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회주의 유토피아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이라는 제목에서는 파리와 고서점이라는 단어가 조합되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듯한 기대감을 준다. 오래된 금박 장정에다 종이 색깔까지 누렇게 뜬 책들이 바닥에 쌓여 있고, 책꽂이에는 알록달록 다양한 표지의 책들이 꽂혀 있다. 하도 오래 되어서 무늬가 바래고 테두리의 올이 풀린 양탄자가 바닥에 깔려 있고, 검은 털이 덥수룩한 고양이가 걸어가고 있다. 보기만 해도 헌책방 특유의 쾨쾨한 냄새가 전해질 것만 같은 표지이다.
이제 그 표지를 열고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에 들어가 보자.

사건 기자를 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캐나다에서 프랑스로 오게 된 '나'는 비를 피하다가 우연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들어가게 된다. 얇은 책을 한 권 사고 홍차파티에 초대를 받은 것을 계기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일원이 된다.
이 고서점의 주인인 조지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로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사회주의 유토피아로 생각한다. 작가에게 묵을 곳을 제공하며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필요한 것을 취하라"를 주창한다. 작가들은 서점에서 묵는 대신 청소하고 책을 내다 놓고 들여 놓으며, 매일 책을 읽어야 한다.
서점을 세운 조지의 생애와 함께 서점에서 자고 간 4만 명, 그 중에서도 성공한 이들의 작품들이 가끔 언급된다. 다양한 이력을 가졌고 여든 여섯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열정과 무모함으로 일을 벌여온 조지의 삶은 참 독특하다.
저자와 함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생활한 커트, 루크, 사이먼, 가우초, 아블리미트, 소피, 나디아, 이브 등은 각자의 색깔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1부의 제목인 '새로운 우주의 발견, 혹은 블랙홀'이라는 말처럼 우주로도 블랙홀로도 작용할 수 있는 곳이다. 작가가 되어 성공한 사람도, 사이먼처럼 점점 더 생활력을 잃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멈춰서 있기 때문에, 하루가 1년 같고 1년이 하루 같은 삶이 펼쳐진다. 

언젠가 실비아가 서점을 물려받게 된다면, 전화와 신용카드가 통하게 된 것처럼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다. 그러나 한 곳 정도는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존재해도 될 듯하다. 단 블랙홀이 아니라 새로운 우주로 작용한다면 말이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라는 프랑스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진정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로 오랫동안 살아남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