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조선사 -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
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갓까지 갖추어 쓴 남정네가 아이를 업고 수탉에다 한 보따리 짐을 지고 어디를 간다. 옆에서 어떤 사람이 말을 건넨다. "이 서방, 아기 업고 어디 가시나?" 그 대답은 "육아휴직 받아 장 보러 간다우~"
남자가 아이 업은 것도 처음 보는데 게다가 육아휴직이라니, 이런 때가 정말 있었을까?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장을 맡고 있는 최형국 님의 <친절한 조선사>(2007, 미루나무)는 '역사의 새로운 재미를 열어주는 조선의 재구성'이라는 설명과 함께 살아 숨쉬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 놓는다.

역사 속의 큰 사람 조선왕 이야기, 뜨겁게 살다간 작은 사람들의 조선 이야기, 기이한 물건, 동물을 둘러싼 조선 이야기, 먹거리를 둘러싼 조선 이야기 들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 항목에는 각각 5가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례로 담배의 이야기를 보자.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을 시작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따라 담배가 남만에서 일본으로 전파된다. 1616년 일본에서 조선으로 넘어온 담배는 1622년 이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번성한다. 그 때문에 기본 작물 대신 담배를 많이 심음으로써 국가경제가 흔들리고, 어린이들도 곰방대 물고 담배를 피우기도 했단다. 이런 담배에 대한 찬반양론들 중에서 정조의 홍재전서에 실린 담배 효용론과 신하들에게 내린 책문을 실음으로써 당시의 분위기를 알려준다.
담배라는 하나의 물건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많은 이야기들로 퍼져나가는 집필 방향은 책의 모든 꼭지에 모두 적용된다. 소젖에서는 임금님의 수라상과 농사용 소의 유용성, 쇠고기를 금지해야 했던 배경이 등장하고, 불꽃놀이에서는 화약 기술과 군사력, 국력 과시라는 뜻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는 재미있다.

책에는 다양한 그림과 글, 참고문헌, 지도, 사진 들이 실려 있어서 볼 거리가 많다. 그림은 당시의 풍속을 알려주는 풍속화가 많고, 문인화, 외국 그림,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등 다채롭다.
다산 정약용이 파리에게 남긴 조문에는 탐관오리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수탈받는 민중에 대한 연민도 짙게 담겨 있다. 구중궁궐에 살고 있는 왕과 정승들은 알지 못했을 생생한 민중의 삶은 저자의 글에서 아주 현실적으로 되살아난다.
조선 왕과 시대를 풍미한 신하들의 이야기로만 전수되던 역사 이야기에서 벗어나,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다룸으로써 조선이라는 나라가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던 민중들의 나라이기도 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왕조별 역사가 아닌, 당시의 삶을 이해하는 이런 스토리텔링 역사책은 얼마나 친절한가.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경어체의 문장들로 독자들에게 가볍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좀더 오래 생각하게 하는 참 '친절한' 조선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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