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
다니구치 지로 지음, 심선지 옮김 / 이숲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고독한 미식가'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는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다. 작가는 후기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누구의 인생에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사건이나 경험이 한두 번은 찾아온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명의 남자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이러한 결정적인 경험을 동시에 경험한다.

 

'쿠보타'는 잦은 야근과 특근으로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정리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 내몰린 사십대 가장이다. 벌써 한참 전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고, 게다가 몸의 이상보다 더 심각한 마음의 상처까지 있지만,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차마 그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만 고통을 삭히고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회사 일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붓는 사십 대 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다른 한 명은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이지만 새엄마와 재혼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가족과 대화를 거부하고 마음을 문을 닫아 버린 십 대 소년 '타쿠야'이다. 그는 밤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를 질주한다.

 

여느 때처럼 오토바이로 밤 거리를  질주하던 타쿠야는 피곤에 절어 깜박 졸음 운전을 하던 쿠보타의 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치명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던 두 사람은 의식불명인 채로 아슬아슬하게 생명의 끈을 놓지를 않는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타쿠야보다 더 강했던 것인지 쿠보타의 의식이 먼저 돌아온다. 그런데, 자기의 몸이 아닌 타쿠야의 몸으로 의식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한편, 쿠보타의 의식이 떠난 육신은 죽음을 맞이한다. 어쩔 수 없이 타인의 몸을 빌어 깨어났지만 남겨진 아내와 아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쿠보타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려고 하지만, 자기의 의식은 일시적으로 타쿠야의 몸을 빌었을 뿐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타쿠야의 몸을 빌어 쿠보타는 아내와 아들에게 진심을 담은 작별인사와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영원한 이별의 길을 떠난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매사에 반항적이었던 타쿠야도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깨닫게 된다.

 

'환생' 또는 '몸 바뀜'같은 소재는 그다지 새롭지 않고,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도 독자의 예상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기 때문에 약간 진부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감성적 터치와 정교한 디테일은 여전히 좋고 그림체도 수준급이다.

 

늦은 시간, 우울한 퇴근할 때면 어쩌다 한 번씩, '도대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다니지?'하는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하라고 현인들은 가르침을 주지만, 현실에서는 '도저히 행복하지 않는 일을 하는 대가로 행복을 사기 위한 돈을 버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사는 그것이 과연 행복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