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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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루 몇 분 길어질 뿐이었다는 것이 점차 1시간 그리고 몇 시간 뻗어 나가서, 하루 25시간 반, 26시간으로 길어지고 결국 몇 주 작열하는 "낮"이 있다가 그 다음에 몇 주 동안 극한의 "밤"이 지속되기 시작합니다. 기후 변화로 작물은 마르고 자기장의 이상으로 새는 날지 못하고 떨어지고 해류가 바뀌어 고래는 바닷가에 밀려나게 됩니다. 사회의 지도층은 당황하고 연구자들은 필사적으로 근본을 찾지 못한 체 대책을 세우려고 허둥지둥 댑니다. 인류에 위기가 온다는 줄거리의 정망적인 SF재난소설과도 같은 작품이죠.

 

이러한 배경속에서 이야기의 시점은 캘리포니아의 조용한 동네에 사는 소녀 줄리아의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때문에 그러한 큰 움직임은 배경으로 엿보아질 뿐이죠.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밤과 낮이 길어진다는 기상천외하고 공상과학적인 발상을 십대 초반 사춘기 소녀의 성장담과 시점으로 차분하고 진지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는 진행되어 가는데, 오히려 손상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담담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섬세함에 색다르고 이색적이기까지 하며 그 십대소녀의 마음으로 친구와의 이별 학교에서 왕따, 부모와 이간질 첫 사랑. 그리고 그녀와 주위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은 점차 힘에 부치게 비춰져가지만 왠지 마음은 같이 동화되어 가는게 절망적인 현재 인류의 상황은 별거 아니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미국작가 카렌 톰슨 워커의 데뷔작으로 재난으로 인한 절망감, 완만한 세계가 끝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만, 주인공이 11세의 여자이기 때문에 완전히 절망스럽거나 좌절하는 듯한 분위기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또 다른 매력입니다.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데 따른 사춘기 소녀의 인생과 인간 사회의 변화에 대한 고찰’로 비춰지는 이 작품 ‘기적의 세기’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출간돼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장편소설이랍니다. "세상이 끝날지도... 그래도 나는 동급생 세스네가 좋아!"라면서 좌절스러운 분위기에서도 희망과 사랑이 그리고 그 나이대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소소한 문제와 생각들로 같이 고민하고 들여다보며 엿보는 성장소설이죠.

 

소설의 초점은 지구 자전의 변이로 인한 재난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세상과 자아, 관계와 사랑에 눈떠나가는 열한살 사춘기 소녀 줄리아의 성장으로 한때 여배우였던 어머니와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를 둔 소녀 줄리아는 절친한 친구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친구를 맞는가 하면, 짝사랑에 애태우던 남학생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부모의 불화와 갈등을 목도하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줄리아는 이렇게 말하죠. “돌이켜 보면 슬로잉은 다른 종류의 변화, 이를테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심각한 여러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슬로잉으로 인해 친구 간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연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등 미묘한 감정의 행로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슬로잉 탓에 내 사춘기가 어땠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 사춘기는 지극히 평범했고, 내가 느낀 고통은 누구나 경험하는 흔해 빠진 것이었으리라”고 줄리아는 무덤덤하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하루 30시간, 35시간, 40시간, 60시간이 돼 갈수록 그런 경우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사람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선택되어가는 대목입니다. 폭력과 살인이 증가하고 주식 시장은 급락했으며, 새들과 물고기가 까닭없이 죽어가고 사람들은 ‘중력병’이라는 슬로잉 증후군을 앓게 되는데 그러한 상황과 종말론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는 대책으로 내세운 해결책이라는 것은 모든 시간을 기존의 ‘24시간제’에 맞추는 세계가 태양이 뜨면 침몰에 관계없이 24시간 단위의 일정에 사는 ‘클락타임제’를 내놓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일단의 사람들은 자연 시간에 맞춰 활동하는 세계가 태양이 뜨면 침몰에 관계없이 24시간 단위의 일정에 사는 ‘리얼타임족’의 등장으로 두 세력은 충돌을 하게 되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클락타임족’에게 밀리는 ‘리얼타임족’은 불법이 되어가고, 정부시책에 따르는 ‘클락타임족’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다가 결과적으로 ‘클럭타임파’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함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클락타임제’가 강제되어가고 맙니다.

