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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바람
1.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2. 공이나 튜브 따위와 같이 속이 빈 곳에 넣는 공기
3. 남녀 관계로 인해 생기는 들뜬 마음이나 행동
4.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
5. 남의 비난의 목표가 되거나 어떤 힘의 영향을 잘 받아 불안정한 일
6. 남을 부추기거나 얼을 빼는 일
7. 들뜬 마음이나 일어난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뜬금없이 바람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게 된 것은,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2009,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예담 펴냄)을 읽으면서 든 궁금증 때문이었다. '바람이 바뀌는 곳'은 원어인 Wind Shift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영어에서의 wind는 물리적인 바람 외에 영향력, 예감, 향기, 소문, 빈말, 소동 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니, 우리말 '바람'의 그 풍부한 뜻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의 바람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야기는 외국의 시트콤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다. 오랜 친구 넷이서 전원주택들을 사서 휴양을 즐기기로 결정하고,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집들을 보러 떠난다. 출판사 편집자인 루이자, 그의 남편이자 건축가인 엔리코, 엔리코의 고등학교 친구인 모험가 아르투로, 연극배우였다가 탤런트가 된 마르게리타. 이들은 부동산 중개인 알레시오가 모는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도 끝없는 전화 통화와 나름대로의 알력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고 구덩이에 빠져 차가 고장나면서, 이들의 여행은 끝나고 바람이 바뀐다.
문명의 이기를 모두 거부하고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난 이들은 아주 당황하며 불편해 한다. 문명의 최일선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러운 냄새가 나는 멍석과 담요뿐인 침실, 휴지도 없는 화장실, 약초들을 찧어 만든 약 들은 혐오감과 불신과 거부감만을 일으킬 뿐이다. 이들이 사려고 생각했던 그 전원주택 단지가 바로 이 집들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공동체의 일원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네 명의 친구들은 저항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감탄하고 녹아든다. 그 과정에서 컴플렉스와 자기 기만과 위선이 드러난다.
공동체에도 문제가 많다. 많았던 구성원은 다 사라져서 이제 아룹, 라우로, 미르타, 가이아, 아리아, 이카로 뿐이고, 아리아는 문명 사회에 대한 동경에 물들어 있다. 주변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생명의 위협도 있고, 소통의 부재로 인한 고립감도 상당하다. 그러나 자연과 생명, 모성이라는 풍부함은 그들의 빈약한 식단과 허름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만든다.
바람은 수시로 바뀐다. 라우로와 아룹 들에게 공동체를 만들도록 했던 바람4는, 바람6과 7에 의한 다섯 명의 여행자를 포용하고, 그 안에서는 바람3도 잠깐 존재한다. 바람1이 부는 Wind Shift는 이들 각각에게 존재하는 바람5를 날려보내면서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그 바람이 바람7이 될지 삶의 전환이 될지는 그들 각각에게 달린 문제겠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이들 각각의 차이를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고, 이런 상황에 만약 놓인다면 나의 선택은 어떨지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