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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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머리, 거침없이 발가벗어서 하얗게 빛나는 몸의 여자가 검은 실루엣의 남자와 입을 맞추고 있다. 양장본을 감싼 표지에는 여러 자세로 키스를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하얀 몸의 여자를 전면에 내세워 다양하게 실려 있다. 남자가 검은색 일색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표현된 것에 비해, 여자의 몸은 통통 튀는 오렌지빛 머리부터 시작해서 음영으로 풍부한 양감을 표현한 엉덩이와 가지런히 모아서 세운 발뒤꿈치, 쪽 곧은 등과 그 적극적인 매달림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내비치고 있다. 2008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 (2008,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재인 펴냄)는 표지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2008년 6월. 약혼자와 만나기로 한 자리에 가기 위해 나(하나)는 준고를 만난다. 열한 살에 가족을 잃고 친척인 준고에게 입양되었고, 15년이 지난 스물여섯에 결혼을 앞둔 내게 준고는 아버지이자 '내 남자'이다. 얼핏 봐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 둘의 관계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나는 마음으로는 준고를 원망하고 대놓고 비아냥거리지만, 낡고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으나 반듯하고 우아한 그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와의 접촉에 기뻐한다. 애증이 얽힌 그들의 역사를, 시간을 되짚어 가면서 차근차근 돌아다 본다. 그렇게 그들의 삶을 과거로 이어주는 매개체는 카메라와 시신이다.
이야기는 하나의 시선, 준고의 시선, 하나의 약혼자인 요시로의 시선, 준고의 애인이었던 고마치의 시선으로 구성되어, 하나와 준고의 관계를 다각도로 검토한다. 태풍의 눈에 서 있는 하나와 준고의 입장만이 아닌,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서술이다. 낡은 카메라가 새 카메라로, 오래된 시신이 새로운 시신으로 되돌아가듯 점점 뒤로 후퇴하는 구성은, 설경구 문소리 주연의 <박하사탕>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처음의 암담한 상황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차근차근 알아가면서, 그와 함께 앞에서 읽은 것들의 상황이 더 상세하게 이해되는 과정은, 밑으로 좁아지며 집중하는 깔때기가 아니라 아래로 깊어지는 동시에 위로도 넓어지는 모래지옥 같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의 포르노그래피와 SM을 떠올렸다. 여학생들의 체액이 묻은 팬티를 판매하는 가게가 성황리에 영업 중이라고 들었고, 가슴을 성형하여 터질 듯한 양감을 보이는 서양의 포르노그래피와 달리 세일러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등장하는, 또는 성인에게 세일러 교복을 입혀 학생인 것처럼 꾸미는 가게도 있다고 했다.
일본이 그렇게 성적인 면에 개방적이어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판매금지가 될 만한 책이 어엿한 문학상 수상작이 되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가네하라 히토미라는 일본 작가의 책 <애시 베이비>에서는 소아성애 환자가 젖먹이 아기를 훔쳐다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에는 아주 음습한 향기가 풍긴다. 엄마와 딸을 동일시하며 숭배하는 준고의 마음과, 어려서부터 가족들에게 소외감을 느끼다가 자신을 맞아주는 준고에게 헌신하는 하나의 마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겠다. 그 음습한 향기는 내게 너무 역겹게 다가왔으니, 문학성은 뛰어나지만 일독을 추천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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