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지중해에 빠지다 - 화가 이인경의 고대 도시 여행기
이인경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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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책 제목을 잘못 정한 것 같다. 차라리 '화가 이인경의 고대도시 여행기'라는 부제가 제목으로는 좀 무미건조하긴 하지만 이 책의 성격을 정확히 말해준다. 생물학적 나이로 보면 분명 아줌마로 편입되긴 하겠지만, '아줌마'라는 단어에 내재된 사회, 문화적인 의미와 지은이의 이력이나 글 속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쉽게 겹쳐지지 않는다. '지중해'도 지은이가 여행한 3개국 중 주로 그리이스에만 해당되는 것이니, '지중해에 빠지다'도 별로 적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책은 지은이가 올드 월드라고 명명한 그리이스, 이스라엘, 이집트를 혼자서 여행하고 돌아와 쓴 여행 에세이다. 요즘 TV 방송을 점령한 '걸 그룹'마냥 예쁘장한 이미지들만 잔뜩 모아 놓았지만 알맹이는 좀 허술한 그런 여행기는 아니다. 사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글이 중심이다. 그런데, 그 글이라는 것이 여행 그 자체의 이야기는 별로 없으므로 재미있는 여행 에피소드가 연방 튀어나오는 가벼운 글을 기대한다면 무척 실망할 것이다.

홀로 여행지를 걸으며 스쳐 갔던 온갖 생각과 감정, 느낌과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다 담고 있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면 '50년을 살아온 일들을 두서 없이 떠드는 아줌마의 수다'라고도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여행 초반에는 단순히 길을 나서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자고 시작했다는데 점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50대 여성의 내면에 잠재된 온갖 갈등과 고민이 혼자만의 여행을 계기로 표출되고 해소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일기장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젊고 가벼운 여행기와는 달라 보이는 이 책을 골랐다. "2008년, 나는 쉰 살이 되었다. 이제 정말로 내 인생의 반을 넘었다는 실감이 났다"는 첫 문장도 좋았다. 그런데, 처음의 기대와 달리 읽는 내내 그다지 감흥이 오질 않았다.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지중해의 바다 빛깔, 뜨겁게 이글거리는 이집트의 태양도 실감있게 표현되어 있을 뿐아니라 그리이스 신화와 예술에 대한 소개나 성경 속 인물 이야기도 나름 유익하다. 문장이 나쁘지도 않다.

그런데, 돈으로 내면의 빈곤을 덮는 해외'관광'이 아니라 자아를 탐색하는 의미있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와 쓴 지은이의 모범적인 글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온하게도 나는 지은이의 글에서 지금 대한민국의 상위 중산층 내지는 지식인들의 내면에 잠재된 견고한 '의식'을 읽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줌마'를 그렇게 내세우지만 않았어도 덜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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