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필사집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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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일차부터 5일차까지 총 다섯 편의 시를 필사하고 독후감을 썼는데요, 그 중 4일차를 리뷰로 등록하고자 합니다.(전체 리뷰는 네이버,인스타 게시 중)

https://m.blog.naver.com/homany783
https://instagram.com/2013dp4ever


<4일차> 2025.11.17

"야구에서 타자들이 홈런을 의식하면 오히려 볼이 빗맞고 자유롭게 볼을 쳤을 때 홈런이 나오는 것처럼, 굳이 염원하지 않을 때 행복이 온다는 것. 한 수 배울 일이다."(_나태주)


'의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홈런을 염원하며 배트를 휘둘렀을 마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태주 시인은 "의도하면 오히려 본질이 흐려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연습 때는 잘 됐던 타격이 시합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리라.
다시 말하면, 야구 선수의 마음이 의도를 품은 미래에 가 있었기 때문에 마운드로부터 뿌려진 격렬한 구위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얘기하는 "마음챙김"과도 맥을 같이 하는데, "마음챙김"은 현재에 집중하며 과거와 미래로부터 전해지는 욕망의 끈을 끊어내고, '지금 이곳에(here and now)' 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대한 아쉬움에 사로잡히거나 미래의 욕망을 좇느라 현재를 잃어버리는 일이 그러하다. "더 잘 했으면 좋았을 걸~",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가치있는 거야."라는 생각은 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초라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후회하며 앞으로 달려나가기를 반복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굴레를 가리켜 영원히 만족될 수 없는 불행의 고리라고 일컫는다.

세상 사는 이치가 모두 매한가지일까?

독일의 문학가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시를 통해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행복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대는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그대 것일지라도

이미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동안
그대는 목표를 가지고 쉼 없이 달리지만
무엇이 평안인지 알지 못한다

모든 소망을 단념하고
목표와 욕망도 잊어버린 채
행복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을 때

행위의 물결이 그대 마음에 닿지 않고
그대 영혼은 비로소 쉬게 될 것이다

헤세는 '행복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을 때'야 비로서 평안해진다고 말한다.

그 말인즉슨 "현재 충분히 행복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 끼 식사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어떤 산해진미도 식욕을 자극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 행복한 나의 시간"이 곧 과거가 되고 미래로 확장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과거의 아쉬움을 토로하며 행복할 미래만 바라볼 게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며, 삶 그 자체를 즐기는 것만이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닳아야 한다.

'나의 힘이 미치는 시간'이란 오직 '지금이라는 찰나'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이 이러한 통찰을 뒷받침하고 있다.

#시가나에게살라고한다 #필사단 #시가나에게살라고한다필사집 #서평단 #나태주 #시집필사 #행복 #헤르만헤세 #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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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은 기계 - 인공지능 시대를 마주하는 인지심리학자의 11가지 질문
정수근 지음 / 심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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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 박사의 [마음을 담은 기계]

완독 후,

정수근 박사가 이 책의 제목을 [마음을 담은 기계]로 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덮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구생태계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인간이 광막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인간을 이해해줄 것만 같았던 외계 생명체를 기다리다 지치기라도 한 것처럼
결국 자신을 빼닮은 존재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며 공감한다.
인간의 자기지향능력을 모방하고,
인간이 수행하는 많은 활동 분야에서 이미 인간 수준에 준하거나 인간을 넘어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속도가 점차 가속화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기준은 갈수록 모호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 책의 제목, [마음을 담은 기계]가 의미하는 것은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인공지능 환경에서 오로지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빗댄 우려 섞인 은유이거나, 인간에 버금가는 또 다른 존재의 출현을 알리는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940년대 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던 인공지능은 최근 들어 급속한 성장세와 함께 인간의 모든 생활에 침습하고 있다. 가령 스마트폰과 PC, 인터넷, 가전기기, 자동차 등 우리 일상을 둘러싼 거의 모든 환경에서 조용히 그리고 매우 효과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편리함에 서서히 중독되어가는 현대인의 모습은 낯설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뇌와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아이들의 마음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AI시대가 시사하는 여러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인간의 뇌를 모방하여 만든 인공지능의 작동원리는 제한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로직을 지니며, 이로써 인간의 진화 과정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졌다. 인간 뇌를 닮은 인공신경망을 다양한 조건에서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생물학적 한계에 갖혀 있던 뇌과학과 심리학 분야에서 장족의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다. 특히 인공지능 심리상담 서비스나 가상현실을 통한 심리치료 등은 인공지능이 심리학 분야에 적극 활용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제공한 데이터나 과제에 따라 제한적인 모습을 띤다는 한계가 있지만, 인공지능을 학습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보처리 기전을 깊이 이해하고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데서 의미를 갖는다.

