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읽는 기막힌 한국사 43 - 고조선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왕을 중심으로 풀어쓴 한국사
김선주.한정수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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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다가 신라 본기에서 멈춘 책. 삼국사기-당연히 한글로 번역된-가 생각난다. 기전체니 편년체니 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고려 때 김부식 등이 삼국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역대 왕의 치적을 정리했다. 학창 시절 지겹게 외웠던 사람이름이나 지명들을 발견할 때는 반갑기도 했다. 수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날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은 독서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시나브로 일교차가 심한 가을의 초입에 만난 책 ‘왕으로 읽는 기막한 한국사 43’은 시대 순서로 기술된 통사이다. 김선주, 한장수 박사가 공저했다. 손에 쥐고 이틀만에 완독을 했다. 여가 때마다 현대 문물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 4,500년 전부터 시작하는 시간 여행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43인의 왕을 디딤돌 삼아서 당시의 정세와 문화, 경제, 종교를 간략하게 짚는다. 이 책을 따라 읽다보니 몇 년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났다.

고교시절 암기(!) 과목으로 배웠던 문교부 국사책에서는 1876년 체결된 강화도 조약이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불평등한 것이라고 배웠다. 12개에 이르는 조문이 왜 불평등한 내용인지 본문을 읽지 않고서 판단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한국사 검정을 준비하며 힘들었던 지점이 바로 이런 거였다. 인물과 그가 쓴 책 이름, 어떤 제도가 언제, 어떤 이름으로 시행되었는지 제목 정도만 암기하는 공부로는 역사를 해석하고 오늘의 삶에 적용하고 미래를 대비하는데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두 공저자는 고대에서 근세까지 방대한 한국사를 담아내기 위해 취하고 버리는 것을 분명히 한다. 외세의 도전 뿐만 아니라 내부의 권력 갈등, 경제적 위기 등을 맞이하고 왕이 어떤 판단과 대응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설명을 한다. 때문에 독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오늘날의 국내외 정세와 경제와 종교, 문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안목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읽고 배운(학) 것을 자기 것으로 익히고(습) 소화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내년 봄 대선을 앞둔 시점에 내로라하는 후보들이 각축을 하고 있다. 예전 왕조 시대와 달리 주기적으로 통령을 새로 뽑는 것은 분명 국가적으로 큰 일이다. 조선의 영조가 장기 집권을 하면서 탕평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권력 다툼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날 정당과 재벌, 언론의 관계를 꿰뚫어 볼 수 없다. 한 권의 책으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지만 작은 실마리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내년 이맘 때 다시 한 번 꺼내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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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축출하기 위한 나당 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무려 7년여 동안 전개되었다. 그동안 신라는 고구려 및 백제 부흥군과 결탁해 지배력을 확대하려 했다. 문무왕 16년인 676년, 나당 전쟁은 매소성과 기벌포 등지에서의 싸움으로 일단락되었다. 당시 당은 서역 토번(티베트족)의 침공으로 신라와의 전쟁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신라는 이 같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드디어 삼국통일을 이룬 것이다.
(87p)

통일신라 하대는 150년간 이어졌는데, 왕이 20회나 교체될 정도로 매우 혼란한 정국이었다. 반란이 많았고 정부가 이를 진압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지방에 대한 중앙의 지배력이 약해졌다. 진성여왕 3년인 889년에는 지방에서 공물과 조세가 올라오지 않기도 했다. 가뭄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도적들이 활보했다. 도적들이 해인사를 습격하자 승려들이 겨우 막아낸 일도 있었다.
중앙의 왕위 쟁탈전에서 밀려난 귀족들이 지방에 정착하고, 지방에서 나름대로 성장한 세력은 중앙과 연결 고리를 갖고자 모색했다. 장보고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각자 세력을 키워 독자 세력화를 도모한 이들도 있었다. (103p)

매관매직을 자행하고 백성들의 토지와 노비는 물론, 국유지까지 강탈하는 비행을 일삼던 염흥방, 이인임 일당이 우왕에 의해 처형되었다. 공공의 적이었던 그들을 처형하면서 우왕은 자신감을 얻었던 걸까? 명과의 대치 상태에서 젊은 국왕 우왕은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우왕은 당시 최고 군권을 장악한 최영과 의기투합해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명이 북원과 대치 상태에 있으므로 요동 지역에 군사를 동원하기 어려울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193p)

