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전직 기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잘 알려진 여러 코미디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유명한 매일 연속극 '센트 셰리' 등 텔레비전 시리즈의 작가라고 소개된 니콜 드뷔롱을 <당신 무슨 생각하고 있어요>로 처음 만났다.

'남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썩은 동태눈을 하고 당신에게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그는, '당신' 티틴과 '남자' 알렉상드르 사이의 투닥거림과 사랑과 소소한 생활 이야기를 재미있게 펼쳐 놓는다. 

회사에서 나이를 이유로 정리해고당한 50대의 남자와 38년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당신.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상이 갑자기 붕괴되면서, 이들 사이에는 삐걱거림이 시작된다. 특히 당신은 오전에 영감이 솟구쳐 올라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였기 때문에, 남자의 행동과 간섭은 그만큼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배려하는 말과 행동은 - 마음속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 참으로 존경스러운 경지이다. 자신이 흥미로운 것에는 몰두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에서는 정말 뺀질대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아이 같은 남자의 모습에는 나부터 화가 나지만, 삼십팔년 간의 결혼 생활은 그저 명목상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다. 

'당신'이라는 호칭과 1인칭 시점,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재 시제 등이 조합되어 지금 당장 내 앞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은 거리를 둔 3인칭의 존재인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당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박하면서도 긍정적인 생각들이 참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가 쓰고 있는 추리소설이 '여자의 오른손을 깨끗이 절단하고 시체를 훼손하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것이라서 우스운 현실과 더욱 대조된다.
수많은 나라의 말로 외치는 '제기랄'들 - 스라즈네 (세르비아어), 보예 (말리어), 워이 (우오로프어), 파익 카아나 (벵골어), 뷔브노 (폴란드어) 등 - 은 또 어떻고.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의 작가이기 때문인지, 눈에 선하도록 묘사하는 것이 능숙하다.
이들을 둘러싼 관리인, 딸들과 손주, 시부모, 소방관, 친구들까지 모두 특이한 사람들이라서, 프랑스에서는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작가 자신의 모습일 듯한 이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계속 웃음이 나왔다. 이다도시 씨의 '울랄라'를 듣는 듯한 경쾌한 소설이었다.

추신. 각 챕터마다 사용된 흑백 사진들은 마치 영어 시험인 TOEIC에서 듣기 시험 파트 1에 나오는 그런 사진들처럼 아주 낯익으면서 조금은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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