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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밤 늦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쌓인 다음날을 생각하면 일찍 자야 하는데, 엄마를 잃어버린, 게다가 몸과 마음 모두 성치 않은 엄마를 잃어버린 그 막막함 때문에 아주 늦게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해 주시는 신경숙 님의 <엄마를 부탁해> (2008, 신경숙 지음, 창비 펴냄)는, 내 옆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숨소리와 함께 가슴 속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 1장은 작가인 큰딸을 '너'라는 특이한 인칭으로 부르며 서술된다.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 오신 엄마는, 항상 앞에서 걸어가는 아버지를 따라오지 못해서 지하철역에 남겨진다. 아버지는 남영역이 지나서야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되짚어갔으나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전단을 만들고 신문 광고를 내고 탐문을 하면서 엄마를 찾고자 하지만, 간간이 오는 전화 제보는 큰아들이 살던 동네 주변이었고, 어찌나 많이 걸었는지 파란 슬리퍼가 엄지 쪽 발등을 파고 들어가서 살이 깊이 패어 있었다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으며 저마다의 기억에서 엄마의 삶을 되살려 본다. 작가인 큰딸은 큰딸대로, 엄마의 희망이자 대들보였던 큰아들은 큰아들대로, 젊어서부터 역마살이 있어서 항상 겉돌았던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마지막은 마침내 자유로워진 엄마의 목소리로 엄마의 삶은 조금씩 재구성된다. 엄마의 모습으로, 아내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의 삶은 입체적이다.
가난하고 남편이 겉돌고 시누이의 매운 시집살이를 겪으면서 참 어렵고 바쁘고 힘들게 살았으나, 엄마는 언제나 가족을 가장 먼저 두었다. 짐승이 안 되던 집에 시집와서 마루 밑에 강아지 열 여덟 마리가 고물거릴 때가 있을 정도로 살리는 손을 가졌던 엄마, 콩으로, 고구마로, 가지로 텃밭을 놀릴 새 없이 농사 지었던 엄마, 아욱을 베다가 된장국을 끓이고 배추를 뽑아다 겉절이만 해도 모두들 맛있게 먹는 살찌는 밥을 지었던 엄마, 뇌졸중의 여파로 머리가 아파 기절하기까지 하지만 끝까지 자식들을 위해 부지런했던 엄마. 지금껏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던 엄마의 전적인 희생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후회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작가인 큰딸은 로마 여행길에서 엄마의 바람이었던 장미 묵주를 사러 갔던 길에 성 베드로 성당에서 피에타상을 만난다. 죽은 아들을 무릎에 누이고 한없이 연민에 찬 눈으로 내려다보던 성모 마리아께 엄마를 부탁한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염려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고통이나 회한이 없다. 지구의 생명의 여신인 가이아를 닮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환갑을 훌쩍 넘기고 홀로 계시는 우리 엄마를 떠올린다. 작가 후기에서 이야기하듯, 다행히 엄마가 아직 내 곁에 계시니 전화 통화도 자주 하고 키워 주신 고마움도 표시하고 나들이도 가야겠다.
엄마를 잃어버린 이야기를 참 마음 아프게 읽었지만,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주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난 책 읽기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