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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ㅣ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평점 :
펭귄철도 분실물센터_나토리 사와코
출판사_현대문학
"저기....... 왜 역 분실물센터에 펭귄이 있어요?"
야마토기타 여객철도 나미하마선에는 특이한, 특별한 승객이 한 분(?) 더 타고 있다. 새까만 눈에 주황색 부리를 앙증맞게 내밀고 있는 녀석. 나름 역무원인 이 아이는 '펭귄'이다.
나미하마선 종점 우미하자마 역 <분실물 센터>를 찾아가면, 이 특별한 펭귄과 함께 빨간 머리 훈남 청년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분실물 센터>를 배경으로, 일상에서 볼 법한 평범한 '분실 사건'들이 그려지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잔잔히 우러나오는 감동이 숨어져 있었다. 왠지 우리들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녹아져있는 듯했다.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분실물을 함께 풀어보고 있노라면, 저마다 주인들이 잃어버렸던 소중한 무언가를, 혹은 우리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함께 펼쳐보는 듯했다.
전반적으로 고양이와 운명, 팡파르가 들린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나, 스위트 메모리스라는 제목으로 서로 다른 4명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모두들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분실물 센터가 주 배경이니 당연하겠지만.
<고양이와 운명>에서는 자신의 고양이 유골함을 잃어버린 쿄코의 이야기가, <팡파르가 들린다>에서는 히키코모리 소년 겐이 꼭 얻고 싶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심부름을 하다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나온 눈물 겨운(?) 여정이 있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나>에서는 유야무야 흘러가는 대로 살아오던 지에가 실수로 남편에게 거짓 임신을 고하면서 일이 꼬여버렸던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마지막 <스위트 메모리스>에서는 조금은 가슴 아픈, 일본 고도 성장기에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아들과 행복을 잃어버린 노년 회장님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 모두가 내려놓은 것은 '물건'이었지만, 그것들의 이면에는 그들이 살아오면서 잃어버렸던 무엇인가에 대한 추억들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명적인 사랑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나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실연이 내 운명인 걸로.
...... 미치가 그린벨트 위에서 척척 쌓아올린 행복을 볼 때마다 쿄코는 조연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운명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사랑에서든 일에서든 운수가 안 좋은 건 재빨리 포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운명에는 이길 수 없다. -P.61
"괜찮아. 쿄코 씨는 제대로 후쿠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어. 후쿠도 분명 알 거야."
[첫 번재 분실물, 적극적인 삶]
1장의 쿄코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의 유골함을 1년 째 들고 다녔다. 표면적인 이야기만 보면 어지간히도 고양이를 사랑했나 싶었다. 그럼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애완묘와의 추억'이었을까? 펭귄이 나온다더니 동물과의 추억이야기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약간 다른 점 하나를 더 발견했다. 쿄코는 '운명론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 '후쿠'를 발견할 즈음, 짝사랑하던 후쿠를 먼저 만나는 바람에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놓치고, 친구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그 이후부터 '운명론'에 대한 생각이 남달라진 것 같다. 모든 게 다 '운명이 정하는대로'다. 하지만 가방을 분실하고, 이와미라는 남자의 가방과 바뀌는 헤프닝이 벌어지면서 뜻하지 않게 이 난제를 풀어간다. 의도치 않게 상처입었던 마음에 위로를 받고, 세상을 살아갈 다짐을 새로 하며 장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여튼 그런 의미로 1년 간 품고 지냈던 고양이 후쿠의 유골은, 어쩌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자신을 짊어지는 걸 나타낸 것은 아니었을런지. 또는, 잃어버렸던 '적극적인 나의 태도'를 은연중에 담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두 번째 분실물, 나의 자리는]
그런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이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미지근한 진흙탕에 있는 것 같은 날들, 몇 번이나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누군가 있었다, 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 마지막 안식처가 돼주었다. 겐이 사람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토 마히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P.153
겐은 소위 말하는 '히키코모리' 같은 소년이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의 대표적인 케이스.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만 한다. 그러다 어느 날, 게임 상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찾고있는 희귀템을 줄테니, 심부름을 부탁한다.'는 솔깃한 '제안'을 받는다.
