 부분은 리뷰에 조심히 써야겠다 싶었다. 

나는 지금까지 작곡가에게 좋은 음악이 나왔고, 이후 거기에 어울리는 가사가 붙은 뒤에 가수가 정해지는 줄 알았다. 가끔 예능에서 보면 '곡을 받았다.'라거나 '곡을 주었다.'라면서 연예인들이 이야기하는 걸 본 기억이 나서. 그게 기획사에서 부탁을 받아 시작된 것이든, 어쨌든 어떤 시작이든 간에 여튼 나는 작사가는 거의 작곡가와 소통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시나리오 작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곡이 나오고 가사를 쓰는데(혹은 반대, 가사를 쓰고 어울리는 곡이 붙고) 나름 이걸 불렀으면 싶은 가수를 떠올리면서 쓰는 거다. 그러다 드라마 배역 캐스팅하듯 이야기가 오가는 줄 알았다. 비슷하면서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음반을 만드는 과정의 디테일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회사측(프로듀서, 제작자, A&R)에서 의뢰를 하면 작곡이 들어가고, 곡이 선정되면 작사가에게 가사를 의뢰한다. 이후 보컬 녹음과 세션 녹음, 재킷 사진 뮤비 촬영 등등....... 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 다수의 곡과 가사들이 탈락된다고 한다. 그리고 녹음 직전에 있는 작업이 '작사'. 어떻게 보면 음반의 데드라인에 있는 격이므로 정말 정신없는 위치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프로젝트를 무산시키는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가사가 스케줄에 맞게 나오지 않아서 무산되는 곡들이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작사가는 '잘 쓰고, 빨리 써야한다'고 한다. 이게 무지 중요한 것 같았다.

게다 그 '빨리 쓰는 정도'가 거의 하루 이틀이기도하고, 정말 빠르면 그날 아침에 의뢰 받아서 당일 저녁까지 보내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물론, '나 없어도' 쓸 사람은 많으니 못쓰면 아웃인 거다.

완성된 곡과 가사가 나오는 것에만 스케줄을 조정할 수 없는 것이다. 가수 스케줄, 녹음 장소 선정 및 섭외, 예산 등등 시스템이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작사가 이루어지므로 정말 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상 이상의 이해 관계자들도 있음을 함께 고려해야함은 말 안해도 않지 않을까 싶다.

이러니 보통 하나의 글을 쓰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힘든 창작자라면 이런 상황 속에 글을 써야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을 덥혀 준 작사노트>

실은 이게 가장 재미있게 읽은 대목들이기는 했다. 작사가 마인드라든가, 작사가 김이나라든가, 음악 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예상치 못했던 선물들이었고.

작사하는 과정이 무지 궁금했는데, 이 부분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공감가서 웃고, 비슷한 감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나 싶어 감탄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루는 재주에 놀라고, 하나의 감정을 360도로 돌려보며 다각도로 접근하는 접근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거기에 트렌드 분석부터 탄생할 곡에 대한 해석, 부를 가수의 역량을 헤아리는 세심함까지. 치밀하고 노련하게 작사를 하는 한편 노래를 부를 가수와 들을 청자를 고려하는 따뜻한 배려심까지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걸 하나하나 다 쓸 수는 없는데 .......

무튼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기본적으로, 그 사람도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이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그래서 반대의 경우 상처받기도하고, 나는 절대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아 슬프다.) 작사 과정 중에 남긴 글들이 좋았다.


파고들자면 나이브한 생각이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개미와 베짱이가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얘기하고 싶었다. 물론 베짱이가 개미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거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p.316 <반전동화_베짱이는 정말 불행했을까?>

'내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에게 '당신은 이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부모님이든 애인이든 친구든 하다못해 오늘 아침 내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 슈퍼 아저씨라도 나로 인해 잠깐 행복했을 수 있다. 이런 행복이 쌓여야 결국 다 함께 원대한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325~326 <기적을 노래하는 사소한 방법>


  
하나는 위의 이야기는 써니힐의 <베짱이 찬가>를 쓸 당시 이야기다. 꼭 베짱이의 인생 철학이 나빴을까? 살다보면 적당히 스트레스 풀면서, 노래도 좀 하면서 능률을 올리며 일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개미의 삶의 방식만 옳은 건가? 하루하루만을 희생하다 인생의 반 이상을 일만하다가 죽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 않나. 모두가 잘 살 수는 없나.

이런 맥락에서 쓴 곡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뒤에 수록된 <베짱이 찬가> 가사를 읽는데 소름이 돋았다. 감동적인 소름이었다. 나는 한때 '베짱이로 보이는' 사람들을 무시 혹은 삐뚫어진 눈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다 같이 즐겁게 살 수도 있는데.

두 번째는 SBS가요대전에서 'Miracle'이라는 테마로 노래를 제작할 때의 이야기였다. 음원 수익을 기부할 선행 음악 제작이었다. 한창 고민하던 끝에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행복'의 의미를 접목시켜 'You are a miracle'이라는 곡이 탄생했다. 누군가를 기분좋게, 행복하게 해주는 일. 당신이 기적이라는 의미였다고.



<기타/마무리_여긴 사족이 많이 섞였어요>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지를 얼마나 붙인지 모르겠다. 앞장에서는 정말 좀 살아 본 인생의 쓴맛을 잘 아닌 언니가 해주는 현실 조언과 같은 이야기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특히나 내가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해 엄청 동경하는 이상적인 스타일의 사람인게 마구마구 느껴져서 열혈구독했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내가 취미로 쓰는 그 글짓기가 요즘 잘 안돼서. 막막한 마음에 찾아보던 글이었다. 스토리 구성이나 캐릭터 붕괴가 오면 나는 비슷한 상황의 가사를 지닌 음악을 듣는다. 역으로 가사를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 스토리 구성에서 또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에서 이 책을 찾았고, '빙고'를 외쳤다.