조선왕조가 외세의 통상 요구가 갖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분석과 그 대응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흥선대원군이 위정척사에 입각한 쇄국 정책으로 일관하자, 이에 반발한 고종과 왕비 민씨 및 지방 유림이 대립하면서 외척 정치가 부활하고 개화 세력이 이와 불안한 공존을 이어가는 가운데, 조정은 충분한 준비를 할 겨를 없이 서구 열강 및 일본에 개항하고 만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 1884년(고종 21년) 갑신정변에이어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발발로 조선왕조는 새로운 시대로 강제 전환하게 된다. (311p)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 반외세를 내세운 근대사의 중요 사건이었으나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동학농민군이 중앙의 모든 정치 세력을 적으로 돌리고 지주 및 부호 양반을 공격한 것은 전략상 문제로 보인다. 그게 지방 사회 분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그에게 의지하려 한 점도 한계였다. 대원군은 봉건 왕조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인물로, 반봉건을 외치던 동학농민군과는 애초에 가는 길이 달랐기 때문이다. (328-3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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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친구,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의 여정 인문여행 시리즈 16
정철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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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서울 구경 다녀온 것이 자랑이 되던 때도 있었다. 풍문으로 들은 것과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만지고, 먹어 본 경험치를 당할 수 없는 법이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부 국가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직접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발이 묶였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책. 영혼의 친구 반 고흐는 요즘 유행하는 영상 매체-여행 다큐 또는 디지로그 등-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맛이 우러난다. 수년에 걸쳐 저자가 직접 현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저작은 참 많다. 특히 빈센트가 동생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은 그의 그림과 함께 또다른 감동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저자 정철은 37년 간의 강렬하고 치열한 삶을 살다간 빈센트와 주변 인물들이 거주했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그의 손길과 숨결을 사진과 텍스트로 옮겼다. 네덜란드의 목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빈센트는 초기에는 신학과 선교사 활동을 한다. 이후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던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한 험난한 수련을 시작한다.

이 결정으로 인해 보수적인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진 것과 경제적인 어려움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또한 데생과 드로잉 등 체계적인 화가 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는 험난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 화랑에서 일하며 재료비와 생활비를 부쳐준 동생 테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빈센트 반 고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빈센트의 삶의 궤적을 좇아 동네와 건물을 찾아 나선다. 유럽을 강타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참화에 사라진 곳도 있지만 재건된. 현장에도 명판이 붙어 있어 빈센트를 기억하게 한다.

빈센트의 생애를 9개 파트로 나눠 시간과 장소, 함께 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과 고흐의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빈센트의 작품 변화 추이를 시기별로 알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빈센트가 교류한 화가와 화풍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덤이다. 특히 당시 문호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유럽 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각해 보면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소설에도 일본이 경유지로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유럽인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듯하다.

37년이란 길지 않은 일생을 보냈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흔적은 그가 그린 해바라기나 불타는 듯한 나무나 바람결 같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저자는 빈센트의 나라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오랜 기간 근무를 한 덕에 이곳저곳을 탐방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런 수고로움 덕에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눈이 호강하고 가슴 뭉클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빈센트는 단지 그림을 잘 그린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열정 가득한 선교사로, 이후 화가가 되어서는 영혼을 화폭에 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여정을 한 권 책에 담아낸 저자의 우직함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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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의식 속에는 종교적인 영성이 면면히 이어졌고,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개인적으로 성경 번역 작업을 할 정도로 성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만큼 성경 지식도 풍부히 갖추고 있었다.(128p)