반면,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문제점도 존재하는데, AI가 만능도구처럼 인식되면서 필요한 답변을 신속히 제공받는 것에 익숙해진 인간이 더이상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물론 단순한 업무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복잡한 사고가 요구되는 활동에서 과도하게 인공지능에 의존할 경우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부작용은 어린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이는 아이들이 성장환경에서 지속적으로 AI를 접하면서 인공지능을 친근한 존재로 인식하고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면서 인간끼리 맺는 사회적 관계와 존재감을 인공지능에게서 느끼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렇게 될 경우 아이들이 인공지능이 가진 편향과 고정관념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에 성장과정에서 옳바른 개념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반말이나 무례한 행동으로 원활한 상호작용을 했던 경험은 아이들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으로 우리 모두가 인공지능 리터러시를 가져야할 이유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용자에게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니며, 그것이 제공하는 정보가 통계적 확률에 따른 출력이고, 언제라도 오류와 편향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후반부에서 '마음'을 다룬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작가 정수근의 독특한 시선이 담겨 있기도 하고 어쩌면 그가 말하고 싶었던 핵심이 여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더 집중해서 읽었다.

정수근 박사의 "인공지능에게도 마음이 있는가?" 라는 질문은 곧 다가올 '특이점'과도 관련이 있고 인간의 고유 영역에 대한 울타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기에 이 질문을 마주하고 나는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구도를 생각하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독특한 시선이 등장한다.
그는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될까?" 라는 질문에 "마음을 느끼는 주체도 인간이고,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부여하는 것도 인간이다."라고 답변한다. 즉, 인공지능 자체의 능력보다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평가에 따라 마음이 투영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선택권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음을 시사한다.

이어서 그는 인공지능이 결국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 인간과 미묘한 불일치도 존재하지 않을 때가 온다는 가정하에, "인공지능이 진짜 인간과 같은 마음을 가졌는가" 혹은 "언젠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처럼 답을 알기 어려운 질문에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마음을 투영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세상을 현시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을 더 인간같이 만드는 데만 집중하는 실태를 생각하면 많은 시사점을 남기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편리함에 중독되는 것은 반드시 치러야할 댓가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배웠다. 더불어 앞에서 저자가 언급했던 인공지능 의존성에 따른 부작용이 단순히 정보 영역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정서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완전히 예속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수근 박사는 인공지능의 개발방향과 허용범위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용자의 리터러시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제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차가운 기계다. 그것이 특정 분야의 인공지능이든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좀 더 확장된 형태든 인간이 제공한 데이터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인간을 능가하는 연산능력과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보를 연결하고 조합하는 능력은 마치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아는 존재 혹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오인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인간과 인공지능 각각의 특장점이 그 존재 자체의 우열을 의미할 수는 없다. AI는 인간이 만든 도구로서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고 확장시키는 역할로서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양질의 데이터 생산자로서 자신의 인지기능을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건강한 AI환경을 만드는데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한편 현재 우리의 AI환경은 개발과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으로 신기술을 광고/홍보하며 그것에 대한 소비를 촉진시키는 데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사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주는 편리함에 취해 있느라 자신의 모습을 또렷이 바라볼 기회가 없었던 듯하다.

