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 2017 제17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박상순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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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1년 6월 중앙일보사(주)에서 제정한 문학상(출처_네이버 백과사전)이다. 그리고 이번 17회 미당문학상으로 박상순 시인의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이 선정되었다.
   
시집에는 박상순 시인의 수상작 외에 9작품이 더 실려 있었고, 또 김상혁 시인을 비롯해 8분의 시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언어의 음악성과 회화성이 절묘하게 부각된 수상작이라는 심사평을 받은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사랑에 빠진 이의 심장박동을 일상어의 반복을 통해 리듬감 있게 구현하면서, 에로스적 욕망의 환희와 타나토스적 죽음의 비참을 복작거리는 이미지의 연쇄를 가시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심사평을 받은 작품이었다. 
   
그럼 수요일에 오세요. 여기서 함께해요. (.....) 그러니까, 수요일에 나랑 해요. 꼭, 그러니까. 수요일에 여기서........
   
무언가 공유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일련의 ‘무궁무진한’ 무언가들이 등장한다. 무궁무진한 봄, 밤, 고양이, 개구리로 시작해서 ........... 무궁무진한 포옹에 이르기까지, 단어들이 주는 느낌이 아련하다.
   
그런데 이 애틋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다음 연에서 다소 소름 돋게 돌변한다. 갑자기 지붕이 무너지고, 할머니가 쓰러지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땅속에서 일어나시고........ 그의 손목이 부러지고 어깨가 무너지고, 그러더니 그녀의 목소리를 가슴에 품고 죽는다. 이것도 충분히 아연하게 만들어버렸는데, 그 다음 문장이 쐐기를 박는다.
   
월요일의 그녀 또한 차라리 없었다고 써야 할까.
   
그리고 다시 ‘무궁무진한’ 그것들을 떠올리며 시가 끝을 맺는다. 
  
솔직히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계속 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읽었던 게 태반이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캐릭터와 플롯으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는 산문과 달리 비유와 은유의 향연인 운문은 난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여인의 낭랑한, 조급은 수줍은 목소리로 시작했던 첫 연이 끝나고, 옹기종기 이어지는 무궁무진한 것들의 향연. 그러다 3연에서 지붕이 무너지며 반전되는 분위기에 순간 머리가 아연해진다. 마지막에 나온 심사평을 읽고 나서야 조금 알 듯 말 듯하기도 하면서도 역시 어려웠다.
 
무수한 사랑을 하고, 그 사이사이 사랑을 잃게 되는 경험을 겪으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또 새로운 사랑을 하겠다는, 그래서 계속 무궁무진한 사랑을 하겠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되 되는 걸까. 평을 읽고 든 생각이지만, 맞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방가르드’한 시라고 평을 했는데. 그건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가 주는 ‘여운’이 있어, 읽는 동안 가슴 한 구석이 일렁이는 기분이 드는 작품들도 있었다. 역시나 어떤 내용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작품들은 읽는 순간마다 머릿속에 막 연상 작용을 일으켜서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밤이 얼마나 깊었냐 하면 어둠 속에 눈빛이 영혼같이 빛났다. 책 속엔 정말 그런 게 존재해서
사람을 사람이 구해주고 있었다. 자유와 시간이 무한히 남았구나 싶었다.
-p.49 김상혁 시인, <밤이 얼마나 깊었냐 하면> 중 
  

(맞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를 내용을 보면 대강 이러하다. 읽던 소설을 덮고 나니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중요한 인물을 놓쳤으며,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지각한다. 그러더니 바로 읽던 책의 감상을 떠올린다. 뉴욕을 배경으로 했던가, ‘나’가 읽은 책 속의 인물들과 행동이 하나둘씩 머릿속에 그려진다.
 
생각을 어둠이라고 비유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둠 속에 더 선연하게 나타나는 대상들을 책을 읽고 난 뒤에 떠오르는 감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다보면 정말 작가가 만든 세계에 흠뻑 취해 끝없이 빠져들어 갈 때가 있다. 종이 위에 펼쳐진 그 무한한 공간을 만나는 순간은 늘 흥미롭다. 책 판형이 커봐야 팔뚝만한 길이인데, 그 안에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신기하고 놀랍다.
 
