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PD의 파리와 연애하기 - 파리를 홀린 20가지 연애 스캔들
김영섭 지음 / 레드박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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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다닐 때 매 학기마다 있던 소풍은 정말 큰 행사였다. 과자와 사이다와 삶은 계란을 정성껏 준비하여 소풍 가방을 싸던 때만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소풍가기 전날에는 내일 날씨가 좋을지 마음을 졸이면서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고, 소풍을 간다는 기대에 들떠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소풍 당일에는 엄마가 김밥을 싸시는 소리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를 따라, 잠을 설쳤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 도마 옆에 쪽나란히 앉아서 김밥 꽁다리를 먹는 것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막상 소풍날 어떤 아이들과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풍 전날과 소풍 당일 새벽의 들뜬 분위기는 지금도 선하게 떠오르니,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등 여행 명소를 생각하며 그 곳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소풍 전날의 들뜬 분위기를 재현하는 것과 같겠다.

<김영섭 PD의 파리와 연애하기> (2008, 김영섭 지음, 레드박스 펴냄)는 '파리를 홀린 20가지 연애 스캔들'을 담고 있다. 드라마 PD로 바쁘게 살던 그에게 주어진 한 달의 휴가. 저자는 그 휴가의 테마를 '러브 스토리 인 파리'로 정하고, 파리를 배경으로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시간을 초월하여 길이 남겨진 20가지의 연애 스캔들을 이야기한다.
미식의 고향인 프랑스 파리답게, 이야기는 프랑스 요리의 순서인 아페리티프, 앙트레, 푸아송, 비앙드, 살라드, 프로마주, 데세르, 코냑의 순으로 진행된다. 아페리티프에서는 이 여행의 동기와 목적, 그 느낌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해서 흥미를 돋구었고, 드디어 앙트레, '사랑은 눈으로 든다'에서 미키와 엘런, 샤갈과 벨라라는 두 스캔들을 듦으로써 식사가 시작된다. 

영화와 문학작품이라는 허구의 커플도 자연스럽게 현실의 커플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곳, 랭보와 베를레느처럼 동성의 사랑도, 루이 14세부터 로댕, 빅토르 위고 등의 불륜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곳, 프랑스 파리. 20쌍의 스캔들이 담긴 파리 곳곳을 누비며 저자는 그들의 인생을 담담하게 설명하고 그들의 흔적을 따라 현실을 거닌다.

핫 핑크를 배경으로 오돌토돌 빛나는 빨간 글씨로 장식된 표지는 너무 소녀 취향이라서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그 안의 내용은 충분히 숙성된 코냑처럼 소슬하고 달콤하고 다채로웠다.
이제 나는 프랑스 파리에 실제로 가 보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소풍가기 전날의 흥분되는 마음처럼 언젠가의 꿈으로 파리를 아껴두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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