정수근 박사는 인간의 마음인 "월드 모델"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것이 가진 유연한 대처 능력과 과제수행 능력이 미래를 예측하는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바로 지금이 우리가 새롭게 경험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인간 고유의 융통성을 발휘할 때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인공지능을 가리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한 이유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하며 이 글을 마친다.

**본 리뷰는 출판사 푸른숲(심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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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제로 편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은지성 지음 / 달먹는토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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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성 작가님의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보통 제목을 보고 책의 내용을 떠올리기마련인데, 이 책의 경우에는 "나는?" 이라는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48년간 뜻대로 잘 일궈온 인생 아니던가 싶었는데 가슴이 턱 막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대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서랍 속 꽁꽁 숨겨둔 버킷리스트를 꺼내니 자전거 세계여행과,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홀연히 떠나야 할까? 먹고 싶었던 세계 진미를 찾아 자전거 패달을 밟아야 할까? 작가가 말한 "생각대로"가 이런 의미일까?

물론 아니다.
은지성 작가는 심신이 지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쓸 당시 저자는 공황장애로 고생하던 때였고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이 책의 저술이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한다. 그는 "미래를 알아야 할 땐 과거의 역사가 필요하듯, 무너진 생각을 바로잡는 데는 '생각대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쓰여진 이 책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과 용기를 지닌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에는 빠져있지만 같은 의미에서 작가 은지성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의 존재가 생각대로 산 사람이 이뤄낸 명백한 증거일테니 말이다.

이 책은 총 다섯 PART, 서른 한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너무 유명해서 이름 정도는 매우 익숙한 분들이며, 간혹 얼굴도 아는 친숙한 분들도 있다.
각 이야기에 붙은 서른 한 개의 소제목은 책의 주제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 "생각대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서른 한 가지 답변처럼 보인다.

인생의 방향성, 삶의 의미, 인간의 주체성, 자기신념,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태도 등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래와 과거, 타인의 시선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기 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제약과 편견을 극복해 나가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근간은 동일한 '철학'으로 회귀한다.
그 철학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그것은 물살을 거스르는 것과 같이 힘겹고 억지스러워 보일 때도 있지만,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믿음을 지켜나가는 모습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짧막한 이야기에 덧붙인 플러스 메세지는 위인들의 이야기가 전하는 통찰을 좀 더 친근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전달하고 있어 이 책의 내용이 곧 우리의 이야기임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나는 이따금 "내 삶의 주인됨"이라는 정당한 권리를 망각하거나 양보하고 살았다. '나이듦'이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힘들고 지치는 마음에 이런 합리화라도 없었으면 어떡하냐고 투정부리기 바빴다.
그러나 캔버스에 그려진 먹기 좋은 떡을 좇느라 현실은 늘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웠다. '~만 하면(있으면)'이라는 욕망의 항아리는 채워질 줄 모르고 늘 허기진 속내를 내비쳤다.
타인의 시선이 만든 허울 좋은 것들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것이 인생의 성취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우리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경제적인 문제, 인간관계가 '나'를 지금 이곳에 처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다'고 말이다. 감히 말하건데 대부분의 사회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이와 대동소이 하지 않을까? 아님 나만의 자기위로 일까?

저자가 강조하는 "주체적인 삶"이란 삶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각도나 살아가는 템포와 별개로 자신이 지닌 고유한 색깔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고유함이란 유일하기에 빛나는 것으로 같은 것이 아니라 비교할 수 없고 희소하기에 더욱 빛나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 다른 인생을 같은 기준으로 재단하는 과오를 범하는 건 어리석은 일임을 서른 한가지 인생을 통해 이야기한다. 가령 책 속에 등장하는 <토머스 칼라일>은 침묵의 글로, <도리야마 아키라>는 순수한 천친난만함으로 빛나는 인생을 설계했다. 만일 그들이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의 역사에는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와 드래곤볼을 그린 희대의 만화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념이라는 굵은 뿌리에에서 뻗어나온 인생의 가지는 저마다의 방향으로 성장한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한 굵고 풍성한 가지, 이제 막 자라나는 얇고 앙상한 가지, 음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빛 바랜 가지까지 자신의 속도로 피고 지는 단 한 번의 삶을 누가 저울질할 수 있겠는가?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를 보며 미(美)의 우열을 가려서 무엇하겠는가?