[취재노트] 인상주의의 영향
빈센트가 파리에서 발견한 다양한 예술 세계는 처음에는 그를 상당히 당황스럽게 했다. 빈센트는 수년간 현대미술과 거의 단절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중략) 빈센트의 화풍은 파리로 올라와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젊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접하고 급속히 변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변화는 상당한 심사숙고 이후 이루어진 것이었다. (중략) 빈센트가 동시대의 예술을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되고, 이를 자신의 그림과 드로잉에 실제 적용하게 되는 과정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176p)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 매년 빈센트 작품인지 진위 여부를 묻는 요청을 받는 건수가 거의 200건에 달하나, 1970년 이래 진품으로 판정된 작품은 7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중 이 같은 걸작이 새롭게 발견된 것은 반 고흐 미술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빈센트의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235p. 몽마주르의 석양. 1888년작)

빈센트는 종종 충동적이면서 참을성이 부족하고 자기 환상에 갇혀 있는 데 반해, 고갱은 냉정하면서도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고갱 역시 내심 화가 공동체를 꿈꾸기는 해지만, 빈센트는 유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빈센트의 재능을 의심했고, 기이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아를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 (278p)

빈센트는 1889년 7월에 나타난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두 달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는 10월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갈 용기를 냈다. 빈센트는 색상을 배합하여 서로 어울리거나 대조되는 효과가 나도록 함으로써 감정을 표현했다. 12월에 그린 그림에서의 색상은 이전 작품에 비해 강렬하지 않은데, 이는 그의 병세가 조금 진정되었음을 보여준다. (334p)

전 생애를 통해 자연은 빈센트 예술의 출발점이었다. 이 점은 일본 화가들도 마찬가지였으며, 빈센트는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 동시에 일본 판화는 빈센트가 자기만의 화풍을 찾아가는 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빈센트는 현대적이면서도 보다 원시적인 그림을 찾아가려고 했으며, 그 점에서 일본 목판화는 그의 출발점인 자연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4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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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캠핑
이소원 지음 / 알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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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생각지 않게 보름 동안 집안에서 생활을 했다. 햇볕과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그리웠다. 한편으론 집안에서 숙식-먹는 문제가 더 큰 과제-을 해결하는 나날이 마치 야외 훈련 나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조금 빠진 살은 통금이 풀리고 이틀 만에 원복되었다. 자연스런 자유를 꿈꾸며 9월에 읽은 책 ‘퇴근 후, 캠핑’은 읽고 보는 것만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코로나19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 주말이나 여름 휴가 때도 거리 두기를 해야 했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가족 단위 소규모 캠핑이 늘었다고 한다. 반복되는 도시 속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 불편-필수품만 갖췄을 경우-을 기꺼이 감수한다. 사먹는 한 끼가 아닌 직접 불을 피우고 요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 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누리는 것이다.

저자 이소원은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선사한다. 가족과 함께 보낸 사계절을 정지 사진으로 보여 준다. 어쩌면 긴박한 쇼호스트의 유혹(?)보다 더 솔깃하게 다가온다. 아. 캠핑을 가면 이런 맛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독자를 혹한 다음 마음가짐과 함께 갖춰야 할 필수템을 소개한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최소한의 필요를 채울 정도만 갖추는 미덕을 강조한다.

저자의 세심함이 잘 드러나는 부분은 단연 캠핑 요리 레시피가 아닌가 싶다. 계절과 장소에 따라 품을 덜 들이고 한 끼를 차릴 수 있는. 무엇보다 캠핑 출발 전 집에서 재료 전 처리를 하는 것이 좋다는 팁은 바로 적용해 둘만하다. 간단 요리를 배워 볼까 생각하는 사람들은 집에서도 따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비록 ‘불멍’을 즐기진 못해도 집안에서 향초를 켜놓고 ‘초멍’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퇴근 후, 캠핑 책은 일상의 편리를 잠시 접어두고 조금은 불편한 잠자리와 먹거리에 도전해 볼 충동을 준다.