앞에 쓰지 못했는데, 정말 작사가란 멋진 직업이긴했다(물론 내가 당사자가 아니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추상적으로 남아 있는 감정들, 어떤 성격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 어떤 인생....... 그 중 하나의 스토리를 끄집어내 구현하는 기본 스토리를 짜는 사람이 아닌가! 

나중가서는 거의 책에 빙의하다시피 읽은 것 같은데........ 어떤 이미지의 가수가 이런 이야기를 부르면 어떨까. 이 노래가 어떤 뮤직비디오로 나오면 어떨까...... 고민하는 장면에서 함께 상상하는 맛이 일품이었다. 나도 모르게 떠오른 가수가 노래할 때 들려주는 발성, 눈빛, 제스처, 입고 있는 의상, 둘러싼 소품, 배경까지. 실제로 뮤직비디오 촬영 때 함께 한다고도 했는데 상상하는 걸 눈 앞에서 보는 기분은 얼마나 짜릿할까, 그런 생각이 다 들었다.

언제부턴가 '이 정도면 좀 나이먹지 않았나?'라고 생각할즈음부터, 무의식적으로 '내 나이에 무슨 아이돌들 노래야. 으아아 너무 어려 애들이야. 애기들 왤케 말랐어......' 등등 생각하면서 운동할 때나 듣지, 멀리하려고 했던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가사가 들려야 음악을 듣는 내게는 가사도 뭔 말인지 모르겠고. 미안하지만 '유치'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그 가사들도 달리 보였다. 물론 아직까지도 몇 가사들은 이해가 잘 안 가는 가사들이 있지만. 세상에 다양한 감정과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있고, 태도를 지닌 사람이 있고, 그런 이야기들이 여러 조합을 거쳐 탄생한 곡과 가사라고 생각하니 그간 편협했던 사고방식에 대한 반성도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내가 맨날 비슷한 캐릭터의 글만 썼나. 그런 반성도 하고.    


 또, 계속해서...... 잘 모르던 음반 제작 산업이 흥미로워서, 그리고 잘 아는 유명한 곡들이 다 이 분 손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해서, 그 탄생 비화가 또 너무 웃겨서. 팔랑팔랑. 글 쓸 때 하던 고민이랑 비슷한게 보이면 또 신나게 팔랑팔랑.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남은 페이지가 아까워서 읽다 놓친 부분이 있나 다시 보던 부분도 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문체가 친한 언니, 선배, 혹은 친한 젊은 이.....모?(나잇대가 조금 있으시니 죄송하지만.)가 들려주는 것 같아 재밌었다.

후기를 읽고 가사를 보니 가사가 남다르게 느껴져 울컥한 것도 있고, 감동받은 적도 있고, 그래서 한편으로 역시 나는 작가같은 건 안하길 잘했다....(?)라고 안도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글을 써.....라며.

도대체 이런 글을 쓰려면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해야하고, 또 어떤 마음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는 걸까. 정말 머릿속에 들어가보고 싶었다. 단편적인 예로 '이별'에 대한 가사를 쓸 때 가장 그랬다. 이별을 대하는 자세만 해도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나오는데, 그게 화자X청자의 태도(성격)X이별상황에 따라 또 다양해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우리나라 노래 대다수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거라 그 후기를 다루고 싶었으나 그럼 더 신나서, 끝도 없이 리뷰를 쓸 것 같아 되레 못 다뤘다. 책갈피에 짧게 올린 그런 이야기들이다!)

무튼 이 책은 확실히 '일단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하다보면 길이 나온다.'와 같은 다소 추상적이고 꿈같은, 응원의 메시지는 아니다. 처음부터 본인은 '상업 작사가'라고 했고, 잘 쓰는 지는 모르겠지만 '잘 팔리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뗀 감이 있었기에. 어떤 이는 냉정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른이라면 그런 말을 하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특히나 이런 불안정한 업이라면 더더욱.

그리고 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가 무조건 냉정하고 나쁘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있게 말하는 것치고 동시에 글 여기저기 묻어나오는 조심스러움과 약간의 소심함, 배려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글을 너무 잘 써서 혹했는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은 그리고 그런 고뇌의 시간을 거쳐 그런 가사들을 쓴 사람이라면...... 하는 생각이 남아있기에(그렇게 믿고 싶다.) 무튼 나는 읽는 동한 즐겁고 위로도 받았다.  

솔직히 어느 말이 맞는 지 모르겠다. 주변에 실제로 현실적으로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하다 잘 된 케이스도 있다. 오히려 현실을 쫓다가 회의적으로 변한 사람도 있기 때문에,

다만, 작사가가 꿈인 사람이라면, 특히나 이 일을 정말 생계수단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건 당연히 기쁘고 행복한 일일테고, 그게 돈까지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너무나도 큰 행운이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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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 2017 제1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상순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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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6월 중앙일보사(주)에서 제정한 문학상(출처_네이버 백과사전)이다. 그리고 이번 17회 미당문학상으로 박상순 시인의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이 선정되었다.
   
시집에는 박상순 시인의 수상작 외에 9작품이 더 실려 있었고, 또 김상혁 시인을 비롯해 8분의 시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언어의 음악성과 회화성이 절묘하게 부각된 수상작이라는 심사평을 받은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사랑에 빠진 이의 심장박동을 일상어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 있게 구현하면서, 에로스적 욕망의 환희와 타나토스적 죽음의 비참을 복작거리는 이미지의 연쇄를 가시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심사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그럼 수요일에 오세요. 여기서 함께해요. (.....) 그러니까, 수요일에 나랑 해요. 꼭, 그러니까. 수요일에 여기서........
   
무언가 공유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일련의 ‘무궁무진한’ 무언가들이 등장한다. 무궁무진한 봄, 밤, 고양이, 개구리로 시작해서 ........... 무궁무진한 포옹에 이르기까지, 단어들이 주는 느낌이 아련하다.
   
그런데 이 애틋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다음 연에서 다소 소름 돋게 돌변한다. 갑자기 지붕이 무너지고, 할머니가 쓰러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땅속에서 일어나시고........ 그의 손목이 부러지고 어깨가 무너지고, 그러더니 그녀의 목소리를 가슴에 품고 죽는다. 이것도 충분히 아연하게 만들어버렸는데, 그 다음 문장이 쐐기를 박는다.
   
