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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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How Civil Wars Start)
➰지은이: 바버라 F. 월터
➰옮긴이: 유강은
➰펴낸곳: #열린책들(@openbooks21)


이토록 시기적절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2024년 12월 3일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들려온 소식, 바로 ‘계엄령 선포’다. 늦게까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실시간 소식이 궁금했다.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현실이 쉽사리 살갗으로 와닿지 않았다. 다행히도 12월 4일 4시 30분, 계엄령은 풀렸다.

🔖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언제나 평화가 지배할 것이라고 믿어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제도는 흔들림이 없고, 우리 국가는 예외적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진 힘을 알아야 한다고 배웠다. - 17쪽

1987년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부당함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성미를 가진 국민들이 정부가 민주주의를 뒤엎으려는 행동을 한다면 광화문 광장을 촛불로 가득 채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평온하다고 생각할 때 위기가 온다. 그리고 그 위기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굵직한 내전을 예시로 들어주며, 끔찍한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배경을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후세인의 부재 이후 민주주의를 기대했던 이라크가 내란의 늪에 빠진 이유, 세르비아인들에 의한 무자비한 무슬림 학살이 자행되었던 유고슬라비아의 내전, 다수의 수니파가 지배세력이었던 소수의 시아파의 독재에 불만이 터져버린 시리아의 내전, 텔레반이 점령해 버린 아프가니스탄, 가짜 뉴스와 혐오주의가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후의 끔찍한 결과를 보여준 미얀마의 내전.

그리고 미국. 현재 미국 역시 내전의 색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 때 락다운(봉쇄) 정책을 반대하며 모인 ‘기독교 백인 남자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극단주의 단체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수장은 바로 트럼프다. 저자는 현재 미국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작년 말 읽었던 #더글라스케네디 #장편소설 #원더풀랜드 의 배경이 곱씹어졌다. 소설 속 미국은 2036년 분단된다.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으로. 이념과 종교의 갈등과 대립은 미국을 결국 갈라놓고 만 것이다. 미국 분단의 기운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읽고 다시 미국이 분리되는 과정을 읽어보니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 전문가들은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 anocracy>라고 부른다. 완전한 독재 autocracy도, 민주주의 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 32쪽

내전은 바로 아노크라시 단계에서 일어난다고 저자는 누차 강조한다. 이 단계에서 정부는 가장 허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에 도전하고자 하는 반군 세력들이 쉽게 힘을 기를 수 있지만 정부는 이들을 제어할 권력과 군사력이 부족하다.

20세기 초 내전은 대부분이 이데올로기나 계급에 의한 것이었다. 20세기 중반부터는 종족, 종교 집단 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이 들은 <파벌>을 만든다.

🔖<파벌화되었다>고 간주되는 나라들에 존재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대개 비타협적이고 유연하지 않다. - 60쪽

이런 파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견고히 굳혀간다. 그리고 이들이 정치인을 지지하는 순간, 그의 추종자가 되어 다른 집단을 배제시키고 파괴하고 군림하고자 한다. 이해관계가 맞는 파벌과 기회주의적 지도자가 만났을 때 내전의 도화선에 불이 붙는다. 그리고 이런 지도자들은 대체로 <종족 사업가 ethnic enterprenuer>다. 기꺼이 다른 집단의 차별과 배제를 위해 특정 집단을 이용하고, 집단들 사이에 공포를 조장하며, 한때 주류 집단(mainstream)이었던, 그래서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으려 하는 이들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내전에 대한 통찰력과 미국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이 원더풀랜드를 탄생시켰다. 소설 속 미국은 결국 분단되고 만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내전을 예방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제대로 된 지도자와 거짓 정보에 휘둘리지 않을 현명함 그리고 거짓 정보를 퍼트리지 않아야 하는 매체까지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줘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내전에서 안전하지 않다.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라 할지라도 한국은 독재 정권을 향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니 안심하지 말자. 언제고 내전의 나락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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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희망 수업 -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꿈꿔야 하는 이유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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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재천의희망수업
➰지은이: #최재천
➰펴낸곳: #샘터


어린 시절 혹시 세상의 공기가 너무 더러워져 인류가 반구 안에 갇혀 사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이 있다. 미래를 상상하며 완성되었던 많은 영화 속 장면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달세계 여행>은 1902년에 개봉된 영화다. 우주에 가는 최초의 SF 영화가 개봉된 지 67년 만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글, 음악, 그림을 생성해 주는 AI는 가공할 만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도 그에 맞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릉의 자연을 사랑했던 최재천 교수님은 ‘소 뒷걸음질 치다’ 서울대 동물학과에 입학한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셨던 분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다양한 환경 단체의 공동대표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현재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석좌교수와 생명다양성재단 이상장을 맡고 계신다.


