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라고 압력을 가했던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016년 12월 28일 긴급 체포되었다.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은 삼성전자에 공개 서한을 보내,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
30조 원 규모의 특별 현금배당과 잉여현금흐름의 75% 환원,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미국 나스닥 상장, 최소 3인의 사외이사 추가 선임 등을
요구했다. 우리나라에서 주주행동주의가 주목받게 된 계기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던 차에 <의장! 이의 있습니다>(2016, 제프
그램 지음, 이건, 오인석, 서태준 옮김, 신진오 감수, 임종엽 해제, 에프엔미디어 펴냄)라는 책이 나와서 반갑게 집어
들었다.
책을 읽어보면 미국에서는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에서 주주행동주의가
싹텄으니, 역사가 100년에 가깝다. 안전마진, 가치투자, 담배꽁초 투자로 유명한 벤저민 그레이엄과 주주행동주의를 조합하려니 조금 낯설다.
그레이엄은 스탠더드오일에서 분사된 노던파이프라인이 현금을 쌓아두고 주주에게 배당을 지급하지 않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사회는 그레이엄이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레이엄은 다음 해 주주총회를 준비하면서 최대 주주인 록펠러 재단에 편지를
보내고, 주주들을 하나하나 만나 의결권을 위임받음으로써 주주로서의 권리를 쟁취했다. 당시로서는 선구자적인 행동이었고, 그레이엄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그뿐 아니라 워런 버핏, KT&G를 공격했던 칼 아이칸, 기업가이자 미국의 정치가인
로스 페로 등 유명한 사람들이 등장해서 다양한 방식의 주주행동주의를 이야기한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행동에 나선 사람들(워런 버핏, 로스
페로)이 있는가 하면, 회사를 이용해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사람들(사다르 비글라리, 카를로 카넬)도 등장한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도 위임장
대결부터 포이즌 필, 그린 메일, 인신공격, 13D 양식 싸움, 공개 매수 등 다양하다.
이처럼 돈과 주식과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동원되는 대결들을 읽다 보면 거물의 이야기일 뿐,
현실의 소액주주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공인회계사이자 변호사인 임종엽
님은 해제에서 소액주주들이 주주행동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칼 아이칸의 KT&G 공격,
성창지주기업의 감사 선임 등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사례들도 상세하게 풀어준다. 또한 주주행동주의의 상대역인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바람직한 방향도 짚어준다.
이 책의 특징은 각 장 끝에 그 장의 주주행동주의에 사용된 서한을 첨부했다는 것이다. 번역본이 실려
있으며, 원문은 QR 코드를 스캔하면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소극적인 관중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주주가 되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사례들이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정치뿐 아니라 경영에도 참여하는 시대가 되었다. 허울뿐인 이사회와 무능한 경영진을
탄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