 

세계가 단번에 ‘쾅’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완만하게, 수수하게 끝나간다는 점에서 절망이 깊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간의 끝은 감미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쉽게 세계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끝나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작은 일에 설레고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같은 영위를 반복하고 지속해 나가죠. 이 소설은 묵시록적인 전조의 상상력과 배경속에서 사춘기 소녀의 빛나는 감성과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피워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사춘기 시절에 한번쯤 생각했을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는 가장 중요한 건 현재의 당면한 내의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서 풀어낸 좀 와 닿지 않는 설정과 배경으로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소설에서 갈수록 재미를 더해져 가며 급호감을 가질 수 있었던 작품으로 전반보다 후반이 더 흡입력 있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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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BOOn 5호 - 2014년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 편집부 엮음 / RHK일본문화콘텐츠연구소(월간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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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잡지 Boon은 격월로 발행되는 잡지이다. 일본에 관한 것인 문학, 문화 등 일본의 전반적인 부분들을 다루는 흔치 않은 문화컨탠츠잡지라고 할 수 있죠. 주로 문학쪽이지만, 책 내용의 많은 부분이 문학과 문학에 국한되지는 않고 문화 풍습, 연예, 방송, 일본의 유행어, 한류 등등. 우리가 일본에 관한 알고 있는 지식이나 흔히 모르는 것들을 서적을 통하거나 아니면 매체, 인터넷등으로 겨우겨우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 잡지를 통해서 알아간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잡지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죠.

 

이번 5호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부분은 작가소개를 하는 작가를 읽다 인데 역시 이번 ‘작가를 읽다’에선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명불허전 장르물 소설의 대모라고도 불리우는 우리 미야베 미유키 미미여사님이 소개가 되었습니다. 국내독자들 중 미미여사의 작품을 다 읽어본 사람은 흔치않지만 모르는 분들은 없죠? 히가시노 게이고와 더불어 양대산맥을 이루는 흔히 일본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분에대해서 심층적으로 아주 심도있게 기획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 참고로 우리 게이고형님은 1호에서 소개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1호를 찾아보심이 어떠실지..)

 

그리고 특집기사로는 일본에선 전통스포츠가 스모라면 국기는 야구라고 하는데 이번 특집기사에선 우리나라의 수능만큼이나 큰 국가행사인 고시엔에 대해서 고교야구에 관한 기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미 많은 일본 문화에서 만화나 드라마 등등에서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은 일본의 젊음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리그인데 정말 글로만 읽어도 젊은 패기와 끓어오르는 열정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청룡기가 있긴 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동네 조기축구수준이라고 하죠. 일본은 아마야구 사회인 야구도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 한데 정말 일본인의 야구사랑은 대단합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도 부러워만 할게 아니라 보고 배우고 도입해야 할 시스템 같습니다.

 

그리고 특집기사만큼이나 이 잡지의 발간일을 손꼽아 기다린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연재소설인데 잡지를 잘 보지 않고 소설은 단행본으로 주로 봐왔던 편이어서 연재소설을 다음편을 기다리면서 읽어나가는 것은 또다른 재미이자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 <어항, 그 여름날의 풍경> 꼭 책으로 출간되면 책으로도 다시 보고싶고 이렇게 잡리로 읽다가 한권의 책으로 나와서 읽으면 다른 기분이 들 듯 합니다.