월요일의 그녀 또한 차라리 없었다고 써야 할까.
   
그리고 다시 ‘무궁무진한’ 그것들을 떠올리며 시가 끝을 맺는다.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계속 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읽었던 게 태반이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캐릭터와 플롯으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산문과 달리 비유와 은유의 향연인 운문은 난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여인의 낭랑한, 조급은 수줍은 목소리로 시작했던 첫 연이 끝나고, 옹기종기 이어지는 무궁무진한 것들의 향연. 그러다 3연에서 지붕이 무너지며 반전되는 분위기에 순간 머리가 아연해진다. 마지막에 나온 심사평을 읽고 나서야 조금 알 듯 말 듯하기도 하면서도 역시 어려웠다.
 
무수한 사랑을 하고, 그 사이사이 사랑을 잃게 되는 경험을 겪으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또 새로운 사랑을 하겠다는, 그래서 계속 무궁무진한 사랑을 하겠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되 되는 걸까. 평을 읽고 든 생각이지만, 맞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방가르드’한 시라고 평을 했는데. 그건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가 주는 ‘여운’이 있어, 읽는 동안 가슴 한 구석이 일렁이는 기분이 드는 작품들도 있었다. 역시나 어떤 내용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작품들은 읽는 순간마다 머릿속에 막 연상 작용을 일으켜서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밤이 얼마나 깊었냐 하면 어둠 속에 눈빛이 영혼같이 빛났다. 책 속엔 정말 그런 게 존재해서
사람을 사람이 구해주고 있었다. 자유와 시간이 무한히 남았구나 싶었다.
-p.49 김상혁 시인, <밤이 얼마나 깊었냐 하면> 중 
  

(맞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를 내용을 보면 대강 이러하다. 읽던 소설을 덮고 나니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중요한 인물을 놓쳤으며,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지각한다. 그러더니 바로 읽던 책의 감상을 떠올린다. 뉴욕을 배경으로 했던가, ‘나’가 읽은 책 속의 인물들과 행동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각을 어둠이라고 비유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둠 속에 더 선연하게 나타나는 대상들을 책을 읽고 난 뒤에 떠오르는 감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작가가 만든 세계에 흠뻑 취해 끝없이 빠져들어 갈 때가 있다. 종이 위에 펼쳐진 그 무한한 공간을 만나는 순간은 늘 흥미롭다. 책 판형이 커봐야 팔뚝만한 길이인데, 그 안에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신기하고 놀랍다.
 
그러다, 한 편의 잘 짜인 이야기를 읽노라면, 내가 처한 상황에 너무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은연중에 구원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일련의 독서 활동 후 모습이 떠올라서 유독 이 시가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법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고 싶었다.
-p.49 김상혁 시인, <밤이 얼마나 깊었냐 하면> 중 
 
독자로서 생각해도 말이 되고, 시의 화자인 ‘나’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의 생각인 것 같기도 해서 묘하게 이 문장이 머리에 맴돌았다. 물론 공감도 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직하게 말해도 되겠지만,
종국엔 비겁하게 말을 고르겠지.
(.....)
그리하여 우리의 말이 종국엔 평범하고 고요한 무관심들이라면,
무관심의 전체주의라면,
이 노래는 어떻게 파산해야 할까,
어떻게 사라져야 할까,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휘들과 비참의 부력으로 떠서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삶이 없는 생자들 속에서
-p.49 김상혁 시인, <파산된 노래>
  

늘 정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한마디 내뱉기 위해 숱한 필터를 거쳐야 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답이 아니라,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책은 아니었을까 싶어 스스로가 한심했던 나날들. 어떤 상황에 대해 무관심했음을 숨기기 위해 적당히 둘러대었던 때. 그런 순간들이 떠오르는 시구였다. 
 
여기는 자신의 마음대로, 혹은 바른대로 쓰지 못하고 어휘를 골라야했던 시인의 고뇌를 담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추상적인 생각들이 있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 이슈가 담겨 있어 보이는(?) 시도 몇 개 보였다.
 
김현 시인의 <지혜의 혀>는 전반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촛불’, ‘하야’, ‘부엉이’ 등의 단어들이 묘하게 일련의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민하 시인의 <빨간 마스크>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져서 흠칫했는데, 빨간 마스크의 ‘빨간색’이 주는 강렬함이 더해져,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듣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들은 물어요.
마스크 속엔 무얼 감췄니.
콧물을 왈칵 쏟는다면 실망할까요? 쉰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당황할까요?
(......)
무얼 더 감추겠어요.
마스크가 우스워요? 빨간색이 무서워요?
차라리 꽃무늬 마스크를 쓸까요. 아니면 벗을까요. 실오라기 하나 없이
이러면 예뻐요?
포마드는 싫어요. 냄새나는 어른들 속으로 오빠도 숨었잖아요.
-p.164~165 이민하 시인, <빨간마스크> 중
  
빨간 마스크를 쓴 ‘나’는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마스크 속에 무엇을 감추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분위기상 추궁받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할까봐 울먹이듯 걱정하는 ‘나’의 불안과 걱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러더니 대상을 돌려 ‘나’는 ‘오빠’라는 대상을 비난한다. 

빨간색이 무서우면 꽃무늬를 쓰면 낫겠느냐, 아님 차라리 벗어버릴까. 그러면 예쁘냐는 외침이 슬프면서도 소름 돋는다. 꼭, ‘여자들은 이래야 해’식으로 여성을 사회적 프레임에 가두고 억압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식의 폭력을 행하는 불특정 대상인 ‘오빠’를 비판하는 듯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연을 남겨두고, 이제 ‘뼈’만 남은 ‘나’는 살을 붙이고 ‘오빠’와 대화를 하고 싶다.  
  

