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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째 여왕 ㅣ 백 번째 여왕 시리즈 1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8년 7월
평점 :
백 번째 여왕_에밀리 킹
출판사_에이치(h)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31/pimg_7027751511971144.jpg)
위대한 아누 신이시여, 제발 그녀를 소환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파리나야 수도회에서 자매들과 자란 칼린다 앞으로 제국에서 온 낯선 귀족 남자가 나타난다. 귀족 남자가 수도회에 오는 이유는 하나, 소환 때문이다. 수도회는 후원자들의 헌금으로 운영되고, 그 대가는 후원자들의 하녀나 첩이 되는 것.
마찬가지로 남자는 소환을 목적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자매들은 그들의 후원자에게 소환되어 시골마을을 떠나길 바라지만, 그들에게 구속되어 살기 싫었던 칼린다는 평화를 꿈꾸며 친구 자야와 이곳에 남아 신께 예배드리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소박한 기도가 무색하게 칼린다는 남자에게 소환되고 마는데, 그녀를 소환한 남자는 무려 타라칸드 제국의 황제 라자 타렉이었다. 이제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그의 백 번째 아내가 되어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자리를 노리는 첩들과 싸워야 한다.
“칼린다는 소환됐다. 그녀는 궁전에서 자기 자리를 지켜 내야 한다. 명예롭게 자신의 왕관을 지켜 내야 한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서열을 결정하는 결투 의식에 참가해야 한다.” -p.53
하지만 가혹한 운명이 계속해서 그녀를 시험에 들게 한다.
라자의 백 번째 왕비가 되어 그의 궁전으로 가는 길. 점차 알게 되는 제국의 참혹한 진상, 폭군 아래 허덕이는 백성들, 그리고 어떠한 인권도 존중받지 못 한 채 라자에게 속박되어 그의 하렘에서 그와 그의 기사들에게 공유되어 살고 있는 왕비와 첩들. 그것들을 보는 칼린다의 마음속에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한편, 칼린다는 근위대장 데븐 나익 장군과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던 친구 자야의 소환. 이 사실들이 칼린다를 움직이게 하는데.
잔혹한 운명과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비참한 제국의 잔상, 그 사이 여인들 간의 치열한 결투. 그리고 그 속에 움트는 금지된 사랑과 소중한 우정을 지켜내기 위한 칼린다의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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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째 여왕>은 수메르 신화를 모티브로 그려진 이야기로 소녀 칼린다가 제국의 지배자 ‘라자 타렉’의 백 번째 아내로 소환되어 그려지는 소녀들의 사투와 성장,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은 집어든 날 그대로 다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본래 신화적 요소를 좋아해서 즐겁게 읽은 것도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긴장감에 박력 넘치는 소녀들의 전투씬, 판타지답게 마법적인 요소들, 그리고 인물들을 엮은 반전, 여기에 이벤트처럼 조금씩 등장하는 데븐 장군과의 은밀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까지!
이 재밌는 요소들이 촘촘히 얽혀들어 진행되니 다음이 너무너무 궁금해서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단연 멋있었던 것은 여주인공 칼린다였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걸크러쉬 칼린다. 글 소개를 읽고 약한 소녀가 이 고생, 저 고생 하면서 살짝 흑화도 하고, 세상 쓴 맛에 성장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녀는 원래 강하고 진취적인 성격이었다. 그저 어렸을 적부터 앓아 온 지병과 (일단은) 평화주의적인 성격 때문에 인지하지 못 했던 것일 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검을 빼들고, 과감히 쳐낼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심성의 소유자였다.
위대한 아누여, 제발 타렉이 나를 건드리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힘을 주소서. -p.399
이 캐릭터가 더욱 돋보였던 이유는, 어쩌면 수메르 신화를 모티브로 그린 타라칸드 제국의 야만적인 풍습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소환’과 ‘후견’. 여성들을 전리품, 물건인 마냥 공유하는 제국의 지배자 라자와 그 궁전의 기사, 그리고 제국의 귀족들.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채우기 위해 신화를 이용해 잔혹한 토너먼트를 벌이는 폭군 라자. 하지만 대항하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던 수도회와 제국의 여성들.
