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곡물이 내 몸을 살린다
하야시 히로코 지음, 김정환 옮김 / 살림Life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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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그냥 반찬을 보조하는 그 자체의 담백함이 좋다. 돌솥비빔밥이며 영양밥 같이 수많은 고명과 영양과 자체의 맛을 지닌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낮추는 흰 쌀밥이 제일 편하다. 보리나 조가 약간 들어간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밥인지 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콩이나 팥, 다른 잡곡들이 들어간 밥이 나올 경우 흰 쌀밥만 골라 푸기에 바쁘다. 엄마가 이러니 내 아이는 집에서는 잡곡밥을 기대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면서도 나는 흰 쌀밥에서 부족한 영양은 반찬에서 얻으니 편한 것이 그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거친 곡물이 내 몸을 살린다> (2008, 하야시 히로코 지음, 살림Life 펴냄)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그런 내 생각을 많이 바로잡아 주었다. 예전에는 국산 유기 농산물을 이용한 제과제빵업을 하다가 이제는 글쓰기와 식품 기획, 개발을 하고 있다는 저자는, ‘음식은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음식 만들기보다는 생활 만들기, 삶 만들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책 표지의 저자 소개에 나와 있다. 이런 소개를 바탕에 두고 읽으면 책 내용이 좀더 잘 다가오겠다. 단, 이 책이 1998년, 벌써 10년 전에 일본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오래된 일본 통계들이 나오는 것은 감안하고 읽어야겠다.
1부 ‘왜 곡물인가’에서는 곡물의 수수하고 알찬 단맛에서부터 반찬, 장류, 빵, 떡, 조미료 등 다양하게 곡물을 활용하는 방안을 이야기한다. 전문적인 요리 실습이 아니라 잔잔한 수필처럼 쉽게 다가온다. 그의 집에서는 밥이 당당한 주 요리로 거듭난다. 타임머신, 제철 느끼기처럼 흰 쌀밥에서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 끝없는 실험 정신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2부 ‘계절에 맞는 식탁을 차리자’는 사계절의 날씨와 기운과 그때 나오는 잡곡들을 통해 음양오행에 맞는 식탁을 차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요즘은 신경쓰지 않으면 제철 음식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데, 이제는 건강을 위해 제철 음식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가 비교적 수필 분위기였다면 3부 ‘몸에 좋은 곡물 어떻게 먹을까?’는 여러 곡물들을 각각의 성질과 맛, 요리법까지 전문적으로 싣고 있는 영양학 강좌 분위기이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논에 나는 끈질긴 잡초로만 취급되는 ‘피’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마지막 4부 ‘곡물과 맛있는 밥상으로 친해지자’는 이렇게 설명한 여러 곡물들로 만드는 요리 레시피를 소개했다.

책을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그 도전정신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많은 곡물로 차리는 밥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은 이후로도 회사 식당에서 잡곡밥이 나오면 쌀밥이 많은 쪽을 파서 밥을 뜨고 있지만, 이제는 잡곡의 비율을 조금씩 높여 보고, 집에서도 슬슬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 등의 보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계절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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