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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평점 :
수잔 이펙트_페터 회
출판사_현대문학

-과학의 진보, 권력과 욕망의 실체를 파헤치는 심리 철학 스릴러
"방금 그 말을 한 건 내가 아니었어.
.... 내 안에 있는 다른 것,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었어."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대고 천천히 말했다.
자신의 시스템을 스캔하고 있었다.
"누가 이걸 보고 평범한 대화라고 하겠어?
그걸 부르는 이름이 있니?"
"제가 자란 곳에서는 수잔 이펙트라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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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은 어디 있죠?"
덴마크 대사관에서 수잔을 찾아왔다. 가족이 뿔뿔히 흩어졌다. 남편은 라반은 마피아들에게 쫓기는 신세고, 쌍둥이 아이들 티트와 하랄.... 아들은 골동품 밀수 혐의로 고소당했으며, 딸은 승려와 사랑에 빠져 도주했다. ...... 그리고 자신은 사람을 죽일 뻔 했다. 그 일로 징역형을 치르게 생겼다!
겨우 다시 만난 가족들과의 재회의 기쁨도 잠시, 그들 앞으로 토르킬 하인이라는 덴마크 정부 측 사람이 찾아왔다.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원만한 재결합을 위해, 그는 수잔에게 의뢰를 하나 제안했다. 서류 속 사람을 찾아가 무언가 물어볼 것.
서류에 담겨있는 내용은 '마그레테 스플리드'라는 사람의 인적사항과 '의회 미래위원회 마지막 보고서 두 건', '위원회 명단'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을 믿지 않는 듯한 하인의 의뭉스러운 서류 내용에도, 수잔은 가족의 완전한 재결합과 일상의 복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류 속 사람을 찾에 가게 된다.
그러나, 의뢰 건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정보를 둘러싼 세력 간 다툼에 휘말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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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현대문학과 함께 덴마크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만나는 '페터 회' 덴마크 작가님. 유난히 북유럽 작품은 '북유럽 소설'이라는 등 따로 지역을 빼서 작품 소개를 하던데... 그 평화로운 복지 국가를 배경으로, 이렇게 흥미로운 음모론을 다룬 작품도 나오는 게 놀라웠다.
<수잔 이펙트>는 음모론, SF, 사회풍자 내용들이 뒤섞인 종합 선물 같은 추리 소설이었다. 거기다가 위기를 헤쳐나가는 도중에 나오는 가족 간의 진정한 이해와 사랑과 같은 가족의 휴머니즘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빠르게 메모한 키워드들을 보니 지식과 권력(음모론), 과학(물리학) 지식들의 새로운 발견과 무한성, 가족의 해체와 재결합, 사회 풍자, 사랑 등등이 있는데, 저런 내용들이 담겨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권력이 지식을 장악할 때>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작품 중에 <디셉션 포인트>라는 작품이 있다. 읽은 지 엄청(4-5년)정도 지나서 가물가물 한데, 정치 세력과 과학기관(나사) 간의 관계를 그려내면서 정치적 사건(대통령 선거)에 활용하려고 했던 내용이 있었던 기억이 살짝 난다.
<수잔 이펙트>는 <디셉션 포인트>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지만, 수잔이 수사 의뢰를 맡았던 <미래 위원회>라는 기구 역시,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생각해 볼 거리가 있던 주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인가?;;)
책을 읽는 중에, 민주주의 하에서 나타날 수 있는 '권력의 모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고대에서 근대,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대의 정치'를 만들어 우리의 대리인들에게 주권을 위임하고, 국가 정치를 맡겼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는,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특정 '지식'을 장악하기도 한다. 그들은 지식으로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고 하지만, 막상 권력과 결부된 지식은, 또 다시 그 권력의 힘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푸코가 말한 것처럼 '지식과 권력은 연계되어 있다.'걸 이 책을 통해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국가 내부의 문제를 떠나서, 지식과 권력의 연합이 국제 권력 구도까지 영향을 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었다. 자세한 설명은 큰 스포가 될 것 같아, 여기까지 써본다.
<SF와 휴머니즘의 조화>
처음에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으신 지인분이, '물리학'적 용어들 때문에 다소 읽는데 어려울 수 있지만, 그 부분만 넘기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시간과 인간관계의 함수는 직선에 가까운 곡선의 모양을 띤다. 이 말은 인간관계라는 것이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하향 곡선을 그리는 날도 있지만 보통은 그날이 그날이다. 어느 한 점에서 미분을 해서 접선의 기울기가 양수 값을 가지는 순간, 즉 인간과 인간 사이가 가까워짐을 발견하는 순간은 매우 드물다. -p.204
"수잔, 저기 뭐가 보여?"
"굴절광선. 광환." -p.234
여자주인공, 수잔이 물리학과 교수라서 그런지 대화 내용이라던가, 생각, 대상이나 상황 묘사 등에 과학적인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근데 처음에만 조금 '응?'하고 의아스럽지, 계속 읽다보면 참신해서 계속 읽게 된다. 과학자의 눈으로 삶을 보면 이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읽다보면 재미있는게, 가족 구성원들의 조합이다. 약간 시니컬하기도 하고 엉뚱하면서도 진취적이고 저돌적이고, 개인적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노력하는 수잔. 그리고 똘똘한 두 쌍둥이 티트와 하랄. 그리고 누구보다 감성적인 남편 라반.
