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평사리 클래식 2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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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지도적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여 주는 준칙이다. 과거 영광스럽게도 정복 착용 하인으로 7년 동안 근무했었고, 품위를 손상시켜가면서까지 세관 일자리를 수락하느라고 바보같이 그 자리를 그만두고 만 늙은 하인의 입을 빌어, 영국 가정을 구성하고 있던 수많은 하인, 하녀들 각각에게 그동안 쌓아 둔 지침을 알려 주면서 격려하고 있다.

18세기의 영국 가정에서는 재산 정도에 따라 규모의 차이가 있는 종복을 부리고 있었다. 지침을 하달받은 하인의 종류는 집사, 요리사, 정복 착용 하인, 마차꾼, 말구종, 재산관리 집사, 문지기, 침실 담당 하녀, 몸종 하녀, 청소 담당 하녀, 버터 제조 담당 하녀, 보모, 유모, 세탁부, 하녀장, 여자 가정교사로 16종이나 된다. 주인 가족의 생활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인 생활을 했다. 옛날 우리 나라의 양반과 노비처럼 뚜렷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고용 계약으로 맺어진 지금의 회사원과 비슷한 처지라고 보아도 되겠다. 하인들 내부에서도 상당한 계층이 있었고, 각각 하는 일에 따라 권한과 의무가 달랐으나, 최대한 주인의 재산을 우려내려는 관점과 노력은 일치했다. 조나단 스위프트 생전에 이 책이 출판되었다면 하인들에게 테러를 당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지침은 구체적이다.

여러 가지 기발한 상황 설정들에서 일어난 끝없는 기만과 복지부동, 횡령과 남용 등은, 웃고 난 뒤의 씁쓸함과 반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상사의 발소리가 들리면, 들키지 않기 위해 모든 창을 닫는 단축키 사용법, 상사의 눈에 띄지 않게 조는 법, 개인적인 일로 몇 시간씩 외출하고도 천연덕스럽게 돌아오는 법 등 현대판 하인들에게도 떠다니는 지침들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래서 줄곧 주인하인을 각각 상사부하 직원으로, 하인의 종류를 각 부서로 대치하여 읽어도, 쓰여진지 3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내용이 되었고, 내 안에 있는 하인 의식도 간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이 책을 읽고 따라해야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작품 해설의 작가 소개 코너는 아주 유용했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워낙 오래전의 작가이고, 그의 작품은 어렸을 때 세계명작으로 읽고 더 이상 읽지 않았으므로, 작가에 대해서는 처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작품 자체와 작품이 쓰여진 시대 상황, 작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과 시대, 작가를 모두 알게 해 준 작가 소개 코너 덕분에, 이후 풍자의 대가인 그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좀더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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