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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거울 ㅣ 메타포 1
미하엘 엔데 지음, 에드가 엔데 그림, 이병서 옮김 / 메타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하엘 엔데라는 이름은 내게 참 어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모모'는 책 표면상의 글자로만 읽으면 쉬운 내용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대한 우화로 읽으면 한없이 깊어지는 그런 특성이 있으므로, 쉽게 읽고 끝낼 수 없다는 선입견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하엘 엔데가 1995년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로 재평가했다고 책 표지의 날개에 수록되어 있듯, 그는 작가보다는 철학가로 보아야 할 듯하다. 그래서 아주 노란 표지에 미하엘 엔데의 아버지인 에드가 엔데의 초현실주의 그림이 실린 것으로 시작한 '거울 속의 거울'은 존재부터 무겁게 다가왔다.
책에는 30개의 단편과 18폭의 그림이 실려 있다. 각 단편에는 각각의 제목이 없이 아라비아 숫자와 그를 독일어로 읽은 듯한 단어가 적혀 있다. 제목이 붙어 있으면 그나마 내용 파악을 위한 단서가 될 듯한데, 그마저도 없다 보니 참 엄격한 분위기이다. 이야기들은 짧으면 세 쪽에서부터 길면 27쪽까지 다양하고, 분위기는 대부분 음울하고 늘어지고 절망스럽다.
누구에게는 훤히 보이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고, 눈 앞의 무용지물에 얽매여서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 언제일지, 과연 있기나 한 것일지 모르는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가 있다.
첫번째 이야기를 보자. 자신을 호르라고 말하는 이는 사람이 아닌 존재인 듯하다. 완벽하게 텅 빈 건물 안, 그래서 거기서 생겨나는 모든 소리들이 끝없는 메아리가 되어 버리는 건물 안에 살고 있는 나는, 오래전 경솔하게 내뱉던 외침의 잔향과 부딪힘으로써 자신의 과거와 마주치는 커다란 고통을 겪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제 메아리가 생겨나는 그 미묘한 경계선을 절대 넘지 않도록 목소리 내는 법을 배운다. 잠들기 전에 들리는 몽롱하고 희미한 소리 이상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호르는, 체험과 기 록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애써 이야기한다. 마치 너무 존재가치가 미미해져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민초民草들이 떠오른다.
책을 읽었으나 머리 속까지 명백하게 이해되지 않는 그의 글들은, 내가 철학을 워낙 어려워하는 터라 철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책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은 해설서처럼 반갑게 다가온다. <거울 속의 거울>에 실린 이야기들은 각각이 하나의 퍼즐이며, 이를 풀기 위한 26개의 단서를 알파벳 순서에 따라 열거함으로써 이해가 쉽도록 돕는다. 지금껏 이렇게 적극적인 옮긴이의 말은 처음 보았다. 미하엘 엔데의 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읽을 때는 그 잠깐 동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도 일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하엘 엔데의 <거울 속의 거울>은 읽을수록 지금껏 놓치고 있던 내 삶의 맹목적성과 유한함, 타인의 시선의 무의미함, 삶의 의미 등을 떠올리는 무거움이 있었다.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