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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끌리다 - 나를 위한 특별한 명화 감상
이윤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그림에 끌리다_이윤서
출판사_스노우스폭스

- 그림을 보는 순간, 내게로 와 삶이 되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화가들의 고뇌와 흔적은 지금 우리의 인생과 꼭 닮았다.
마치 얇디얇은 선으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모든 순간이 그림이 되는 삶,
어쩌면 우리 인생도 모두 명화가 아닐까_<책 표지 문구 中>
한 권의 글에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다면, 미술 작품은 색으로 쓰인 한 권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에 끌리다>는 그런 작품 감상의 무한한 매력에 대해 일깨워 준 작품이었다.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구 궁금해지는 것들이 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무엇을 생각하며 이 작품을 그렸을까. 한 권의 책, 한 마디의 말에 그 사람의 삶이 담긴 것처럼 그림에 녹아든 색과 안료, 혹은 재료, 터치, 주제를 담아내는 독창적인 소재, 그림체 등을 보며 그림을 그린 사람을 제멋대로 상상해본다.
시공간을 초월해 나와 마주한 작품들. 다양한 표현 방식을 풀어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짜릿한 소름이 돋기도 하다.
<그림에 끌리다>는 스무 명의 화가와 작품, 민화를 다루고 있는 명화 에세이다. 온전히 시대 순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 4부로 구성되어 주제에 따라 배치된 작품과 저자의 에세이가 마음을 두드리는 따뜻하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책은 <잊지 않을게>, <자유로워질게>, <조금 더 특별한 나>, <괜찮아>의 4가지 주제로 전개된다. 읽다보면 눈을 휘둥그레 하는 삽화 덕분에 눈이 즐거운 건 기본이고, 그간 ‘멋지다’라는 단순한 감상으로 일축되어버리기 일쑤였던 작품 이면의 이야기에 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저자의 일상 이야기들이 작품 설명으로 상기된 마음을 살살 어루만져준다. 슬픔부터 행복까지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깨달음과 다짐에 대한 공감대가 읽는 동안 위안이 되었다.
* 우리는 그림을 보고 많은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수많은 역경이 어찌 오늘만 있었겠는가? 우리가 겪고 있거나 겪었던 많은 일이 한참 지나고 나서 보면, 소나기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 p.43 <눈먼소녀_존 에버렛 밀레이 作> 중
막 책을 펴면 모딜리아니의 이야기가 먼저 반겨준다. 이름만 많이 들었던 모딜리아니. 저자는 계절의 끝에서 모딜리아니를 떠올렸다. 일 년을 돌아보는 한 해의 끝, 그곳에서 인생의 끝에 대해 생각해본다.
불운했던 삶이 투영된 모딜리아니의 작품들, 텅 빈 표정 뒤에 있던 애수와 비극적인 인생 이야기를 알고 나자, 마냥 기묘하게만 보였던 얼굴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진득한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너무 고단하고 절망적이면 속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게 해서 마음이 아팠다.
이 외에도 파격적인 선택으로 꾸준히 낙선했지만 인상주의의 문을 열었던 에두아르 마네, 현대 추상미술에 한 획을 그었지만 특유의 성정 때문에 한평생 고독과 번뇌 속에서 살아야했던 폴 고갱. 절대왕정 시대에서 권력층을 풍자하고 고통 받는 민중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던 오노레 도미에. 그리고 여성 화가를 배척하던 시대의 억압에 굴복하지 않고 불합리한 사회 인식에 대한 의식을 그림에 표출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등.
드라마틱한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 편의 영화 같아서 깜짝 놀라다가도, 한편으로는 공감되는 마음에 빠져들게 된다.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 단언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숙연해지기 때문이었다.
예술계 인사들을 보며 으레 속단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 같은 그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또, 때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질투어린 마음에 그들의 사는 방식이 이기적이고, 그래서 그들은 특이한 사람들이라며 생각해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채로운 인생 이면에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
고독을 운명이라 받아들이면서도 외로움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 내색하지 않지만 슬픈 마음을 공유하고 싶은 것, 상실로 인해 표출되는 광기, 부당한 사회에 대한 분노, 희생을 앞두고 고통에 일그러지는 영웅의 사실적인 모습들.
시대를 관통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 복잡한 감수성을 작품에 눌러 담았다는 사실에 또 탄식했다.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인간으로서 변하지 않는 인생의 모습이 있고, 은근히 겹치는 삶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림에 끌리는 것’은 그 다채롭고 난해한 화폭 속에서 본능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인생에 대한 담론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고 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