아파트에 층간 소음 분쟁이 많다. 최근 캠핑객이 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소음 발생도 문제가 되고 있다. 안전과 환경 보호 뿐만 아니라 캠핑장 에티켓을 챙기는 센스도 필요하다. 자녀 또는 지인과 함께 하는 설레는 캠핑이 시작과 마침은 개념과 장비를 잘 챙기는데서 비롯된다. 퇴근 후,캠핑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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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식구’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식구'에는 같이 밥을 먹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담겨있으며, 혈연이 기준이 되는 가족이라는 개념보다 단순하면서 유연하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붙일 수 있는 무척이나 따뜻한 말. 그런 의미에서 캠핑에선 모두 식구가 되어 지낸다. 삼시세끼를 다같이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그들과 나누는 매번의 끼니가 즐겁고 소중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식탁에 열과 성을 다하는 나의 캐릭터도 이쯤 되면 이해될 만 하지 않은가! (84p)

캠핑과 여행의 가장 다른 점은 일정이 없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여행을 갈 때도 일정을 최대한 줄이며 다녀지만 그건 일정을 가뿐하게 할뿐 계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캠핑은 어쩌면 계획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흐르듯이 내버려 두는 것 또한 캠핑의 매력이다. (159p)

캠핑에서는 늘 계절을 앞서 만나는 기분이다. 일상은 여전히 겨울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캠핑장에서 먼저 봄꽃을 만나기도 하고, 한낮에 등으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에 여름이 코앞에 왔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봄 캠핑은 생각보다 훨씬 덥고, 가을 캠핑은 생각보다 훨씬 춥다. (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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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임팩트
이주선 지음 / 굿인포메이션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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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2번째 재난(상생) 지원금을 신청했다. 평소 잘 이용하지 않던 동네 조그만 가게를 이용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전자상거래란 말이 생소했다. 시장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서점에 가지 않아도 책을 고르고 주문할 수 있어 신기해 했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기억이다. 초가집과 호롱불을 경험했던 세대들은 어쩌면 가장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읽은 황당한 공상과학소설의 내용은 이제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몇 년 전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컴퓨터 그룹 ‘알파고’의 대국이 화제가 되었다. 기대와 달리 인공지능의 승리였다. 그 당시 놀랐던 기억은 다른 데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정부에서 단기간에 인공지능 기술개발을 하도록 예산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실 앒파고는 어느 날, 단기간에 뚝딱 출현한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반세기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축적된 연구개발 자산-성공과 실패로 쌓여진- 위에서 일구어낸 성과를 단기간의 예산 투입으로 따라 잡으라는 요구는 무리가 아닌가 한다. 물론 우리 연구진들은 과거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적과 같은 성과를 거둔 선례를 여럿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기술은 단지 코딩 등의 기술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명과 암의 양면의 결과를 같이 가져왔다. 4차 산업혁명의 이면에는 윤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일자리 문제도 정부와 기업의 고민거리로 따라올 것이다. 이런 급변을 불러오는 인공지능의 정체와 우리 사회와 삶에 미치는 파장을 예리하게 파헤친 책이 있다. 기업 임원을 거쳐 대학에서 산업조직론, 법경제학, 기업경제학 등을 강의하고 있는 이주선 박사가 쓴 신간 ‘AI 임팩트’가 그것이다.

저자는 먼저 AI의 역사, AI가 지능을 가지게 되는 과정, 향후 일자리와 경제에 미칠 영향력, 정부와 개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적절하게 설명하고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아직까지 인간을 완벽하게 대신할 수준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현존하는 인공지능은 사람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정도다. 스스로 문제를 생각해서 해결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GI) 단계는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도달할 목표점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4장과 5장에서 인공지능이 일자리와 경제에 미칠 영향과 시장과 정부 정책에 초래할 파장을 살펴보고 대응방안을 같이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말은 쉽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이루는 각 주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살피고 준비해야 할 작업들을 시작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몰고 올 파장은 정부, 기업, 학교, 가계, 개인 모두에게 예외없이 영향을 줄 것이다. 폭풍우가 오기 전에 배수로와 창문 등을 점검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쓰나미를 미리 대비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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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란 사람이 수행하는 지능적인 작업을 기계인 컴퓨터가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기술을 의미하며, 인간의 지능을 컴퓨터로 구현해서 궁극적으로 출현하는 '생각하는 기계'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은 자신의 목적 달성에 맞는 지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최종적인 도착지가 될 것이다. (35p)

