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 다빈치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사진가 김 영갑 선생님이 제주도 중산간에 정착했던 20년전에는 중산간을 찾는 이가 없어서 온종일 돌아다녀도 사람을 볼 수가 없었다. 운이 좋은 날에나 목동들과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빛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코를 막히게 하는 역겨운 냄새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고요와 적막, 평화로움에 취해 웃고, 울다 보니 어느새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나 그의 비밀화원을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비포장의 도로가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전봇대가 세워지고 펜션이 들어서면서 고요와 적막은 사라지고 평화로움도 깨지고 말았다. 잃어버린 행복을 뒤늦게 깨달았으나 되돌릴 수 없기에 못내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닌,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 안개이다. 바람, 사진, 구름은 하나같이 사라짐과 소멸을 예정한다. 하찮음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존재들의 삶의 의미를 보고, 그리고 위대한 자연성을 껴안기 위한 그의 기다림으로 점철된 사진들.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최고의 순간인 삽시간의 황홀’,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고 한다.


책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사진들, 야트막한 구릉에 나무 네다섯 그루가 서 있는 거의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를 잡고, 때에 따라 달라지는 구름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들은 그가 담고자 했던 바람과 빛과 자연성, 그토록 사랑했던 제주의 속살이었다.


작가 소개글에 나온 것처럼 바람의 사진가김 영갑 선생님에 의해,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의 변화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안겨드는 제주의 바람과 구름이 비로소 사람의 것이 되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처럼, 제주도에 미친 그의 사진을 통해 제주도는 온전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파노라마 기법이 아니면 전해질 수 없는 광활함과 웅장함을 통해, 휴가때 뭍의 사람들이 보고 가는 탄력 잃은 외피가 아닌, 촉촉하고 생생하면서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제주의 속살로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제주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축복과도 같은 일이다. 뷰파인더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어떤 때나 다 똑같이 보이는 막눈을 가진 초보 사진가인 나에게는 김 영갑 선생님의 눈을 통한 삽시간의 황홀을 맛볼 수 있었던 감동적인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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