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쓰고 싶지만 한 줄 쓰기가 너무 어렵고, 시작조차 두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왔다. 
소설가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

작가의 일상은 어떨까. 다채로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의 일상은 다를 것 같다. 그리고 한 줄, 한 문단, 한 장, 한 권의 책을 쓰기까지 얼마나 힘든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어떤 고민들을 할까. 무거운 이야기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책은 진중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무겁지 않았고, 가볍게 던지는 듯 이야기하지만 들려오는 진솔한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 창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관찰'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p.10

* 평소에 우리는 삶을 관찰하지 않는다. 삶의 미세한 틈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문장에는 인간에 대한 관찰과 그로 빚어진 통찰이 짧은 문장에 압축돼 있다.-p.15


가만히 생각해보면 즐겨 읽고 사랑했던 글들은 모두 '공감'을 느꼈던 작품들이었다. 심지어 일상에서 겪기 힘든 SF/추리, 로맨스같은 장르 소설을 읽으면서도 몰입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할 때도 있다. 그건 모든 글의 바탕이 '인간'에 대한 관찰에서 오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우리들은 모두 '모방'과 '답습'을 거치며 '창조'에 이르는 게 아닐까. 모방과 답습 사이에서 길을 잃고 고민하고 자책하다가 자신만의 창조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창조의 반대말은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라 '안 창조', '못 창조', '창조하려고 시도조차 안 함'이다. -p.14


글은 전반적으로 즐겁고 좋았지만, Intro와 에필로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처음과 끝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책의 핵심이 다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작가님은 그런 이유로 쓰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걸 경계한다. 일단 써봐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에 지나쳐가는 대상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의미를 곱씹고, 그렇게 얻은 소중한 통찰에 자신의 개성을 입히면 나만의 '창작'이 된다. Intro와 에필로그에는 그 이야기가 다 담겨 있었다.


그럼, 작가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1장은 작가님이 집필하시는데 사용하거나, 집필하는 동안 두는 물건들을 쭉 늘어놓으셨다. 계획을 적는 화이트보드, 패드, 독서대부터 다양한 종류의 펜이며 손톱깎이(?)까지. 그러더니 이제 글을 쓰지 않을 때의 일상도 잠시 공개해 주신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평범한 우리와 별다를 것 같아보이는 일상 이야기다. 늦잠도 자고, 운동도 가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 때문에 글쓰기를 미루기도 한다. 그런데 이미 글쓰기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런 작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 속에 담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읽는 내내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글을 쓰고 있을 때보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은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뮤직비디오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책을 읽을 때, 만화를 볼 때,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p.36


글을 쓰고 있지 않는 동안에도, 무의식 중에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을 우리는 차곡차곡 모을 수 있다. 작가님은 이걸 '사금을 걸러내는 행위'로 비유하신다. 모래와 흙을 계속 물에 돌리고 돌리면 금만 남는 것처럼, 일상의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글의 재료를 찾고 조금씩 조금씩 정제해나간다.

가끔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일기에 쓰고 싶은 좋은 문장이 떠오를 때도 있고, 최근에 읽었던 책의 서평에 쓰고 싶었던 문장이 완성되기도 한다. 다른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를 때도 있고, 음악을 듣다가 떠오를 때도 있다. 모든 인생의 경험들은 글쓰기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 모든 첫 문장은 근사하다. 왜냐하면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p.81


그렇게 재료에 대한 고민이 끝날즈음, 드디어 나왔다. 첫 문장 쓰기!
무슨 종류의 글이든, 글을 쓰기도 전에 시험에 빠져 시작을 못할 때가 있다. 바로 첫 문장 때문이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첫 문장을 쓰고나면 다음 문장은 어떻게 써야할까. 또 그 다음 문장은?

그 한 줄 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못 쓰기도 태반이다. 하지만 작가는 '첫 문장은 첫 문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첫 문장이 알고보니 76번째 문장일 수도 있고, 81번째 문장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최선'의 문장이란 쓸 수 없다. 어제 쓴 문장이 오늘 보니 이상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에 고치고 싶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써봐야 한다. 일단 쭉쭉 쓰다가 끝까지 가고나면,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때, 다시 첫 문장을 생각해보는 거다.


*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한 걸로,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도 봤다. 헤어 실버맨에게 그 붉은 줄 그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 했잖아." -p.283(매튜 퀵 『용서해줘, 래너드 피콕』 인용)

*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 남들과 다른 어떤 것을 만들려고 하는 순간, 스스로 벽을 세우는 셈이다. 특별할 필요가 없다. 오래 하다 보면 특별해진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특별하고, 시간과 함께 만든 창작물은 모두 특별하다. -p.286



옛날 한 때, 장르 소설이나 라이트 노벨을 읽을 때면 '나도 이 정도면 써보겠는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나. 계획없이 썼던 글은 당연히 산으로 바다로 향했고, 산타기를 하던 글들은 결국, 모두 '휴지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글을 읽고나니 삶에 대한 관찰은커녕, 고민도 없이 막 쓰면서, '재밌을 법한' 레퍼토리만 죽 나열하면 재밌을 줄 알고, 막무가내로 썼다. 거기에 문장은 또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쓰다가 지쳐서 물리고 말았던 것 같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글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렵다. 서평을 잘 쓰고 싶고, 나아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책을 읽었다. 공감가고 감동도 받았는데 그래도 역시 '내 글' 쓰기는 어렵다. 당장 이 서평만 해도 진즉 읽었지만 글은 미루다 이제야 썼으니. 그럼에도 조금은 뿌듯한 건, 포기하지 않고 리뷰 하나를 썼다는 거다.

작가님은 일기를 굳이 매일 쓰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내 경우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자신을 관찰하고, 삶이란, 인상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 것 같다. 지난 경험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나아가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바라보았던 삶의 한 장면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마음을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답은 얻지 못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써보니, 일기든 리뷰든 전시 감상 리뷰든, 하다못해 소설 개요라고 써놓은 몇 장의 글이든. 공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같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답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책을 통해 작가님이 말해주고 싶으신 건, 역시나 무엇이든 일단 써보라는 것 같다.

무엇이든 쓰면 무엇이든 쓰게 된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문장이 생겨났지만, 역시 일단 무엇이든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타인의, 전문가의 글에 빗대면 한없이 비루한 글일지라도 쓰다보면, 뭔가 써진다. 열심히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채워넣고, 다음을 고민하다보면 첫 문장이 한 문단이되고 한 페이지가 채워진다.

그리고 개성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쓰다보면 드러나는 것 같다. 써봐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쓰지 않으면 영영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 스타일은 밖에서 얻어와 내 몸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발견해 깎아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101

* 좋은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인생이 쓰는 거예요.
그냥 한마디 툭 던지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인생 전체가 다 들어 있어요.
-p.204 ( 『무한화서』 이성복 시인의 문장 인용)

  
진짜 별 말 아닌 것 같은데 심금을 울리는 말이 있다. 엄청난 미사여구가 없어도 가슴을 툭 치는데 울렁울렁거리는 문장들이 있다. 아직 그런 것을 바랄 깜냥은 안돼지만, 아직도 초등학생 글쓰기에서 멈춰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쓰고 또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읽고, 조금 써봤으니 잘 안 써지고, 못 쓰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어깨에 힘을 빼고, 특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지. 우리의 인생, 내 인생 모두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까. 찬찬히 관찰해보고 느낀 것들을 써봐야겠다.

우리 인생은 모두 훌륭한 작품이다.


<출판사 서평단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