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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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게마츠 기요시 작가의 작품은 [허수아비의 여름휴가]가 처음이었다.
'이 시대 3, 40대의 초상'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었던 이 책에서 그는, ‘고개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허수아비가 걷고 싶고 또 걷고 싶어서, 눈 앞에 있는 새와 짐승을 쫓아버리고 싶어서, 수확한 벼를 이삭 한 알이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그렇게 속을 태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설명으로 자신을 허수아비와 동일시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의 끝은 모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이었으니, 이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은 중년의 쓸쓸한 뒷모습마저 따뜻하고 든든하도록 만들었다.

이번에 만난 그의 작품은 [졸업]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회사에서 좌천당하고, 유서도 없이 임신한 아내를 두고 자살하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고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교장으로 정년퇴직하고 병석에 누워 있어도 찾아오는 제자 하나 없고,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자리에 새어머니로 들어와 아들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대항하는 대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친구들의 따돌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그들의 기대대로 2층에서 뛰어내리고, 갑작스런 지방 발령으로 좌천되어도 사표를 던지지 못하고 조용히 그쪽으로 출근한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는 딸이 마스크를 씌우는 벌을 받고서 결국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아이를 다독이고 매일 조금씩 함께 걸으면서 노래한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너무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너무 쉽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날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보다, 이들의 모습은 손해를 보는 듯하면서도 평화롭게 보인다. 그리고 언제나 이들 주위에는 가족이 있다. 학교와 사회라는 큰 삶의 범주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는 얼마나 우리에게 힘을 주는가. 잃기 전에는 그 중요함과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가족, 그러므로 [졸업]의 표지에는 '지친 현대인의 삶에 위로와 힘을 주는 네 편의 가족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나 보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네 편의 이야기에서 보여주고 있나 보다.

나는 가끔 가족이라는 명분 때문에 남보다도 더 냉정하고 가차없는 비판을 하기도 했고, 내 욕심 때문에 가족들을 몰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가족이라는 이름의 횡포였다는 생각을 새삼 한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졸업하기 전에, 그 사람을 충분히 성숙시키고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시간을 보내서 떠나보내는 마음에 아쉬움이 없도록 해야겠다.
주말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장지에 모시고 온 오늘, 더욱 사무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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