 

단순히 일본문화와 문학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우리나라 한류에 대해서도 연속으로 소갷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 신조어가 있듯이 일본도 세월과 시간과 유행에 무척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데 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의 신조어인 ‘와카모노 고토바’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추천하는 일본도서 코너에선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거나 출간되지 않은 일본 책들도 있고, 이 잡지에선 매 호마다 일본의 지역소개를 하는데 이 또한 깨알같은 재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흔치않은 특별한 잡지를 통한 흔히 알 수 없는 일본에 관해서 알아가고 알 수 있는 격월간 잡지 <Boon> 일본문학이나 문화 등 일본에 대해서 관심이 있거나 알고 싶으신 분들에겐 이보다다 더 좋은 정보와 지식을 알 수 있는 잡지는 없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가격도 착하고 두께나 볼륨도 아주 좋아서 이 잡지를 모아가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서 벌써부터 다음 호가 기다려지고 다음은 어떤 재미있고 흥미로운 내용들로 올지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쭉 보고 싶어지는 정말 좋은 잡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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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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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프고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그런 작품이 아닌 아픈 두 아이가 사랑을 찾는 과정이자 삶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 십대들만의 유쾌하고 현실감이 있는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통해서 흐르고 있습니다.

암이라는 병에 대한 우울감이나 고통스러움, 절망감 등 이런 것들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무척 슬픈 소설이자만 슬픔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그런 환경속에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16세 인생에 말기 암환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소녀 헤이즐, 항상 그녀는 산소탱크를 끌고 다녀야 하고, 헤이즐의 엄마는 그녀의 곁에 상시대기하고 있습니다. 헤이즐은 암환우 모임에서 처음 만난 어거스터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어거스터스는 헤이즐이 보기에 굉장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남자였죠. 그들의 사랑은 십대의 쿨함과 설레임과 약간의 슬픔, 그리고 그들만의 언어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헤이즐은 강하고 똑똑한 소녀입니다. 그녀의 말은 속을 뻥 뚫을 정도로 시원하고 통쾌한 면이 있죠. 그들은 암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있지 않고 그들은 서로 좋아하는 책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헤이즐이 굉장히 좋아하는 책 ‘장엄한 고뇌’라는 책은 결말부분이 이상하게 끊겨있었는데 결말을 굉장히 알고 싶어하는 헤이즐과 그녀의 궁금증에 동조하는 어거스터스. 결국 헤이즐이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던 ‘장엄한 고뇌’의 작가와의 연락을 어거스터스가 이끌어 냅니다.

 

"난 널 사랑하고, 진심을 말하는 그 간단한​ 기쁨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난 널 사랑해. 사랑이라는 게 그저 허공에 소리를 지르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도 알고, 결국에는 잊히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우리 모두 파멸을 맞이하게 될 거고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날이 오게 될 거라는 것도 알아. 태양이 우리가 발 딛고 산 유일한 지구를 집어삼킬 거라는 것도 알고. 그래도 어쨌든 너를 사랑해." (p.163​)

 

소설의 뒷부분은 어거스터스의 병이 재발하면서 슬픈 내용 뿐이지만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면서 헤이즐을 끝까지 사랑하죠. 마지막은 그걸 절절히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장 슬프고, 하루살이나 바라 지는 것이 더 아름답고 비장한 것은 바로 질 것을 알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지는 꽃임을 알지만 더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을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여운과 과하지 않고 밋밋하지도 않은 그런 여운이 남는 지금 같은 가을에 무척 어울리는 책이라 여겨지며 이 책과 더불어 배명훈의 <청혼>이나 조조 모예스의 <Me before you>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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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위안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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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인자의 딸들>의 작가 랜디 수전 마이어스의 두 번째 소설 <거짓말의 위안>은 한 남자를 중심으로 연결된 각기 다른 세 여성의 삶을 병렬식으로 펼쳐 보이며 결혼과 양육이라는 여성적 삶의 핵심 테마를 다루고 있는 한마디로 ‘사랑과 전쟁’과 같은 작품입니다.