오빠는 정말 외롭지 않아요?
옛날엔 날 갖고 놀았잖아요. 죽여줬잖아요.
걱정 말아요. 밤은 길어요. 눈 감아요 무를 수 없는 기억의 파본.
끝 장까지 읽어줄게요. 이불처럼 펴서 덮어줄게요.
-p.167 이민하 시인, <빨간마스크> 중
  

아무래도 생각하는 대화의 방식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것 같지만. ‘덮어준다’는 표현이, 너는 덮을지언정, 나는 끝가지 나는 ‘잊지 않겠다.’와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앞의 연에 비해서는 다소 차분한 느낌의 어조이지만,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를 눌러 담는 것 같은 느낌이 더 스산하다. 한편, 마스크 속에 덮어둔 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나’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음울했다.
  
*
  
그간 시는 학창시절 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 그리고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삽입되는 구절 등을 통해서야 겨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서사’가 담긴 시도 있고, 별다른 해석의 도움 없이 읽으면서 이해되는 시도 있지만, 시어가 지닌 ‘함축성’ 때문에 대다수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받아 읽고, 감상을 정리하면서 다시 읽는 과정 속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연상 작용이 흥미로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읽고 보고 들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해석이 되고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았나 싶지만. 
 
난해한 문장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될까. 그렇게 시인들이 써내려간 시어를 추리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 전체 내용을 떠나서, 시어, 행, 하나의 연이 주는 의미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시를 읽고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비유와 상징이 주는 매력은 비유로 이어지는 ‘두 대상의 교차점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을 깊은 어둠이라고 생각했을까....와 같은 것들처럼. 또, 압축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재구성하게 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는 즐거움도, 시를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거나,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시집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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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부동산 투자 - 현명한 투자자를 위한 대한민국 부동산 팩트 체크
김기원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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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북스]부동산 알파고가 되어보자_김기원(리치톡톡)_[빅데이터 부동산투자]

 

 

 


<빅데이터 부동산투자>는 현명한 부동산 투자를 하기 위한 '객관적 통계와 빅데이터' 해석 입문서였다. 한 때 부동산 투자에서 뼈아픈 경험을 겪고 난 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수히 고민하고 공부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 책에 담겨 있다. 

부동산 투자자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투자의 적기와 적소를 알기 위함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은 어떠한 고수를 통해서도 얻을 수 없고, 저자가 발견한 이 방법으로도 완벽한 답을 얻을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주관적인 경험과 의견만이 아닌 객관적인 통계와 데이터를 통한 판단력과 혜안이 현명한 투자의 밑받침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세상은 데이터대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100% 확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온갖 썰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객관적인 통계의 데이터로 그 중심을 굳건히 잡아줄 수 있는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20 


그래서 저자가 그간 모은 다양한 데이터들의 집합인, 그
'빅데이터'를 어떻게 부동산 투자에 활용하는지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부동산에서 빅데이터란 무엇인지부터, 어떠한 자료와 지표들을 봐야 하는지, 지표들이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 수치 자료들이 어떤 상관 관계를 이루며, 그런 계수들로 표현되는 경제 현상들이 부동산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등등. 정말 부동산 투자를 위해 살펴보아야 할 법한 다양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저자는 본인이 직접 만든 부동산 빅데이터 시스템 '리치고(RichGo)'를 사용한다.  지역별 거래량부터, 해당 지역별 '부동산 건물 유형별 거래량', '부동산 매입자 거주지별 거래량', '외국인 거래량'까지. 정말 세세한 내역별로 구분된 차트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읽다보면 이 외에도 정말 엄청난 차트들이 나오는데, 읽을수록 기함하게 된다.

*이처럼 부동산 빅데이터 시스템인 리치고는 대한민국을 시도 단위, 시군구 단위로 분석한 최신 데이터를 보여줌으로써 투자 시기와 지역에 대한 판단을 돕는다. 데이터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 실제 리치고가 다루는 데이터는 훨씬 더 방대하다.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인 금리, 통화량, 대출, 소득, 공급 물량 등을 모두 포함한다. 특정 요소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끔 돕는 것이다. -p.35~36

부동산 투자를 하기 앞서 경제상황이나 시장조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엄청난 지표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야하는 일인지는 생각도 못했다.

한편, 이런 데이터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대표적으로 KB부동산, 한국가정원 부동산통계정보,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등을 소개해주고 각각의 특징과 얻어낼 수 있는 자료들, 그리고 각 자료원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서 또 정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동산 빅데이터가 어떤 것인지 설명이 끝나면, 앞서 보여준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부동산은 어떤 상황인지,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끝으로 한국의 부동산 수준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에 있는지를 정리한다.

이 책이 좋았던 부분은 챕터 마지막부분들에 있던 '종합정리'였다. 각 장에서 지역별로 세세하게 설명해준 내용들은 부동산 투자를 결심하고,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입문서로는 좋겠지만, 솔직히 '조금 알아볼까?, 부동산 투자가 뭘까?' 싶은, 단순히 궁금한 초심자인 내게는 조금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간략히 설명은 다 해주었다. 그리고 읽다보면 직관적으로 '아... 이런 지표구나'하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리, 통화량, 소득, 신용경색, 주택버블, 대출위험 이런 용어들은 그렇다치고, PIR 소득대비 주택가격, J-PIR 소득대비 전세가격, HAI 주택구입능력지수.....와 같은 용어들은 그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것만 확인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종합정리로 앞에서 언급한 자료들을 토대로 '~하니 시장이 이러한 상태이다.', '~한 부분은 투자의 장단점을 체크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지역이 투자할 만한 곳이고 조심해야 할 곳이다' 와 같은 내용들이 나오니,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논리 흐름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공부가 되는 것 같아 좋았다.

또, 주제 끝마다 달려 있는 '데이터로 본 부동산 팩트 체크'도 좋았다. 

