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방 -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사람들 지음 / 갤리온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나이가 들수록 여자들끼리 사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여자들끼리 있으면 서로를 좀더 위해주고 서로 양보하고 대화를 통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더 평화로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껴서도 아니고 남자 위주의 직장 생활이 불평등해서도 아니다.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 때문도 아니고 그다지 큰 이유는 없다. 단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성별 불평등에 대해서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눈을 일찍 떴다는 것,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는 것뿐이다.

내 동기간은 3녀 1남이다. 나는 둘째딸이고 바로 밑에 남동생이 있다. 엄마는 내 동생을 낳고서 세상에서 아들을 혼자 낳은 것처럼 자랑스러우셨단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일이든 동생이 우선이었고, 이런 경향은 엄마보다도 할머니가 더 하셔서 내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기 전까지는 줄곧 그랬다.
이런 집에서 크다 보니 여성으로서의 피해의식과 자기 보호 본능은 크지만, 학교 다닐 때나 회사에 들어오고부터는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책에 나오는 내용들처럼 성차별을 당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나마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사실 성차별을 당했더라도 내 소심함에 마음속에서만 삭힐 뿐이지 이들처럼 분노와 한탄을 표출할 곳을 찾아 헤매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곳 언니네 방은 옛날 우물가나 샘터처럼 여자들끼리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는 그런 곳이다. 언니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 그런 곳이다. 언니는 동생들이나 오빠, 친구와는 다르게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상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책 표지에서 소개한 것처럼 ‘가장 깊숙이 숨겨놓은 비밀을 마음껏 풀어내며 축제를 벌이는 곳, 당차게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삶의 지혜를 나누는 사이버 커뮤니티’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는 그런 곳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가.

이 책은 이 사이트에 올라왔던 글들 중에서 추천을 많이 받은 글들로 ‘성, 사랑, 삶에 관한 가장 깊은 진실과, 용감하게 얻어낸 지혜’를 실었다.
‘털어놓다, 미치도록 행복하다’를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면서 새삼스럽게 내가 성적으로 억눌려 살았구나 싶었고, ‘남자들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읽으면서는 너무 늦게 알아낸 지혜에 대해 아쉬워했다. ‘여자로 산다는 것’에서는 다양한 일곱 유형의 여자로서 세상을 살아보면서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 ‘용감하게, 지혜롭게, 따뜻하게-언니네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읽으면서는 뻔뻔한 인간들에 대해 분노도 하고, 어이없는 현실에 대해 실소도 했고, 통쾌한 복수에 박수도 쳤다. ‘자기만의 방을 가져라, 바로 지금’에서는 여자로서의 자부심과 자매애를 그리는 투지를 다지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전 편을 통해 같은 여성이면서도 몰랐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 처음 눈을 떴다. 책에서는 주로 미혼 또는 비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고, 그 중에서도 더욱 소수인 장애인과 동성애자의 이야기도 다룰 정도로 자유롭다.
한편으로는 기혼 여성으로서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별로 볼 수 없었던 것이 좀 아쉽기도 했다. 기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면 책 한 권이 더 필요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기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편이 나온다면 그곳에서는 인터넷을 능숙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30대 중반까지의 여성 뿐만 아니라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다양한 연령대를 끌어안는 그런 넓이와 깊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회사일과 결혼에 힘들어하는 이들 말고도 어느 나이에나 언니와 언니의 방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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