이런 추세를 보면서 일부 전문가들과 미래학자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과 같은 '지능'을 가지거나 사람을 능가하는 초지능이 나타나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기술적으로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딥러닝은 인간의 지능에 접근할 만한 그런 수준이 아니라 여전히 기술발전의 초보단계에 있고, 해결할 수 있는 특정 문제나 영역에서는 사람을 능가할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보이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나 영역이 여전히 훨씬 많고, 사람과 같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자유자재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직도 너무나 요원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116p)

그들에 의하면 2-3개월 된 아기들의 학습 메커니즘은 기존에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정교해서 태어나자마자 세상의 기본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갓난아이들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많은 데이터를 얻고, 인지능력을 발전시킬 때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사용해서 그렇게 한다.(135p)

d과연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4차 산업혁명에서 발생할 경제적, 사회적 변화의 예측에 유효한 경험이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앞 장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중심 기술혁신이 생산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사람과 기계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187p)


이미 산업 3.0이라 불리는 ICT 혁명이 진행되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더 강화되어 왔고,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소득 불평등과 일자리 부족 문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구조의 확대가 핵심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ICT 혁명 기간 동안 예상과는 달리 생산성의 향상과 경제성 장은 기대에 못 미친 반면, 일자리는 예상보다 상당히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소득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 제기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예외없이 나타나 정권이 교체되거나 정치체제 자체가 붕괴되는 상황이 빈번해진다. (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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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7가지 죄 -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할
한기채 지음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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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개신교회는 현장 예배 대신 비대면 온라인 예배라는 생소한 도전에 직면했다. 작년 상반기에 대구지역 신천지의 집단 감염사태는 이른바 정통교회의 선명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지역 교회에서도 꾸준히 발생한 집단 감염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교회 또는 종교인들이 내부적인 교리를 수호하려는 순수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 제도와 국가 정책, 일반인의 상식에 준하는 행동 준칙 또한 존중해야 한다. 왜냐면 교회는 세상 가운데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회 일반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는 기실 최근의 일은 아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 때 극소수의 개신교인들의 희생과 모범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열매를 거뒀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개신교회도 양적 성장을 했다. 교인수와 교세도 증가했다. 반대로 역기능 또한 늘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면 딴 생각을 하게 된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물론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미자립 상태이고, 소수의 중대형 교회가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이번에 읽은 책 ‘한국 교회 7가지 죄’는 수술용 칼처럼 예리하다. 한국 교회가 밖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속병을 꺼내 보여준다. 하나 같이 속이 쓰린 아픈 부분들이다. 영적 남용, 공의 사유화, 신앙생활의 사사화, 친목과다 신드롬, 공로자 신드롬, 송사 신드롬, 무례한 기독교, 이렇게 7개 죄목이다. 저자 한기채 목사는 기독교 윤리학자다. 저자는 교회 불신의 시대의 원인을 진단하고, 성경(서)에서 해법 또한 찾아낸다. 또한 각 장의 말미에 개인 기도문이 아닌 공동 기도문을 수록해 두었다. 개인 구원에 천착한 개신교회는 공동체성-교회 내부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공존하는-을 회복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마치 평소에 건강관리를 해야 면역 체계가 잘 작동되는 것처럼.

마지막 7장에서 다룬 ‘무례한 기독교’는 참 인상깊다. 개신교인들은 구원을 받았고 진리 가운데 거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일부는 이런 확신이 지나쳐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한 경우를 종종 보이곤 한다. 저자는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 그리고 구령의 열정이 복음 안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록으로 윤리적인 목회에 대한 조언과 성결 교단의 목회자 윤리강령을 소개해 두어 이론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실천 방향까지 제시한다. 개신교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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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공적 영역에서 삶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에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예수님의 제자’의 실천적 삼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신앙을 넘어서 가정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67p)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타 문화와 타 종교와 다른 가치관을 너무 쉽게 깎아내리고 악마화하고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당을 훼손하거나, 사찰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안 믿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거나, 전통 문화를 이교 문화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내가 확신하는 진리에 대해 분명하게 표명하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165-166p)


우리는 지금 권위의 붕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건강한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는 주장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영적 권위는 자리(position)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주장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발적인 인정에 의해 부여됩니다.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권리를 포기할 때, 도리어 영적 권위가 생깁니다.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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