 

 

 

 

* 데이터를 이해하는 능력, 처리하는 능력, 가치를 뽑아내는 능력, 시각화하는 능력, 전달하는 능력이야말로 앞으로 10년간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 할베리언(구글 수석 경제학자)- p.5

맨 앞장에 나와있는 문구였다. 부동산 투자에서 빅데이터 활용 능력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싶어서 둔 것 같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경제 활동에 필요한 제반 사항에 해당하는 문장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하기 앞서, 중요한 태도를 언급했는데, 그 점 또한 인상적으로 남았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내가 절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통제력과 영향력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투자는 결국 내 통제력과 영향력 안에 있는 것만 해야 한다는 말이다. -p.56

타인의 결론과 결정에 흔들려 맹목적인 투자를 하면 금전적인 손해는 물론 인간관계도 망가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저 문장은 투자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흐릴 수 있는 주관적 견해는 최대한 배제해야하지만, 최대한 객관적 지표로 감정적인 판단을 지워낸 끝에 마지막 선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제아무리 객관적인 수치들일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가지각색의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설픈 마음으로 한탕에 벌고 싶어서, 곧 개발된다고 무턱대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매번 이런 책에서 나오는 표현이지만) 정말 제대로 투자하고 싶다면
발품 팔아가면서 직접 현장조사하면서 판단력을 키워가는 자세도 중요한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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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왕, 루프스 1~4 세트 - 전4권
윤하영 지음 / 뮤즈(Muse)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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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왕 루프스_윤하영

출판사_청어람(MUSE)

 

 

뒤틀린 사랑이 불러온 잔혹한 연심, 지독한 후회_ 윤하영_[늑대왕 루프스]

 

 

 


 

<내 맘대로 키워드>
#판타지로맨스 / 차원이동물 / 피폐물소유욕나쁜남자 후회남 / 남주 짝사랑 / 걸크러쉬 / 외강내유형 여주 / (내 기준) 노맨스


<주인공>
울프스(라이칸)_(26-27) 늑대족 수장이자 수인들의 땅인 스티폴로르의 왕. 잔혹한 성정인 그의 앞으로, 마레 위르(인간)인 유채가 진상된다. 다른 펠릭스 다우스(일종의 애완견)처럼 그녀를 길들이려고 하지만 전혀 지지 않는 그녀 때문에 흥미롭다가도 곤혹을 치르며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평생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내가..... 너를 연모한다. .......그러니 여기 남아주면 안 되겠나."


한유채(19-20)_수능이 끝나고 치킨을 들고 언니가 있던 병원에 가고 있었다. 백혈병으로 고전하는 언니에게 골수 이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이 끊기고, 눈을 뜨니 낯선 세상에 떨어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상한 외형의 수인들이 그녀를 끌고가더니 루프스의 펠릭스다우스로 바쳐졌다.

자신에게 무섭게 집착하는 루프스, 그리고 그녀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난 당신들 물건도 아니고 레티티아도 아니고 한유채야, 한유채! 나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이라고! 당신들 원하는 대로는 절대 안 해! 평생을 해봐, 내가 당신 뜻대로 움직이나!"


 

<줄거리>

"우리들의 왕이신 루프스시여."

유채는 치킨을 사들고 여느 때처럼 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뜨니 낯선 세상에 있었다. 그녀가 발견된 곳은 에클레시아, 수인들의 땅인 스티폴로르의 신성지역이었다.

당황한 그녀 앞으로 수인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들은 유채를 발견하자마자 그녀를 범하려 든다. 다행히 그 위기를 모면하고나니, 여우 수장인 헤르티아라는 자가 나타나 그들의 왕인 루프스의 생일 선물로 진상해 버린다.

"길들일 맛이 나는 암컷이군. 하지만 이리 반항적이어서야, 주제도 모르고 주인을 물겠구나."

이국적인 외모의 유채에게 흥미를 느낀 루프스는 그녀를 자신의 소유물인 펠릭스 다우스(애완동물)로 만들고, 레티티아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고 나서는 그녀가 온전히 자신에게만 의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좀처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유채. 자존심 강한 그녀가 상처를 입으면서도 절대로 굽히지 않자 슬슬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막상 그녀가 괴로워하자 그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돌고 돌아 감정의 정의를 겨우 내렸을 때는 이미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득 안겨준 상태.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간절한 소원임을 알지라도. 

늑대는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설령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위선이라고 하고, 무시해도 향하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유채가 없으면 살아가기 힘든 상태가 되고 말았으므로. 

"네가, 나의 세상이다. 제발...... 가지마. 제발."
 


<리뷰>

치킨사러 갔다가 낯선 세상에 떨어진 여고생 유채가 집에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구르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늑대왕 루프스>. 방대한 세계관과 군데군데 노력한 흔적이 많이 엿보이는 치밀한 구성들, 그리고 그 사이로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었던 유채와 루프스의 신경전과 감정의 변화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갈등과 오해로 얼룩진 환상의 땅, 스티폴로르

이계에 떨어진 여주, 인간과 수인이 공존하는 세상, 그리고 남주는 늑대인간. 이 요소만으로도 기대감 잔뜩 부풀어 올랐는데, 이곳은 마법도 통용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 덧붙인 세심한 설정들이라니. 

유채가 오기 전, 차원이동 했던 소녀와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 신과 마법, 수인들에게 얽힌 병과 같은 저주. 세계를 위협하는 힘. 영화 그려보듯 상상하며 판타지물을 읽는 것을 즐기는 내게. 그부분들은 취향저격이었다.

그런 거대한 스케일을 바탕으로, 인간과 수인, 그리고 수인들 간에 형성된 오해와 갈등. 그로인한 반목 상황이 그려진다.  악인은 분명히 정해져있었지만, 동시에 처음부터 악인은 없었던. 모두가 피해자이며 피의자인 이야기.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갈등의 골이 서로 상처받고 상처입혀야했던 자들의 이야기였다.



#여주는 구르면서 자란다

출간 소식이 나오고, 루프스의 소유욕만큼이나 궁금해 하던 대목이었던 것 같다. 여자주인공이 정말 많이 구른다. 1권에서는 스티폴로르에 떨어져서 수인들에게 강간당할 뻔하더니, 루프스에게 진상되고나서는..... 맞고 목 졸리고, 내쳐지고, 물 따귀 맞고, 아사 위기에 정신적 고통까지 느끼게 된다.