티트와 하랄은 거의 엄마인 수잔 판박이 느낌이고, 라반은 어떻게 보면 정반대 느낌의 감수성 짙은 '예술가'이다.
실은 저 234페이지의 대화 내용이 극단적으로 두 부부의 다른 점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코로나를 보고 두 사람의 대화였다.
"수잔, 저기 뭐가 보여?"
"굴절광선. 광환."
......(중략) 우리는 단 한번도 같은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난 느낌. 운명적 느낌. 불가피함이라고나 할까? 그 불가피함 속에 조화가 공존하는 게 보여." -p.234
그래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나 궁금하던 찰나, 두 사람의 과거 이야기도 중간중간 들어있는데, 라반 이 남자 수잔에게 엄청 들이대는 게 어찌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수잔이 이리저리 철벽치는 데도 꿋꿋이 다가선 남자.
처음에 글을 읽을 때는 수잔의 능력을 이용한 특정 세력의 음모에 휘말린 평범한 가족들이 보이는 약간은 유쾌한(?) 추리극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추리 도중에 나타나는 수잔과 라반의 대화, 그리고 수잔과 아이들의 대화 속에는 부부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랑들이 절묘하게 녹아있었다.
이들이 이 사건을 해결해야 했던 근본적인 이유에는 '가족의 재결합'이 자리하지 않았나, 싶었다. 보통 SF 느낌의 추리 소설에 이런 감성적인 내용이 담기기가 또 쉽지 않을 텐데, 읽으면서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엄마, 그 효과 말이에요. 생각해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만 썼지 우리들 사이에는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말없이 그를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p.78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속마음을 가감없이 뱉어내는 효과. 그걸 '수잔 이펙트'라고 불렀다. 가족 앞에서는 한번도 쓴 적이 없다는 말은 그간 가족 간의 단절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건을 풀어나가며 작품이 극에 달하면서, 수잔의 가족들은 지금까지 서로 하지 못했던 진중한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풀어냈기 때문이었다. 무튼 추리의 흥미진진함과 가족 간의 휴머니즘에서 오는 감동 모두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시니컬한 사회풍자>
처음 작품을 읽는다고 했을 때, 드디어 '수잔 언니 영접하시는 군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수잔 언니?' 보통 언니라면 다소 '당차고 쎈 캐릭터'에 붙는 수식어가 아닌가? 하고 의아했다. 표지의 여자 그림은 되게 쎄보이지는 않아 보이는데다가. 보통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연있는 여자' 캐릭터라면 다소 차분하고 조용할 것만 같은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청난 선입견이었다. 이 언니 너무 멋지고 재밌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탄 안드레아 핑크에게 큰 인상을 남기고 그녀의 애제자가 되었던 수잔.
'수잔 이펙트'라고 불리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나게 만드는 특이한 능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자신을 강간하려던 '애인'을 때려 죽일(?) 수도 있는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 였으며, 가족을 위해 위험한 사건에 휘말려도 사건을 계속 파헤치기 위해 나아가는 직진형 성격에, 도망보다 '쇠지레'를 들고 앞으로 뛰어가는 여자였다.
"엄마, 여기 이런 게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데려왔었어."
"왜 우린 안데려 왔어요?"
"가끔, 1년에 한 번 정도는 나 혼자 수많은 남자들 틈에 있고 싶었거든."
티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곧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p.133
또, 아이들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한 여성이자 개인으로 존중받고 싶었고, '물리학'과 '남자'에 대한 관심에 대해 누구보다 솔직한 마흔의 여성이었다.
"좋은 의도라고 해서 다 용인되는 건 아니야. 동기라는 것도 있잖아. 그리고 그 도익가 ...... 도덕적이지 않다면, 그런 동기로 세상이든 정치가든 누군가를 강제로 하는 거라면 그건 절대 잘될 수가 없지." - p.332
이 외에도 덴마크 사회에 대한 풍자들, 성공한 삶이나 정부 기관에 대한 다소 신랄한 풍자적인 내용들도 공감이 가서 피식 거리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복지 국가라고 알려진 덴마크도 한국과 비슷한 부분들이 있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 같다.
<기타/마무리>
처음에는 수잔의 능력 때문에 정통 SF소설인 줄 알았던 수잔 이펙트. 살짝 아쉬웠던 건, 능력을 둘러싸고 이야기가 막 펼쳐진 줄 알았는데, 그 능력에 대한 소개는 크게 그려지지 않고, 사건이 시작되는 도화선같은 걸로 쓰였달까. 수잔의 능력 때문에 의뢰가 시작된 거라... 음, 그냥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과학 휴머니티 추리소설!
북유럽, 그리고 덴마크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아직 많이 읽어 본 편이 아니지만, 개성있고, 즐거운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약간, 사건이 진행되면서 수잔의 과거 회상과 현재가 오가다보니 약간 흐름이 끊기거나 당혹스러운 면도 적잖게 있었지만, 수잔의 가족이 보여주는, 그리고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감동이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