 

작품은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서사는 젊고 매력적인 사회학과 교수 네이선과 대학을 갓 졸업한 그의 제자 티아가 불륜에 빠지는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얻은 행복은 대가를 요구했다. 네이선과 첫 키스를 나눈 순간부터 티아는 그것을 예감했다. 그와 사랑에 빠져 보낸 한 해 내내 그녀는 벌이 내리길 기다렸고, 실제로 어떤 결말이 다가오든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사건은 속도감 있게 전개되며, 임신 사실을 고백하는 티아에게 ‘처리’를 요구하며 떠나버리는 네이선과 그것을 마지막으로 네이선에게 버림받은 티아의 비참한 심경이 첫 장면에서 그려지다가 입양을 진행 중인 임신 6개월의 티아가 재등장합니다. 2장에서는 뷰티업계의 거물로 성공하는 아름답고 세련된 네이선의 아내 줄리엣이 남편으로부터 불륜을 저질렀다는 참혹한 고백을 듣고, 3장에서는 성공한 금융가이지만 불임인 남편 때문에 아이 없이 살아가는 소아암 병리학자 캐롤라인이 등장해 남편에게 입양을 제안 받습니다. 소설은 아이를 떠나 보낸 후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티아와 티아의 아이를 입양하는 캐롤라인 부부, 가까스로 불륜의 상처를 다독이며 살아가는 줄리엣이 티아가 입양 5년 후 네이선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파국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기까지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슬픔의 박동으로 강렬히 그리고 속도감있게 그려나가고 있죠.

 

가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끝내 거짓말의 위안에 매달리던 세 여인은 결국 쓰라린 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화해에 도달하지만 그 과정과 그 시간이 정말 너무도 비극적이고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린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죠.

남편을 사로잡은 여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확인하기 위해 몰래 길을 나선 성공한 여성 사업가 줄리엣은 “살로메처럼 남편 위로 미끄러져 올라갔을 그 여자의 야들야들한 몸”을 훔쳐보며 절망하고, 학문과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의사 아내 캐롤라인은 입양한 딸을 위해 엄마 역할에만 집중해주기 바라는 남편과 아이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지 못하며 고독에 함몰되면서, 아픈 아이들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입양한 딸과 온종일 인형놀이를 하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자신을 용서하고 이해하기 너무도 힘들어하죠.

가질 수도,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을 욕망한 티아가 끝내 네이선을 잊지 못한 채 가끔 자신의 인생을 네이선이 전부 마셔버린 것처럼 느끼고 그래서 다시는 그 잔을 채울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하며 외로움을 자처할 때는 인간 감정의 아둔함은 속수무책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작가는 진부한 사건과 갈등구조에 실감을 부여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 치밀하고 세밀한 심리묘사, 빼어난 구성적 리듬감에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에, 뻔한 상황에서도 분노와 슬픔이 매 장면 절박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거짓말의 위안>. 흔한 ‘사랑과 전쟁’을 보는 듯 한 인상을 많이 받은 작품이지만 이 시대 여성들이 마주할 수 있는 ‘불륜’, ‘모성애’, ‘양육’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은 없으리라 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라 여겨지는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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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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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가운데 오도카니 서있는 4층짜리 맨션인 <그랜드 맨션> 맨션이라고는 해도 아파트보다 조금 더 시설이 나은 공동주택일 뿐입니다. 도심인데다가 임대료가 싸기 때문에 이곳의 입주자는 한번 들어오면 웬만해선 나가려고 하질 않죠. 입주한 지 30년도 넘는 거의 터주대감같은 사람도 여럿 있을 정도다. 때문에 입주민의 대부분은 고령자. 그렇다고 이웃들이 살갑게 지내는 것은 아니며 현대인들처럼 옆집에 누가, 어떻게 사는지 모르며 이웃이 살인자나 조폭이라 할지라도 나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각자에게 하나 이상의 문제와 애로사항 등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모인 맨션입니다.

 

이야기는 빠른 템포 속에서 빠른 전개로 진행되어갑니다. 단편집인 듯 하면서도 1권의 장편이기도하죠. 연작 단편집에 신작을 추가 한 장편으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랜드 맨션 제일관"이라는 상당히 노후화 된 임대 아파트 주민들에 일어난 사건을 그린 연작 단편집이다.

