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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ㅣ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에 대한 참혹한 기록을 담은 자전소설이자 미국내전의 남북전쟁의 신호탄이 된 작품인 <노예 12년>이 영화개봉에 맞춰서 출간됐습니다. 제71회 골든글로브, 제86회 아카데미상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동명의 영화 ‘노예 12년’의 원작입니다.
‘자유로울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는 소설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840년대 노예제도가 횡행하던 미국의 남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남북전쟁의 신호탄이되며 그 배경이 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함께 흑인노예의 자유문학의 돌풍을 일으킨 책입니다.
한가지 이 책을 소설이라고 보기 힘든 것은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자전적 수필 또는 전기문이나 자서전이라고 보는 것이 옮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자유로운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불법 납치돼 12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풀려난 솔로몬 노섭의 실화를 옮겨놓은 작품입니다.
1808년 뉴욕에서 태어난 솔로몬은 세 아이를 둔 가장이자 성실한 남편이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하는 북부의 자유인이었습니다. 부부는 쉬지 않고 일하면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풍족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고 있었죠.
그러던 1841년, 일거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두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길을 떠났다가 납치당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로 전락합니다. 제임스 버치라는 악명 높은 노예상인에게 잡혀 있던 솔로몬은 배에 태워져 머나먼 남부의 뉴올리언스 주로 팔려가죠.
‘플랫’이란 이름을 달고 다행히도 처음엔 루이지애나 주에 사는 사람 좋은 목사 윌리엄 포드에게 팔렸으나 주인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 존 티비츠라는 악인에게 넘겨지면서 끔찍한 고난이 시작됩니다.
이유 없는 채찍질을 당하는 것은 물론 목에 올가미를 매이기도 하고, 광분한 도끼질을 피해 달아나다 살모사가 넘쳐나는 죽음의 습지를 헤매기도 합니다. 죽음의 끝에서 간신히 살아나지만 다시 잔인한 술주정뱅이 에드윈 엡스에게 팔리는 신세가 됩니다.
그 후 가축에게나 주는 음식을 먹고 거친 담요 한 장 두른 채 자면서 동틀 무렵부터 자기 전까지 고된 노동과 생명의 위협, 가학적인 채찍질이 10년간이나 이어진다. 그리고 1853년, 마침내 그는 양심을 지닌 한 백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지옥에서 구출됩니다.
소설은 노예들의 육체·정신적 고통은 물론, 노예제도가 백인 주인들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어떻게 망가뜨려 가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남편으로 불리던 저자가 한순간에 노새와 말과 같은 소유물로 전락해 직접 경험한 노예의 삶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르포 문학의 가치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목화밭 경작,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 공장에서 설탕을 생산하는 과정 역시 자세하고 생생하게 담아 당시 미국 남부의 농업을 살펴보는 데도 도움을 주는 작품입니다.
사실 책은 소설이 아니기에 흥미진진하거나 통쾌한 복수를 하는 그런 스펙터클한 맛은 없습니다. 오히려 읽는 내내 울적하고 불편하고 씁쓸하죠. 마치 공지영 소설의 <도가니>처럼 고발형식의 작품이라고 할까요? 그렇다고 그 당사자들이 어떻게 처벌을 받는다거나 현실이 개선되는 여지를 남기거나 하는 부분이 없어서 더 울컥하게 만들죠. 납치당한 솔로몬을 노예상에 팔아넘긴 일당부터 그를 농자주에 판매한 노예상, 그리고 그를 부렸던 티비츠와 엠스의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힘들게 합니다. 솔로몬 노섭은 이들의 성정을 오히려 담담하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라구요. 당시 그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토록 현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에 무척 놀라웠습니다.
사실 이러한 것이 먼나라 150년전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오늘날 현실에도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욱더 남의일 같지않은 이야기로 다가오죠. 흔히 얼마전에 밝혀져서 발칵 뒤집어놓은 신안군 염전 노예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죠. 21세기의 선진국 반열에 올라가려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더 놀라움과 경악 그리고 참담한 수치스러운 일이 분명합니다. 외딴섬의 염전 노예 장애를 가진 사람들, 또는 노숙자들. 실종자들을 잡아서 섬에서 노예처럼 부리고 그와 함께 그런 일을 알면서도 모른척 묵인한 이들또한 모두 가해자입니다. 정말 이런 일이 되풀이 되고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얗고 순백의 목화밭에서 단지 피부가 검다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납치당해서 자유인에서 노예로 12년을 생활한 솔로몬 노섭. 그 하얀 목화는 마치 블러드 다이아몬드처럼 목화를 재배하는 노예들의 피와 절규, 분노가 숨어있으며 그것을 글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이 책 <노예12년>입니다. 악을 방관하면 더 큰 악을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올바른 인간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야말로 괴물이 아닌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저 당시 150년전의 노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책을 통해서 되풀이 되선 안되는 역사를 알려주고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당시의 상황과 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현실과 앞으로의 미래를 둘러보고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