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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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승진 시험의 한 과목으로 TOEIC 성적을 내야 했다. 2005년에 TOEIC을 보아서 성적을 제출했고, 또다른 용도로 2006년에 다시 시험을 보아야 했는데 그사이 뉴 TOEIC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껏 학교 다닐 때부터 들어서 익숙했던 미국식 영어발음 외에 영국식, 호주식 발음이 추가되어 상당히 낯설었다. 메이플라워호가 미국에 도착한 것이 400년이 채 되지 않았고, 미국이 건국한 것은 그로부터 200년쯤 후인데, 원래의 언어인 영국식 영어와 발음과 단어 자체에서 그렇게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2009, 빌 브라이슨 지음, 살림출판사 펴냄)은 영어의 도입과 변천, 유래와 생성을 통해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한다. 1994년에 <MADE IN AMERICA>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이 책은 이제서야 우리에게 찾아와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를 늘어놓는다. 

KFC의 할아버지 같은 둥글둥글한 캐리커처를 전면에 내세우고, 그 주변을 자유의 여신상, 카우보이, 햄버거, 코카콜라, 엉클 샘, 아폴로 우주인처럼 미국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을 배치한 책의 표지는, 그 바탕에 깔린 영어들과 함께 책 내용을 잘 묘사하고 있다.
미국은 메이플라워호가 상륙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점차 나라를 만들어 나갔다. 인디언들과의 교류와 전쟁, 박해가 미국 영토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 유럽과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은 미국의 언어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저자는 미국에 사람들이 정착하고 서부를 개척하고 농작물을 들여오고 나라를 만드는 과정을 꼼꼼히 따라 가면서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언어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수많은 사료들에 나타난 언어의 생성과 변천과 몰락은 그들의 원류가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게 하고 해석상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며 언어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알게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쇼핑의 역사를 한번 보자. 백화점의 개념은 1846년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알렉산더 스튜어트가 브로드웨이에 세운 '마블 드라이-구즈 팰리스'에서 시작되었다. 1862년에 스튜어트가 세운 '캐스트 아이언 팰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점의 입지를 지켰고 그 후 많은 백화점이 생겨났는데, 백화점(department store)이라는 단어는 1893년 '하퍼스 매거진'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이와 병행하여 몽고메리 워드는 1872년에 우편통신판매를 처음 시작했고, 1916년에는 클라렌스 손더스가 손님 스스로 살 물건을 골라 오는 셀프 서빙 스토어를 열었다. 그러나 진정한 최초의 슈퍼 마켓은 1930년 뉴욕의 자메이카에서 마이클 쿨렌이 연 식료품 도매점이 차지했다. 냉동식품은 1930년에, 쇼핑센터는 1907년에 시작되었다.
이 책의 전반에는 미국의 건국과 발전에 따라 시대 순으로 설명했다면, 후반에는 이민, 여행, 음식, 쇼핑, 예절, 광고, 영화, 스포츠와 놀이, 정치와 전쟁, 섹스와 쾌락, 비행, 항공이라는 테마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쇼핑몰이라는 단어로 낯익은 몰(mall)은 16~17세기에 유럽에서 유행한 스포츠 경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골프와 크로켓을 섞어놓은 것 같은 경기인 pall mall은 18세기부터 인기를 잃었지만, 영국 런던에 pall mall이라는 가로수길을 남겼고, 그러면서 산책에 좋은 장소, 넓은 풀밭을 뜻하는 이름으로 1784년 미국의 사전에 등재되었고, 1967년에는 쇼핑 센터의 포괄적인 의미로 바뀌어 통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알 수 있겠다.
이 책은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과 기록들을 근거로 하여 꼼꼼하게 쓰여 있다. 참고할 만한 문헌들이 많다는 것이 미국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숙어와 관용구로 어렵게 다가왔던 영어에 대해, 공부를 떠나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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