나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희귀템'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겐은 결국 밖으로 나섰고, 자신의 부적과도 같은 편지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만난 옛 사랑과의 재회! 하지만, 완전 찌질한 자신과 대비되게 화사하게 피어난 그 어릴적 소녀의 모습 앞에 기죽고, 자신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마음만 곱씹게 된다.
하지만, 그 '심부름'을 하는 과정 중에. 그리고 분실물을 되찾는 과정에서 겐은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진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마지막 장과 함께 이 이야기가 처음 읽었을 때는 제일 와닿았었다. 겐의 마음이 약간 공감되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많이 울컥했다.
자신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진흙탕' 속에 있다고 비유했다... 그래도 한번 들어가면 따뜻한 그곳이지만, 다시 일어서자니 자신이 더러워진 게 보여서, 다시는 남들 앞에 설 수 없게 되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마는 진흙탕 속에 겐은 계속 갇혀 지내온 것이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있을 자리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홀가분하고, 마음으로 이어진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면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닌 거야."-P.169
물론 시작은 '게임 아이템'으로 시작했지만, 겐은 심부름 중에 잃어버린 편지를 되찾는 과정에서 정말 자신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이 일화는 그간 안주하지 못해 부풀 대로 부풀었던 불안한 마음과 함께 구석에 나를 숨기고 싶었던 자신을 떠올리게 해줘서 너무 공감가는 일화였다.
정착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번번히 잇따른 실패에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은 한 숨의 재가 되서 날아가버린 듯했고, 만나온 사람들 간의 관계는 돌연 나를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던 나날들. 세상에서 나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았고, 내 자리는 있는 걸까. 이러다 늙어죽는 건 아닐까, 계속 이렇게 살거라면 그냥 적당히 돈 벌면서 아무도 만나지 말고 집에서만 지내자.....라며 제 자신에게 한숨섞인 위로를 하던 자신.
하지만 노래 가사 중에도 있지 않던가.
'힘이 들땐 하늘을 봐.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라고.
나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믿고,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아직은 내 자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닐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분실물, 주체적인 삶]
"분실물을 찾는 고객님에게 협력하는 것도 분실물센터 직원의 업무 중 하나지요. 다만 분실물을 찾을지 말지 결정하는 건 역시 고객님 본인이 아닐까 싶네요."-P. 240
소제목 쓰기가 난해했다. 어쩌면 쿄코와 약간 겹쳐보이는 일화였다.
참 슬픈 이야기였다. 주체적이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며 살아버린 삶의 결과를 보는 느낌이랄까.
지에는 우연히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어쩌다보니 그의 권유대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그의 프로포즈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직 백수였지만, 결혼 후에 그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취업 준비를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 백수. 엎친데 덮친격으로 타인의 분실물을 잘못 주워 임신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했다는 해프닝까지 일으키고 만다. 물론 이런 말을 한 것도 오로지 '그의 남편을 위한 것'일 뿐, 그녀의 선택에는 '자신이 결여'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분실물센터에서 쇼헤이가 던진, 저기, 어쩌면 직원의 소명 의식 투철한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을거다. 지에는 분실물을 남편에게 보여주고, 지금까지 말했던 거짓말을 정정하며 앞으로 바뀔 것을 다짐한다.
그녀가 잃어버렸던 것은 '이력서'. 그 이력서 안에는, 마음으로는 수십번 다짐하면서도, 막상 스스로 선택해서 나아가기 무서웠던 자신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네 번째 분실물, 사랑하는 아들과의 추억]
책을 읽으면서, 센터 직원인 '쇼헤이'의 정체가 제일 궁금했다. 눈에 띄는 빨간 머리를 하면서, 펭귄 뒤치다꺼리하는 청년이라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일본스럽기도(?)하고. 근데, 펭귄 못지 않게, 글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지만(이야기의 중심은 각 주인공들의 이야기), 존재감이 어마어마하니, 결정적인 대사를 날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 이 청년 사연이 있을텐데, 있을텐데. 싶었는데 드디어 나오는 것인가! 싶었었다. 물론 약간 예상과 다른 전개였지만.
