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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구텐베르크와 조선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책 제목이 <구텐베르크의 조선>일까? 오세영 작가는 전작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루벤스의 그림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인물의 삶을 대하적으로 창조해 냈다.
이번에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2005년 '서울 디지털포럼 2005'에서 구텐베르크가 한국의 영향을 받아 금속활자를 사용했다고 이야기한 것에서, 구텐베르크와 조선을 연결하여 <구텐베르크의 조선1~3> (2008, 오세영 지음, 예담 펴냄)을 펴냈다.
이야기는 1448년에 주인공 석주원이 독일 마인츠에 있는 구텐베르크의 인쇄 공방을 찾아가서 대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깊이 팬 주름에 텁수룩한 수염, 상대를 압도하는 형형한 눈빛, 마흔여덟 살일 텐데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늙은, 그러나 강인함이 넘쳐흐르는 얼굴의 구텐베르크는, 스물세 살의 조선청년 석주원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백 년 전에 이미 금속활자를 만들어 쓰는 나라가 있다는 말에 의혹을 느끼지만, 활자를 만드는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는 석주원의 솜씨에 충격을 받고 그를 받아들인다.
석주원이 독일 마인츠까지 가게 된 여정은 아주 험난하다. 때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다음해인데, 지식을 독점하고자 하는 기득권층이 훈민정음의 배포를 반대하는 바람에 보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궁궐 내의 주자소에서 일하던 석주원은 '훈민정음이 널리 쓰일 수 있도록 상호군(장영실)을 도와 꼭 우수한 활자를 주조토록 하라'는 세종대왕의 밀지를 받고, 장영실이 몸을 숨기고 있던 북경에서 활자 주조 시험을 한다.
그러다가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마르칸트로 보내지고, 거기에서 구텐베르크와의 연결고리인 쿠자누스 신부를 만나 독일의 마인츠로 간다. 여러 사건과 경쟁들을 겪으면서 석주원은 점점 입지를 굳히지만, 오스만투르크의 번성과 침략 전쟁 때문에 조선으로 가는 길은 멀어지기만 한다.
새로운 발상과 장인혼의 장영실은 석주원이 호기심과 열린 마음을 가지는 바탕을 만들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재능과 사명감의 석주원, 판단력과 배짱의 구텐베르크의 콤비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을 벗어나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로 느껴졌다. 지성과 순종의 이레네는 석주원의 마음을 지탱하는 동반자가 된다.
인쇄라는 하나의 항목을 통해 종교와 정치의 손잡음,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교황청의 내면 등 세계 정세의 한가운데를 헤쳐 나가는 석주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각 권 맨 앞의 등장인물에서 별표로 표시된 실존 인물들을 구석구석 잘 배치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에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해탄의 제조, 활자주조기, 향동활자, 자동인쇄기, 서체의 개발 등 인쇄의 발달사도 더불어 볼 수 있었으니,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주인공에게 유리한 우연이 많은 것이 약간 아쉽지만, 세계 각 곳을 거쳐가면서 당면한 어려움을 차례차례 풀어나가는 석주원의 모습에서 우리 전통의 인간애와 열린 마음을 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사용국으로서의 자부심으로, 활자로드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