은지성 작가의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스스로의 아름다움, 그 고유함을 잊고 사는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로 저마다의 쓰임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일깨워 준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만의 빛을 발산할 때 비로서 이 세상이 아름다운 한 폭의 아름다움이 된다는 이치를 이야기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몹시 지쳐 몸과 마음이 괴로운 분이나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과 도전의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본 리뷰는 출판사 [달먹는토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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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우일연 지음, 강동혁 옮김 / 드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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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연 작가님의 [주인 노예 남편 아내]

작가는 이 이야기를 1848년에서 1852년에 일어난 '저항과 자유를 향한 희망의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노예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에서 두 노예가 추운 겨울 자유를 향해 탈출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 메이컨, 로버트 콜린스라는 한 백인의 집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의 집 한 켠 흑인 노예, 엘렌과 윌리엄이 있다. 그들은 이동, 교육, 결혼, 재산소유의 자유가 없다. 그저 콜린스家에 있는 개, 돼지, 닭, 식탁, 의자와 같은 재산 목록의 일부일 뿐,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노예제'라는 허구에 빼앗겨버렸다.

엘렌과 윌리엄은 서로를 사랑했고, 자유를 갈망했으며,
자신의 아이들이 자유의 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기를 원했다.

결국 엘렌은 백인 남성으로, 윌리엄은 주인을 모시는 흑인 노예로 위장한 채 메이컨을 떠난다.

1,600km(메이컨~필라델피아)의 고되고 힘든 여정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앞만 보고 나아간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도처에 도사리는 위기와 고난도 그들의 지혜와 용기, 자유를 향한 강건한 의지 앞에 길을 내어준다.
달리 표현하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속 깊은 응어리가 그 모든 어려움을 보잘것 없게 만들었는 지도 모른다.
목표는 생존! 살아서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들을 짓밟는 시대의 모순을 비웃기라도 하듯 엘렌은 백인 남성을 연기한다. 윌리엄은 그의 충직한 노예로서 그리고 그녀의 남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다.

컴컴한 어둠 속으로 내딛는 그들의 발걸음은 지금 우리가 책을 통해 보는 시공간의 이동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을 것이다.

성공해도 법의 테두리에서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으며, 실패한다면 가혹한 고문과 이별만이 그들을 기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딛은 무거운 발걸음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죽음을 불사한 그들의 여정이 자유를 향한 그것과 일치한다는 잔혹한 역설을 느껴보려 노력한다. 누군가의 소유물로서 존재한다는 가학적인 개념을 머리 속에 욱여넣어서라도 그 아픔을 헤아리려 시도한다.




19세기 미국은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 시스템으로 자본시장을 돌렸다. 그들이 탈출을 감행한 시기는 미국이 '신의 뜻(Manifest Destiny)'에 따라 영토를 확장하던 때였고, 이는 각 지역들간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켰다. 마침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 찬반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역사의 변곡점 에 엘렌과 윌리엄이 있었다.

그들의 탈출은 "인간의 존엄을 누가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우생학, 골상학, 홀로코스트, 상놈과 양반, 귀족과 천민, 백인과 흑인, 순종과 잡종을 나누는 인간의 허구는 스스로를 얼마나 잔인하게 변모시킬 수 있는가?"를 돌아보게 한다. 계층의 피라미드 그 꼭지점에 서려는 이기적인 탐욕을 과학과 종교, 법이라는 껍데기로 칭칭 싸매 그 속에 은신하려 했던 역사 속 인물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책 속에 소개되는 노예 고문 장소인 '슈거하우스'는 주인의 요청에 따라 고문 방법, 횟수, 시간 등을 주문받는다.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영원한 계단'은 고속으로 돌아가는 챗바퀴 위에서 노예가 끊임없이 내달리는 고문으로 만일 지쳐 떨어지면 팔다리가 찢겨나갔다고 한다. 도처에서 열리는 노예시장은 경제 논리로 인간을 사고 팔았던 탐욕적인 장소를 대표한다.