 

"소리의 정체" 아파트 특유의 소음 문제. 202호실에 사는 사와무라는 위층의 302호실의 소리가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으며 매우 괴로워합니다. 아이들의 발소리, 아기의 울음소리. 참다 못 해 항의에 나서지만 그 이후로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게된다. 그러나 반대로 위층 여자가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304 여자" 303호실의 거주자인 유카는 가장 1번관 옆에 거주하게 되었다. 현재 건설중인 그랜드 맨션 2번관의 분양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무실에 한쌍의 커플이 견학 와서 구매를 결정했다. 그리고 304 호실에 살기 시작했는데, 방에 유카의 핑크빛 휴대폰이 떨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내는 남편의 바람기를 의심하게 되면서 아파트에 사는 남녀사이에 균열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헤프닝. 진상이 밝혀지지만 의외의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진상이 밝혀지죠.

 

"선의의 제삼자" 206호실에 사는 타카다 에이지는 306호실에 사는 쿠보타 아야카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 아야카가 결혼하게 됐지만, 타카다는 약혼자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 증거사진을 선의의 제3자를 자칭하며 아야카에게 보내고 결혼은 파혼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을 안고 있고 그 트릭이 절말 절묘합니다.

 

"시간의 구멍" 203호실에 사는 남자인 세누마 도미오는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일같이 관리인에게서 자주 독촉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204 호실에 사는 요시코가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녀의 방에는 금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지진에 의한 균열이 악화되어 그녀의 방으로 이어지는 벽에 구멍이 생기는 데. 미스테리 매니아인 남자가 지진으로 금이 간 벽 사이로 옆방으로 돈을 훔치는 이야기. 지진의 영향으로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좀 의외였습니다.

 

"그리운 목소리"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에게 사기피해 사건이 다발하게 된다. 206호실의 주민이기도 한 민생 위원의 타카다가 범인이라고 의심되는 인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입금사기의 피해가 아파트내에서 속출하게 되는데 예금을 가지고 노인을 속여 오던 인물이 의외의 범인이라 놀라웠던 작품입니다.

 

"마음의 여로" 103호실에 사는 무토 도메코의 방에 벨이 울리고 밖으로 나왔더니, 모르는 남자가 있었고, 무토는 순간 남자의 얼굴을 때려서 쓰러뜨리고, 그 쓰러진 남자는 의식불명 상태에 놓이고, 남자가 구급차로 옮겨진 이후 문틈으로 가벼운 가방이 발견됩니다. 그 안에 있던 수첩에는 놀라운 내용이 젹혀 있었으니. 수첩에는 소녀의 불행한 어린 시절의 일기가 적혀 있었고, 이에 소녀는 가족의 곁으로 향하지만, 마지막으로 연작을 정리한 복선이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리셋" 105호실에 사는 이네코은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라게 되는데, 무려 눈앞에 있었을 아파트가 없어지고 있는 것 입니다. 주민들에게 물어보아도 아무도 상대 해주지 않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났는지.

 

"에필로그" 유카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아파트의 분양사무소에서 근무합니다.

 

아마 여기까지 읽어도 보통 단편집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말 색다른 재미를 읽으면 읽을수록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죠. 어떤 이야기는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과 결말이 숨어있고, 작가가 독자의 심리를 유도하는 것이 정말 색다른 재미라고 생각됩니다.

결론은 이런 아파트에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소소한 재미있을 것 같지만...

만약 이런 아파트가 현실에 있다면, 신문이나 잡지 인터넷 등 매스컴에 전부 거론되는 매우 유명한 오컬트 명소가 될 것이죠. 심각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다 한가지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은 오히려 천하 태평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 때문에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었던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건 이런 사건 투성이의 아파트가 전혀 문제되지 않고 입주민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는 것이 가장 큰 미스터리가 아닐지... 아파트의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라 여겨집니다.

 

무관심 속에서도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안고 있다. 층간 소음문제, 가정폭력, 아동학대, 살인, 연금부정수금, 고령 독거노인 등등 온갖 문제가 존재한다. 그리고 제각각 소외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사건을 통해 얽혀들기 시작하고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각자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정말 내 주변에서도 느끼지 못했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들을 담은 소소한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놓은 한편으로 이어지는 장편소설이라고 생각되는 한권의 장편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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