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다 -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11
김정률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꿈을 걷다> (2009, 조진행 외 지음, 로크미디어 펴냄)는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아직은 생소한 경계문학이라는 단어,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뜻하는 것일까. 문학에 문외한이라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내게, 경계문학은 새로운 경계를 만들며 다가왔다. 제목인 '꿈을 걷다'는 꿈 위를 걷는 것인지, 꿈을 거두어들이는 것인지도 명확치 않으면서, 어느 뜻으로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하얀 표지에 올록볼록 돋을새김된 저자 12인의 이름 중에서 전민희님과 좌백님, 진산님의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으니, <룬의 아이들>과 <대도오>, <마님 되는 법>을 읽었던 기억 때문이리라.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책들이라서, 2009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책은 아주 두툼하다. 9쪽부터 471쪽까지 460쪽을 꽉 채웠다. 글씨도 작고 줄 간격도 빽빽하다. 활자 중독증에 걸린 나는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흐뭇하다. 이 안에 꽉 찬 내용들은 하나하나 다른 맛을 가진 종합선물세트처럼 나를 즐겁게 해 주겠지.
김정률 작가의 <이계의 구원자>로 책이 시작된다. 무림인들이 판치는 중원에 나타난 드래건의 현신, 그리고 또다른 세계인 마계로부터의 침입. 이 세 세계를 구원할 한 남자가 있었으니, 열화무극수에 통달한 구양무극이었다. 한 작품 안에서 무협과 SF의 만남을 난생 처음 만나는 것이라 약간은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그 또한 색다른 재미가 있다.
그 중에서 네 편만 들어 본다. 문영 작가의 <구도>는 정통 무협과 비슷한 비장미를 주기에 충분했고, 이재일 작가의 <삼휘도에 관한 열두 가지 이야기>는 중심인물인 삼휘도를 가운데에 배치하고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열두 명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짐으로써 활동적이고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무협지들과 가장 비슷한 이야기이면서, 책의 1/5 가량으로 분량이 많았으나 재미있게 읽혔다. 좌백 작가의 <느미에르의 새벽>은 지금껏 무협지 작가로만 알았던 내 고정관념을 깨는 SF 소설이었고, 진산 작가의 <두 왕자와 시인 이야기>, <그릇과 시인 이야기>는 독일의 메르헨처럼 부드럽게 읽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이 이루는 경계는 넓어서, 본격 무협 소설도 있었고 SF 소설도 있었다. 우연히 들른 동굴에서 천하무공비급을 손에 얻어 육십갑자의 내공을 얻는 황당무계함도, 모든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 남자 주인공도 없다. 짧은 분량의 글에서도 기승전결이 뚜렷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존재하는 열두 편의 이야기들은, 문학의 경계가 어디인지 새삼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제 공장에서 찍어내는 무협지가 아니라, 아주 황당하기만 한 도서대여점용 퓨전 판타지가 아니라, 문학의 경계에 선 수준 있는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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