외국계 어머니 영향으로 혼혈아인 유채는 본디 어려서부터 온갖 따돌림과 괴롭힘에 익숙했다. 그래서 루프스의 괴롭힘과 수인들의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잘 견디고 대들었지만, 그녀가 겪어야했던 정신적 고통은 정말이지 피를 말리기에 충분할 듯했다.

루프스의 명으로 자신을 공기마냥 대하는 수인들로 인한 정서적 고립감, 시체들을 널어놓았던 붉은방 감금, 자신을 도와준 이유만으로 혹은 자신이 다쳤다는 이유로 누군가 죽음에 가까운 벌을 받아야 느껴야 했던 죄책감.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일정 수준 지나자, 오히려 유채를 강하게 만든다. 겉으로 강한 척하지만, 힘도 없으면서 타인들이 다치는 건 막고 싶었던, 마음 여린 유채. 어떻게 해야 루프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탈출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온 순간, 용감하게 남주 어깨에 칼도 박아넣고 도망치는 여주 되시겠다.


"난 당신들 물건도 아니고 레티티아도 아니고 한유채야, 한유채! 나도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이라고! 당신들 원하는 대로는 절대 안 해! 평생을 해봐, 내가 당신 뜻대로 움직이나!"

사람이 하나쯤은 굽히지 않고 싶은 것. 유채에게 그것은 자존심이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울고 다치며 고생도 많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성장하기도 한다. 타인의 마음을 얻고, 루프스의 마음을 흔들고, 그가 좋은 쪽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끝에 끝까지 몸 한 군데, 마음 한 켠 성한 곳 없이 너덜너덜해지는 유채의 모습이 그려지니 덩달아 만신창이가 되는 기분도 들지만, 10대 소녀가 보여주는 그 나이의 패기가 있어, 한편으로는 시원시원하기도 했다.


#강한 소유욕이 불러온 잘못된 시작, 잔혹한 연심, 지독한 후회

드디어 나왔다. 소문이 자자했던 남주의 나쁜 소유욕. 자신에게 진상된 유채를 자신의 소유물이자 일종의 애완동물인 펠릭스 다우스로 만들더니, 목에 파렌티아라는 목줄까지 채운다. 온전히 자신에게만 의지하도록 만들기 위해 앞서 언급한 온갖 술수를 쓴다. 강제로 범하는 것 빼고 유채에게 할 수 있는 고통은 다 주는 루프스.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 봐."

유채를 다시 찾으면, 제가 그녀에게 어떻게 할지 그 자신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채를 발견하면 그 즉시 손발을 묶어서 이 토스 호무스로 돌아와 그녀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서 감금할 것이다. 아니, 양손에 수갑을 채워서 제 방 침대 기둥에 묶어 놓겠다.


'이놈은 틀렸어, 어서 도망가!'라고, 여주의 도피를 응원한 것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고 울며불며 유채에게 매달리려고 그러니,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 일이 무려 3권에 걸쳐 일어난다.


"나 없으면 죽겠다면서요? 더 간단하고 좋은 복수 방법이 있는데,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짓까지 해야 해요? 나만 돌아가면 그만이잖아. 그럼 당신은 지옥에 남겨진 것일 텐데 그보다 더 좋은 복수가 어디 있어? 나는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거에요.

...... 그러니 당신은 평생 불행하게 살아."


아, 솔직히 통쾌했다. 자신의 마음을 깨닫자마자 찾아온 어쩌면 최악의 상황에서 루프스는 유채에게 끝없이 용서를 구한다. 정말 머릿속에 '미안해'라는 단어만 남지 않은 사람처럼. 태어나서 처음 배운 단어가 '미안해'인 것처럼, 미안해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읊는다. 사랑하면 바보가 된다던 그의 아버지 말처럼 정말 바보가 된다.

그렇게 오만하고 잔인하던 그가 '미안해, 가지마, 사랑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건, 정말이지 시원하고 조금 안쓰러웠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여튼 그랬다. 결국, 생애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정에 혼란스러워 그녀에게 상처만 주던 그가, 참회의 마음으로 그녀 몰래 우는 마음 여린 남자가 된다. 

하지만 그토록 여심 설레게 하던 늑대의 습성이,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 바라보는 마음이 이 글에서는 잔혹한 전개로 이어지는데 작용하고, 그 순간 이 남자의 끝없는 눈물 길이 열린다. 안타깝게도, 루프스는 비틀린 소유욕과 사랑으로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만다. 그것이 상대방에게는 독인지도 모르고.


#평행선을 달리는 마음, 함께 굴러 가슴 아픈 이야기

이런 이유들로 이 작품은 읽는 내내 마음이 아프다. 아무래도 작 중 두 사람이 사건마다 직면하는 상황적, 심리적 갈등에서 서로 의지하며 함께 헤쳐나가는 게 아니라, 서로 완전히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보통은 초반에 갈등이 있어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해도, 한쪽이 마음을 자각하면 이해하고 협조하며 문제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마련인데. 어쩌면 가장 핵심 인물인 루프스가 그걸 거부하면서 일이 한 번 더 꼬인다. 그녀가 바라는 행복이 그에게는 불행과 죽음을 의미하므로. 

물론, 루프스가 한 짓을 떠올리면,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나쁜 놈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형사소송 피고인의 변호사가 된 마음으로. 이놈 조금, 아니 많이 불쌍한 놈이기도 했다. 13살까지는 정이 많고 귀여운 아이였다던 루프스였으나, 그 어린 나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득 안고 비틀린 성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짠내라는 것이 폭발한다. 하지만, 이것은 큰 스포인 것 같으므로, 읍읍.) 


",,,,,,, 무섭다."