마지막장은 뇌에 종양을 품고 살아가는 준페이라는 노년의 회장님이 나온다. 밑천 없는 인생에서 한 회사의 회장자리까지, 험난한 경제 상황에서 고도 성장기를 타고 불도저처럼 살았던 그였기에, 아들 만큼은 성공 가도를 걷게 해주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물론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평행선일 수밖에 없었던 아들과 준페이의 삶의 방식. 그 속에서 그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아들을 보내고 말았다.
이 사연도 너무 슬펐지만, 이 회장님과 '쇼헤이'와의 인연이 나오는데,
이거이거, 참 은근히 앞에 뿌려져있던 떡밥이 살짝 회수되는 게 미묘하게 있는데!! 이 파트 읽고, 앞에 '겐'과의 대화를 다시 읽어보면 더 눈물이 난다.
"전 살아났어요. 살아 있으니까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무서운 수술도 치료도 분명히 끝이 찾아왔어요. 살아 있으니까 머리도 자라고 체중도 늘고 키도 조금이지만 컸어요. 살아있으니까 두 번 다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바깥 세계에 나와 여행을 하고 일을 하고 매일 해와 달과 마다와 전철과 공업단지를 바라보고 있어요. 살아있으니까 후지사키 회장님과 다시 만났ㅇ요. 그래서 전 회장님께 말씀 드리고 싶어요.
......살아주세요. 사람은 태어나면 살아야 할 의무가 있어요. 멋대로 죽으면 안 돼요. 포기하지 마세요. 수술을 받아 주세요." -P.352
살아있으니까.
살아주세요.
지금 이 부분을 타이핑하느라 다시 읽는 도중에 다시 눈가가 뜨겁고 코가 시큰거리는게 느껴진다.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아서 괜히 울컥해졌었다.
책이 감정을 격하게 하는 이야기들로 담긴 것도 아니었고, 문체가 담담해서 그렇게 마구 슬픈 것도 아니었는데, 읽으면서 조금씩 '쿵쿵'하던 것들이 한 번에 봇물 터지듯 터진 느낌이었다.
[마무리/마지막 분실물, 나의 분실물은]
너무나도 자신이 한심하던 요즘이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라이프 이즈 럭키'이러면서 쿄코처럼 모든 게 다 운이야, 운명이야, 될 놈 될, 안 될 놈 안...... 이런 말을 한 지 엄청 지난 것 같다.
겐 처럼 내 자리를 찾지 못해 삶이 막막해졌으며, 공부할 때를 빼고는 거의 집에 틀어박혀 있었고, 사람들과 만나는 게 무서워졌다. 점점 랜선 이웃들이 편해지기 시작했으며,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기억만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에처럼 나도 모르게 남들 하듯, 남들 사는 삶에 묻혀가듯 살아갔다, 주체적으로 인생을 설계하기에 앞서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생각도 안해보고. 그저 '왜 나는 흑기사같은, 혹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가져다 줄 멘토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걸까.' 한탄했다. 주변에서 사람 잘 만나서 일 잘 풀리더라....라는 지인들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부러워했다.
준페이처럼 나 사느라 바빠서 진짜 소중한 대상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나도 힘들었으니까,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해. 혹은, 내가 중시 여기던 가치만 곱씹다가 소중한 사람들의 소중한 것들을 멋대로 폄하하고 상처주지는 않았던가.
살다보면, 바쁘게 살다보면, '바쁜지도' 모르게 바쁘게 살다보면, 정말 그 길 위에 많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씩 흘리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다.
'분실물센터'라는 소재와 그런 부분들을 연결지어 표현한 게 참신하고 놀라웠고, 또, 당연 그 속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들이 공감되서 더 좋았던 이야기였다.
물론, 처음에 예상했던, '펭귄'이 말도하고, 동물의 꾸밈없는 말과 행동에서 오는 순수한 감동인가?.......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는 많이 빗나갔지만, 그냥 그 존재만으로 상상력이 자극되고, 서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도 막 떠오르고 그래서 좋았던 것 같다.
잔잔하고 감동적인 일드나 일본 애니 한 편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다.
<본 서평은 현대문학(출판사)의 문학독후로 활동하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