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친구, 반 고흐 -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의 여정 인문여행 시리즈 16
정철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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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서울 구경 다녀온 것이 자랑이 되던 때도 있었다. 풍문으로 들은 것과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만지고, 먹어 본 경험치를 당할 수 없는 법이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일부 국가와 지역을 제외하고는 직접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발이 묶였다. 그러던 차에 발견한 책. 영혼의 친구 반 고흐는 요즘 유행하는 영상 매체-여행 다큐 또는 디지로그 등-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맛이 우러난다. 수년에 걸쳐 저자가 직접 현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빈센트 반 고흐를 다룬 저작은 참 많다. 특히 빈센트가 동생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은 그의 그림과 함께 또다른 감동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저자 정철은 37년 간의 강렬하고 치열한 삶을 살다간 빈센트와 주변 인물들이 거주했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그의 손길과 숨결을 사진과 텍스트로 옮겼다. 네덜란드의 목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빈센트는 초기에는 신학과 선교사 활동을 한다. 이후 진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던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한 험난한 수련을 시작한다.

이 결정으로 인해 보수적인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진 것과 경제적인 어려움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또한 데생과 드로잉 등 체계적인 화가 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는 험난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 했다. 화랑에서 일하며 재료비와 생활비를 부쳐준 동생 테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빈센트 반 고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빈센트의 삶의 궤적을 좇아 동네와 건물을 찾아 나선다. 유럽을 강타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참화에 사라진 곳도 있지만 재건된. 현장에도 명판이 붙어 있어 빈센트를 기억하게 한다.

빈센트의 생애를 9개 파트로 나눠 시간과 장소, 함께 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직접 촬영한 현장 사진과 고흐의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빈센트의 작품 변화 추이를 시기별로 알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빈센트가 교류한 화가와 화풍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덤이다. 특히 당시 문호를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유럽 문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각해 보면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소설에도 일본이 경유지로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 유럽인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온 듯하다.

37년이란 길지 않은 일생을 보냈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흔적은 그가 그린 해바라기나 불타는 듯한 나무나 바람결 같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저자는 빈센트의 나라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오랜 기간 근무를 한 덕에 이곳저곳을 탐방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런 수고로움 덕에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눈이 호강하고 가슴 뭉클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빈센트는 단지 그림을 잘 그린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열정 가득한 선교사로, 이후 화가가 되어서는 영혼을 화폭에 담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여정을 한 권 책에 담아낸 저자의 우직함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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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많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의식 속에는 종교적인 영성이 면면히 이어졌고,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개인적으로 성경 번역 작업을 할 정도로 성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만큼 성경 지식도 풍부히 갖추고 있었다.(128p)

[취재노트] 인상주의의 영향
빈센트가 파리에서 발견한 다양한 예술 세계는 처음에는 그를 상당히 당황스럽게 했다. 빈센트는 수년간 현대미술과 거의 단절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중략) 빈센트의 화풍은 파리로 올라와 인상주의 화가들이나 젊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접하고 급속히 변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변화는 상당한 심사숙고 이후 이루어진 것이었다. (중략) 빈센트가 동시대의 예술을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되고, 이를 자신의 그림과 드로잉에 실제 적용하게 되는 과정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176p)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 매년 빈센트 작품인지 진위 여부를 묻는 요청을 받는 건수가 거의 200건에 달하나, 1970년 이래 진품으로 판정된 작품은 7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중 이 같은 걸작이 새롭게 발견된 것은 반 고흐 미술관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빈센트의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235p. 몽마주르의 석양. 1888년작)

빈센트는 종종 충동적이면서 참을성이 부족하고 자기 환상에 갇혀 있는 데 반해, 고갱은 냉정하면서도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다. 고갱 역시 내심 화가 공동체를 꿈꾸기는 해지만, 빈센트는 유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빈센트의 재능을 의심했고, 기이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아를에 오는 것을 망설였다. (278p)

빈센트는 1889년 7월에 나타난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두 달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는 10월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갈 용기를 냈다. 빈센트는 색상을 배합하여 서로 어울리거나 대조되는 효과가 나도록 함으로써 감정을 표현했다. 12월에 그린 그림에서의 색상은 이전 작품에 비해 강렬하지 않은데, 이는 그의 병세가 조금 진정되었음을 보여준다. (334p)

전 생애를 통해 자연은 빈센트 예술의 출발점이었다. 이 점은 일본 화가들도 마찬가지였으며, 빈센트는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 동시에 일본 판화는 빈센트가 자기만의 화풍을 찾아가는 데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빈센트는 현대적이면서도 보다 원시적인 그림을 찾아가려고 했으며, 그 점에서 일본 목판화는 그의 출발점인 자연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4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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