루프스는 일족을 이끌고 보살펴야 하는 자리였다. 애초에 이름을 버리고 루프스가 된다는 것은 이전의 자신을 버리고 일족만을 위해 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오롯이 홀로 서서 남을 이끌었다. 아무도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운명은 그를 강한 지도자로 만들었지만, 좋은 남자로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채의 존재는 그가 버린 것들을 되살린다. 그가 살기위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소중한 신념들이 하나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사랑은 강요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시작부터 엉킨 관계가 아니었던가. 짝사랑만으로도 힘든데, 어쩌면 더 소중한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매도당하고 닿지 못하는 건 정말 비참하고 슬픈 일이구나.....했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그가 가여웠다.  


"나는 당신을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사과요? 들으면 고맙죠. 하지만, 당신과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왔어요. 나는 돌아가서 당신하고 겪었던 일은 과거로 남겨둔 채 잘 살 거예요. 내 삶이 있는 그곳에서. 그러니 당신은 이곳에서 살아요. 그게 나한테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에요."


가슴 아프지만 제가 지은 죄가 있어서, 반박도 불가. 그럼에도 그녀가 진정 원하는 걸 도와주면 자신은 죽는다, 아니 죽을 것이다. 그에게 선택지는 그녀를 자신의 화려한 궁에 가두는 것밖에 없다.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서도 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는 줄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을 제공하는 것 뿐인데.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구속이다. 모든 걸 쏟아붓지만, 그는 유채가 힘들어 우는 순간에 위로조차 할 수 없는 남자다.

한편, 조금씩 변하는 루프스의 모습을 보며 유채는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은 느끼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두 사람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당신하고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서로 상처만 주고 상처만 받지, 서로 보듬어 줄 수 없는 이 관계가 씁쓸했다.



#기타

리뷰를 쓰다보니 확실히 밝은 글은 아닌 것 같다. 솔직히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면 안되지만, '그래도 로맨스 소설인데'라며, 조금은 희망적으로 변해야 하지 않나, 싶은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다만, 첫 작품이라 그럴까.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중간 중간 번외급으로 몇 인물들의 외전이 나왔는데, 글의 몰입을 조금씩 방해했다. 전개상 필요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뒤로 빼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부분도 있어서. 유채가 어떻게 해야 돌아가는지 드디어 알아냈더니, 갑자기 다른 사건이 훅 들어오거나 외전이 나오면서 끊기고, 발이 묶이고.....

도돌이표처럼 등장하는 유채와 루프스의 감정적 대치 상황이 너무 자주 보였다. 제대로 내치고, 소금 뿌리는 유채의 말들은 시원시원했지만, 점차 이것도 계속보니, 이상하게 루프스게 짠내나고.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걸 설명하려는 건 좋은데, 그걸 일일히 설명하는 게......


아니면, 어쩌면, 이제 루프스에 대한 진심어린 용서는 힘들어도, 그와 협력이라도 할 법한데, 작가님이 마지막까지 루프스 가슴에 칼을 박아 넣으셨다. 잔인한 작가님. 물론 몇 독자분들은 그걸 통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그걸 보고 싶다면 추천. (읽기 전에 다른 분 리뷰를 봤었는데 이걸 좋게 보는 분도 있었다.)

한편으로 말미에 나타난 유채의 마음에 공감이 힘들었다. 솔직히, 나는, 그럴거면 차라리 둘이 환생해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싶을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유채의 기억이 조작되지 않는 한. 절레절레) 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10대, 아니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여자아이(?)의 마음은 변덕이 심하니까.  ........

또, 1-2권에서 보여준 오만하고 잔혹한 루프스가 나올 때는 엄청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연심을 자각하고부터 매달리기 시작하니 매력이 반감되기 시작했다. 나쁜 남자가 취향일 리는 없는데, 생소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며 유채를 보며 느끼는 모순된 감정이 돌 것 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달까(내 취향을 의심 중). 거기에 루프스 과거를 읽고나서는 절정이었는데, 짠내 폭발이었는데.

정신을 좀더 빨리 차렸으면 좋았을 걸. 너무 길었던 '나만 모르는 자기만족형 뒤틀린 애정'은 조금 지쳤던 것 같기도. 또, '미안해'를 너무 많이 남발해서, 입이 닳도록 말해서. 뭔가 1권의 그 남자 맞나? 13살 이후로 사라졌던, 그 순수한 자아가 다시 발현된 걸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해석은 자유니까.

여튼, 주인공들이 엇갈려서 빙빙 돌아 힘들었지만......, 좋아했던 판타지 순정만화도 떠오르고, 머리 잔뜩 굴리게 만드는 세계관과 사건들도 있어서, 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은 것 같다. 생각 외로, 취향에 맞지 않았던 전개 상의 요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뒤가 궁금해서 계속 읽힌 거 보면, 확실히 작가님 필력은 좋으신 것 같다. (다만, 내 경우는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마음이 편해졌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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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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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지만 한 줄 쓰기가 너무 어렵고, 시작조차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왔다. 
소설가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

작가의 일상은 어떨까. 다채로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의 일상은 다를 것 같다. 그리고 한 줄, 한 문단, 한 장, 한 권의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힘든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어떤 고민들을 할까. 무거운 이야기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책은 진중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무겁지 않았고, 가볍게 던지는 듯 이야기하지만 들려오는 진솔한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 창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관찰'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p.10

* 평소에 우리는 삶을 관찰하지 않는다. 삶의 미세한 틈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에는 인간에 대한 관찰과 그로 빚어진 통찰이 짧은 문장에 압축돼 있다.-p.15


가만히 생각해보면 즐겨 읽고 사랑했던 글들은 모두 '공감'을 느꼈던 작품들이었다. 심지어 일상에서 겪기 힘든 SF/추리, 로맨스같은 장르 소설을 읽으면서도 몰입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할 때도 있다. 그건 모든 글의 바탕이 '인간'에 대한 관찰에서 오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우리들은 모두 '모방'과 '답습'을 거치며 '창조'에 이르는 게 아닐까. 모방과 답습 사이에서 길을 잃고 고민하고 자책하다가 자신만의 창조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창조의 반대말은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라 '안 창조', '못 창조', '창조하려고 시도조차 안 함'이다. -p.14


글은 전반적으로 즐겁고 좋았지만, Intro와 에필로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과 끝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책의 핵심이 다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작가님은 그런 이유로 쓰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걸 경계한다. 일단 써봐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에 지나쳐가는 대상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의미를 곱씹고, 그렇게 얻은 소중한 통찰에 자신의 개성을 입히면 나만의 '창작'이 된다. Intro와 에필로그에는 그 이야기가 다 담겨 있었다.


