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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물에 아내와 딸이 빠졌을 때, 그 중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굴 구할 것인가? 아내를 구한다면 딸을 포기해야 하고, 딸을 구한다면 아내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를 구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중시하는지 알아볼 수 있겠지만 기분 좋게 이 테스트에 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장난으로라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고, 선택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선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비밀’은 책을 읽어 내려간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영화화된 것을 먼저 접했던 내용이다.
아내와 딸이 타고 가던 버스가 추락해서 아내는 죽었지만 아내의 영혼이 딸의 육체에 깃들게 되어, 36세의 정신을 가진 13세의 소녀가 되었다.
처음에는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살았던 아내는, 날이 갈수록 다시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 그때까지처럼 남자에 의존하여 살아가지 않기 위하여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의대에 진학하고자 한다. 학업과 서클 활동들을 통해 10대에 어울리는 학교 생활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삶에 충실한다.
새로 얻은 삶에 충실할수록 아내로서의 역할과 처신은 갈수록 어려워지기만 하고, 남편과의 갈등이 깊어진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아내는 결국 딸의 영혼이 돌아온 것처럼 하여 아내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한다. 물론 남편은 딸이 돌아온 것으로 생각했지만, 딸의 결혼식 날에야 사실은 딸이 아니라 아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아내와 남편의 미묘한 심리와 갈등이, 내가 아내와 같은 입장이 된다면, 내가 남편과 같은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이 남편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라서 지금까지와 같은 사람이지만 외형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게 된 남편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바뀌어 전혀 새로운 생활을 해야 했던 아내도 현실의 적응부터 젊음을 주체하고 남편을 대하는 것까지 오히려 더 어려웠을 것이다.
부부는 원칙적으로 남이기 때문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헤어질 수 있는 것이 부부이지만, 부녀 관계는 그렇게 자를 수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아내의 연기로 인해 남편은 몇 년간 마음의 해방을 얻었지만, 아내의 결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아내를 놓아주는 한편 배신감으로 일생을 보낼 것으로 생각된다.
아내는 왜 첫 결혼 반지를 녹여 새로운 결혼 반지를 만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