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갑자기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루 몇 분 길어질 뿐이었다는 것이 점차 1시간 그리고 몇 시간 뻗어 나가서, 하루 25시간 반, 26시간으로 길어지고 결국 몇 주 작열하는 "낮"이 있다가 그 다음에 몇 주 동안 극한의 "밤"이 지속되기 시작합니다. 기후 변화로 작물은 마르고 자기장의 이상으로 새는 날지 못하고 떨어지고 해류가 바뀌어 고래는 바닷가에 밀려나게 됩니다. 사회의 지도층은 당황하고 연구자들은 필사적으로 근본을 찾지 못한 체 대책을 세우려고 허둥지둥 댑니다. 인류에 위기가 온다는 줄거리의 정망적인 SF재난소설과도 같은 작품이죠.

 

이러한 배경속에서 이야기의 시점은 캘리포니아의 조용한 동네에 사는 소녀 줄리아의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때문에 그러한 큰 움직임은 배경으로 엿보아질 뿐이죠.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밤과 낮이 길어진다는 기상천외하고 공상과학적인 발상을 십대 초반 사춘기 소녀의 성장담과 시점으로 차분하고 진지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는 진행되어 가는데, 오히려 손상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담담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섬세함에 색다르고 이색적이기까지 하며 그 십대소녀의 마음으로 친구와의 이별 학교에서 왕따, 부모와 이간질 첫 사랑. 그리고 그녀와 주위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은 점차 힘에 부치게 비춰져가지만 왠지 마음은 같이 동화되어 가는게 절망적인 현재 인류의 상황은 별거 아니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미국작가 카렌 톰슨 워커의 데뷔작으로 재난으로 인한 절망감, 완만한 세계가 끝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만, 주인공이 11세의 여자이기 때문에 완전히 절망스럽거나 좌절하는 듯한 분위기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또 다른 매력입니다. ‘지구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데 따른 사춘기 소녀의 인생과 인간 사회의 변화에 대한 고찰’로 비춰지는 이 작품 ‘기적의 세기’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출간돼 뉴욕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장편소설이랍니다. "세상이 끝날지도... 그래도 나는 동급생 세스네가 좋아!"라면서 좌절스러운 분위기에서도 희망과 사랑이 그리고 그 나이대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소소한 문제와 생각들로 같이 고민하고 들여다보며 엿보는 성장소설이죠.

 

소설의 초점은 지구 자전의 변이로 인한 재난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삶과 죽음, 세상과 자아, 관계와 사랑에 눈떠나가는 열한살 사춘기 소녀 줄리아의 성장으로 한때 여배우였던 어머니와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를 둔 소녀 줄리아는 절친한 친구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친구를 맞는가 하면, 짝사랑에 애태우던 남학생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기도 하고, 부모의 불화와 갈등을 목도하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줄리아는 이렇게 말하죠. “돌이켜 보면 슬로잉은 다른 종류의 변화, 이를테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심각한 여러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슬로잉으로 인해 친구 간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연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등 미묘한 감정의 행로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슬로잉 탓에 내 사춘기가 어땠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내 사춘기는 지극히 평범했고, 내가 느낀 고통은 누구나 경험하는 흔해 빠진 것이었으리라”고 줄리아는 무덤덤하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하루 30시간, 35시간, 40시간, 60시간이 돼 갈수록 그런 경우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사람들에 의해 개별적으로 선택되어가는 대목입니다. 폭력과 살인이 증가하고 주식 시장은 급락했으며, 새들과 물고기가 까닭없이 죽어가고 사람들은 ‘중력병’이라는 슬로잉 증후군을 앓게 되는데 그러한 상황과 종말론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는 대책으로 내세운 해결책이라는 것은 모든 시간을 기존의 ‘24시간제’에 맞추는 세계가 태양이 뜨면 침몰에 관계없이 24시간 단위의 일정에 사는 ‘클락타임제’를 내놓았지만, 이에 저항하는 일단의 사람들은 자연 시간에 맞춰 활동하는 세계가 태양이 뜨면 침몰에 관계없이 24시간 단위의 일정에 사는 ‘리얼타임족’의 등장으로 두 세력은 충돌을 하게 되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클락타임족’에게 밀리는 ‘리얼타임족’은 불법이 되어가고, 정부시책에 따르는 ‘클락타임족’의 공격을 끊임없이 받다가 결과적으로 ‘클럭타임파’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함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클락타임제’가 강제되어가고 맙니다.

 

세계가 단번에 ‘쾅’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완만하게, 수수하게 끝나간다는 점에서 절망이 깊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순간의 끝은 감미로워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쉽게 세계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끝나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작은 일에 설레고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같은 영위를 반복하고 지속해 나가죠. 이 소설은 묵시록적인 전조의 상상력과 배경속에서 사춘기 소녀의 빛나는 감성과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피워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가 사춘기 시절에 한번쯤 생각했을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는 가장 중요한 건 현재의 당면한 내의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서 풀어낸 좀 와 닿지 않는 설정과 배경으로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소설에서 갈수록 재미를 더해져 가며 급호감을 가질 수 있었던 작품으로 전반보다 후반이 더 흡입력 있고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신선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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