70년의 세월 동안의 통찰력으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하는 지 하나하나 자세히 일러주고 있다.



단연 요즘 가장 큰 화두는 AI의 발전이다.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 우리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뺏기는 겁니다. - 26쪽


AI는 다양한 지식을 모아 놓은 것이고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 챗gpt를 ‘똑똑한 비서’라고 한다. 그만큼 잘 활용한다면 일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통섭형 인재가 되어야 하며 주입식 교육이 문과와 이과의 통합형 교육을 통해 제대로 된 숙론을 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독서가 빠질 수 없는데, 이 말이 정말 와닿았다.




🔖 독서는 일이어야만 합니다. 책 읽는 게 취미라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게 훨씬 가치 있는 독서라고 생각해요. - 117쪽

🔖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 독서는 취미로 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기획해서 책과 씨름하는 게 독서입니다. 읽어도 그만인 책을 읽으니 나가 노는 게 낫습니다. - 127쪽


독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꼭 글쓰기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일이 마무리된 것이며 뜻하지 않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한다. 실제 교수님의 글이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 저는 학생들에게 방황하되 방탕하지 말며, 방황하면서도 자신이 뭘 하면 좋을까를 찾고 뒤져보고 읽어보는 ‘아름다운 방황’을 권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남이 가라는 길로 가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아라. 그러다가 자기만의 길이 보이면 달려가라.”


방황은 하되 방탕하지는 말라는 말씀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다. 가슴이 뛰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다며 ‘아름다운 방황’을 권하신다. 그리고 그 일을 찾았을 땐 부단히도 성실하게 노력이 필요하다. 우린 천재가 아니니까.


🔖 아인슈타인처럼 어느 날 한 번에 기가 막힌 걸로 대박 터트리려 하지 말고, 피카소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걸 성실하게 정말 열심히 해보는 겁니다. - 259쪽


협동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는데 우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한다. 경쟁심만 부추겨 놓고 이제 와서 힘을 합쳐 프로젝트를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연히 ‘토론’을 할 줄 모르니 우리는 ‘싸움’을 하게 된다. 자기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다.


🔖 ”화학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내 연구실의 조교가 될 거다. 그렇지만 나처럼 피아노도 좀 치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70쪽

🔖 “디스커션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게 바로 디스커션, 토론입니다. - 180쪽


마지막으로 생명의 다양성이 실종되어 가는 요즘을 걱정하셨다. 제6의 대멸절, 인간이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지구를 끊임없이 파먹는 인간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공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읽는 내내 모든 장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며 ‘맞지 맞지’를 몇 번이고 속삭였는지 모른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느낌이다.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면, 앞으로 지구에 더 오랫동안 인류가 머무르기를 원한다면 지구와 공생하며 나아가는 방법을 숙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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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정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김문주 옮김, 박재연 감수 / Pensel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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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가의여정
➰지은이: #트래비스앨버러
➰옮긴이: #김문주
➰펴낸곳: #Pensel(펜젤)


가장 좋아하고, 아끼고 존경하며 본받고 싶은 작가님이 애서가라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이름을 대라면 끝도 없이 댈 수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의 작품 속에 그려진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과 깊은 서사와 생생하게 녹아있는 묘사까지 심금을 울리는 요소들이 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것인지 궁금한 적이 많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특급열차 는 2025년도에 읽을 원서 리스트에 있다. 초반부를 읽었는데 그녀의 묘사력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과연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실제 열차에 탔던 것인지 궁금했다. 책을 받자마자 애거사 크리스티의 파트를 제일 먼저 읽어보았다. 역시 그녀는 바그다드까지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탑승해서 홀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을 만났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탄생했다.