"경매인 두 명이 탁자에 올라가 있었다. 한 명은 망치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입찰가를 불렀다. 그들 뒤와 아래에 팔릴 사람들이 서 있었다. 혼혈 여성이 올라왔다. 그녀는 노란색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으며, 두 자녀와 함께 있었다. 아기가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또 다른 아이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쥐고 있었다. 어머니의 시선은 양옆을 빠르게 오갔다."

도덕성과 공감능력을 상실한 당시 백인들의 모습은 집단적 광기를 띠고 있었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은 피부색에 가려졌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가족의 외침은 편견에 침묵되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믿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포함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 평등과 자유, 그리고 행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1848년 흑인에겐 실체없는 허상이었다.

법과 원칙,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안전장치가 중립적이어도 인간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있음을 그당시 백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던 <캘훈>의 말을 통해서도 남부 백인들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그들과 처지를 바꾸게 될 것이다. 여태껏 자유롭고 개명된 사람들에게 닥친 그 어떤 모욕보다 큰 모욕이자, 우리로서는 탈출할 수 없는 모욕이다. (중략) 우리 자신과 조상들의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우리의 땅을 과거 우리가 부리던 노예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이곳은 무질서와 무정부주의, 가난, 비참함, 불행이 영원히 사는 곳이 될 것이다."

엘렌과 윌리엄은 자유주인 필라델피아에 도착하면서 윌리엄 스틸, 로버트 퍼비스, 바클레이 아이빈스, 윌리엄 웰스 브라운 과 같은 굵직한 반노예 활동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크래프트 부부의 개인적인 불편과 자유에 대한 욕망은 '노예제 폐지'라는 거대한 명분으로 변모했다.

시대를 풍자하는 그들의 모험정신과 믿을 수 없는 임기응변, 그리고 강렬하고도 책임감 있게 서로를 아끼는 모습은 북부의 수많은 흑인 공동체들을 열광케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유'의 상징이며, 유색인종의 '미래'가 되었다.

'백인이 속박했던 흑인'의 역사가 아닌,
'흑인이 인내했던 백인'이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흑인에게 백인은 어쩌면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노예제'라는 거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악한 인종이지 않았을까?

손에 쥔 것을 잃을까 두려워 채찍과 사슬, 법과 과학을 들이대며 어떻게든 '빈껍데기 허상'을 지켜내려 조급해하는 힘 없는 존재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흑인이야말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속박하는 데 있어 그 어떤 명분이나 이유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너그러운 존재는 아니었을까?

라는 헛헛한 상상을 하게 된다.

크래프트 부부는 자신들의 투쟁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유색인종들의 소망과 갈망에 공명하듯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그 위에 당당히 섰다.

어쩌면 세상은 누가 더 큰 울림으로 공감을 얻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정해지는가 보다. 엘렌과 윌리엄이 결국 자유를 얻어냈으며, 오늘날 그의 후손들이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유명한 말 중, "도덕적 우주의 호선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굽어진다."는 뜻 역시 인간 본성이 마땅히 지향하는 방향은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맥락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누구나 그 맥락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주인 노예 남편 아내]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엘렌과 윌리엄의 탈출기는 번역가가 후미에 밝힌 것처럼 책을 뚫고 나와 심장을 진동하고 일상을 파열시킨다.

오늘의 나는 감히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절박했던 상황을, 만끽했을 기쁨을 상상한다.140여 년이 흐른 지금 크래프트 부부의 탈출이 도덕적 호선의 방향을 얼마나 틀어놓았는지를 가늠한다. 그들에게 이 엄중한 임무를 일임받은 것처럼 말이다.

우일연 작가님의 [주인 노예 남편 아내]는 한 노예 부부의 탈출기를 통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인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허구 속에서 응축하고 폭발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진보하는 도덕적 존재임을 넌지시 비춘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 수많은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위에 세워진 '자유 시대'임을 상기시킨다.