“그는 자신의 모든 첩을 공유합니다.
...... 가우탐은 나테사를 바로 침실로 데려가지는 않을 겁니다. 라자가 첫 번째 특권을 누리려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 이후에 나테사는 누구든지 그녀를 원하는 남자와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p.127
이런 불합리한 배경 속에서 여성들의 권리를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불의에 맞서며 사랑을 쟁취하려는 칼린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또, 고대 신화가 반영되면 아무래도 신과 사제, 신화에 따르는 인간들의 이야기, 마법. 이런 요소들이 몰입을 일으키기 마련. 그리고 신적 요소 때문이든, 권력 구도 때문이든, 그로인해 주어진 운명과 자신의 선택이 상반되는 상황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선택이 궁금증을 마구마구 불러 일으키는데.
요 작품 역시 그것 때문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익 장군과의 사랑이야기가 재밌었던 것도 그 요소 덕분이었다. 왕비와 기사. 사랑할 수 없는 관계의 두 사람. 들키면 사형이라는 설정이 두 사람만 남을 때 더 심적으로 긴장감 있게 만든 것 같다.
“저는 아내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혼한다면 한 명하고만 할 겁니다. 내게 명령하는 여자는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p.103
(개인적으로 제일 맘에 들었던 대사였다. 저 세계관 속 남자들의 정신세계에 너무 질려버려서 저 대사가 어찌나 달콤했던지.)
라자의 눈을 피해 피어나는 사랑이야기가 애틋하고, 애타고, 매혹적이어서 무지 설렜다. 물론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였지만 이야기는 매우 순수했고, 흔히 아는 로맨스 판타지처럼 로맨스가 주된 이야기가 아니지만. 밀어내면서도 서로를 갈망하고, 갈증을 느끼는 두 사람. 서로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고 표현해도 목마른 두 사람의 모습에 세상 마음이 떨렸다.
(단, 거의 칼린다가 더 적극적이고 데븐이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내 기준에 남주가 조금 약해보여 아쉬웠지만. 흔들리는 남자 보는 것도 또...... 간만에 좋기도.)
이 외에도 백 번째 왕비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첩들과 칼린다의 신경전, 타라칸드 제국 내 벌어지던 라자와 부타 종족 간 모종의 앙숙 관계. 칼린다 출생의 비밀 등등 입이 근질근질 흥미진진 뒤통수 통통 반전이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큰 반전들이므로 입꾹.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731/pimg_7027751511971146.jpg)
한편, 등장하는 여성들 다수가 하렘에 속해 있지만, 또 동시에 강한 전사로 길러진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나와서 <헝거게임>의 캣니스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또 즐겁게 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헝거게임>(특히 1권)을 읽었을 때 느낀 즐거움을 느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떡밥이 풀리지 않은 것이 있더라니..... 시리즈물이었다.
생각보다 재밌게 읽어서 2권이 궁금한데. 책날개에 있는 2권 소개글로 조심스레 추리해보자면 여전히 칼린다는 멋지고, 데븐은 수비 포지션. ......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와 <헝거게임>의 피타가 자꾸자꾸 아른거려서 조금 고민된다. 이 와중에 아무래도 서브남이 나올 것 같은데, 왜 때문에 소개 글에 칼린다의 마음이 흔들린다고 써 있는지. (영업인거죠. 그런 거죠?)
그래도, 어쨌든! 하루 만에 뚝딱 읽어버린 <백 번째 여왕>.
흥미로운 판타지와 마법의 세계, 소녀들이 보여주는 강렬한 액션, 야만적이지만 매혹적인 신화 모티브,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운명과 갈등, 황제와의 대립 하나씩 풀려가는 주인공의 비밀과 반전.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멋진 여자 주인공의 성장과 그 사이 보일 듯 말 듯 그려지는 데븐과의 은밀한 사랑이야기가 즐거웠다.
여자 주인공이 활약하는 로맨스(가 살짝 가미된) 판타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조심스레 추천해보고 싶다. :)
<위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