🔖 크리스티의 여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홀로 이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1922년에 이미 세계 일주를 경험한 노련한 여행자였지만, 이번 여행은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이 보고 싶은 지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였다. - 64쪽



작가가 지나온 길은 그의 작품 속에 녹아난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생생히 그려내며 독자에게 전하는 감수성은 말도 못 할 깊은 감동을 준다. 실제 그 일을 겪은 것처럼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워딩에서의 시간은 잃어버린 향수를 그린다. 굉장히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던 워딩은 점차 발전해 갔고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그것이 그녀를 슬프게도 화가 나게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 미완의 유고이기는 하나<샌디턴>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소설가가 결코 워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리라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세련된 해학은 애정에서 나오는 법이며,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론 1805년 방문했던 더 순수하고 한적했던 온천 도시를 애도하며 소설을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에게 몹시 익숙했던 그 휴양지는 1817년 무렵이면 이미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상태였다. - 25쪽



셜록 홈즈 시리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추리 소설이다. 아서 코난 도일도 셜록 홈즈의 흥행 덕분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셜록을 싫어했다. 그가 자신의 창의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길에 셜록을 어떻게 ‘죽일지’ 구상했고 결국 독자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셜록이 폭포에서 몸싸움을 하다 떨어져 죽게 했다. 루체른으로의 여행에서 얻은 영감이다.


🔖 작가는 아마도 여행 도중 ”나는 홈즈를 죽여 버리려고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홈즈가 나를 죽이게 생겼어.“라고 말했으리라. - 87쪽

비록 아서 코난 도일의 생각을 추측하는 부분이지만 그가 셜록에게 이런 감정을 가졌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35명의 작가들의 여행담과 그들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가 진하게 담겨있는 <작가의, 여정>. 좋아하는 작가를 먼저 찾아 읽고 다른 작가님들에 관한 여행담을 이어서 읽었다. 영감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은 확실히 필요하다. 새로운 공기, 낯선 사람들, 이국적인 음식은 신선한 땔감이 되어 작가의 창의력이 확장될 수 있도록 불태워 주는 것이다. 그들이 갔던, 또는 스쳤던 장소로 많이 언급된 곳은 파리다. <작가의 여정>을 읽으며 세계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J.K 롤링과 버지니아 울프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해보고 싶다. 영국으로 그리고 그리스로.


#도서제공
@ekida_library
@kali_suzie_jin
@pensel_publ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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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 -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들의 역사
이준호 지음 / 유월서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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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존자들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들의 역사)
➰지은이: 이준호
➰펴낸곳: 유월서가


전쟁과 식민 지배의 참혹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몸소 겪는다면,
신체적 고통과 인권이 유린되는 끔찍함을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내면의 외침이었다. - 159쪽


그렇다, 생존자들은 삶에 대한 열망으로
억울함을 안고 죽을 수 없다는 의지로
살아남았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안전한 곳은 없었다.
독일의 침략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소련은 복수의 칼날을 갈고
독일을 침공했다.
그 결과 이번엔 독일이 무참히 짓밟혔다.


900여 일 동안 독일군의 포위와 공격 속에
삶을 연명해야 했던 레닌그라드의 시민들,
300만 명 중 100만 명이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폭격으로 인해 사망했다.


🔖 전방의 독일군들은 소련군의 대대적인 포격에 이어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오는 라이브 연주를 듣게 되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어이없어했지만 곧이어 전율을 느끼게 된다. 훗날 여러 독일군들이 이때를 회상하며 “우리의 적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며 우리가 전쟁에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당히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반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이 순간은 마치 성경 속의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과 같은 기적의 순간이었다. 쇼스타코비치의 7번 교향곡은 그렇게 레닌그라드 전장터의 전설이 된다. - 24 쪽



피해자였던 소련은 이제 분기탱천하여
독일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가해자가 된다.
베를린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여인, 노약자, 어린이, 그리고 새파란 젊은이들이었다.
이 중 여인들과 소년들은
소련군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고 만다.


🔖정신을 차린 A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는 어차피 소련군에게 강제로 당할 바에는 여러 명이 아닌 한 명하고만 접촉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 142 쪽


또한 독일군의 군인들은 소련의 수용소로 끌려가고 만다.
그들의 처참하고 열악한 수용소 생활은
예견되었던 것이었다.