번역가 강동혁 님의 말씀처럼, 이 이야기를 접한 나는 그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세상을 나누는 수많은 기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도덕과 윤리가 특정집단에게만 호의적이지는 않은지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가 도덕적 우주의 호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크래프트 부부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주인노예남편아내 #크래프트부부 #우일연 #퓰리처상 #퓰리처상수상작 #피카출판사 #서평단 #가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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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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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 작가님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삶의 형식으로서의 철학

2025년 현재 세계의 평균수명은 73세이며, 국가별로 80세 이상의 장수국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의학의 발달이 전담했던 생명연장의 막중한 임무는 이제 유전학과 AI에게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인간은 자고이래 생명연장에 대한 욕망을 부풀리며 그에 맞는 해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미래학자이자 과학자인 #레이커즈와일 은 그의 책 [ #특이점이온다 ]에서 인간이 서서히 기계지능과 융합함으로써 마침내 생명연장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혁신적인 발상은 진시황이 갈망했던 '불로초(不老草)'를 손에 넣게 됨으로써 인간은 더이상 필멸의 존재가 아니라,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한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 철학자 서동욱은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한 인간의 '끝(죽음)'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 그 가 말하는 "영생(永生)"은 물리적 존재의 영구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거대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선조들이 이뤄낸 정신적 유산과 관습, 가치관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과정을 통해 "삶에 대한 형식", 즉 철학의 이음으로써의 "영원한 생명"을 논한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이를 두고 화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실체의 삶이 다른 실체로 옮겨감으로써 유한한 삶 을 지속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전체성과 무한>에서 출산의 의미에 대해 "나는 내 아이다. 아버지 됨은 타인이면서 나이기도 한 낯선 이와 맺는 관계다."라고 언급하며 영적 개념으로까지 보이는 화체의 애매한 정의에 설명을 더했다.

같은 관점에서 '수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수명이란 것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나누는 지점까지의 '시간의 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철학적 생명이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영속적으로 거듭 태어난다면 '수명'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영원한 시간과 제한된 시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단순히 '출산' 행위가 한 인간의 (철학적)생명을 무한히 연장시키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진화론적 측면에서 한 인간의 정신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승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기후위기나 환경오염, 자원고갈을 걱정하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유한한 자기 생의 계획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맞춰 짜는 사람의 시간은 죽은 뒤에도 계속 이어져 나간다고 주장한다. 즉, 치열한 경쟁에서 좀 더 가치있는 생각이 자연선택되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철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수명이란 자신의 사유가 미치는 시점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로 가치없는 생각은 운좋게 다음 세대로 전승되더라도 곧 자연도태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출산' 자체가 생명 연장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철학은 인간을 규정하는 '삶의 형식'으로서, 사는 모습으로 출현하며, 사유하는 방식으로 내재하고, 타자 안에서 새롭게 발현한다.
서동욱 작가가 앞에서도 언급했던 세계관과도 맞닿는 지점으로 나의 가능세계와 타자의 가능세계가 만나 하나의 차별화된 현실 세계를 펼친다. 미세한 차이로 존재하는 무수한 가능세계들이 충돌과 합체를 거듭하며 '창조'를 이룬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삶 속에는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내재하기 마련이며, 그 안에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자유와 금지, 부분과 전체, 소통과 불통, 다양성과 획일성이라는 인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삶'이라는 직물을 직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에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 철학일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사유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서동욱 작가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는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바꿔 얘기하면 태도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도 고쳐쓸 수 있을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삶을 대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정의 최종 후보에 오른 두 가지 선택은 아주 미세한 차이를 지닌 것이고 그러한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삶에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강조하는 타당한 근거가 된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있듯이 "삶의 무의미를 건너는 법"이라는 문구는 서동욱 작가의 책을 완독한 사람으로서 나의 인생이 기대되는 이유이며, 이미 그 새로운 결말을 위해 사유하는 원동력이 된다.
끝으로 귀중한 말씀을 책으로 펴내신 서동욱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저의 리뷰가 곧 출간되는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새로운 결말을 위해 작은 보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본 리뷰는 해당 도서를 김영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10월 말 서동욱 작가님의 신작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출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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