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집에서 키우던 개가 이웃집 초등학생을 물어 죽였다. 아이가 평소에 개를 괴롭히고 도발하고 큰 소리가 나는 딱총을 개 앞에 떨어뜨렸기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진 개가 우발적으로 아이를 물었지만, 아이를 죽인 것은 사실이다. 단번에 개는 사람을 물어죽인 야수, 맹수로 취급받았고 개를 살려둘 수 없다는 여론에 몰린다. <도피행> (2008, 시노다 세츠코 지음, 국일미디어 펴냄)은 이처럼 당황스러운 사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한 지 28년된 타에코, 4개월 전에 자궁근종으로 자궁과 난소 일부를 적출하는 수술을 받은 중년의 여인은, 그러나 개 포포를 죽일 수가 없다. 일과 접대에 바쁘고 아내를 여자로서 끝났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무심한 남편,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을 멀리하는 큰딸 미쓰코, 아직은 함께 살고 있지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엄마는 뒷전으로 미뤄 두는 둘째딸 히로미. 
타에코는 이렇게 딸과 남편이 있지만 집안 모든 일을 혼자서 하면서, 9년째 키우고 있는 골든 레트리버 포포에게 듬직한 동지감을 느껴 왔다. 애견 센터에서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서 폐기 처분될 지경으로 놓여 있던 못생긴 강아지 포포. 그런 버려짐이 안쓰러워서 데려와 키운 가족 같은 동물을 이제 와서 안락사 시키라고?
타에코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눈이 내리는 11월의 저녁, 개를 데리고 남편의 비자금 통장을 들고, '거품경제가 최고조일 때부터 입었던 어깨에 뽕이 든 쇼트코트'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그렇게 절약하며 살았으나 그의 손에는 우연히 알게 된 남편의 비자금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으니, 28년의 결혼 생활이 허망하기만 하다. 
그는 이제 더이상 가족은 없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멀리 도망쳐서 포포와 함께 살 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 둘의 막막하고 힘겨운 이야기가, 흰 눈이 날리는 차가운 겨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가족이 있어도 외로운 현실은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 안타깝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아이들을 키워 놓았지만 다 큰 아이들은 그것을 당연히 여기며 엄마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돈을 대출받아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딸들의 젊음에 질투를 하고 갱년기 장애에 시달리는 중년의 엄마는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아이들을 다 떠나 보내고 빈둥지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게 반려동물 키우기를 권하는 것은 조건 없이 주는 사랑과 온기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겠다. 애완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가족 대신 개를 선택하는 타에코의 마음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허전한 타에코의 마음을 충분히 위로하고 채워주는 포포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 사이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 오는 덩치 큰 개의 온기, 타에코의 기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포포의 마음씀, 사람에 대해 반가워하고 호기심을 갖는 활력, 자기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타에코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까지, 포포는 타에코에게 큰 힘이 되었고 동반자가 되었다.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내용들이 참 많겠다.
그러나 이 책은 오탈자가 꽤 많아서 내용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던 점이 참 아쉽다.

이제 곧 눈이 내릴 듯한 초겨울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마음의 추위까지 더해져서 타에코, 포포와 함께 길을 헤매는 마음으로, 참 스산하고 쓸쓸한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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