🔖 수감된 1,500명의 독일 포로들 중 오직 200명만이 그해 겨울까지 살아남았다(대전 전후에 소련군에 의한 전체 독일군 포로 300만 명 중 100만 명이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 108쪽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기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되는 역사라 배우고 인식하고 있다.
전쟁의 이유는 지도자들의 탐욕 또는
이념, 종교, 인종의 배척에서 시작된다.
끔찍한 결과를 몸소 겪는 것은 민간인이다.
그래서 살아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을 이겨낸 생존자들의 강인함은
인간으로서 우리 역시
그러한 강인함이 있다는 것을 되새겨 준다.
지금 나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목숨을 위협받는 굶주림과 폭력에 노출된 것이 아닌 이상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진하게 배웠다.



유월서가(@yourseoga)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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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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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지은이: 도진기
➰펴낸곳: 추수밭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재판 결과가 많다. 글로 써 내려가는 순간마저 가슴이 싸해지는 ‘조두순 사건’의 범인, 조두순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징역 12년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한 아이의 삶을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뜨려놓은 결과치고는 너무 형량이 적었다.



도진기 작가님은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한 후 법관이 되신 분이다. 또한 미스터리 소설 작가로서 집필을 이어오셨다. 2013년에 처음 출간 한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는 10년 만에 새로 단장하고 독자들 곁으로 왔다. ‘가장 쉬운 법학 이야기’로 스테디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화에 기본적인 재판 상식을 잘 녹여내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법이 주는 처벌의 무게의 경중을 판결에서 재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법제도를 믿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강화된 법도 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없어진 것과 스토커법에 대한 처벌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은 자체의 기준과 원칙을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범죄 드라마만큼 법정 드라마도 인기가 많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지옥에서 온 판사>, <굿파트너>는 정주행하면서 한 편도 빠짐없이 봤다. 그 덕분에 법정 용어에 많이 익숙해졌다.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를 읽으면서 정확한 용어와 개념에 대해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었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인물인 염라 판사와 소크라테스 변호사의 케미는 이 책의 웃음 포인트다. 두 인물은 지옥과 천국 사이 ‘연옥’에서 2,000년 동안 밀린 재판을 진행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와 실제 사건들까지 도덕과 윤리적 관점이 아닌 법의 시선으로 새롭게 시사해 준다.


도로시가 동쪽 마녀를 죽인 것에 대한 죄를 묻는 장면,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자가 무죄로 풀려났던 이유, 베니스 상인의 계약서가 이행될 수 없었던 이유 그리고 O.J. 심슨의 형사와 민사 재판의 차이까지. 예시와 법적 용어가 적절하게 버무려져서 법을 처음으로 접하는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을 듯하다.


1️⃣ 죄형법정주의

🔖 ‘죄와 형벌은 미리 법으로 정해 놓아야 한다는 주의’ - 70쪽

너무 쉽게 잘 설명되어 있다. 양치기 소년의 사건을 재판할 때 언급되는 내용이다. 양치기 소년에게 너무 당해왔던 마을 사람들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면 처벌하도록 법이 새로 생겼습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이미 무죄를 선고받은 양치기 소년에게 벌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은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전히 무죄라는 것이다.


2️⃣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 ‘증거가 있으면 유죄‘가 아니라 ’증거가 충분히 있으면 유죄‘입니다. 여기서 ’충분히‘라는 의미는 증거가 여러 개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증거가 한두 개밖에 없다고 해서 부족한 것도 아니고, 증거가 100개쯤 있다고 해서 충분한 것도 아닙니다. 죄를 지었다는 확실한 증거라면 한 개로도 충분하고 분명치 않은 증거라면 100개라도 모자랍니다. 증거의 양보다는 증거의 질이 중요합니다. - 222쪽

드라마에서 형사들은 범인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가 바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때문인거다. 증거의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제대로 와닿는다.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반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떡밥을 깔아놓으셨는데 그 이유가 왜인지 마지막에 등장한다. 도진기 작가님은 확실히 이야기꾼이다.



법에 따른 판결은 그만큼 무겁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강력한 약속이자 잣대이다.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시스템이며 사람들이 믿고 살 수 있도록 안전함을 제공해 준다. 법의 처벌이 약한 것이 아니라 원칙을 따라 재판을 하다 보면 그 수위가 약해질 수도 있던 것이었다. 국민들의 법 감수성은 고취되어가고 있다. 미디어의 발전과 디지털의 발전으로 교묘해져가는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법‘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기본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져야지만 우리는 그 법을 믿고 따를 것이다.





북피티(@book_withppt)님의 서평단에 당첨, 청림출판사(@chungrimbooks)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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