그럼, 작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1장은 작가님이 집필하시는데 사용하거나, 집필하는 동안 두는 물건들을 쭉 늘어놓으셨다. 계획을 적는 화이트보드, 패드, 독서대부터 다양한 종류의 펜이며 손톱깎이(?)까지. 그러더니 이제 글을 쓰지 않을 때의 일상도 잠시 공개해 주신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평범한 우리와 별다를 것 같아보이는 일상 이야기다. 늦잠도 자고, 운동도 가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 때문에 글쓰기를 미루기도 한다. 그런데 이미 글쓰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런 작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 속에 담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읽는 내내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글을 쓰고 있을 때보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뮤직비디오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만화를 볼 때,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p.36


글을 쓰고 있지 않는 동안에도, 무의식 중에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을 우리는 차곡차곡 모을 수 있다. 작가님은 이걸 '사금을 걸러내는 행위'로 비유하신다. 모래와 흙을 계속 물에 돌리고 돌리면 금만 남는 것처럼, 일상의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글의 재료를 찾고 조금씩 조금씩 정제해나간다.

가끔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일기에 쓰고 싶은 좋은 문장이 떠오를 때도 있고, 최근에 읽었던 책의 서평에 쓰고 싶었던 문장이 완성되기도 한다. 다른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를 때도 있고, 음악을 듣다가 떠오를 때도 있다. 모든 인생의 경험들은 글쓰기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 모든 첫 문장은 근사하다. 왜냐하면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p.81


그렇게 재료에 대한 고민이 끝날즈음, 드디어 나왔다. 첫 문장 쓰기!
무슨 종류의 글이든, 글을 쓰기도 전에 시험에 빠져 시작을 못할 때가 있다. 바로 첫 문장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첫 문장을 쓰고나면 다음 문장은 어떻게 써야할까. 또 그 다음 문장은?

그 한 줄 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못 쓰기도 태반이다. 하지만 작가는 '첫 문장은 첫 문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첫 문장이 알고보니 76번째 문장일 수도 있고, 81번째 문장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선'의 문장이란 쓸 수 없다. 어제 쓴 문장이 오늘 보니 이상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고치고 싶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써봐야 한다. 일단 쭉쭉 쓰다가 끝까지 가고나면,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때, 다시 첫 문장을 생각해보는 거다.


*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한 걸로,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도 봤다. 헤어 실버맨에게 그 붉은 줄 그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 했잖아." -p.283(매튜 퀵 『용서해줘, 래너드 피콕』 인용)

*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 남들과 다른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벽을 세우는 셈이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래 하다 보면 특별해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특별하고, 시간과 함께 만든 창작물은 모두 특별하다. -p.286



옛날 한 때, 장르 소설이나 라이트 노벨을 읽을 때면 '나도 이 정도면 써보겠는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나. 계획없이 썼던 글은 당연히 산으로 바다로 향했고, 산타기를 하던 글들은 결국, 모두 '휴지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글을 읽고나니 삶에 대한 관찰은커녕, 고민도 없이 막 쓰면서, '재밌을 법한' 레퍼토리만 죽 나열하면 재밌을 줄 알고, 막무가내로 썼다. 거기에 문장은 또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쓰다가 지쳐서 물리고 말았던 것 같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글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렵다. 서평을 잘 쓰고 싶고, 나아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공감가고 감동도 받았는데 그래도 역시 '내 글' 쓰기는 어렵다. 당장 이 서평만 해도 진즉 읽었지만 글은 미루다 이제야 썼으니. 그럼에도 조금은 뿌듯한 건, 포기하지 않고 리뷰 하나를 썼다는 거다.

작가님은 일기를 굳이 매일 쓰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내 경우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자신을 관찰하고, 삶이란, 인상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 것 같다. 지난 경험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나아가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았던 삶의 한 장면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마음을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답은 얻지 못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써보니, 일기든 리뷰든 전시 감상 리뷰든, 하다못해 소설 개요라고 써놓은 몇 장의 글이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같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답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책을 통해 작가님이 말해주고 싶으신 건, 역시나 무엇이든 일단 써보라는 것 같다.

무엇이든 쓰면 무엇이든 쓰게 된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문장이 생겨났지만, 역시 일단 무엇이든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타인의, 전문가의 글에 빗대면 한없이 비루한 글일지라도 쓰다보면, 뭔가 써진다. 열심히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채워넣고, 다음을 고민하다보면 첫 문장이 한 문단이되고 한 페이지가 채워진다.

그리고 개성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쓰다보면 드러나는 것 같다. 써봐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쓰지 않으면 영영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 스타일은 밖에서 얻어와 내 몸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발견해 깎아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101

* 좋은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인생이 쓰는 거예요.
그냥 한마디 툭 던지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인생 전체가 다 들어 있어요.
-p.204 ( 『무한화서』 이성복 시인의 문장 인용)

  
진짜 별 말 아닌 것 같은데 심금을 울리는 말이 있다. 엄청난 미사여구가 없어도 가슴을 툭 치는데 울렁울렁거리는 문장들이 있다. 아직 그런 것을 바랄 깜냥은 안돼지만, 아직도 초등학생 글쓰기에서 멈춰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쓰고 또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읽고, 조금 써봤으니 잘 안 써지고, 못 쓰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어깨에 힘을 빼고, 특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지. 우리의 인생, 내 인생 모두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 찬찬히 관찰해보고 느낀 것들을 써봐야겠다.

우리 인생은 모두 훌륭한 작품이다.


<출판사 서평단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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