그러다, 한 편의 잘 짜인 이야기를 읽노라면, 내가 처한 상황에 너무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은연중에 구원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일련의 독서 활동 후 모습이 떠올라서 유독 이 시가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좋은 책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법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고 싶었다.
-p.49 김상혁 시인, <밤이 얼마나 깊었냐 하면> 중 
 
독자로서 생각해도 말이 되고, 시의 화자인 ‘나’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의 생각인 것 같기도 해서 묘하게 이 문장이 머리에 맴돌았다. 물론 공감도 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직하게 말해도 되겠지만,
종국엔 비겁하게 말을 고르겠지.
(.....)
그리하여 우리의 말이 종국엔 평범하고 고요한 무관심들이라면,
무관심의 전체주의라면,
이 노래는 어떻게 파산해야 할까,
어떻게 사라져야 할까,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어휘들과 비참의 부력으로 떠서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삶이 없는 생자들 속에서
-p.49 김상혁 시인, <파산된 노래>
  

늘 정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 알면서도, 결국에는 한마디 내뱉기 위해 숱한 필터를 거쳐야 하는 순간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답이 아니라,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책은 아니었을까 싶어 스스로가 한심했던 나날들. 어떤 상황에 대해 무관심했음을 숨기기 위해 적당히 둘러대었던 때. 그런 순간들이 떠오르는 시구였다. 
 
여기는 자신의 마음대로, 혹은 바른대로 쓰지 못하고 어휘를 골라야했던 시인의 고뇌를 담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추상적인 생각들이 있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 이슈가 담겨 있어 보이는(?) 시도 몇 개 보였다.
 
김현 시인의 <지혜의 혀>는 전반적으로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촛불’, ‘하야’, ‘부엉이’ 등의 단어들이 묘하게 일련의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이민하 시인의 <빨간 마스크>는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져서 흠칫했는데, 빨간 마스크의 ‘빨간색’이 주는 강렬함이 더해져,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듣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들은 물어요.
마스크 속엔 무얼 감췄니.
콧물을 왈칵 쏟는다면 실망할까요? 쉰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당황할까요?
(......)
무얼 더 감추겠어요.
마스크가 우스워요? 빨간색이 무서워요?
차라리 꽃무늬 마스크를 쓸까요. 아니면 벗을까요. 실오라기 하나 없이
이러면 예뻐요?
포마드는 싫어요. 냄새나는 어른들 속으로 오빠도 숨었잖아요.
-p.164~165 이민하 시인, <빨간마스크> 중
  
빨간 마스크를 쓴 ‘나’는 불특정한 누군가에게 마스크 속에 무엇을 감추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분위기상 추궁받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할까봐 울먹이듯 걱정하는 ‘나’의 불안과 걱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러더니 대상을 돌려 ‘나’는 ‘오빠’라는 대상을 비난한다. 

빨간색이 무서우면 꽃무늬를 쓰면 낫겠느냐, 아님 차라리 벗어버릴까. 그러면 예쁘냐는 외침이 슬프면서도 소름 돋는다. 꼭, ‘여자들은 이래야 해’식으로 여성을 사회적 프레임에 가두고 억압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식의 폭력을 행하는 불특정 대상인 ‘오빠’를 비판하는 듯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러다 마지막 연을 남겨두고, 이제 ‘뼈’만 남은 ‘나’는 살을 붙이고 ‘오빠’와 대화를 하고 싶다.  
  

오빠는 정말 외롭지 않아요?
옛날엔 날 갖고 놀았잖아요. 죽여줬잖아요.
걱정 말아요. 밤은 길어요. 눈 감아요 무를 수 없는 기억의 파본.
끝 장까지 읽어줄게요. 이불처럼 펴서 덮어줄게요.
-p.167 이민하 시인, <빨간마스크> 중
  

아무래도 생각하는 대화의 방식이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것 같지만. ‘덮어준다’는 표현이, 너는 덮을지언정, 나는 끝가지 나는 ‘잊지 않겠다.’와 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앞의 연에 비해서는 다소 차분한 느낌의 어조이지만, 오히려 비난의 목소리를 눌러 담는 것 같은 느낌이 더 스산하다. 한편, 마스크 속에 덮어둔 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나’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음울했다.
  
*
  
그간 시는 학창시절 학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 그리고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삽입되는 구절 등을 통해서야 겨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서사’가 담긴 시도 있고, 별다른 해석의 도움 없이 읽으면서 이해되는 시도 있지만, 시어가 지닌 ‘함축성’ 때문에 대다수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받아 읽고, 감상을 정리하면서 다시 읽는 과정 속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연상 작용이 흥미로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아무래도 지금까지 내가 읽고 보고 들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해석이 되고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았나 싶지만. 
 
난해한 문장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 이런 식으로 해석해도 될까. 그렇게 시인들이 써내려간 시어를 추리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 전체 내용을 떠나서, 시어, 행, 하나의 연이 주는 의미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즐거움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시를 읽고 의미를 생각해보면서, 비유와 상징이 주는 매력은 비유로 이어지는 ‘두 대상의 교차점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을 깊은 어둠이라고 생각했을까....와 같은 것들처럼. 또, 압축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재구성하게 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는 즐거움도, 시를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거나,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시집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본 서평은 '다산 북클럽 나나흰 7'로 활동하면서 해당 도서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직접 읽어본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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